#247
거기 있느냐
와아아아아아아아—.
아직 모든 조명이 환했기에, 군자를 비롯한 소년들은 관객석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수천, 수만의 응원봉이 벌써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얼굴이 보였으나 단 한 명도 지루하다거나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오른 표정. 그 장관에 소년들은 홀린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그러게 말이다.”
“웅이 형, 나 여기 소름 돋은 거 봐봐여.”
“후, 나도 지금 온 몸이 범스구스다.”
“엥? 구스범스 말하는 거지?”
“그래, 그거.”
군자 역시 말없이 관객석을 둘러보고 있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관객들의 구성이었다. 효(孝)를 테마로 한 공연답게, 꽤 많은 관객들이 부모와 동반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번엔 팬 분들의 부모님도 많이 찾아오신 것 같구나.”
“그러니깐. 뭔가 연령대가 엄청 다양한데?”
“부모님들이 그냥 자녀들 따라오신 건가?”
“에이, 아니져. 콘서트까지 그렇게 오시진 않지. 부모님들도 놀러 오신 걸걸요?”
“아하하핫, 맞아~ 부모님들도 바쁘시다구~”
“그런가? 흐흐, 뭔가 뿌듯한데.”
“그러게 말이다.”
뿌듯하다는 태웅의 말에 군자도 동의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감에 찬 관객들은 옆 자리에 앉은 부모님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곧 시작할 공연에 대한 대화일 테지.
실로 보람차지 않은가.
부모자식지간엔 응당 왕성한 대화와 소통이 있어야 할 터. 허나 오늘날엔 가족 간에도 소통이 뜸한 집안이 많다고 들었다. 당장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와 부모님 사이에서도 그렇지 않았던가.
헌데 이 곳에 온 모녀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모두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릇 효심이란 자연스러운 소통의 과정에서 발현되는 법. 아직 공연이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엔 벌써 효심이 넘실거리는 듯 했다. 그 소통의 주제가 자신들이라는 생각이 군자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나의 효심이 팬들에게 이심전심(以心傳心)되다니.
단지 나의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는 것을 넘어, 이 올바른 마음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다니!
군자에게 이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었다. 심지어 관객석 곳곳엔 부모님과 함께 고운 한복을 맞춰 입고 온 팬들도 있었다.
“하하, 곱다 고와. 너무도 곱지 않냐 말이다.”
객석에 앉은 팬들 역시 군자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7IN을 만난 뒤로, 연지의 부모님 역시 군자에게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손이 느린 탓에 콘서트 티켓 예매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들에겐 덕신의 축복을 받은 딸 연지가 있었다.
보란 듯이 예매에 성공한 연지는, 이번엔 친구 대신 부모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찐팬이 된 이상 부모님 역시 덕후 동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마침 이번 공연의 컨셉도 효(孝)다. 부모님과 함께 찾아오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우와, 부모님이랑 같이 온 사람들 엄청 많네.”
“그치? 내가 뭐라그랬어. 칠린 완전 대중픽이라니까.”
“그래 대중픽! 나도 그 단어 알아, 공부했다구.”
“어유, 잘 하셨어요. 칭찬해~”
“나이 많은 사람은 우리 뿐일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연지야.”
“우리 칠린이들은 어른들한테도 인기 엄청 많다구.”
“맞아. 그래서 표 예매하는 것도 너무 어려웠는데··· 연지 덕분에 이런 데를 다 와 보네.”
“헤헤, 고맙긴.”
“우리가 딸을 아주 잘 키웠어~”
부모님의 칭찬을 들으며, 연지는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만지며 웃었다.
최애인 군자가 그랬다, 효심을 계속해서 쌓아 나간다면 언젠가는 그 마음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7IN과 군자 덕분에 부모님과의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같은 것을 좋아하다 보니 부모님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항상 부모님께 받기만 하던 연지가, 무언가를 줄 수 있게 된 거다.
사소한 것 하나만 가르쳐 드려도, 부모님은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배운 양 기뻐하셨다. 그 모습이 연지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군자의 말은 옳았다. 부모님과 사이 좋게 지낸다는 것이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공연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다. ‘효도사이드 스쿼드’의 공연은, 솔직히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흥만큼은 확실하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어진 7IN의 공연이 본론이었다. 언제 노래를 다 외운 건지, 연지의 부모님도 트랙 하나하나를 모두 따라 부르며 공연을 즐기고 계셨다.
“아니, 언제 노래 다 외웠대!”
“너희 아빠, 요즘 운전할 때 얘네 노래만 듣는다잖니.”
“뭐? 진짜로!? 맨날 트로트 듣는 거 아니었어?”
“아유, 언제 적 트로트야. 게다가 군자 목소리 들어 봐라, 구수한 게 꼭 숭늉 같잖아.”
“무슨 소리야~ 이렇게 트렌디한 숭늉이 어디 있어!”
“허어, 구수하면서 트렌디할 수도 있는 거지.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선 약과가 핫하다면서. 이젠 그런 세상이 됐다고.”
“우와, 엄마! 약과 핫한 것도 알아?”
“그럼. 현재가 라방에서 말하더라. 요즘 약과가 핫해서 자기도 많이 먹고 있다고, 살 찔까 봐 걱정이라고.”
“헐, 허얼, 라방도 챙겨 본다고?”
“흐흐, 엄마 최애는 현재거든.”
“군자 라방도 챙겨 줘!”
“흐음, 군자는 다 좋은데 텐션이 좀 낮더라. 설거지 하면서 듣기엔 현재 텐션이 딱이거든~”
“아 엄마아~”
트랙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꽃이 피었다. 7IN의 음악으로 가족이 화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소년들도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꼈다.
“형들. 좀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는데여, 난 우리가 대중픽이어서 진짜 좋아여.”
“나도 그래. 가족끼리 와서 공연 보시는 거 보니까 왜 이렇게 내가 다 뿌듯하냐.”
“게다가 이번엔 우리 가족들도 전부 다 오셨잖아.”
“그치. 핌프 형은 본토 래퍼인데, 어떻게 이런 공연을 다 기획했지? 진짜 이상한 인간이라니까.”
“핑프 공의 효심도 너희 못지않단다. 요즘에도 매일매일 어머님께 문안인사를 올린다더구나.”
“군자, 네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 너 만나고 릴 핌프가 효도왕 된 거 아녀.”
“후후, 내가 한 것은 딱히 없다. 단지 핑프 공이 가지고 계시던 효심을 일깨워 주었을 뿐. 본질이 되먹지 못한 인간은 아무리 좋은 자극을 받는다 하여도 달라지기 어렵단다.”
“그건 맞지. 핌프 형은 원래도 좋은 사람 같긴 했어.”
“너희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선한 본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토록 반짝이는 보석이 된 것이지.”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잘도 하는구만···.”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단다.”
군자의 칭찬 폭격에, 멤버들은 민망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기분은 꽤나 좋아 보였다. 오그라드는 것을 가장 못 견디는 태웅부터 한 명씩 입을 열었다.
“뭐어··· 나도 항상 감사하고 있어. 평소에 말은 잘 안 하지만···.”
“나도야. 솔직히 너네 말고 다른 애들 위해서 작곡하는 건 별로 안 땡기더라.”
“헤헤, 나는 평소에도 말 많이 하잖아여.”
“그치. 현재 넌 표현 많이 하지. 대단한 놈.”
“막상 하기 시작하면 은근 쉽다니까여.”
“···저, 저도 형들이 제일 좋아요···.”
“아하하핫, 유찬이가 사랑 고백을 하네~ 그럼 나도 할래~ 사랑해~”
“나도 사랑한다.”
“혁이 형은 뭔 그 말을 그렇게 엄숙하게 해요.”
“푸하학, 그러게. 사랑 안 받아 주면 혼날 것 같잖아.”
“혼내지 않아. 사랑해.”
“아니 무슨 그런 사랑 고백이 있냐고요, 푸하핫—.”
효자, 효녀가 된 팬들처럼 멤버들 역시 군자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처음엔 오그라듦에 몸서리를 쳤지만, 이젠 멤버들도 군자처럼 서로를 향해 많은 표현을 하게 됐다.
덕분에 종종 작은 갈등이 있을 때에도 싸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숨기다가 오해를 키우는 일은 일절 없었으니까.
백스테이지에서 의기투합한 멤버들은 공연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무대 위로 올랐다. 마지막 트랙, 그리고 앵콜 무대가 끝나는 순간까지 팬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응원봉을 흔들며 목청을 높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10대 또래 집단부터 60대 중년 부부까지, 우리 팬들은 체력도 참으로 뛰어나구나!
덕분에 군자 역시 최후까지 멋지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스무 곡 이상의 공연으로 이미 머리칼을 포함한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성대는 아직 팔팔하다는 듯 청아한 음색을 뽑아내며 팬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오, 오늘도 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오—.”
마지막 무대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효도사이드 스쿼드 멤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짧은 투어 일정이었지만 효심이라는 키워드 아래 꽤나 많은 유대감을 쌓아 온 두 팀이었다.
“Yo, 이번에 너희의 효심을 제대로 배웠어. 역시 효도 하면 Far east side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더라.”
“하하, 그렇게 봐 주니 고맙구만.”
“자주 연락하자고. 무슨 일이든 도울 테니까.”
이제는 절친이 된 군자와 릴 핌프도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어느새 둘도 없는 효자가 되어, 이런 공연 투어까지 기획한 릴 핌프가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었다.
“핑프 공, 이제는 서쪽 땅에서도 손에 꼽는 효자가 되었구려.”
“다 네 덕분이야. 효도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효도가 재미있다니, 역시 핑프 공의 마음 속엔 선한 자아가 자리잡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내 이토록 본성이 좋은 친구를 사귀었음이 참으로 뿌듯합니다.”
“새꺄, 매번 느끼지만 넌 참 그런 민망한 소리를 잘도 한다.”
“후후, 표현은 언제나 좋은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 사이의 감정을 풍족하게 만든답니다.”
“그래. 나도 항상 감사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널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물론입니다. 단지 피를 나누지 않았을 뿐.”
그렇게 진한 감정과 격한 포옹을 나눈 뒤, 멤버들은 마침내 숙소로 돌아오는 차량을 탔다.
“야아아, 수고했다 얘들아. 이번에도 너무 너무 수고했어!”
“실장님도 수고하셨어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타, 타. 의자 데워 놨어.”
“감사합니다!”
이용중 실장이 모는 밴에 탄 멤버들은 금세 단잠에 빠져들었다. LA부터 서울에 이르는 타이트한 일정의 투어를 마쳤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했다.
숙소에 도착한 뒤엔 매니지먼트 팀이 거의 멤버들을 부축하다시피 하여 멤버들을 숙소로 인도했다. 겨우 샤워만 마친 멤버들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끄아아··· 다들 고생했어···.”
“···그래에··· 내일 얘기하자, 내일···.”
간신히 마지막 인사만을 주고받으며.
군자 역시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국가대표 선발전 일정을 마치자 마자 투어에 합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음···.”
그러나 잠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군자의 마음 속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오랜 친구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은 군자였다.
“창이야.”
···.
“창이야, 거기 있느냐.”
···.
그러나 군자의 부름에도 상태창은 좀처럼 응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