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은밀하게
“창이야, 어째서 대답이 없느냐.”
···.
한참 동안이나 반응이 없던 상태창은, 군자의 연이은 부름에 겨우 공명하며 제 존재감을 알렸다.
···우우웅···.
여느 때처럼 푸르스름한 형광의 사각 창. 그러나 그 빛깔이나 투명도가 예전 같지 않다.
이 세상에 처음 도착하여, <아육시> 임무를 진행하며 실력을 키워 나갈 때만 해도 상태창은 언제나 군자와 함께했다.
상태창이 내는 임무를 하나씩 완수할 때면 군자의 가무 솜씨도 쑥쑥 늘었다. 포인트라는 것으로 능력치를 올릴 땐 정말 도술이라도 부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곤 했다.
가장 힘들고 고단할 때엔 마법 같은 영양제를 선물해 주었고.
폐쇄된 공간에서 숨막힐 듯한 공포감을 느낄 땐, 말 그대로 창(窓)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300년 전 조선시대부터 함께해 온 상태창이다. 이 세계로 넘어온 뒤로 다양한 친우를 사귀었으나, 군자에게는 상태창만큼 오래되고 각별한 친구는 없었다.
그런데 그 상태창이, 어느 순간부터 부쩍 뜸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라면 종종 연락이 없더라도 아마 바쁘겠거니 했을 터. 그러나 상태창과 군자는 한 몸이었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불러도 가장 먼저 존재를 드러내던 일심동체(一心同體)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창이야,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우웅, 우우웅···.
공명 소리가 작다. 단지 기분 탓은 아닐 테다. 상태창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창이야···.”
그러나 군자는 이것을 바로잡을 방도를 몰랐다. 아니, 애초에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비뚤어진 것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문원 유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창병(瘡病)이 미지의 저주였던 것처럼, 군자 역시 상태창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와 관련이 있다는 짐작을 하고 있을 뿐.
그렇다면, 상태창의 존재감이 희미해져 가는 것도 어쩌면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에겐 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무를 선보이고 싶다는 꿈. 그것으로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꿈. 즉, 그 역시 아이돌이 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군자가 빙의한 뒤, ‘유군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돌이 됐다. 이제 조선 팔도에 군자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수만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부모님도 그런 군자의 모습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창이야.”
···.
또 대답이 없다.
잠시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다른 이름으로 상태창의 이름을 불러 본 군자였다.
“아니, 군자야.”
···우웅···.
작게 공명하는 상태창, 허나 빛깔이 다르다. 조금 놀랐다는 듯, 청록의 상태창이 불규칙하게 점멸했다.
“이제 여한이 없어진 게냐.”
···우우웅···.
“널 괴롭히던 이들은 죗값을 치르게 됐고, 이제 나는 아이돌이 되었단다. 부모님도 네 모습을 보며 기뻐하셨다. 너도 봤을 테지만 말이다.”
···우우우웅···.
“네가 바라던 것들이 이뤄져 가고 있구나.”
···우웅···.
“그래서,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냐.”
···.
상태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정의 의미를 담은 반응도 없었다. 그저 사라질 듯 떠오른 채 작게 점멸할 뿐.
군자는 손을 뻗어 그 윤곽을 어루만졌다. 오랜 친구와 조심스레 교감하듯, 허공에 뜬 형태에 제 손을 가져다 댔다.
“네 덕분에 이 놀라운 세상에 왔다. 네 덕분에 새로운 부모님을 만났으며, 내 오랜 꿈도 이룰 수 있었다.”
···.
“그 고마움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느냐.”
···.
“나 역시 네 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것이라면 좋겠구나. 내 존재가 네게 기쁨이었다면, 정말로 좋겠구나.”
···우우우웅···.
대답이 없던 상태창은, 군자의 말에 긍정이라도 한다는 듯 강하게 공명했다. 그 동안 기운 없었던 공명과는 다른 큰 울림이었다.
그 진폭이 군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 했다. 심신이 묘하게 편해졌다. 낮게 깔린 안개처럼, 어떠한 심상이 군자의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듯 했다.
“···이것은···.”
이건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의 기억이다. 그가 간직해 오던 감정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느낌이 생소하지 않았다. 마치 전부터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는 듯, 군자의 몸과 마음은 자연스레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부터 이래 왔던 것이냐.”
···우우웅···.
그제야 군자는 상태창이 희미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편안해진 모습으로, 천천히 군자와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을 뿐.
부드럽게 흘러 들어오는 ‘유군자’의 존재를 느끼며 군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는 상태창이 공명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구한 삶이었을 테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도 못한 채, 약관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으니. 게다가 살아생전에도 그를 괴롭히는 존재들이 있지 않았나.
그러나 상처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 모든 아픔이 정화됐다는 듯, 오직 좋은 기억과 감정들만이 군자의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야.
놀랍게도, 그 중엔 군자에 대한 감사도 섞여 있었다.
이 몸을 차지한 것에 대해 종종 염치없음을 느낀 군자였다.
어쩌다 보니 새로운 몸을 갖게 됐다. 누군가의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의 삶을 이어받아 살고 있다. 군자 입장에서야 만족스러웠지만, 몸의 원 주인은 불쾌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직접 감정을 느끼니 알 것 같았다.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에겐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군자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고맙구나···.”
그 감사가 오히려 감사한 군자였다. 저도 모르게 일어나, 마음에서 우러난 큰절을 했다. 이번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오랜 친구이자 이 몸의 원 주인이었던 ‘유군자’를 향해. 바로 나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들자 상태창은 더 이상 공명하지 않았다. 그 존재가 아예 소멸해 버렸다는 느낌은 없다. 분명 상태창은 군자의 내면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테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욱 뜸해질 테지.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것이 걱정되진 않았다. 어쩐지,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조선의 유군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러던 중, 문득 뜬금없는 생각이 든 군자였다.
만약 혼백만이 현대로 날아온 것이라면, 군자의 몸은 아직도 300년 전의 조선에 남아 있을 테다. 어쩌면 아직도 숙부에게 핍박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하면 그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끝내 꿈을 이룬 현대의 유군자처럼, 조선의 유군자도 언젠가는 뒤주 속에서 나와 저잣거리에서 자유롭게 가무를 즐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 머리로는 도무지 모르겠구나.
애초에 해답이 없는 질문이다. 현대로 온 것도, 사실 고민의 결과라기보다는 우연의 산물 아니던가.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다르지 않을 터. 고민해 보아야 소용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 군자는 이 곳에서 행복했다. 굳이 조선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우우웅···.
그에 동의한다는 듯, 상태창이 아주 작게 공명했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게로구나!
친우의 존재를 확인한 군자가 활짝 웃었다. 그래, 지금은 고민보다 휴식을 취해야 할 때다. 단잠으로 여독을 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군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은 너른 보자기처럼 순식간에 군자를 뒤덮어 꿈 속 세상으로 데려갔다.
“얼쑤—.”
꿈 속 군자는 저잣거리에 있었다. 신명 나는 장단에 맞추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처럼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 *
[첫 해외 투어 성공적으로 마친 7IN, LA - 서울 공연 전석 매진!]
[‘효도’를 테마로 한 이색 공연, 관객의 12% ‘부모 동반’.]
[요즘 트렌드는 효도? MZ세대 중심으로 ‘효도 내역’ SNS에 올리는 ‘효심 챌린지’ 유행 시작!]
[힙합 가수 릴 핌프, “효도는 끝나지 않는 유행이다.”]
[바람직한 문화 선도하는 그룹 7IN, 젊은이들의 롤 모델 되다.]
[거물 프로듀서 윌리 그린, 벌써 7IN과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 7IN 다음 정규 앨범의 메인 프로듀서는 윌리 그린?]
언제나처럼, 성공적인 행보 뒤엔 긍정적인 반응의 행렬이 뒤따랐다.
미국과 한국을 오간 효도 투어, ‘패륜킬러’ 공연 후엔 희한한 유행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SNS를 중심으로 ‘효도 챌린지’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
SNS상의 유행은 언제나 비슷한 양상이다. 처음엔 ‘이게 대체 뭐냐’며 한숨을 쉬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 유행에 편승하여 게시물을 올리게 된다.
‘효도 챌린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효도 자체가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이 챌린지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역으로 뭇매를 맞았다.
[또 챌린지 챌린지··· 어휴 지겹다 진짜;;]
[ㄴ그래서 너는 세상에 대체 뭔 기여를 하고 삼?]
[ㄴ그럼 니가 신선하고 신박한 뭔가를 만들어 줘]
[ㄴ원래 효도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갬성인데 지겹다 ㅇㅈㄹ ㅋㅋㅋ]
[ㄴ지겨우면 평생 불효자식으로 사시든갘ㅋㅋㅋㅋ]
[ㄴ나도 챌린지 극혐인데 이번거는 의미도 좋고 유행할수록 좋은거 아님?]
[ㅋㅋㅋㅋㅋㅋ그래 댓글 주렁주렁 달릴줄 알았다ㅋㅋㅋㅋ 누가 효도 하는 거 가지고 뭐라고 했음? 챌린지용으로 같잖은 효도 흉내 내고 SNS에 올리는게 맞다고 보냐?]
[ㄴ너는 챌린지용 효도라도 좀 해;;ㅋㅋ]
[ㄴㅋㅋㅋㅋ맞넼ㅋㅋㅋㅋㅋㅋㅋ]
[ㄴ살살해 애 뼈 부서지겠엉;;]
[ㄴ맞아 챌린지용 효도든 뭐든 부모님한테 잘한다는게 중요한거 아냐?]
[ㄴ나도 챌린지 하면서 느낀건데 부모님이 진짜 우리랑 시간 많이 보내고 싶어하시는것 같더라··· 솔직히 그냥 유행때매 재미로 한건데 반성 많이했어]
[ㄴㅠㅠㅠㅠ맞아··· 생각하니까 또 눈물날것같네]
[ㄴ위에위에 친구 말이 맞아. 동기가 뭐가 됐든 일단 부모님이랑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는게 그 챌린지의 의미임.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으면 평생 너가 생각하는 진짜 효도 하면서 혼자 살면 되고 ㅋㅋ]
‘효도 챌린지’의 탄생은 물론 군자와 동료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그들의 공연이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야, 야야야, 현수야, 이거 좀 봐라.”
“어? 뭘?”
“<삭막한 현대 사회를 구원한 히어로 7IN>. 이건 좀 너무 오그라드는 헤드라인 아니야? 크헤헤헤.”
“오바라면서 뭘 그렇게 좋아하는데.”
“아니이, 너무 좋은 말만 해 주시니까는.”
“또 히어로라니까 좋아서 그러지? 히어로 성애자···.”
“푸헤헤, 그래. 이제부터 난 효도 히어로다.”
군자와 멤버들이 보람의 바다에 빠져 있는 동안, 팬들은 멤버들을 위한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연지를 비롯한 팬 커뮤니티의 핵심 인원을 중심으로, 7IN 멤버들은 전혀 알 수 없도록 아주 은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