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반갑습니다
생일찻집으로 가는 길, 군자, 유찬, 인혁 세 사람은 밴 대신 이용중 실장의 개인 차량에 탑승했다.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겠다는 심산이었다.
“미안, 차가 좀 좁지?”
“···괘, 괜찮아요 실장님···.”
“유찬이 괜찮은 거 맞지? 무릎이 계속 의자를 쾅쾅 치는데, 하하핫—.”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다리 길어서 부럽다고~”
“···아아···.”
“난 키가 작아서, 요런 조그만 차 타고 다녀도 완전 괜찮단 말이지. 그런데 너네 태우니까 확실히 차가 좁긴 하다 야.”
“괜찮습니다 실장님.”
“그, 혁아. 괜찮은 거 맞지···?”
“예.”
“아닌 것 같은데···.”
유찬과 군자는 그나마 무난하게 뒷좌석에 탑승했으나, 인혁은 정말 온 몸을 구기듯이 똘똘 뭉쳐야 했다. 그 와중에도 유연성이 좋아서 일단 조수석에 앉긴 했지만,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가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 와중에도 세 사람의 표정엔 두근거림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밴이 아닌 다른 차를 타고, 일정에도 없던 일을 하려니 가슴 설레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소년들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룸미러를 보던 이용중 실장이 피식 웃었다.
“좋아?”
“예?”
“아니, 기분 좋아 보여서.”
“···예, 좋습니다. 팬 분들도 좋아해 주시겠지요?”
“당연하지! 어어어엄청 좋아하실 걸.”
“후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평소엔 엄청 어른스러운데, 이럴 때 보면 너희도 20대 초반이다 싶다니까.”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벌써 사회생활 3년차에 접어드는 중인 7IN 멤버들이었지만, 사실 나이로만 본다면 아직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어린 소년들이 버거운 일정을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소속사 직원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이런 소소한 일탈에 이토록 즐거워 하는 것도 마냥 귀엽게만 보였고.
“얘들아, 내가 매일매일 생각하는 말이 있는데.”
“예, 실장님.”
“너희랑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고맙다, 얘들아.”
“오오, 오늘은 어찌 그리 오그라드는 말씀을 다 하십니까. 낮술이라도 하신 건 아니실 테고.”
“수, 술이라니! 운전 해야 하는데, 술을 마셨겠냐.”
“후후, 장난입니다. 저도 실장님을 만난 것이 참으로 행복하답니다.”
“···저, 저도요···.”
훈훈한 덕담을 주고 받으며, 이용중 실장의 작은 차는 어느새 생일찻집 근처까지 도달했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댄 뒤, 이용중 실장은 소년들에게 청색 부채를 하나씩 건넸다.
“모자 푹 눌러 쓰고, 마스크도 단디 쓰고.”
“넵.”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볼 수 있거든? 그럴 땐 요걸로 얼굴을 딱 가리고 총총총 가는 거야. 알았지?”
“호오, 참으로 아름다운 부채입니다.”
“···그, 그런데 이러면 더 쉽게 알아보시지 않을까···.”
“뭐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일단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라는 거지.”
“예, 이해했습니다.”
“아마 별 일 없을 거야, 내가 항상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실장님!”
이용중 실장에게 꾸벅 목례를 한 뒤, 소년들은 마침내 조심스레 거리로 나섰다.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이 아니었기에, 거리엔 이미 꽤나 많은 행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후우, 후우···.”
소년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섞여 걷기 시작했다. 워낙 훤칠한 세 사람이었기에 종종 사람들의 시선을 사기도 했지만, 아직 세 사람의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스, 스릴 있어요···.”
“후후, 그러게 말이다. 이거 제법 재미있구나.”
“심장.”
“예, 형님?”
“심장이 아프다.”
“···저, 저두요···.”
그렇게 잠시 걷다 보니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이용중 실장의 말대로, 인기 코미디언 타나카가 행사를 하고 있었기에.
“우와, 타나카다!”
“진짜로 왕버클 벨트 하고 다니네?”
“푸하하학, 너무 웃겨—!!”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인기였다. 인파의 가운데에 선 타나카는, 능숙하게 좌중을 사로잡는 언변을 펼치고 있었다.
“조용그 조용그! 정숙그 해 주십시오옹—!!”
“푸하핫, 조용그가 뭐예요~”
“조용그 몰라? 비 콰이엇도! 나 마르 하자나~”
“푸하하하학—.”
타나카의 목소리를 귀로 들으며, 소년들은 그 위치를 잰걸음으로 지나갔다. 유찬은 조금 더 타나카를 구경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소년들의 목적지는 따로 있었기에.
“어? 조기 훤치루한 남자 세 명그, 타나카 눈에 들어왔소~”
“어디, 어디?”
하필이면 타나카가 소년들을 찾으며 시선이 모이긴 했지만, 이용중 실장이 건넨 부채가 도움이 됐다.
촤라락—.
워낙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온 세 사람이었기에 부채 펼치는 타이밍도 똑같았다.
“뭐야 뭐야, 혹시 칠린 아니야?”
“아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게 아닌가!?”
“그래, 맞는 것 같다니깐!”
“헐, 허어어얼—!!”
그러나 시민들이 세 소년의 정체를 파악한 시점, 소년들은 이미 거의 뜀박질에 가까운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진짜? 진짜로 칠린이야—!?”
“군자랑 유찬이랑 인혁오빠잖아—!!”
“아아악, 부채로 얼굴 가린 거 귀여워—.”
몇몇 시민들은 황급히 소년들을 뒤따라 가려 했으나, 관심에 목마른 타나카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잠까느! 잠깐마느—!! 다드르 타나카 두고 어디 간다는 거야?”
“앗, 타나카 상···.”
“이러며누 서브서브해! 타나카 사랑그 필요하다고오—!!”
“으으, 이러면 갈 수가 없는데.”
타나카가 모든 관객들을 잡아 두고 있는 동안 소년들은 걸음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긴 다리의 세 소년이 빠르게 걸어가니 그 속도는 거의 일반인의 조깅 속도와 비슷했다.
마지막엔 거의 뛰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생일찻집에 도착한 세 사람이었다.
“오오—.”
입구부터 푸르스름한 기운이 충만하니 군자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걸렸다. 이 청청한 기운은 분명 대나무임이야. 역시 대나무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평일 대낮이었음에도 찻집 안쪽은 꽤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딸랑딸랑—.
풍경(風磬)이 달린 문을 열고 찻집 내부로 들어선 세 사람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남성보다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여성들이었기에, 180cm을 훌쩍 넘는 세 사람이 등장하자 자연스레 시선이 모였다.
주문대를 향해 천천히 걸으며, 세 사람은 찻집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온통 우리들의 사진이구나.”
매란국죽이 우거진 내부는 군자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사방 팔방이 온통 군자의 사진과 그림들 뿐이니, 그 점으 다소 부끄러운 군자였다.
“···조, 조금 부끄러워요···.”
“그, 그러게 말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부끄럽다.”
“···너, 너무 관종 된 것 같아요, 혀엉···.”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며, 소년들은 마침내 주문대에 섰다. 고운 한복을 입은 연지가 방긋 웃는 얼굴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오세···—!?!?”
“—!!”
부채를 스윽 내리자 마자 군자와 연지의 눈이 마주쳤다. 벌써 몇 번을 본 사이인데, 군자가 연지를 몰라볼 리 없었다.
“여, 연지 낭자 아니시오?”
“구, 구, 군자다···.”
연지 역시 대번에 군자를 알아보았다.
사실 몸가짐과 걸음걸이만 보고도 이미 어느 정도의 예상은 했던 연지였다.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괜한 실망감만 불러일으키기에 애써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던 것.
그러나 눈을 마주친 순간엔 확신할 수 있었다. 군자다. 정말 군자가 자신의 생일찻집에 와 준 거다.
나는 전생에 거북선을 탔었나? 아니면 이순신이었나?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계속 계를 탈 수 있는 거지? 이게 말이 돼?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뺨이라도 때려 보고 싶은 연지였다. 그러나 군자 앞에서 그런 추한 짓거리는 할 수 없었다.
“하하, 연지 낭자. 주문 받아 주실 수 있겠소.”
“그, 그, 그으···.”
“내 향긋한 차 한 잔이 당기는구려.”
게다가 군자가 웃고 있다. 바로 연지의 눈 앞에서, 이토록 화사하고 예쁘게.
그렇다면 이게 꿈이든 생시든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그저 즐기면 그만인 것을!
“알겠사옵니다.”
“호오, 연지 낭자. 말투가 재미있게 변했구려.”
“호호, 이곳은 조선의 찻집 아니겠습니까.”
연지와 군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수상함을 느낀 팬들이 하나 둘 씩 군자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푸르스름한 부채 너머로 소년들의 정체를 확인한 팬들은,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꺽꺽 소리만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
“허, 허억···.”
“구, 군자··· 유찬이··· 인혁옵···.”
소리를 꽤액 지르고 싶었으나, 그렇게 했다간 멤버들을 놀라게 할 것 같았기에 숨만 연신 몰아쉬었다. 대신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싼 채 발만 동동 구르는 팬들이었다. 볼멘 표정으로 여자친구를 따라온 남자 손님들도, 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엔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와, 겁나 잘생기긴 했다···.”
소년들의 정체는 이미 탄로가 난 듯 했다. 이제는 정체를 숨기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인혁이 형님.”
“으음.”
“이렇게 된 이상,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고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도 그게 좋다.”
“···저, 저도요··· 조금 부끄럽지만···.”
결심을 굳힌 소년들은 부채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조그마한 마스크를 벗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그 순간까지 비명을 참고 있던 팬들은, 소년들의 얼굴이 공개되자 마자 참았던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꺄아아아아악—.”
“미쳤어어어어어—.”
“우와악, 혀어엉—!!”
소년들의 외모가 뿜는 광채는, 여성 팬들은 물론 외간 남자들마저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의 파괴력이 있었다. 자칫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 후방에 머물러 있던 이용중 실장은 순간 긴장했으나 그가 나설 일은 없었다.
“자아, 우리 정숙해요!”
“네에—.”
“이렇게 멤버들이 직접 찾아왔는데, 우리가 예의를 지켜야지.”
“예의, 예의—.”
예의와 법도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팬덤답게, 갑자기 멤버가 나타난 돌발 상황에서도 팬들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흥분은 금세 가라앉았으며, 깔끔한 대열을 만든 팬들은 얌전히 앉아 멤버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참으로 예의바른 분들 아닌가.
그런 팬들의 모습에 군자가 자연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 하나만으로도 이미 몇 개월 치의 행복감을 일시불로 받은 것 같은 팬들이었다.
“우리가 군자를 웃게 했어!”
“하아, 이게 월급이지.”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갑자기 성사된 팬 미팅이었지만, 팬들의 질서정연함 덕분에 진행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다. 마이크가 따로 준비되진 않았으나, 군자의 낭창한 목소리는 풍부한 울림으로 찻집 공간에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