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54화 (254/303)

#254

뉴 테마

스칼렛 홀을 마주한 군자의 모습은 확실히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언제나 총기 넘치는 눈빛과 함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던 군자가, 오늘따라 조금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군자, 괜찮아? 무슨 일 있어?”

군자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스칼렛 홀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꽤 심란해 보이네.”

20대 남자 아티스트에게 찾아온 심란함이라, 이유는 뻔하다. 스칼렛 홀은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지.”

“···호올 선생님도 제 고민을 알아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야 뭐, 그런 고민 해본 지 오래 됐지만··· 20대 아티스트에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잖아?”

“선생님께서 알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맙긴 뭘.”

고개를 조아리는 군자를 향해, 스칼렛 홀이 장난스런 눈빛을 보내며 웃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군데?”

“예?”

“아이, 다 아니까 숨길 생각 하지 말고.”

“그, 그게 무슨···.”

“음? 여자 문제 아니었어?”

“—!?”

“아니, 고개 푹 숙이고 심란해 하는 게 딱 여자 문제인 줄···.”

“아, 아닙니다!”

“엥? 그래?”

“여자 문제라니, 그 무슨 당치도 않은—!!”

여자 이야기가 나오자, 맥아리 없던 군자가 펄떡펄떡 뛰며 손사래를 쳤다. 반응을 보니 확실히 억울해 보이긴 했지만, 짓궂은 스칼렛 홀은 장난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어허,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말야.”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저는 결백합니다!”

“그래에? 이상한데? 이렇게 잘생기고, 이렇게 선하고, 이렇게 매력적인데 여자들이 널 가만 둔단 말이야?”

“그, 그것은···.”

“있지? 있었지? 말해 봐 빨리.”

“물론 제게 접근해 오는 여성들이 있긴 있었습니다만···.”

“거 봐 거 봐, 그 중에 누굴 만날지 고민된다 이거 아냐.”

“아닙니다! 그 분들의 과분한 사랑에 대해서는 참으로 감사합니다만, 저는 아직 이성교제를 할 마음이 없단 말입니다—!!”

“뭐,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누가 ‘나 연애해야지!’ 이러고 연애를 시작하니? 촌스럽게.”

“초, 촌스러워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연애해야지’ 마음을 먹었을 때 시작할 겁니다!”

“아하?”

“예! 그러니까···.”

“그래서, 지금 그 마음을 먹을지 말지 고민 중이라는—.”

“선생니이이임—!!”

“푸하하하학—.”

그 때까지 웃음을 꾹꾹 참던 스칼렛 홀은, 목까지 새빨개진 군자의 얼굴을 보며 결국 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아, 나 너무 웃었더니 눈물이 다 나네.”

“호올 선생니이임···.”

“장난 친거야, 장난. 나도 알아, 넌 여자에 딱히 관심 없다는 거. 좋은 일이지, 네 나이 때에 여자 잘못 만났다가 커리어 망치는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왜 그렇게 장난을···!”

“그건 어쩔 수 없어. 네 반응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멈출 수가 없었다고. 이해해 주라.”

“으으, 정말 너무하십니다아···.”

“그래서 군자, 네 진짜 고민이 뭔데?”

스칼렛 홀의 질문에, 군자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팬미팅 말미에 받았던 질문, 아이돌로서의 목표가 무엇이냐.

당장 구체적인 목표 없이 그저 아이돌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군자에게 그 질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목표를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마땅한 목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흐으음—.”

“어떻습니까. 정말 엄청난 고민 아닙니까.”

“너네 진짜 재미없다. 고민이 뭐 그래?”

“예?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20세 소년들의 고민이라면 당연히 연애 문제여야 하는 거 아니야?”

“후우, 앞으로 호올 선생님과는 고민상담은 안 해야겠습니다!”

“푸하하학,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이제 장난 안 칠게.”

“···장난 좋아하시는 건 진작 알았습니다만, 너무하십니다아···.”

“이게 다 애정이지, 애정. 그리고 솔직히 기특해. 벌써부터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게 말야. 앞으로 얼마나 더 잘 되려고 그러는지, 무튼 릴 핌프에겐 항상 감사해. 그 자식 덕분에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알게 됐으니까.”

병 주고 약 주는 스칼렛 홀이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칭찬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듯 군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하긴 합니다만···.”

“그리고 그 고민은 아마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것 같아.”

“그렇습니까?”

“응. 목표란 건 너희가 스스로 설정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에서 받은 자극으로 인해서 생기기도 하거든.”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라···.”

“응. 예를 들면 선배 아티스트가 어떤 업적을 달성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 말야.”

“호오—.”

스칼렛 홀의 조언에 군자와 소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 당장은 조급해 할 필요 없다는 말씀이시구나.

“그래, 당장은 앨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부터 생각해 보자. 군자, 집중할 수 있지?”

“넵, 물론입니다!”

스칼렛 홀과의 대화로 인해 조금은 머릿속이 가벼워진 군자였다.

작업을 시작한 날부터 모든 7IN 멤버들과 스칼렛 홀, 그리고 그녀의 사단은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아이디어 회의라고 했지만, 그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노는 것이 정말로 앨범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 걱정될 정도로.

“호올 선생님, 정말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겁니까?”

“그럼 그럼. 이게 다 인사이트를 뽑는 과정이라고.”

“흐으으음···.”

“너무 걱정하지 마.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줄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어색해진단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방식을 믿어 줘. 그 동안 단 한 번도 실패해 본 적 없는 방식이니까 말야.”

그렇게 10월의 남은 시간이 흐르고 11월이 됐다.

갑작스런 추위가 엄습해 온다는 것은 곧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을 볼 시간이 되었다는 뜻. 7IN을 사랑하는 팬들 중에서도 수험생들은 꽤나 많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야무진 응원을 준비한 7IN이었다.

먼저 일곱 멤버가 함께 만든 선물은 비대면 콘서트.

일곱 멤버가 각각 노래 하나씩을 선정, 평소엔 들을 수 없는 다른 방식으로 편곡하여 온라인 라이브 콘서트를 준비했다.

그 밖에도 직접 쓴 손편지와 수제 핫팩 같은 선물 이벤트를 준비했으며, 몇몇 수능 시험장에는 멤버들이 직접 따뜻한 음료를 실은 음료차를 준비하기도 했다.

“헤헤, 이번 수능 이벤트도 다들 좋아하시겠져?”

“그랬음 좋겠다··· 후우, 나 이번에 발라드 처음 불러 보는데··· 괜찮을까?”

“괜찮다니까. 권태웅 너가 음색이 은근 투박해서 툭툭 던지듯이 부르는 매력이 있다고. 제발 그 택도 없는 염소 바이브레이션만 하지 마.”

“아하하, 나는 양말을 만들었는데 말야~”

“하하, 시우가 양말을 만든 것이 참으로 뿌듯한 모양이구나. 어제부터 그 말만 하는 것을 보니.”

“아하하하핫, 내가 그랬었나~”

“그나저나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수험생인 분들도 계실 텐데···.”

“···그, 재, 재수··· 하신···.”

“커흠, 큼, 그 분들은 이번엔 꼭 좋은 결과 나왔음 좋겠다. 그치?”

“맞아여. 수험생 응원은 적게 받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여?”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스칼렛 홀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도 팬들을 각별히 여기는 가수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소통 창구는 어디까지나 음악이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이토록 팬과 상호작용하는 경우는, 적어도 스칼렛 홀이 아는 한은 매우 드물었다.

심지어 7IN은 이미 K-POP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 아니던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9위를 기록한 아티스트가, 팬들을 위해 꼬물꼬물 손편지를 적고 있다니! 스칼렛 홀의 입장에선 신선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재미있어. K-POP 아이돌들이 팬이랑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재미있다니까.”

“흐음, 어떤 면이 말씀이십니까.”

“팝 시장에서는 가수가 이 정도로 팬에게 사랑을 쏟지 않아. 그건 쿨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 게다가 팝스타란 놈들은 연애도 제 멋대로고, 심지어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는 놈팽이들도 있지.”

“와우, 세상에···.”

“양다리, 문어 다리는 약과지. 더한 경우도 알려줄까? 내가 아는 어떤 래퍼는 말야—.”

그 뒤로, 스칼렛 홀의 ‘쓰레기 같은 팝스타의 예’ 강의가 한참을 이어졌다. 실화인지 주작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놀라운 예시들을 들으며 소년들은 혀를 내둘렀다.

“···허, 허억···.”

“기유찬이 눈 반짝이는 거 보소. 이런 막장 드라마가 재미있냐!”

“···아, 아니에요··· 그, 그냥 놀라워서···.”

“그러게, 놀랍긴 하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두고 어찌 그런··· 어후.”

얼굴이 새빨개진 소년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며, 스칼렛 홀이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너희는 팬 서비스에 정말 진심이구나. 애정을 쏟는 게 느껴져.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 알겠어. 이건 그냥 PR이나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행동이구만?”

“물론입니다.”

“이젠 내가 궁금할 지경이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것은···.”

“어어,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부정적 의미는 절대 없어. 그냥, 진짜 연인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랑을 담아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그래.”

스칼렛 홀의 질문에, 군자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한 보은(報恩)입니다.”

“당연하다?”

“예. 지금은 한 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근본은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지요. 팬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우리를 뽑아 주셨기에 아이돌이 되었고, 지금까지 사랑받으며 활동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흐음—.”

“쉽게 말해, 그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다는 뜻이지요.”

“···그렇구나.”

“저는 오히려 호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그 나쁜 예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불륜 팝스타들 말야?”

“예. 물론 모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겠지요. 그러나 사실 정말 위대한 것은, 그들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후으으음, 그러네. 맞는 말이네···.”

“헌데도 그렇게 바르지 못한 행실을 보이고, 지구 반대편까지 그 추태를 알린다는 것은··· 어휴.”

한참 열변을 토하던 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런 군자를 보며, 스칼렛 홀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그래, 이게 너희의 차별점이네.”

“예?”

“이번 앨범 말야, 이런 테마를 잡아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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