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2부의 피날레
연말 시상식은 시작 전부터 온통 뒤숭숭하고 어지러웠다. 평소 같았다면 팬들과 기자들만 모여 있을 출근길부터 호들갑스러운 레드카펫과 온갖 현란한 장식이 7IN 멤버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우왕, 저 팬 분 되게 오랜만이당.”
여느 때처럼 팬들을 향해 환하게 인사하며 출근길에 오른 7IN 멤버들이었지만 오늘은 복장이 조금 달랐다. 연말 시상식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깔끔한 수트 차림의 소년들을 향해, 팬들의 환호성과 기자들의 셔터 세례가 쏟아졌다.
꺄아아아악—.
파바바바바밧—!!
환호성이나 셔터 소리는 이제 꽤나 익숙해졌지만, 레드카펫은 좀처럼 밟아 볼 일이 없었기에 아직은 어색한 멤버들이었다. 특히 태웅과 유찬은 모처럼 차려 입은 수트가 어색하다는 듯, 손과 발을 동시에 움직이며 삐걱삐걱 뚝딱걸음을 걸었다.
“으으, 몸이 더 커져서 그런가? 수트가 너무 불편해···.”
“···저, 저도 어깨가 잘 안 맞아요···.”
“푸하학, 둘이 왜 그렇게 걷고 있어여. 무슨 안드로이드 로봇인 줄 알았넹.”
“야, 넌 어색하지도 않냐?”
“음, 글쎄여. 그냥 걷는 것 뿐인뎅?”
“혁이 형도 봐 보라고. 저 형도 무슨 팝핀댄스를 추고 있잖아.”
태웅과 유찬, 인혁에겐 레드카펫이 꽤나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수많은 시선이 모인 와중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으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멤버도 있었다.
“아하하하핫~”
우선은 현시우가 그랬다.
“쟤는 대체 뭐야···.”
“숙소에서 샤워하고 나오면서 웃는 모습이랑 똑같지 않아여?”
“현재 너도 너지만, 현시우 쟨 진짜 괴물 같다니깐.”
“뭔 생각 하는지 알 수가 없어여, 정말.”
그리고 의외로 군자 역시 레드카펫 위에서 꽤나 선전 중이었다.
“하하, 안녕하시오. 반갑소이다.”
“와아아—.”
“이 쪽 좀 봐 주세요—!!”
“그래요 그래요, 좋은 저녁입니다 그려.”
조선에서 왔기에 레드카펫 문화가 생소할 군자였으나, 어쩐지 이 순간이 익숙한 군자였다.
공연을 하기 위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저잣거리를 나갈 땐 이런 느낌이 아니었지. 그러나 양반의 모습으로 가마를 타고 양민들 사이를 지날 땐, 모두가 군자가 탄 가마를 우러러보듯 바라보곤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딱히 우월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농부든 양반이든 모두 같은 사람이고 인격 아니던가.
그러나 그런 상황을 자주 겪으며, 수많은 이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한 군자였다.
“하하하, 그래요 그래요. 접니다, 유군자.”
놀라울 정도로 당당한 그 모습에 팬과 기자들이 환호했다. 시선을 높이 들고 자연스레 손을 흔들어 주니, 찍는 사진마다 레전드 컷이 나왔다.
“군자 형도 의외로 엄청 잘하는데여···.”
“그러게. 쟤가 너보다 나은 것 같은데?”
“그니까여··· 가만 보면 저 형은 약간 내추럴 본 관종이라니깐여.”
그렇게 출근길 포토스팟을 지난 뒤, 멤버들은 특설 무대 뒤의 대기실로 모였다. 항상 단독 대기실을 사용했던 7IN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벨로체의 요청으로 두 팀이 하나의 대기실을 사용하게 됐다.
“대기실은 우리가 같이 쓰자고 했어. 괜찮지? 불편한 거 없지?”
“아이, 불편하긴요. 형들이야말로 불편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불편할 게 뭐가 있겠냐. 대기실 같이 쓰면 안무나 화음 같은 거 한 번이라도 더 맞춰 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자고 했어.”
“저희도 너무 좋아여. 오늘 무대는 진짜 완벽해야 하니깐.”
스트레칭과 함께 적당히 목을 풀고 난 뒤, 7IN과 벨로체 멤버들은 모두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벌써 수많은 팀들이 공연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말 시상식인 만큼, 평소엔 쉽게 볼 수 없었던 얼굴도 곳곳에 보였다.
7IN의 메인보컬 현재는 한 쪽 구석에서 솔로 가수 박효준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바, 박효준 선배님! 저 너무 너무 팬이에여! 존경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저도 칠린 노래 너무 잘 듣고 있어요. 하현재 님 맞죠?”
“앗, 넵! 맞습니다! 알아봐 주시네여, 헤헷.”
“당연하죠. 저도 현재 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유튜브에 뜰 때마다 좋아요 누르고 있어요.”
“헐, 허얼, 우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팀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태웅은 걸그룹 바이올렛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려다가 현수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야 야, 하지 마.”
“왜? 인사 하면 안 됨? 그래도 안면 있는 사인데.”
“걸그룹이잖아. 괜히 말 걸었다가 이상한 소문 나면 어떡하냐.”
“그른가? 근데 난 열애설 같은 건 안 뜨지 않을까?”
“또 모르는겨.”
“그래?”
“나도 너가 그냥 개빻았으면 냅두겠는데···.”
“음? 나 잘생김?”
“예 예, 아주 떡두꺼비처럼 자알 생기셨어요.”
“푸하핫, 넌 잘생긴 시체가 좀비로 부활한 것 같이 생겼어.”
“뭐 이 자식아?”
“왜, 좀비도 잘생기면 멋지더라. <웜바디스>도 안 봤냐?”
“···너가 웜바디스를 알아?”
“응. 왜? 나 그거 보고 울었는데.”
“아니, 맨날 마블 영화만 보는 줄 알았지···.”
잡담으로 긴장을 풀다 보니 어느새 7IN -벨로체 연합팀의 리허설 차례가 왔다. 무대 아래의 가수들도, 이 연합팀의 차례가 오자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파엘이 했던 말처럼, 소년들은 리허설에서는 힘을 줄 생각이 없었다.
동선만 맞춰 볼 수 있도록, 발성 역시 30% 정도의 힘만 사용해서. 특히 하이라이트 부분의 군무는 느낌만 주는 식으로.
힘을 주지 않은 무대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다. 무대를 확인한 몇몇 가수들은, 안심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씨익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재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뭔가 우리 얕보였나봐여.”
“그러게. 이 사람들이, 우리 무대를 보고 웃네?”
“히잉, 그냥 풀 파워로 할 걸 그랬나아···.”
“아냐. 다들 잘 했어. 맞춰야 할 부분은 다 완벽하게 맞았잖아.”
“그건 맞아여, 헤헤. 특히 화음 들어가는 타이밍은 완벽했던 듯?”
“맞아, 본 무대에서 보여주면 돼. 어차피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 건 리허설이 아니라 생방송 본 무대니까.”
파엘의 말에 현재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리허설 한 바퀴가 돌고 난 이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연말 시상식이 시작됐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7IN과 벨로체 멤버들은 모두 정해진 스팟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무대를 관람하며 리액션을 할 수 있도록, 방송국 측에서 정해 준 자리였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큰 음악 축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3 뮤직 유니버스> MC 정해진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음악 프로 진행자의 대명사처럼 된 MC 정해진의 멘트를 시작으로 연말 시상식의 막이 열렸다.
“후우우—.”
“생방송이라 그런가, 막상 카메라 돌아가니까 조금 긴장되는데여.”
“그래. 욕 하면 안된다, 현재야.”
“헐, 욕은 평소에도 안 하거든여?”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이었기에 소년들의 표정은 다소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나, 가수들이 무대를 하는 순간만큼은 온 몸으로 리듬을 타며 무대를 즐겼다.
첫 번째 하이라이트는 1부의 말미에 등장한 보컬 연합팀 ‘별목소리’의 무대.
노래 좀 한다는 보이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최고의 에이스들만을 뽑아 만든 ‘별목소리’는, 여가수 유아린의 초고난이도 솔로곡 를 팀곡으로 편곡하여 무대를 준비했다.
‘별목소리’가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파엘이 현재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남돌 보컬 에이스만 모았는데, 현재 널 빼놨네.”
“흐흐, 그러니까여.”
“너도 섭외 제안은 받았지?”
“네, 근데 거절했어여.”
“왜? 가서 아주 본때를 보여주지 그랬어.”
“전 우리 형아들이랑 무대 하는 게 더 좋아여.”
“흐흐, 귀여운 놈.”
“근데 엘이 형, 본때를 보여주는게 뭐예여··· 아저씨 말이야 완전.”
“···귀엽다가 만 놈···.”
비록 현재가 빠지긴 했지만, ‘별목소리’의 무대는 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울림이 있었다.
아아아아아—.
특히 초고음이 가능한 보컬 두 명의 3도 화음은, 관객석에 앉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와, 고음 미치긴 했네···.”
“진짜 경연용처럼 편곡 하셨네여.”
확실히 강렬한 무대였지만, 그 순간의 시청자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 진성이랑 호윤이 고음은 진짜 미쳤다ㅠㅠㅠㅠ]
[얘네가 어떠케 아이돌 보컬이나고ㅠㅠㅠㅠㅠ후우ㅜㅜ]
[유아린님도 감동하신드슈ㅠㅠㅠ완전 넋 나가계심]
[방송으로 봐도 이렇게 좋은데 현장에선 얼마나 더 좋을까]
[벌스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개 감동임··· 이게 올해 레전드네]
[심플한 착장부터 무대 세팅 음향 마지막 고음까지 그냥 갓벽]
[휴 난 올해 뮤니버스는 이것만 계속 돌려볼듯]
[난 막 퍼포 화려한 무대보다 이렇게 울림 있는 보컬무대가 더 좋더라]
[진성이는 ㄹㅇ락보컬이라니깐 악기뚫고 고음 지르는거봐;;]
‘별목소리’ 멤버들의 팬덤은 대체로 좋은 반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고음으로 가득 채워진 무대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너무 고음고음 고음파티인거 아냐?]
[난 듣다가 좀 피로하더랑ㅇㅇ]
[다른건 모르겠고 진짜 보컬차력대회 하는 것 같아서 좀 별루얐어]
[진성이랑 호윤이 사이 좋은거 맞아? ㅋㅋㅋㅋ거의 목소리로 싸우는것 같던데]
[나만 그런건가 모르겠는데··· 서로 밀리기 싫어서 더 발성 빡세게 하는것처럼 느껴지ㅏ뮤ㅠㅠ]
[어 나도나도 딱 이렇게 느껴짐 그냥 한 팀이 아니라 한 곡에서 서로 싸우는느낌?]
[근데 어쩔수없는것같음 ㅋㅋㅋ연말 시상식 할려고 급하게 만든 플젝그룹이자너]
[회사도 다 다르고ㅋㅋㅋ자존심싸움 할수밖에없지]
[그 와중에 저정도면 잘 살린거야]
[그건 인정ㅇㅇ]
모두 다른 회사 소속의 보컬 멤버들이 모였으니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방송을 보던 팬들도 그를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2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7IN - 벨로체의 무대에 대해서도 비슷한 예측이 이어졌다.
[칠로체 조합도 비슷하지않으까? 얘네도 회사 완전 다르잖아]
[멤버들끼리 사이는 좋아 보이던데ㅋㅋㅋㅋ]
[그것도 다 비즈니스짘ㅋㅋㅋㅋ게다가 얘네는 퍼포먼스임]
[서로 더 돋보이고 싶어서 대환장파티 날 것 같어]
[조합은 진짜 좋긴 한데ㅠㅠㅠ나도 파엘이 넘좋아하는데]
[벨로체나 칠린이나 두 팀 다 열정맨들이 많아서ㅇㅇ]
[편곡은 이번에도 지현수? 자기 팀한테 유리하게 하지않았을까···]
[걔 유군자 집착광공이자넠ㅋㅋㅋㅋㅋㅋ또 군자 솔로파트 넣고 그런거아냐?]
[에이설맠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암튼 별목소리보단 구릴것 가틈ㅋㅋㅋㅋ]
[이런 이름값 있는 콜라보가 의외로 구린 경우가 많더라]
[ㄴ 어어어엉어ㅓ어 이거 완전맞음]
[ㄴ 작년에 유아린이랑 박효준도 걍 그랬음 난 ㅠ]
7IN - 벨로체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도 ‘별목소리’의 무대와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시상식 순서는 점점 흘러, 어느덧 무대는 2부의 피날레로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