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59화 (259/303)

#259

“으으, 목이야.”

아이돌 그룹 ‘나인틴’의 메인보컬 호윤은 무대를 마친 뒤에도 한동안 생수병을 들고 잔기침을 해야 했다.

피를 토하듯 고음을 쏟아 낸 무대였다. 급조된 보컬 그룹 ‘별목소리’의 팀워크는 안타깝지만 콩가루 수준이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보컬 어벤저스’라 불렀으나 어벤저스와 별목소리의 공동점은 딱 하나, 멤버 간 내전이 일어났다는 점 뿐이었다.

사실 파트를 나눌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섯 멤버가 모두 임팩트 있는 부분을 가져가고 싶어서 하루종일 유세를 해 댔으니까. 그 전쟁 같았던 시간을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호윤이었다.

“휴, 진짜 뭔 애드립들을 그렇게 하냐고 진짜···.”

어찌어찌 파트를 나누긴 했으나 전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밋밋한 파트를 가져간 멤버들의 반격이 시작된 거다.

공연 날까지는 파트에 만족한 척 잠잠했던 그들은, 정작 생방송 리허설 때부터 제 노래에 온갖 변주와 애드립을 붙이기 시작했다.

애드립을 붙이니 임팩트는 더 살았지만 곡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졌다. 초장부터 그렇게 싸움을 걸어 오니, 호윤 역시 자신의 파트에 더욱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간 발성으로 고음을 꽥꽥 질렀다. 그 와중에, 함께 고음 파트를 맡은 진성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지 아주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뽑아 댔고.

덕분에 노래인지 차력쇼인지 모를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다. 여섯 목소리의 아름다운 화합을 보여주자며 결성한 ‘별목소리’는, 정작 무대가 끝난 뒤엔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도 없이 각자 원 소속 팀원들에게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진짜 정도 없네.”

그래도 악수나 가벼운 포옹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팀원들의 냉랭함이 못내 아쉬운 호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나 보이지 않는 전쟁을 펼쳤는데, 다 끝나고 훈훈한 척 하는 것도 웃긴다. 생방송 무대에서 제 멋대로 합의되지 않은 애드립을 펼쳐 놓은 팀원들에겐 굳이 수고했다는 말도 해 주고 싶지 않았다.

‘별목소리’ 팀원들을 등진 채, 호윤 역시 원 소속팀인 나인틴 멤버들을 향해 총총 달려갔다.

“호윤, 수고했어.”

“네 형··· 목 아파 죽겠어요···.”

“그러게, 평소보다 더 힘 들어간 것 같긴 하더라.”

“다들 돋보이려고 아주 난리를 치니까, 저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었어. 벌스부터 애드립이 엄청 많이 생겼던데? 어떻게 된 거야?”

“에휴, 저도 몰라요.”

“엥? 모른다고? 합의한 애드립이 아니었어?”

“그런 덕지덕지 애드립을 누가 찬성했겠어요··· 그냥 그 사람들 멋대로 그렇게 하던데요.”

“진짜로? 미쳤구만.”

“안 좋은 파트 줬다고 시위하는 거죠. 이제 별목소리 같은 건 다시는 안 하려구요.”

“에구··· 암튼 고생했다 호윤아.”

“무대는 어땠어요?”

“좋았어. 괜찮았어.”

“에이, 솔직히 말해 줘도 돼요.”

“으으음··· 쪼오끔만 힘이 더 빠졌으면 더 좋았겠다는 느낌?”

동료 형들의 솔직한 평가에, 호윤의 어깨가 바닥으로 추욱 쳐졌다.

“그럴 줄 알았어···.”

“에이,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 어쩌겠냐, 사람들이 그렇게 욕심을 부린 걸. 그리고 방금 라이브 스트리밍 반응 봤는데, 사람들 반응은 또 괜찮아.”

“그래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급조한 팀이 이 정도면 잘 한 거지. 칠린이랑 벨로체 콜라보도 아마 비슷할 걸?”

“휴, 그러려나···.”

“당연하지. 게다가 그 팀들은 대상 가능성도 있잖아. 아마 더 치열하게 하지 않을까?

“그러면 조금 마음의 위안이 될 것 같긴 하네요···.”

그러나 나인틴 멤버들의 예상과는 달리 백스테이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2부의 피날레를 앞둔 시점, 7IN과 벨로체의 열다섯 멤버들은 동그랗게 모여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반대항 구기대회 나가는 것 같네여, 흐흐.”

“헉, 구기대회? 오랜만에 축구 하고 싶다···.”

“푸하학, 너네 진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말하는구나.”

“축구나 무대나, 중요한 것은 협동심 아니겠습니까.”

“그래, 군자가 말 잘 했다. 우리가 서포트하는 파트에선 확실히 받쳐 줄 테니까, 자신감 있게 잘 해. 알았지?”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 같이 으쌰 한 번 하고 올라가자.”

열다섯 개의 발이 한 점에 모이는 것과 동시에 우렁찬 화이팅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퍼포먼스 무대입니다. 2023년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두 보이그룹이죠. 7IN과 벨로체가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일 예정인데요, 바로 무대 만나보시겠습니다.”

MC 정해진의 소개 멘트와 함께, 조명이 암전되며 소년들이 무대에 올랐다. 메인 퍼포머만 열다섯 명에, 백업 댄서까지 올라서니 무대는 벌써 가득 찬 느낌이었다.

약간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대형으로 선 소년들은, 심지어 고개를 숙인 각도마저 똑같았다. 키는 제각기 달랐으나 신장을 고려한 배치 덕에 그마저도 조화로워 보였다.

어슴푸레한 무대에 조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강렬한 오리엔탈 풍의 타악기 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쿠웅, 쿠우웅—.

맹수의 발자국 소리 같은 큰북에 맞춰, 먼저 벨로체 멤버들이 대형을 전개해 나갔다. 오리엔탈 풍으로 절묘하게 편곡된 에, 백의를 입은 벨로체 멤버들이 승무 같은 몸짓으로 단체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와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

탄성과 비명이 동시에 섞여 터져 나왔다. 벨로체 특유의 절도 넘치는 안무에 동양풍의 춤사위가 섞여 들어가니, 그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조선의 관군(官軍) 같아 보이기도 했다.

벨로체의 팬들은 물론, 관객석과 집에서 라이브로 이 무대를 지켜보던 7IN의 팬들마저 그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벨로체는 단순히 동양풍 컨셉만 가져간 것이 아니었다. 몸을 쓰는 방식, 손끝과 발끝 디테일, 심지어 표정까지 7IN과 완벽하게 싱크로가 맞아 있었다.

“···우와, 우와아···.”

7IN의 무대를 많이 본 팬일수록 그 디테일이 눈에 잘 들어왔다. 팬들의 입장에선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 선배 가수인 벨로체가, 무대 위에서 7IN을 존중해 준다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으니까.

다른 가수들이라고 그걸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호윤을 비롯한 ‘별목소리’ 팀원들 역시 7IN - 벨로체의 무대에 그저 입을 떡 벌릴 뿐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잘 맞는 건데···.”

“벨로체가 칠린 스타일을 거의 완벽하게 카피한 것 같은데요.”

“연습 엄청 했나 보다.”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 팀들은 왜 이렇게 사이가 좋아 보인대요?”

“그러게. 뭐야 쟤네?”

“리허설 땐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리허설 무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가수들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100% 전력을 내는 7IN - 벨로체의 무대는 임팩트로도, 합으로도 다른 모든 팀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 넘버 의 하이라이트에 접어들자, 센터에 선 파엘이 퍼포먼스를 진두지휘했다. 대장군 같은 파엘의 시원시원한 안무와 위압감 넘치는 표정에,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반응을 쏟아냈다.

[하아ㅏㅏ 진심 극락이야ㅠㅠㅠㅠㅠ]

[파엘옵 저 빡센 춤선은 진짜 아무도 못따라오네]

[와근데 군무 맞느거바.. 미친 15명이 이렇게 합이 좋을수 있는거임?]

[동작이 잘 맞으니까 센터가 눈에 더 잘들어오뮤ㅠㅠ]

[하ㅏㅏㅏ 진짜 표정 개맛집이야]

[미친듯이 짤 찌는중;;]

[별목소리가 올해 레전드인줄 알았는데 여기가 레전드네]

[이와중에 벨로체 라이브 퀄리티도 미쳣슴ㅠㅠㅠ]

[아ㅏㅏ아ㅏ무대 끝나지말아줘제발]

무대 종료를 아쉬워하는 팬들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음악은 새로운 국면으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동양풍으로 편곡한 와 후반부의 <사냥의 시간>을 잇는 간주 구간은 두 팀의 합동 댄스 브레이크로 꾸며졌다. 동양풍의 현악기를 메인 멜로디로 한 구성에, 사이키델릭한 베이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완벽하게 믹싱된 그 비트 위에서, 두 팀의 멤버들이 또 한번 완벽한 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텃팅’이었다. 두 손과 팔, 그리고 손가락까지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형상을 표현해 내는 안무인 텃팅은, 특히 단체 안무로 만들기 어렵다고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열다섯 멤버들은 작은 오차 하나 없이 단체 텃팅을 소화해 냈다. 마치 팔로 만든 가지에서 손가락 꽃이 피어나는 듯한 놀라운 안무에, 관객석에 앉은 다른 아티스트들조차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와아아아아아—.”

“와 씨, 텃팅 미쳤는데—!?”

“저거 뭐 어떻게 연습했지? 진짜 미친 거 아냐!?”

텃팅으로 시작된 안무는 차츰 무대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과감한 동선을 사용하면서도 대칭은 무너지지 않았다.

보폭 하나, 팔 올라가는 각도 하나까지 섬뜩할 정도로 일치하는 모습은, 마치 열다섯 멤버들이 처음부터 하나의 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두웅, 두우웅—.

베이스가 강해질수록, 악기가 추가될수록 안무 역시 격해졌으나 퍼포먼스의 일체감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돋보이기 위해 돌출된 행동을 하는 멤버는 없었다.

V자 대형으로 늘어선 멤버들의 후방에 백업 댄서 무리가 추가됐다. 전문 댄서들로 구성된 백업 댄서진이었으나, 소년들의 춤사위는 결코 백업 댄서들의 춤 퀄리티에 밀리지 않았다.

아이돌 멤버가 열다섯이나 모였으니 춤에 약한 멤버가 있을 법도 했지만, 이 퍼포먼스에 구멍 같은 것은 없었다. 어디에 눈을 둬도 극락이니, 움짤을 만드는 팬들의 광대 역시 함께 하늘로 승천 중이었다.

그렇게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회전하는 동선과 함께 소년들의 의상 컨셉이 뒤바뀌었다.

“—!!”

백의를 입고 있던 벨로체 멤버들의 의상은 저승사자 같은 검은색으로 바뀌었으며, 반대로 검은 재킷을 걸치고 있던 7IN 멤버들은 겉옷을 벗어던지며 하얀 셔츠를 드러냈다.

하얀 셔츠 위, 몸을 결박하듯 착용한 하네스가 드러나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여성 팬들이 냅다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초대손님으로서 자리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심사위원 출신의 프로듀서 영은채 역시, 오늘만큼은 한 명의 덕후로서 마구마구 목청을 높이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지미집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원샷으로 잡았으나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군자님! 군자님! 유군자님—!!”

최애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며, 외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방방 뛰는 그녀의 모습은 아이돌을 사랑하는 찐팬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부름에 화답하듯,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자 이번에는 군자를 필두로 7IN 멤버들이 전방으로 나섰다. 동시에, 세련된 편곡으로 재탄생한 <사냥의 시간>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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