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2024 PARIS
“앨범 발매를 더 늦추고, 부피를 키울 수 있겠습니까?”
“으잉? 오히려 더 큰 앨범을 만들자고?”
스칼렛 홀의 반문에 군자와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모두 끝난 내용인 듯, 다른 멤버들도 딱히 놀란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그래? 뭐 작업 일정을 당겨 달라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더 신중하고 천천히 하자는 건 아무런 문제 없지. 트랙이야 늘리면 되는 거고··· 그런데 왜?”
“앨범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졌습니다. ‘상호작용’을 주제로 이야깃거리들을 생각하다 보니, 지금의 구성으로는 메시지 전달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 그게 끝?”
그게 끝이냐는 스칼렛 홀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던 군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솔직히, 하반기에 앨범을 발매하고픈 생각도 있습니다.”
“아하, 시상식 때문에?”
“예.”
군자는 솔직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목표인 연말 시상식 대상 수상을 위해선, 하반기 컴백이 유리하다는 것을 이미 느낀 소년들이었다.
“물론, 그것이 약간의 편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아이, 편법은 무슨. 그러면 뭐 그렇게 시기 맞춰서 컴백하는 대형 팝 가수들도 전부 편법쟁이들이게?”
“게다가 내년 하반기에는 루나틱 형님들도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루나틱, 나도 알아. 리온이 있는 그룹이지? 빌보드 차트 1등 했었던.”
“예, 맞습니다.”
“다 같이 군대 갔다고 들었는데, 내년 하반기엔 돌아오나 보구나.”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이용중 실장과 서은우 팀장도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난 찬성. 너무 찬성이야. 일단 앨범 준비를 천천히 하면 너네가 더 편해지잖아. 너희는 좀 덜 열정적으로 살 필요가 있어. 이번에도 느긋하게 앨범 준비 하는 것 같더니, 결국 연말무대 한다고 또 빡세게 살았잖아.”
“헤헤, 그러게여. 어쩌다 보니 또 그렇게 됐넹···.”
“어쩌다 보니 가 아니야 이 자식들아. 너네 지금 얼굴을 봐라. 다들 다크서클 내려온 게, 칠린이 아니라 칠현수 같잖아.”
“푸하하하하학, 칠현수래—.”
“무튼, 하반기 컴백이면 그때까지는 좀 쉬엄쉬엄 할 수 있겠지. 군자 올림픽 다녀와서 합류하는 것도 문제 없을 거고.”
이용중 실장에 이어, 이번엔 서은우 팀장 역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저도 대찬성입니다.”
“오, 팀장님도요?”
“예. 언제나 정공법, 정도만을 외치던 여러분들이 드디어 약간의 요령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아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헤헤, 목표가 생겼으니까 이 정도 룰은 따라야져. 게다가 상반기엔 군자 형아가 올림픽 때문에 엄청 바쁠 것 같기도 하고.”
현재의 말처럼 2024년 상반기는 복잡한 해가 될 것 같았다. 군자를 제외한 소년들은 7IN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었으나, 군자만큼은 2024년 파리 올림픽 양궁 국가대표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대표라고 해서, 단순히 올림픽만 출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대표 훈련에도 참석해야 하고, 기자회견이나 대표팀 행사 등 다양한 일정도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물론 실력으로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긴 했지만, 그럼에도 선발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던 만큼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에, 앨범 발매 시기를 늦추자는 의견은 꽤나 타당해 보였다. 스칼렛 홀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그렇게 하자.”
“감사합니다, 호올 선생님!”
“물론 그렇게 되면 우리 팀이 한국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한데···.”
“헉, 그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근데 뭐, 괜찮아. 우리도 이 나라가 점점 좋아지고 있거든. 오래 체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는 무슨. 우리도 그냥 즐거워서 하는 거야. 돈 보고 일할 거였음 아마 중국에 있지 않았을까? 하하.”
그렇게 7IN의 정규 2집 발매는 2024년 하반기로 재조율됐다. 그러나 정규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팬들을 굶주린 채로 둘 생각은 없었다.
군자가 올림픽에 전념하는 동안, 남은 7IN 멤버들은 두 3인조 팀으로 나뉘어 유닛 활동을 펼칠 계획이었다.
하현재, 기유찬, 현시우 3보컬, 그리고 차인혁, 권태웅, 지현수의 3래퍼 유닛.
아직 유닛 활동을 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팬들은 군자의 공백기를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음원이 나오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헉 칠린 보컬즈 발라드 유닛이라고????]
[무친ㅠㅠㅠㅠㅠ난 얘네 유닛이 연말 공연 꿀목소리인가 걔네보다 나을것가틈]
[ㅋㅋㅋㅋ꿀목소리가 아니라 별목소리 아님?]
[암튼ㅇㅇ 그 팀은 뭔가 밸런스가 안맞았다궁]
[그건맞아ㅋㅋㅋ칠린 보컬즈는 일단 음색이 딱 통일돼 있어서 넘모좋음]
[나 얘네 화음 쌓는 파트만 진짜 많이 들었는데ㅠㅠㅠㅠ보컬씹덕의 니즈를 이렇게 충족시켜주네]
[래퍼즈도 너무 기대됨ㅋㅋㅋㅋ그 알앤비가수 도로시랑 같이 음원 낸다는것 같던뎅]
[헐 도로시 엄청 힙한 여자보컬 그분 말하는거 맞지? 트랩비트에 노래하시는]
[ㅇㅇ맞음ㅋㅋㅋㅋ 칠린 래퍼즈랑 어울리려나?]
[진짜 상상이 안되는 조합이야ㅋㅋㅋㅋ]
[휴 군자 없다구 아쉬워했는데 막상 유닛 음원 나온다니까 그것도 기대되긴 한당ㅎㅎㅎ]
그렇게 보컬 파트, 랩 파트 멤버들이 각각 유닛 활동을 예고한 가운데, 마침내 2024년 새해가 밝았다.
2024년, 군자가 참여한 7IN 일정은 많지 않았다.
우선 새해를 맞이하여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팬들에게 신년 인사를 올렸다. 또한, 구정 연휴를 맞이하여 준비한 자체 요리 & 먹방 컨텐츠, <칠장금> 라이브 촬영을 멤버들과 함께했다.
“오늘은 귀여운 방울만두를 잔뜩 만들어서 떡만두국을 만들어 볼 거예여~ 형들, 그거 알아여? 만두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 장가도 잘 간대여, 헤헤.”
“아니, 그럼 손재주 없는 사람은 결혼도 못 하는 거야? 이런 줸장···.”
“푸하하하, 만두를 만들랬더니 무슨 드럼통을 만들어 놨어 얘는.”
“야, 맛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님?”
“맛은 만두소가 다 내 주는 거 아녀, 만두소는 혁이 형이랑 군자가 만들었고.”
“하하, 오늘도 현수와 태웅이는 기운이 좋구나.”
“아하하하핫, 난 팬들이랑 결혼할 거야~”
“우와, 현시우 얘는 뭔 만두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었대?”
“아하핫, 이게 다 마음이지 마음~”
“아니, 마음이고 자시고 대체 어떻게 한 건데···.”
그렇게 먹음직스러운 떡만두국을 한 그릇 한 다음엔, 진천선수촌 입소 전 군자의 마지막 인사가 이어졌다.
팬들에게 야무지게 큰절을 올린 군자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준비한 인사를 또박또박 전달했다.
“팬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유군자입니다. 저는 내일부터 2024 파리 올림픽 참가를 위해 진천선수촌으로 들어갑니다. 그 동안 팬 여러분들을 자주 만나뵐 수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국가대표란 제게 결코 가볍지 않은 사명입니다. 나라를 대표하여 싸울 기회를 얻은 만큼, 전력을 다하여 기량을 갈고 닦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5개월 후, 멋진 결과를 들고 여러분들 앞에 다시 나타나겠습니다. 팬 여러분들도 그 여정을 함께해 주신다면, 제게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수줍은 마지막 인사를 마친 군자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접속해 있던 채팅창에도 군자를 향한 인삿말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ㅠㅠㅠㅠㅠ군자 건강해야해ㅠㅠㅠㅠㅠ]
[선수촌에서 밥은 잘 주겠지? 우리군자 밥 얼마나 잘먹는데]
[양궁소년단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야 해]
[군자야 가끔 라방이라도 켜 줘! 너무 보고싶을 거야]
[ㅠㅠㅠㅠㅠ영상들 복습하구 있을게ㅠㅠㅠㅠ]
[너무 무리하지 말구 그냥 즐기고 와!]
[메달을 따든 못 따든 우리는 네가 자랑스러워 군자야]
[마자마자 ㅋㅋㅋㅋ올림픽은 축제잖아]
[군자가 멋진 무대에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들어 왔음 좋겠어]
[(여자 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방금 여자 선수촌 사람들 군자 보고 난리나는 상상 해버렸어ㅠㅠㅠㅠㅠ]
[헉 갑자기 안 갔움 좋겠다아ㅠㅠㅠㅠ]
[군자야 ㅠㅠㅠㅠ막 끼부리고 다님 안댄다,,,, 약속해죠]
[후 근데 끼를 안 부려도 뭐··· 그냥 존재 자체가 플러팅이자너]
주접을 떠는 채팅창의 팬들을 향해, 군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하하, 그럴 일 없습니다. 저 유군자, 여성 숙소엔 근처도 가지 않겠습니다.”
그 웃음을 보며 팬들은 다시 한번 뒤집어짐과 동시에 온갖 주접 채팅을 올렸다.
[하아ㅏㅏㅏㅏ 저렇게 웃는데 여자 선수들이 안 모이겠움?]
[역대 최고로 잘생긴 올림픽 대표선수라고,,,,,,]
[‘얼굴’ 종목 있었으면 무적권 금메달]
[후우 올림픽 자원봉사단이라도 지원해야되낳ㅎㅎㅎㅎㅎ]
[마따 군자야,,, 막 올림픽 선수촌에,,, 이상한 용품 같은 거 뿌린다던데,,,, 그런건 관심도갖지마!! 그냥 다 갖다버려버려!!]
[ㄴ ㅋㅋㅋㅋㅋㅋ쓸데없는걱정하지맠ㅋㅋㅋㅋㅋㅋㅋ군자가 괜히 선비겠냐거~~]
[에휴 무튼 잘다녀와ㅠㅠㅠ기다리구 있을게에]
[이번 올림픽 볼 이유가 생겼당]
그렇게 팬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마친 뒤, 군자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숙소에서 가볍게 짐을 챙겼다.
훈련을 하러 들어가는 선수촌인 만큼, 짐은 크게 무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동료들은 야무지게 군자를 챙겨 주었다.
“군자, 이거 악력기. 양궁도 악력이 중요하다더라. 숙소에서 요거 써서 전완근 훈련 하자.”
“고맙다 태웅아. 역시 운동에 관해선 전문가나 다름없구나.”
“···구, 군자 형··· 이거 동생들이 만들어 준 부적이에요··· 형한테 행운을 가져다 줄 거예요···.”
“오오, 고맙다 고마워. 이것은 내 발목에 달고 경기를 해야겠다.”
“군자, 내 개인 유튜브 계정에 너 전용 플리 만들어 놨어. 긴장감 해소하고 집중력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거야. 대나무숲에서 부는 바람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샘플로 사용했지, 후후.”
“역시 현수는 내 취향을 잘 알고 있구나. 지음(知音)의 붕우(朋友)가 따로 없음이야.”
“형아 형아, 이거 받아여. 어제 시우 형이랑 같이 만들었어여.”
“이것은··· 오오, 약과 아니더냐! 내 약과 좋아하는 것은 어찌 알고.”
“형 취향이 워낙 아재아재하잖아여, 흐흐. 배 고플 때 하나씩 꺼내 먹어여! 내 생각 많이 하고.”
“고맙다, 고마워. 근데 혁이 형님, 이 뽀짝한 인형은 무엇입니까?”
“잘 때 안고 자.”
“예?”
“무서운 게 달아날 거다.”
“혀, 형님은 아직도 인형을 안고 주무십니까?”
“···아니야.”
복닥복닥한 선물 증정식까지 끝난 다음 날 아침, 마침내 군자는 홀로 밴에 올랐다. 이용중 실장이 모는 밴은 진천선수촌을 향하여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