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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67화 (267/303)

#267

활빙구

양궁은 극한의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관중들 역시 이를 알기에, 경기 관람 중에도 소음 발생을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양궁 경기 중에는 언제나 적막이 감돌았다. 그 조용한 분위기 덕에, 경기가 끝난 다음에도 약간의 박수 갈채만이 뒤따를 뿐 큰 환호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예선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와아아아아아아—.

기존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은 신기록의 등장에, 갤러리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환호성을 만들었다. 경기 중에 내내 침묵한 것이 너무도 답답했다는 듯, 목청이 터져라 군자의 이름을 불러 댔다.

“유군자, 유군자—!!”

“세계신기록이래, 이번 올림픽 첫 기록이라구!”

“아니, 잘한다 잘한다 말만 들었지··· 진짜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쓸 정도였단 말야?”

관중들의 얼굴은 환희와 놀라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군자를 둘러싼 국가대표 선수단과 코치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제 실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예선 통과는 문제없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초장부터 이런 미친 세계신기록을 만들 줄은 몰랐으니까.

양궁 대표팀 코치 오진식은 거의 하회탈이 된 얼굴로 군자를 끌어안으며 거친 수염을 비벼 댔다.

“군자야, 이 사랑스러운 놈아아아—.”

“아야야, 코치님. 따갑습니다, 하하.”

“어쩜 이렇게 잘 하냐, 응? 어떻게 이렇게 똑 부러지게 잘 하냔 말이다.”

“모두 코치님과 동료들이 힘 써 준 덕분입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줄 아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 이게 방금 712점 쏜 놈이 할 말이야? 이럴 땐, 어? 좀 건방 좀 떨어도 된다고.”

군자의 엉덩이를 팡팡 두들긴 오진식 코치는, 마찬가지로 높은 점수를 기록한 덕준과 한영을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도 너무 너무 잘했다. 두 사람 다 개인 레코드잖아?”

“네에, 그래도 유군자 저 괴물은 못 이겼지만요··· 쩝.”

“군자만 없었으면 너희가 세계신기록이야. 올림픽 무대에서 700점을 넘겼다는 건 엄청난 성과잖냐.”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요~”

“그래. 특히 덕준이, 중반에 잠깐 집중력 흔들리는 것 같더니 금방 다시 회복하더만.”

“앗, 눈치채셨네요.”

“덕준이가 집중력이 확실히 좋아졌어. 원래 같았으면 거기서 더 흔들렸을 텐데, 잘했다. 정말 잘했어.”

“헤헷.”

오진식 코치의 칭찬을 받으며 세 사람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당초 계획은 680점 이상을 쏘며 안정적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었지만, 세 사람은 목표치를 한참 초과달성해 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탑시드 세 개를 다 가져가니까, 만나더라도 4강이나 결승에서나 만나겠구나.”

오진식 코치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는 한국 선수들이 최대한 함께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으니, 세 사람이 탑시드를 차지한 현 상황은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순간에도 관중들은 지치지 않으며 세 사람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유군자 콜로 시작된 환호성은 이내 고한영, 김덕준의 이름까지 호명하며 양궁소년단 멤버들 전부를 챙겨 주었다.

“하하, 참으로 아름답도다. 그렇지 않더냐, 덕준아.”

프로 아이돌답게 군자는 팬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팬서비스야말로 아이돌의 근본 중 근본. 약간은 지나치지 않은가 싶을 정도의 민망스런 팬서비스도, 그들은 언제나 즐거워 하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 주었다.

마침 덕준과 한영이 군자의 등을 떠밀었다.

“군자, 그거 해야지.”

“음?”

“어제 숙소에서 한 내기 있잖아.”

“그게 무슨··· 아뿔싸!”

순간 어젯밤의 내기가 떠오른 군자였다.

젱가인지 쟁기질인지, 괴이한 나무토막을 요리조리 뽑으며 탑을 쌓는 놀이를 하다가 덕준과 한영에게 연이어 참패를 하고 말았다.

그것도 집중력을 요하는 놀이라 하기에 자신있게 내기를 시작했으나, 덕준과 한영은 마치 귀신처럼 나무토막을 쏙쏙 뽑으며 군자를 궁지로 몰아 갔다.

결국 완패한 군자는 벌칙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벌칙의 내용은 단순했다. 패배한 사람이 경기 종료 후 세레모니를 펼치기.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면 하지 않기로 했지만, 1등도 모자라 세계신기록까지 세운 지금은 벌칙을 수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으으···.”

결국 군자는 팬들을 향해 돌아섰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약속은 약속 아니던가.

화사한 얼굴이 팬들을 향하자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환호성이 군자의 등을 떠밀어 주는 듯 했다.

“오오오?”

“우왁, 귀여워—!!”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서 쏘는 듯한 군자의 세레모니에 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뭐야 뭐야, 군자 오늘 왜 이래!?”

“원래 저런 거 안 하는 앤데.”

“귀 빨개진 거 봐, 부끄럽나 봐.”

“다른 국대 선수들 웃는 거 보니까, 내기에서 진 것 같은데?”

“맞네, 맞네.”

이미 군자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팬들은 한영과 덕준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무슨 내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렇게 귀여운 세레모니까지 볼 수 있게 됐으니.

찰칵, 찰칵—.

미친 기록에 이은 뽀짝한 세레모니까지. 군자를 향한 카메라들의 셔터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포털 메인에 걸 만한 사진을 잔뜩 뽑아내며 기자들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크으, 대문에 쓰라고 이렇게 세레모니까지 해 주네. 이렇게 잘생긴 얼굴로 이렇게 혜자스러워도 되는 거야?”

“어, 선배. 다른 선수들 다 빠져나가는데요? 인터뷰 하러 갈까요?”

“오케이, 가자. 외신들도 엄청 몰릴테니까, 잘 붙어서 한 마디라도 건져 보자고.”

경기장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다국적 기자단이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이제 막 올림픽이 시작한 시점이었으나, 군자의 미친 경기력과 빼어난 용모는 ‘올림픽 스타’의 탄생을 예견하는 듯 했다.

“유군자 씨, 새로운 세계신기록 보유자가 되셨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단 한 번도 양궁 대회에 참여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기량을 갖게 되신 것인지—.”

쏟아지는 질문에 모두 대답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가급적이면 인터뷰는 자제하라는 오진식 코치의 지시도 있었기에 군자는 대답의 길이를 줄였다.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쁩니다. 남은 본선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서려 했으나, 쩌렁쩌렁한 질문이 군자의 귓전을 울렸다.

“유군자 선수가 가장 자신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자신있는 것이라. 다른 질문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과녁 한가운데에 화살을 쏘는 것입니다.”

“!”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목표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오오—.”

돌아서는 군자를 향해 기자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아니, 어떻게 걸어가는 뒷모습도 저렇게 멋지냐.”

“후우, 대충 세팅해 놓고 아무렇게나 막 갈겨 찍어도 다 예쁜데요.”

“쟤는 진짜 인기 엄청 많아지겠다, 그치?”

“선배, 벌써 인기 엄청나게 많대요. 우리가 아저씨라 모르는 거지.”

“···그러냐.”

* * *

[‘국가대표 아이돌’ 유군자, 올림픽 무대 첫 세계신기록 작성!]

[‘712점’ 유군자, 불가사의한 집중력으로 퀄리피케이션 라운드 압도적인 1위 달성.]

[대체 712점이 얼마나 높은 점수기에? 올림픽 양궁 예선 스코어의 역사]

[유군자를 비롯한 ‘양궁소년단’ 멤버들, 전원 700점 돌파로 1~3위 본선 진출 성공. 남자 개인전 메달 싹쓸이 가능성]

[유군자, “가장 자신있는 것은 화살을 한가운데에 맞추는 것.”]

[IOC 공식 페이지 대문 장식한 유군자, ‘올림픽 스타’ 존재감 입증.]

[유군자, 김덕준, 고한영 출전한 양궁 예선전 전국 시청률 38%··· 역대 올림픽 예선 중 압도적인 최고기록.]

수많은 이슈를 만들며 전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유군자의 대표팀 합류는, 초장부터 양궁협회의 완벽한 판단임을 입증하며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와앀ㅋㅋㅋㅋㅋㅋㅋ미쳣어 나 우리나라 선수가 세계신기록 만드는거 첨봄ㅋㅋㅋㅋㅋ]

[아육시1화부터 군자 덕질했고 이젠 웬만한 사건엔 충격 안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진짴ㅋㅋㅋㅋ이건 너무 신선하다]

[내 최애가 국대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에 나간다고? 심지어 올림픽무대에서 세계신기록을 막 쓴다고??;;;;]

[짤 찔게 너무 많아서 그냥 포기함ㅋㅋㅋ방송국놈들아 나 대신 일좀 해라]

[진짜 유니폼도 찰떡인거 미쳣어ㅠㅠㅠㅠㅠ양궁유니폼이 이렇게 예쁜거였냐구]

[어깨도 개넓어서 그 양궁선수들 어깨에 차는 보호대 터질것같은것도 개치임 왜 운동을 해도 이렇게 예쁜거냐구]

[유군자 활빙구 세레모니 무편집본.gif]

[ㄴ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내 웃음벨]

[아니 개멋지게 세계신기록 찍어놓고 저게 뭔데 대쳌ㅋㅋㅋㅋㅋ]

[어떻게 올림픽 나가서 붙은 별명이 활빙궄ㅋㅋㅋㅋㅋㅋㅋㅋ]

[귀 빨개진거봨ㅋㅋㅋ진짜 개귀여움]

[근데 또 인터뷰는 넘 멋졌음··· 가장 잘하는게 과녁 한가운데에 활 쏘는거래···]

[동료들이랑은 개신나게 덩실덩실 했으면서 신기록엔 무덤덤한것도 존멋임]

[진짜 얘는 부족한 부분이 뭘까? 나랑 토론좀 할사람있니]

[모든걸 다 가진 유군자 하지만 강릉함씨 33대손 나 함지은은 가지지못했지]

[ㄴ 못(X) 안(O)]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국인 한국 여론은 당연히 떡상이었다. 세계신기록까지 만들며 실력을 입증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비난 여론이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타국 대표팀들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기존 양궁대회엔 단 한 번도 출전한 적 없는 군자였기에, 타국 대표팀 선수들은 군자를 어렵지 않은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선전의 미친 경기력을 본 이상, 모든 선수들이 군자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도 대한민국’을 외치며 기량을 갈고 닦아 온 중국 대표팀 선수들, 특히 중국의 에이스 리장량은 예선전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젠장, 712점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점수냐고!”

“리장량, 참아. 괜히 이것저것 부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분명 멘탈 도핑(집중력 향상을 위해 행하는 뇌 도핑) 같은 걸 했겠지. 그게 아니고선 이 기록은 설명이 안 돼!”

“그, 그렇겠지?”

“당연하지! 그렇게 잘하는 놈이었다면 그 동안 국제대회에 안 나온 게 설명이 안 되잖아!”

그렇게 말하며 리장량은 노트북 모니터를 거칠게 닫았다. 리장량 역시 698점이라는 괜찮은 기록을 냈으나 최종 기록은 4위. ‘팀 코리아’ 선수들과는 4강전에서나 만나게 되는 위치였다.

“그래, 그 기량이라면 4강까지는 무난하게 올라오겠지.”

“아마도···.”

“좋다 이거야. 내가 박살을 내 주겠어. 기록 라운드와 1대 1 넉아웃 라운드는 확실히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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