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갈라쇼
[어어···?]
[잠깐만, 화살이 어디에···.]
[설마 과녁을 벗어난 건 아니겠죠? 분명히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한 곳에 응집되어 어지러운 과녁의 형상 때분에, 두 번째 화살을 찾는 데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략 10초 정도가 지난 뒤에야 캐스터와 해설자는 두 번째 화살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저, 저기 있습니다!! 두 번째 화살 역시 1세트에 꽂아 놓은 화살의 꽁무니에 박혀 있습니다—!!]
[두 번째 로빈훗 애로우가 터졌습니다!! 또 한번 화살에 화살을 꽂아 넣었습니다—!! 아니,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유군자 선수, 설마 일부러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첫 화살은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 화살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니 분위기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군자의 실력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던 양궁소년단 단원들도.
“···영이 형, 설마 아니겠죠?”
“으음, 연습 때라면 시도해 볼 만한 짓이긴 한데···.”
“아니 그건 연습 때 얘기고, 지금은 올림픽 4강이잖아···.”
“하지만 두 번이나 ‘우연히’ 로빈훗 애로우가 터졌다고 하는 것보다는, 군자가 노리고 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거야 그렇긴 한데···.”
군자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7IN 동료들도.
“나 양궁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엄청 어려운 거 맞져?”
“검색해 보니까 0.0058% 확률로 나오는 샷이라고 하던데···?”
“여, 영쩜 영영··· 몇이라고? 그게 두 번 연속으로 터졌으니까··· 그럼 확률이 몇이냐.”
“엄청 어려운 거야.”
“오, 혁이 형 양궁 좀 알아요?”
“아니. 하지만 사격에서도 총알구멍 하나에 정확히 두 번의 총알을 박아 넣는 경우는 드물어. 그런데 곡사로 쏘는 양궁이라면 더더욱.”
“잠깐만, 근데 형 총은 또 어디서 쏴 본 건데요···.”
“무튼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거잖아. 군자가 그걸 의도해서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에이, 우연이겠지. 그러면 어벤져스에 호크아이 대신 들어가야 돼.”
“···우, 우연은 아니지 않을까요··· 구, 군자 형이라면···.”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으나 군자만큼은 손톱만큼도 놀라지 않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세 번째 화살을 들어올렸다.
어찌 놀라겠는가, 목표한 것을 맞추었을 뿐인데.
오히려 목표물에 화살이 맞지 않았다면 더 놀랐을 것이다. 활을 잡은 순간만큼은, 군자는 자신이 뜻한 바를 모두 현실로 이뤄낼 수 있었다.
이제 리장량은 경기장에서 삭제되어 버린 듯 했다. 모든 관중들, 심지어 중국인들까지 군자의 결승 진출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관중들의 포커스는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다.
과연 3연속 ‘로빈 훗 애로우’는 가능한 것일까.
2세트에서 보여준 기량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3연속으로 화살에 화살을 박아 넣는 기술은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해설자와 캐스터도 기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목청을 높였다.
[이제 유군자 선수의 결승 진출은 확정이나 다름없습니다—!! 두 발의 화살 모두 10점에 꽂아 넣은 지금, 마지막 화살이 4점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하기만 한다면 유군자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그러나 관객 여러분들, 시청자 여러분들, 그리고 저희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유군자 선수가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신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올림픽 본선에서 3연속 로빈훗 애로우를 성공시킨다면, 그 장면은 아마 양궁사를 넘어 올림픽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상대 리장량 선수의 존재감은 이미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4강 2차전은 말 그대로 유군자의 독무대입니다!! 활을 들고 펼치는 신궁의 갈라쇼입니다—!!]
기대감은 끝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군자는 뜸을 들이는 법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발이었음에도, 자신의 루틴대로 시위에 화살을 걸어 당길 뿐. 심장박동 역시 분당 60을 넘어가지 않는 평온한 상태였다.
그 지독한 쿨함에 오히려 시청자들이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ㅏㅏ 군자얔ㅋㅋㅋ잠깐만 자마감가잠ㄱ잠깐만ㅋㅋㅋ]
[아니 나 아직 준비가 안됐다곸ㅋㅋㅋㅋ]
[아까부터 오줌 참으면서 보고있는데 유군자 얘 왜 이렇게 개쿨함?]
[마지막 화살이니까 좀 뜸 좀 들여주면 안되는거야??ㅋㅋㅋㅋㅋㅋ]
[하아ㅏㅏ 현기증나네 김성주 아저씨 불러와]
[그래ㅠ 60초만··· 60초만 천천히 여유있게 쏴 줄수 없는거니]
[진짜 너무 쿨해,, 내인생 저렇게 쿨했을땐 OMR카드에 정답 3번으로 밀고 시험장 빠져나오던 순간밖에 없는데]
[근데 진짜 로빈훗 머시기 그거 3연속으로 하려나;;;]
[에잌ㅋㅋㅋㅋ말도안돼 이게 뭔 웹소설이냐곸ㅋㅋㅋㅋ]
[근데 진짜로 그걸 성공하면 어뜩해야됨?]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의 현실이 사실은 웹소설 속 세상이 아닐까 의심해 봐야함;;;]
[미친 소름돋아]
[하 그래도 나는 3연속 로빈훗 보고싶음ㅠㅠㅠㅠ]
[진짜 이런식으로 중국애들 찍어누르는거 개 사이다야 ㅋㅋㅋㅋ]
[중국 쟤 더이상 경기할 생각도 없나봄ㅋㅋㅋㅋ장비도 다 내려놨는데]
[사실상 겜 끝이잖앜ㅋㅋㅋㅋㅋ설마 군자가 3점 2점 쏘겠냐구]
[불쌍하닼ㅋㅋㅋ진짜 병풍됐어]
[우항하아아ㅏ하ㅏ아ㅏㅏ 군자 쏜다 과녁에 활 조준했다ㅠㅠㅠㅠㅠ]
[아 제발제발바라자렞제발제발]
마침내, 모든 이들의 염원이 담긴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애애액—.
측풍을 찢으며 과녁을 향해 날아간 마지막 화살은.
쩌어어어어어억—!!
이번에도 여지 없이 쪼개지는 소리를 내며 과녁에 안착했다.
이번엔 캐스터와 해설자들도 화살의 위치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군자가 어떤 목표를 노리는지,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세, 세상에···.]
[사, 사, 삼연속 로빈 훗 애로우입니다아아—!! 유군자 마지막 화살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기존 화살에 맞았습니다—!!]
[기이한 풍경입니다!! 화살에 화살이 꽂히니, 그 무게 때문에 세 개의 화살이 모두 아래로 추욱 늘어져 있습니다!! 경지에 도달한 초인이 만들어 낸 놀라운 광경입니다—!!]
[이, 이로서 유군자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4강 두 번째 경기의 승자는 유군자 선수!! 그러나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 옆에 앉은 외신 중계석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단언컨대, 양궁 역사상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경기는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이 경기는 올림픽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후우—.”
마지막 화살이 꽂히는 것을 본 뒤에야 군자는 이마를 훔치며 긴 호흡을 내뱉었다. 불손한 자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자 시작한 기행이었으나, 막상 그것을 완수해 놓으니 통쾌함보다는 뿌듯함이 올라왔다.
두 개씩 연결되어 아래로 추욱 쳐진 화살의 형상이 마치 버드나무를 보는 듯 하여 제법 운치가 있었다.
이곳 불란서엔 버드나무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이렇게 화살을 쏘아 버들을 만드니, 이 또한 훌륭한 풍류 아니던가.
그러나 상대인 리장량은 이 풍류를 즐기지 못하겠다는 듯,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아닌가.
리장량을 비롯한 중국인 선수들도 기본적인 기량과 재능은 있는 선수들이었다. 게다가 한국인 출신의 코치까지 얻었으니, 제대로 수련을 했다면 아마 훌륭한 궁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기보다 상대방을 도발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찾아 파고들기에 급급했다.
활로는 이미 경지에 올라 본 군자는 알 수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정점에 설 수 없다. 상대방을 이기고 싶을수록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바로 활쏘기다. 양궁이라고 다를 리 없다.
슬쩍 고개를 들어올린 리장량은, 군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추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욕설을 내뱉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발, 시발, 시발···.”
욕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코치가 기껏 챙겨다 준 가방까지 내팽개치며 성큼성큼 경기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퇴로를 둘러싸고 있던 기자들과 자국 팬들에게 시원한 어깨빵을 선사한 것은 덤이었다.
“쯧쯧—.”
절로 혀를 끌끌 차게 되는 광경이었다.
쇄도하는 기자들이야 짜증이 날 수 있겠으나, 자국의 팬들에게 어찌 저렇게 무례하게 대한단 말인가. <다이너스티> 때에도 느꼈으나, 이제 정말 공맹(孔孟)의 나라는 옛 말인 듯 하여 마음이 좋지 않은 군자였다.
반면 군자는 경기장을 둘러싼 환호성을 외면할 생각이 없었다.
“하하, 감사하오. 진심으로 감사하오—!!”
언제나처럼,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들어 관객들에게 화답하는 군자였다.
찰칵, 찰칵—.
사방에서 플래쉬가 터졌다. 피겨스케이팅의 갈라쇼가 끝난 듯, 이곳저곳에서 꽃다발이 날아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한 직후였으니까. 마치 재림한 신을 떠받들기라도 하듯, 관중들은 입을 모아 군자를 찬양했다.
유군자, 유군자—.
유군자, 유군자—.
[이야아, 놀라운 풍경입니다!! 모든 관객들이 유군자 선수의 이름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네이밍 콜은 격렬한 투기 종목, 혹은 인기 많은 구기 종목에서만 종종 보이던 현상인데요—!!]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오늘만큼은 해설자의 권위를 내려놓고 유군자 선수의 이름을 부르짖고 싶습니다!!]
[하하, 김대환 해설위원도 많이 흥분하신 것 같은데요!!]
[예, 저도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만, 진심으로 가슴 뜨거워지는 경기였습니다. 3세트 연속 퍼펙트를 넘어서, 3연속 로빈 훗 애로우라니요!! 이 장면은 오래오래 남겨야 합니다. 오래도록 간직해 두었다가, 이제 막 양궁을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단 말입니다—···.]
중계 카메라는 계속해서 군자의 얼굴, 그리고 버드나무처럼 늘어진 여섯 개의 화살을 잡아 주었다. 실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한 쪽에는 이쑤시개처럼 모여 있는 화살 세 개, 그리고 또 한 쪽에는 두 개씩 연결된 화살이 아래로 추욱 늘어져 있었으니.
세 번째 화살마저 앞선 화살의 꽁무니를 맞추자, 이제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군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 군자가 의도한 바이다. 박혀 있는 화살의 뒤에 화살을 꽂아 넣는 것. 불가능해 보였던 신기였으나, 군자는 그것이 가능함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의도한 거 맞네···.”
“내가 뭐라고 했어. 군자라면 그랬을 수도 있다고.”
“내가 저런 애랑 결승에서 붙어야 한단 말야?”
“하하, 덕준아. 은메달도 나쁘지 않은 결과라구~”
“···아니야, 아직 경기 시작도 안 했단 말야···.”
모든 4강 경기가 마무리된 가운데, 이제 남은 경기는 금메달을 가릴 결승전과 고한영 vs 리장량의 3, 4위전 두 개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