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91화 (291/303)

#291

뭔데 뭔데

“자, 그럼 음감회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7IN 멤버, 그리고 기획팀 직원들이 모인 자리 앞에서 현수가 스피커 스위치를 눌렀다. 스칼렛 홀의 프로듀싱 팀과 현수가 합작하여 만든 트랙은 총 75개. 그 중 11개를 엄선하여 정규 앨범의 트랙 리스트에 담았다.

“후우—.”

베테랑 프로듀서 스칼렛 홀도 이 순간은 긴장된다는 듯 심호흡을 했다. 본토에서는 발매만으로도 빌보드 차트를 쥐락펴락하는 ‘윌리 그린’이었지만 그런 그조차 K-아이돌 시스템의 감평회 과정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군자를 제외한 멤버들은 모든 트랙을 이미 들은 상태였으나 그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 동안은 항상 현수에게 작곡을 맡긴 멤버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작사부터 탑라인 멜로디를 짜는 것까지 멤버들이 세심하게 관여했기 때문이다.

“촌스럽다는 피드백 받으면 진짜 숨고 싶을 거야···.”

“8번 힙합 트랙 말하는 거지? 그거 키치하게 잘 나왔다니까.”

“그러는 너도 오들오들 떨고 있구만 뭐.”

“으으, 군자가 싫어할까봐 걱정이긴 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뭐 어쩌겠냐, 다시 만들어야지.”

“그렇지?”

“군자야, 구리면 구리다고 바로 말해 줘야 한다! 막 우리 생각한다고 좋은 말만 하면 안돼!”

태웅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냉철한 귀로 음악을 들을 것이야.”

“헉, 막상 그렇게 말하니 무서운데.”

“그래? 그럼 좋은 말만 골라서 해야 하는 것이더냐.”

“아, 아니지! 그건 말도 안 돼. 무조건 솔직하게 말해 줘, 무슨 말이든 겸허하게 들을 거니까.”

“후후, 알았다. 걱정 말거라.”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졌다.

자신이 이탈해 있는 동안 이토록 착실하게 음악을 준비하다니. 그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군자로서는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분명 올림픽 못지 않은 강행군이었을 터.

그렇기에 더욱 솔직하고 냉철해야 했다. 동료들도 결국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 아니겠는가.

“첫 번째 트랙부터 들으시겠습니다.”

그러나 현수가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음악을 듣겠다던 군자의 다짐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첫 번째 트랙부터 음악이 군자의 귀를 사로잡았다. 음감회를 위해 가져온 간이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했기에 모든 악기가 선명하게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편곡과 믹싱은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두웅, 두우웅—.

시끄럽고 우악스럽게 귀를 사로잡는 것이 아니다. 클리셰에 2%의 새로움을 더한 코드 진행과 탑라인 멜로디가 군자의 오감을 시나브로 사로잡았다. 분명 음악일진대, 첫 번째 트랙을 듣는 순간부터 향이 나는 것 같았다.

트랙은 ‘상호작용’이라는 앨범의 컨셉에 맞게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앨범을 여는 1번 트랙의 제목은 <인사>.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역시 인사다. 예의바른 인사의 중요성은 유교의 나라에서 온 군자가 가장 잘 알았다.

“···재미있구나···.”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군자는 계속해서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중반을 향해 갈수록 미니멀했던 비트는 더 화려해지고, 강렬한 보컬 음색이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렸다. 이제는 연차가 꽤나 쌓인 아이돌답게, 가녹음 버전이었음에도 멤버들의 기량은 물이 올라 있었다.

4번 트랙 에선 현재의 고음 애드립과 유찬의 보컬이 날선 칼처럼 빛났고, 이어진 5번 트랙 은 곡을 이끌고 나가는 인혁과 태웅의 묵직한 래핑이 일품이었다.

트로피컬한 분위기의 6번 트랙 <오아시스>로 잠시 쉬어 간 뒤, 7번 트랙이 나오기 시작한 순간.

7번 트랙을 주도하여 작곡, 편곡한 스칼렛 홀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는 모든 트랙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 중에서도 최고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노래가 바로 7번 트랙 였다.

“후우, 이건 꼭 좋게 들어 줬음 좋겠네!”

스칼렛 홀의 바람처럼, 는 시작부터 군자와 기획팀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멜로디가 빠진 타악기로 시작된 도입부, 전자악기가 쌓여 나가며 전개되는 과정은 실로 유연하기 그지없었다. 전반부 트랙부터 이어져 오던 ‘상호작용’ 컨셉은, 에 이르러서는 연금술(Alchemy)을 매개로 표현되며 이어져 갔다.

“오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리며 곡을 듣게 되는 군자였다. 그런 군자와 기획팀 직원들의 리액션을 보며 스칼렛 홀은 흐뭇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건 진짜 힘 줘서 만들었다고.”

후반부에서도 앨범의 일관성은 이어져 나갔다. 스칼렛 홀 사단의 세련되고 깔끔한 편곡, 믹싱이 앨범의 퀄리티를 한층 더 올려 주었다. 멤버들이 참여한 부분 역시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트랙까지 재생이 끝나자 군자가 가장 먼저 박수를 보냈다. 모두의 노고가 녹아 있는 앨범이었다. 단순히 고생했다는 차원을 넘어서, 한 곡 한 곡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기 어려울 만큼, 너무도 훌륭합니다.”

군자 뿐만 아니라 기획팀 직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군자와 마찬가지로, 서은우 팀장을 비롯한 기획팀원들 역시 노래를 처음 듣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반응을 보고 나서야 현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우—.”

“현수야, 네가 정말로 수고가 많았구나.”

“아이, 나도 밥값은 해야지. 내가 이 팀 프로듀서잖냐. 게다가 이번엔 홀 선생님이 엄청 도와 주셨어. 믹싱은 윌리 그린 사단이 다 한거나 다름없다니까.”

“그래도, 나는 곳곳에서 네 손길을 느꼈단다. 이제 네 작곡방식은 듣기만 해도 알 것 같으니 말이다.”

“크으, 역시 나 알아주는 건 군자 밖에 없구나···.”

현수는 군자의 반응에 만족한 듯 했으나, 아까부터 유찬이 할 말이 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군자의 옆에 붙어 있었다. 쭈뼛거리는 유찬을 보며 태웅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뭐야, 유찬이 왜 그래. 왜 그렇게 삐질삐질거리고 서 있는데?”

“···그, 그게···.”

“뭐어어. 빨리 말 해.”

“···구, 군자 형이···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아서···.”

“그래?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유찬의 말에 군자는 대답 대신 침음성을 흘렸다.

“···.”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름 끼치도록 매끄럽게 완성된 앨범이다. 단순한 완성도로만 친다면, 아마 이 이상의 구성을 뽑아 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유찬의 말처럼, 군자는 이 앨범에 대해 할 말이 있었다.

“앨범 구성은 완벽합니다. 모든 음악적 요소가 잘 어우러졌다는 느낌입니다. 아마 이 음악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근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하지만, 지나치게 매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

구성은 유려하고 메시지는 안정적이다. 그러나 강력한 한 방이 없다.

그것이 군자의 발목을 잡았다.

설령 부정적 평가를 받더라도 확실히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음악을 추가하고 싶었다. 이대로 앨범을 낸다면, 절대로 실패하진 않겠지만 어쩐지 후회가 남게 될 것만 같았다.

현수는 그 동안 걱정하고 있던 것이 터졌다는 듯 약간은 암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그렇지? 솔직히 나도 아주 아주 아주 약간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일단은 너한테도 들려 주고, 음감회 하면서 의견도 모아 보려고 했지. 그냥 나만의 의견이나 욕심일 수도 있고, 오히려 잘 구성된 앨범의 밸런스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 근데 역시 군자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아니다, 내 의견이 틀릴지도 모르지. 호올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스칼렛 홀 역시 군자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 앨범에 한 방이 없기는 해.”

“···.”

“는 잘 만든 노래지. 아마 누가 불러도 빌보드 차트 5위권 안에는 들어갈 거야. 너희 정도 인지도를 가진 K-POP 아티스트가 부른다면 아마 1위도 가능할 거고. 하지만 빌보드 최상위권에도 다 공식이 있어. 캐치한 멜로디로 구성된 이지리스닝 팝, 부드럽게 섞이는 신디사이저, 저음강조 이어폰에서 잘 터지는 베이스. 솔직히, 는 그 공식대로 만든 곡이라고.”

“그렇다면···.”

“그래, 내 생각에 이건 후속곡 내지는 서브곡으로 내는 게 맞아. 물론 타이틀로 써도 나쁘진 않겠지만 말야.”

타이틀곡이라 생각했던 를 후속곡으로 돌린다. 그 뜻은, 새로운 타이틀곡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것과 같았다.

“그럼 타이틀곡을 하나 더 뽑아야 한다는 말인데···.”

“납기일 문제는 없어. 지금까지 80트랙 가까이 작업했고, 만들다가 버린 곡까지 포함하면 거의 300곡이 넘어가니까. 새로운 트랙은 아마 금방 제작할 수 있을 거야.”

“그, 그건 다행이네요.”

“하지만 문제는 컨셉이지.”

“···.”

“‘상호작용’이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도 색다른 펀치 한 방이 있어야 해. 의 ‘연금술’처럼, 번뜩이고 재미있는 키워드를 던져야 한다고.”

“···무, 뭐가 있을까요···.”

“흐음—.”

군자 역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동료들이 고생해 주었으니, 이제는 군자가 힘을 보탤 차례였다.

는 곡의 제목처럼 모두와 모두 간의 ‘케미’를 다뤘다. 집단과 집단이 맞부딪히고, 뒤섞이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그 거대한 에너지의 충돌과 연쇄반응을 연금술에 빗대어 만든 노래다.

그러나 군자의 머릿속엔 어쩐지 더 작은 규모의 상호작용이 떠올랐다.

전쟁도 상호작용이다, 그러나 연애도 상호작용이지.

타이틀곡이라고 반드시 웅장하고 거창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 미시적인 관점의 노래라 해도, 그 컨셉과 메시지가 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타이틀 곡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할 터.

상호작용, 상호작용이라···.

순간 한 명의 팬을 눈앞에 그린 군자였다. 마주앉은 군자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눈으로 대화를 하고 싶다는 듯, 천천히 그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

상상 속 군자의 두 손이 이내 바빠진다. 눈앞의 팬과 직접 몸이 닿진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거리가 있으나, 분명 군자는 그와 완벽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

움직임 하나 없이도, 말 한 마디 없이도.

상상 속의 군자는, 단 한 명인 팬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상상 속에 빠져 있던 군자가 이내 무릎을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옳거니!”

“무, 뭐야. 무슨 생각이라도 났어?”

“좋은 생각이 났다.”

“오오, 뭔데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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