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92화 (292/303)

#292

드로잉 쇼

“큰 주제가 상호작용이라면··· 이런 소주제는 어떨까.”

운을 뗀 군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군자가 입을 열자, 멤버들은 물론 서은우 팀장을 비롯한 기획팀 직원들마저도 귀를 기울였다. 일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군자의 발상은 언제나 해답이 되곤 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군자의 아이디어는 어김없이 모두의 무릎을 탁 치게 했다.

“잠깐만, 그거 괜찮은 것 같은데?”

“나두여, 나도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음여!”

“아하하하, 역시 군자는 발상이 좋다니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멤버들이었다. 서은우 팀장 역시 군자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 것 같아 보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 없는 컨셉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호작용이라는 커다란 주제와 잘 어울리네요.”

앨범 전체의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는 스칼렛 홀, 지현수 역시 만족스러워 보였다.

“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상호작용을 그린 노래라면, 이건 미시적인 상호작용을 보여줄 수 있겠네. 좋아, 신선한데?”

“맞아요. 커다란 게 웅장하고 좋긴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미니멀하고 컴팩트한 곡이 더 와닿기도 하잖아요.”

“그렇지. 게다가 이 앨범 전체가 팬들을 위한 헌정의 느낌이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면대면 소통하는 방식의 곡을 타이틀로 두는 건 꽤나 의미있는 시도라 생각해.”

“앨범 전체 흐름에도 전혀 문제가 없고요.”

퍼포먼스 담당, 태웅과 유찬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컨셉으로 가면 포인트 안무는 엄청 만들 수 있겠다.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패, 팬들이 가진 응원봉 비슷한··· 소품을 써도 좋지 않을까요···.”

“그러네? 응원봉 모양이랑도 연관성이 있으니까. 팬 분들도 다같이 따라하면 재미있겠다!”

“···추, 춤을 다같이 춘다니··· 어려워요···.”

“크크, 소심한 분들은 그렇긴 하겠지. 근데 아마 다들 내적 댄스는 함께 해 주시지 않을까? 무튼 난 퍼포먼스 아이디어가 막 퐁퐁 샘솟는데?”

“···의상도··· 예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헤헤···.”

“맞네. 뭔가 벌써 무대가 그려지는 느낌이다.”

‘새로운 타이틀곡’이라는 논제 앞에 모두가 헤맬 뻔 했으나, 군자의 아이디어가 모두를 빠르게 집결시켰다. 이제는 앨범 발매 일정에 맞춰 마지막 퍼즐을 만들어야 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시간이 넉넉하진 않습니다. 특히 새로 만들 타이틀곡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옙.”

“지현수 씨, 그리고 스칼렛 홀 씨.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도 작업 속도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앨범 제작에 들어가는 모든 일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으나, 의견이 한 곳에 모이니 작업 속도는 날개를 단 듯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오전부터 하루종일 앨범 준비와 회의, 피드백, 연습과 레코딩에 매달리는 멤버들이었다. 그러나 퇴근 후에도 팬들과의 소통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친우들아, 오늘 라이브 방송을 하고 싶은데.”

“오, 군자가 라방 킬라고?”

“올림픽 기간 중에는 팬들을 많이 못 만나뵙지 않았더냐.”

“그렇긴 하져. 형 또 라방 설정 해 달라고 그러는 거져?”

군자가 야무지게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는 군자 혼자 라이브 방송을 켜다가 내내 고양이 목소리 필터가 켜진 채 방송을 한 군자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군자얔ㅋㅋㅋㅋ왜 고양인뎈ㅋㅋㅋ]

[아니 목소리 필터 머얔ㅋㅋㅋ귀야ㅕ워]

[ㅋㅋㅋㅋㅋㅋBJ군자냥ㅋㅋㅋㅋㅋ]

[갑자기 왜 고양이야? 무슨 컨셉임?]

[ㄷㄷㄷ설마 이것도 다음앨범 컨셉 스포야?]

[칠린 라방은 떡밥 덩어리 그 잡채라고,,,]

[군자야 목소리 필터 언제까지 키고 있을거야ㅠㅠㅠ너 목소리 듣구싶엉]

“허흠, 험, 이상합니다. 지금 제 목소리는 전혀 고양이 같지 않사온데···.”

[아닠ㅋㅋㅋ그게아니랔ㅋㅋㅋㅋㅋ]

[우리한텐 고양이처럼 들린다궄ㅋㅋㅋ바부야]

[누가 군자한테 사운드 필터 원리좀 설명해줰ㅋㅋㅋㅋ]

[아니 그냥 라방은 현재나 웅이가 좀 켜주라곸ㅋㅋㅋ]

[군자 그래도 현대문물에 많이 적응한줄 알았는데 아직도 조선사람이구낰ㅋㅋㅋㅋㅋ]

[진짜 저 컨셉도 지독하닼ㅋㅋㅋ이쯤되면 그냥 진짜로 조선에서 온 것 같다니깐]

[군자목소리 듣구싶어어어ㅠㅠㅠㅠ]

호되게 낭패를 본 군자였기에, 그 다음부턴 웬만해서는 혼자서 라이브 방송을 켜지 않으려 했다.

다행히 오늘은 모든 멤버가 숙소에 남아 있었다. 현재가 카메라 세팅과 조작을 담당했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방송을 하며 먹을 음식과 컨텐츠를 준비했다. 별도의 공지 없이 시작한 스트리밍이었으나,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들은 수만 명 대를 넘어 수십만에 진입했다.

[우와아ㅏㅏㅏ 라방]

[칠린즈 완전체다ㅠㅠㅠㅠㅠ]

[완전체 라방 얼마만이냐구]

[헉 치즈플래터 나도 같이먹구싶음]

[ㅁㅊ오늘 술먹방이야?]

[ㅋㅋㅋㅋㅋ아냐 그냥 무알콜 칵테일인듯]

[유찬이 아직 애기야ㅠㅠㅠ술안댐]

[오빠들 안녕하세요ㅠㅠㅠㅠㅠㅠ보고시ㅠㅍ었어요]

[오늘은 무슨 컨텐츠얌? 또 머가 잔뜩 있넼ㅋㅋㅋ]

[얼굴만 봐도 혜자고 비주얼 자체가 이미 콘텐츠인데 항상 뭔가 해주는 칠린이들,,,,, 이게 진짜 월클이징ㅠㅠㅠ]

[새 앨범 떡밥 풀어주세요ㅠㅠㅠ]

7IN의 라이브는 이제 전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가장 인기있는 스트리밍이 됐다. 그렇기에 7IN이 라이브 채널을 오픈할 때마다 서버와 플랫폼 관리자들이 함께 긴장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인지도를 얻었음에도 소년들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팬들을 대했다. 언제나 <아육시>를 했을 때의 모습으로 웃었고, 구김살 없는 친분을 유지했다. 그렇기에 소년들이 잡담만 해도 팬들은 그 모습을 보며 힐링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짤막한 근황 토크, 시우가 직접 만들어 준 무알콜 칵테일 시식회가 끝난 뒤엔 군자가 준비한 컨텐츠가 시작됐다. 백지와 먹, 그리고 붓을 준비한 군자가 동료들의 얼굴을 그려 주기 시작했다.

스윽, 스으윽—.

군자의 붓놀림에는 거침이 없었다. 호쾌한 터치 몇 번으로 만들어 낸 소년들의 얼굴은, 현실적이면서도 각자의 매력이 완벽하게 잘 살아 있었다.

“자아, 받아 보거라.”

“우와아—.”

소년들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군자의 그림엔 모델의 숨겨진 매력까지 이끌어 내는 묘한 힘이 있었다.

“아하하하, 내가 이렇게 잘생겼어~?”

“현시우는 잘생기긴 했지. 맨날 바보 같이 웃는 게 문제지.”

“헤헤, 나 내 그림 너무 마음에 들어여. 여기 귀 좀 봐바여. 일부러 약간 다람쥐 귀처럼 그려 준 거 아니에여?”

“정확히 알아보는구나. 현재 너는 가끔 보면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 같을 때가 있어. 내 다람쥐 귀를 선물해 주었다.”

“귀여웡~ 사진 찍어서 프사로 해 놔야징.”

“혁이 형님도 그림이 마음에 드십니까.”

“응. 너무 좋다.”

“그런데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이십니다.”

“내 어깨가 이렇게 넓은가.”

“후후, 형님은 거울을 좀 보고 사셔야겠습니다.”

“맞아여. 혁이 형아 몸은 진짜 리디북스 남주 스타일이라니까.”

“리디북스 남주?”

“그런 게 있어여~”

“아니 잠깐만, 군자야.”

“왜 그러느냐, 태웅아.”

“혁이 형은 왜 정장에 셔츠 차림이고, 난 왜 돌쇠 옷을 입고 있냐?”

“후후, 인물의 내밀한 부분까지 그리기 위해서 노력했단다.”

“임마, 그럼 나의 내밀한 부분에 돌쇠가 있다는 거 아냐.”

“돌쇠가 얼마나 다정하고 성실한지 모르는구나. 게다가 돌쇠는 언제나 마님들에게 인기가 많단다.”

“엥?”

“특히 누님 팬이 많은 네게는 아주 적절한 복식 아니더냐.”

“···왜 설득이 되는 거지?”

그림을 주고받는 소년들을 보며 팬들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ㅋㅋㅋㅋㅋ하 다들 너무 귀여웤ㅋㅋㅋㅋㅋ]

[현재 다람쥐 귀ㅠㅠㅠㅠ진짜 너무 뽀짝]

[이거 구쭈로 만들어줘ㅠㅍㅠㅠㅠ폰케로 쓰고시푸]

[진짜 군자같은 금손은 아이돌만 하기엔 너무 아깝다 공방같은것도 같이하면 진짜 좋을텐데ㅠㅠㅠㅠ]

[내말이ㅠㅠㅠㅠㅠ후우 손재주 미쳣움]

[맘같아서는 이런거 더 해줬음 하는데 넘 바뿌니까뉴ㅠㅠ]

[웅이한테만 돌쇠옷 입힌것도 센스미침ㅋㅋㅋㅋㅋ]

[아니근데 웅녀들 속상한거아니냐곸ㅋㅋㅋㅋㅋ]

[ㄴㄴ나 웅녀인데 돌쇠 옷 대찬성임]

[이왕이면 옷고름도 풀어줬으면 좋겠음]

[옷고름 받고 핫팬츠ㄱㄱ]

[돌쇠가 핫팬츠도 입었어?]

[저기요 지금 웅이 허벅지 앞에서 고증 따지는거임?]

[하악 웅돌쇠 슴가골에 파묻혀서 질식사하고싶다]

[ㅋㅋㅋㅋㅋ오늘도 웅녀들은 제정신아니넼ㅋㅋㅋㅋㅋ]

“잠깐만, 나도 그려 볼래.”

“우왕, 나도여! 재미있을 것 같아.”

“···저, 저도 그림 좋아해요···.”

“그래? 유찬이 뭔가 그림 좀 그릴 것 같은데?”

군자의 초상화 시간이 끝나자, 이번엔 멤버들이 서로의 얼굴을 그려 주기 시작했다. 군자의 그림에 고풍스러운 맛이 있었다면, 멤버들의 그림은 하나하나가 웃음벨이었다.

“아 미친, 가슴이 왜 이따위냐고!”

“푸하하하하하하학—.”

“왜여, 웅이 형 슴가 모양 그대로 그렸는뎅!”

“아 진짜, 미친놈들인가?”

“나 눈물 날 것 같아, 아 개웃기네 진짜.”

현재와 현수는 둘 다 태웅을 그렸다. 얼굴보다 가슴을 더 부각시켜서 그린 그림을 보며 모든 소년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유찬은 자못 진지한 눈빛으로 섬세하게 그림을 그려 나갔으나, 그 퀄리티는 진지한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

“아니 기유찬 너 그림 좋아한다면서 이건 또 뭔데.”

“···조,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 연습 중이에요···.”

“다크서클 보니까 지현수 같긴 한데··· 너무 무섭잖아 이건···.”

“그래도 누군지 알아보게 그린 건 용하긴 하다.”

“···헤헤··· 치, 칭찬 감사해요···.”

“칭찬 아니야 임마···.”

“···저, 저는 칭찬으로 들을래요···.”

“뭐라구?”

“얘도 가만 보면 은은하게 미쳤다니깐.”

그 와중에 인혁은 모든 멤버들의 초상화를 다 그려 놓고 있었다. 분명 잘 그린 그림이었으나, 그림체가 묘하게 의심스러웠다.

“후우, 다 그렸다.”

“뭔데? 혁이 형은 또 왜 이렇게 리얼하게 잘 그리는데요?”

“잠깐만, 이건 몽타주 아니야?”

“그러네?”

“밑에 현상금만 써 놓으면 완전 범죄자 몽타주잖아.”

“아니 왜 이 형은 그림 기법도 범죄랑 연관이 있는 거지?”

“···그런 거 아니야···.”

“수상해, 너무 수상해!”

그렇게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그림을 그리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사이.

기획팀장 서은우는 7IN의 컴백 무대를 기획하고 있었다.

“흐음—.”

7IN의 컴백 무대를 유치하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보내 왔다. 심지어 해외 프로그램, 오리지널 OTT 프로그램까지 솔라시스템 측에 접촉해 왔다.

솔라시스템으로서는 가장 적절한 제안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

많은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서은우 팀장의 손에 남은 카드는 단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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