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98화 (298/303)

#298

계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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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빌보드 차트 순위표에서 7IN은 두 개의 타이틀곡을 나란히 TOP 10 안에 진입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모두가 순위 상승을 예측했으나 그 페이스가 심상치 않았다. TV, 라디오 등의 레거시 미디어는 물론이며, 온갖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7IN의 노래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가사가 한국어로 된 노래임에도 그 인기는 영어로 된 영미권의 팝 트랙들을 압도했다.

타이밍 좋게 시작된 월드 투어가 그 인기에 불을 붙였다. LA에서 시작된 북미 투어는 모두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으나 모든 공연이 조기 매진되고 말았다.

서울 공연에서 나우리가 기타 세션을 맡아 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특별한 인연이 소년들과 함께했다. <다이너스티>에서 연을 맺은 밴드 컨셉 아이돌, ‘가디언즈’가 북미 투어의 세션을 맡아 주기로 했다.

오랜만의 재회였으나 ‘가디언즈’ 멤버들은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게 소년들을 맞아 주었다.

“What’s up, Bro—!!”

“하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당연하지! 난 너네 안부 안 물어볼 거다.”

“헉, 어째서···.”

“유튜브만 틀면 피드에 느그 얼굴이 지겹게 뜬다고! 젠장, 꼭 어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니까?”

최소한의 세션비만 지급받아도 상관없다는 의사를 밝힌 가디언즈였으나, 소속사 솔라시스템과 7IN 멤버들은 가디언즈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가까운 친구일수록 극진하게, 경우를 갖추어 대접하는 것이 순리다. 특히나 돈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럴 때 도리를 지키기 위해 채워 놓은 곳간 아니던가.

“와우, 너희 일 처리 정말 기가 막히네.”

“후후, 돈 문제만큼은 확실히 하려 합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데? 젠장, 작년에 했던 중국 공연은 아직도 페이 못 받고 있단 말이지.”

보기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잔고를 확인한 가디언즈는, 마치 자신들의 공연인 것처럼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 주었다. 이 강렬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사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7IN의 퍼포먼스는, 록 음악 이외에는 인정할 생각이 없는 하드 록 팬덤들까지 매료시켜 버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소년들로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생전 처음 가 보는 도시였음에도 길거리 전광판엔 7IN의 이름이 가득했다.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모두 목놓아 그들의 이름을 외쳤다. 개중 몇몇 팬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소년들에겐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형아들, 우리 진짜 사랑받고 있나봐여···.”

“그러게 말이다.”

“가끔 좀 현실감 없어지긴 하는데, 생각해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해···.”

반나절도 온전히 쉴 수 없을 만큼 타이트한 투어 일정이었으나 소년들에게 지친 기색은 없었다. 도시와 도시를 오가면서도 몇 바퀴의 리허설 일정을 소화하는 그 경이로운 체력에는 에너지 덩어리인 가디언즈마저 놀랄 지경이었다.

“아니 너넨 피곤하지도 않냐? 그 공연을 끝나고 또 드라이 리허설을 돈다고?”

“연습해야지. 위험한 퍼포먼스가 많아서, 철저히 연습하지 않으면 망한단 말야.”

“내 말은, 그렇게 할 체력이 되느냐는 거야.”

“해내야지요. 이토록 큰 사랑을 주시는데, 우리도 우리의 도리를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말처럼 쉽냐···.”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크으, 역시 존나 멋지구만. 너네랑 같이 투어링 하기로 한 건 진짜 좋은 선택이었어!”

소년들의 파이팅은 가디언즈를 비롯한 공연단 전체에게도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 피로에 절여져 있으면서도 막내 스태프들까지 꼼꼼히 챙기는 다정함 역시 더할 나위 없는 동기부여였다.

소년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공연단과 스태프들은 그렇게 미 서부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동부로 건너갔다. 서부에서 가디언즈가 합류하여 함께 공연한 것처럼, 동부 투어에선 소년들의 절친인 릴 핌프가 게스트로 합류했다.

“짜식들아, 랩 실력은 좀 늘었냐—!?”

“핑프 공—!!”

“핑프가 아니라 핌··· 에휴, 관두자.”

“어떻게, 효도는 잘 하고 계시오?”

“크크, 안 그래도 마이애미에 엄마 별장을 사 드렸지. 마이애미가 한국어로는 우리 엄마라는 뜻이라며?”

릴 핌프와 함께 뉴욕에서 시작된 동부 투어는 총 다섯 개의 스타디움을 거치며 진행됐다. 그 사이 갱신된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7IN의 더블 타이틀곡은 각각 5위와 7위로 올라섰다.

다시 한번 달라진 시차를 감당하며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소년들에게, 갱신된 순위표는 훌륭한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

“와 씨, 우리가 빌보드 차트 5위래.”

“미친 거 아니냐 진짜?”

“지현수 이제 부자 되겠구만···.”

“응? 왜 현수 형만 부자 돼여?”

“쟤가 다 작곡한 거 아녀.”

“아하하핫, 이번 앨범은 우리 공동 작곡이잖아~”

“엥?”

“저작권료 우리도 다 나눠서 받는다구~”

“뭐라고? 나 왜 몰랐지—!?”

“···너 진짜 바보냐?”

땅덩어리가 거대한 만큼 이동하는 시간도 필연적으로 길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동안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지만, 호텔에 들어가 잠들기 직전의 짧은 순간만이라도 소년들은 최선을 다해 팬들과 소통하려 했다.

소년들의 시차에 맞춰 살던 팬들은, 라이브 방송 알람이 뜨자마자 후다닥 이어폰을 끼고 방구석 1열에 착석했다. 스마트폰 속 소년들은, 피곤할 것이 분명했음에도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칠하~”

“아하하핫, 다들 엄청 빨리 들어왔어~”

“···여, 여러분··· 아, 안녕하세요···.”

“후후, 이곳은 아들낳다 라는 도시입니다.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존재하는, 조금은 전근대적인···.”

“아니, 아들낳다가 아니라 아틀란타거든?”

“아뿔싸!”

“여러분들, 안 자구 뭐 해요! 아니, 안 자구가 아닌가? 지금 한국은 완전 대낮이겠구나?”

“아니, 그럼 일도 안 하고 라방 보시는 거예여? 다들 월루 중이신 건가아~”

[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아들낳닼ㅋㅋㅋㅋㅋ]

[응 회사 장실에서 몰래보는중]

[난 백수얌^^]

[군자 헛소리 넘모반갑다ㅠㅠㅠㅠㅠ]

[애두라 피곤하지ㅠㅠㅠㅠㅠ]

[얼굴은 웃고 있는데 닼써가 턱까지 내려오뮤ㅠ]

[라방 굳이 안 켜줘도 되는데,,, 아니 키지말란건 아니궁,,, 넘넘 좋긴한데 피곤할까바 걱정돼ㅠㅠㅠㅠ]

“후후, 뭘 모르시는군요. 피곤할수록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도 힘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항상 말씀드립니다만, 여러분들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돕는 관계입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결코 아니랍니다.”

[ㅠㅠㅠ하 말 예쁘게 하는거바ㅠㅠㅠ]

[눈물날것같당ㅇㅠㅠ;;]

[그럼 라방 자주켜줘!!!!!]

[머 어떻게 힘을 줘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항상 여기에 있을게!]

[같이 투어 따라다니면서 무수리 하고싶다]

[누가아니래.. 진짜 꼬붕이 해도 되니까 같이다니고품]

[군자야 밥은 잘 먹구 다니징?]

[웅이랑 혁이옵 왜 이렇게 삐쩍 마른것 같아ㅠㅠ]

[음식은 입에 잘 맞아?]

“···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시, 시우 형이 밥 만들어 주셔서···.”

“아하하핫, 다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현시우 다른 건 몰라도 요리 하나는 진짜 잘하긴 해. 인정.”

“난 호텔 쉐프가 한 한식보다 시우 형아가 한 밥이 더 맛있더라구여.”

“혹여 시우가 귀찮거나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만···.”

“아니 근데 시우 얘 은근히 강철체력이라니까.”

“평소에 팔랑거리면서 체력을 온존하는 걸지도 모른다.”

“동감한다. 나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

“가만 보면 혁이 형도 군자만큼 이상하다니깐.”

“나만큼이라니? 이 그룹에서 내가 가장 정상적이거늘.”

“그게 숙소에 병풍 설치하면서 할 말이니?”

“후후, 태웅이 너도 이제는 익숙해져 보거라.”

월드 투어 일정 동안 소년들을 직접 볼 수 없는 한국 팬들이었으나, 이렇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평소처럼 투닥거리는 멤버들을 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하 넘무귀엽다ㅠㅠㅠㅠ]

[계속 투닥투닥 싸워줘]

[권태웅 계속 헛소리 해줘ㅠㅠㅠ]

[근데 군자 투어에선 계속 장발인거야? 붙임머리 아직 안 뗀 건가]

[한국활동하면서도 장발 해줫음 좋겠당 ㅎㅎㅎ]

[시우오빠 젤 잘하는 요리 가르쳐 주세요]

[나는 스페인어 자막을 원한다!(국기) (국기)]

[얘들아 진짜 건강하게 투어 하구 돌아와야돼]

[릴핌프랑 같이 공연하고 있다는데 진짜인가요?]

[핌프옵도 라방에서 보면 재밌겠닼ㅋㅋㅋ]

“Yeah, 소녀들아. 너네 힙합 좋아하냐? 이 자식들 시시해지면 언제든 나한테 넘어오라고.”

[ㅋㅋㅋㅋㅋㅋㅋ어우]

[아이돌 라방에서 이게 뭔 비주얼 쇼킄ㅋㅋㅋㅋ]

[핌프옵 핸드사인 커엽ㅋㅋㅋㅋㅋㅋ]

[뒷주머니에 응원봉뭔뎈ㅋㅋㅋㅋ]

[공연클립 보니까 포트레잇 후렴 안무 다 할줄알던뎈ㅋㅋㅋㅋ]

[핌프옵,, 은근 케이팝에 진심이신]

[케이팝에 진심인게 아니라 칠린이들한테 진심인듯ㅋㅋㅋㅋ]

[앞으로도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주세요]

[핌프오빠 어머니한테 안부전화는 하셨어여?]

잠들기 전까지 팬들과 나누는 대화가 소년들에겐 힘이 되어 주었다. 눈이 저절로 감기기 직전까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색한 침대에서도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꿀잠을 자고 난 다음날 아침엔 공연장으로 향했다. 어느 도시를 가도 수만 개의 응원봉과 거대한 함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마치 구름 위를 걷듯 비현실적인 나날들이었다. 가끔은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수만 관중의 떼창, 그 가운데에 서서 가무를 선보이고 있노라면 마치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드는 군자였다.

그러나 그렇게 붕 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의 동료들이었다.

동료들이 딱히 군자에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지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군자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곤 했다.

“나의 친우들아, 항상 고맙구나.”

“음? 갑자기?”

“너희 덕분에 교만함을 멀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냐? 근데 넌 좀 교만해도 되지 않아?”

“아니, 그렇지 않다. 교만은 비탈길의 눈덩이와 같아서, 작은 교만 덩어리가 생긴 순간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 버리지. 애초에 씨앗을 잘라 버리는 것이 가장 좋단다.”

“···오늘도 현자 같은 말만 하는구만···.”

“군자 형아는 그걸 알아야 돼여. 형 때문에 눈치 보여서 우리도 건방을 못 떤다구여.”

소년들 역시 언제나 군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사는 인간이 친구이니, 그들 역시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경거망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겸손과 달리, 7IN의 음원 성적은 멈출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동부 투어가 끝나고 소년들이 유럽행 비행기를 탔을 무렵, 빌보드 4주차 순위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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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

투어 기간 동안 수직상승한 음원 성적은, 어느새 단 하나의 계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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