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1화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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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우하루로 다시 태어났다

“네이선 라이네!”

이름이 불리자 무대 위로 등장한 사람.

그는 놀랍게도 20대 초반의 동양인 남자였다.

일제히 기립한 관객들은 그를 향해 갈채를 보냈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의 섬광이 번쩍였다.

“감사합니다. 제 소설 ‘오르테가의 비밀’이 세계 최고의 감독님과 제작사에 의해 이렇게 영화화가 된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 군요. 더구나 할리우드의 톱스타 분들이 주연을 맡아 열연해 주신다니 꿈만 같습니다. 아마 저는 평생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곧이어 참석자들이 네이선의 소설과 그의 천재성에 대해 찬사를 이어갔고, 행사는 1시간 반 만에 종료가 됐다.

이어진 개별 인터뷰 시간.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서 몰려든 방송사들을 차례로 만나는 자리다.

신청한 기자들이 많다보니 순서 당 주어진 시간은 고작 3분 내외.

약 10명 정도의 기자들이 거쳐 가고 나서 한국에서 온 방송사 리포터와 마주앉게 되었다.

“영미 소설계의 떠오르는 신성, 믿을 수 없는 천재적 스토리 텔러로 명성을 얻고 계시는 네이선 라이네 씨는 한국에서 출생하신 후 입양이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너무 반갑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혹시,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지, 한국말은 하실 줄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녀의 말에 다소 멋쩍은 미소를 보이는 네이선이다.

반갑거나 유쾌한 느낌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사실 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너무 어릴 적이라 입양될 때의 기억은 없구요. 그래서 한국말도 할 줄 모르고 가 본 적도 없습니다.”

의도와는 다른 방향성의 대답이 나오자 살짝 당황한 리포터.

그녀는 결국 곧바로 작품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고 이내 그녀에게 허락된 5분은 금세 지나가 버렸다.

대부분의 방송사와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하아...”

네이선은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다.

‘요새 자꾸 왜 이러지. 어찔어찔하기도 하고. 이런 식의 두통과 어지러움은 예전엔 전혀 없었는데...’

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숙소로 돌아왔다.

“네이트. 축하한다!”

“축하해, 내 아들!”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를 맞이하며 포옹을 했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입양 후 그 어느 친부모 이상으로 애정과 사랑을 쏟으며 키워준 두 사람.

네이선은 그들에게 하늘에 닿을 정도 그 이상의 고마움을 담고 살아가고 있다.

“이게 다 어머니, 아버지 덕분이에요. 한 때나마 속 썩여 드린 거 정말 죄송합니다.”

“클 때 한 번씩은 다 그러는 거지 뭐. 네 누나도 그랬고 조카들 다 그랬어. 네가 좀 유난스럽긴 했지만 말이지. 호호.”

“이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어머니인 자넷 라이네가 네이선을 포근하게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준다.

“그 때 일은 다 잊어버려라. 넌 그 과정을 아주 훌륭하게 극복해 냈잖니. 네 엄마와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네가 아주 대견하고 고맙단다.”

“저야말로 감사해요. 제게 주신 이 재능을 갈고 닦아서 더욱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도록...헉...”

기쁜 얼굴로 말을 하던 네이선이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네이선! 왜 그러니?”

“아들, 어디 아픈 거야?”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극심한 통증.

그는 시야가 점점 희미해짐을 느끼며 머리를 움켜쥔 채 거실바닥에 쓰러졌다.

*****

“악성뇌종양, 즉 뇌암입니다. 길어야 3개월 정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

‘그래서 최근에 그렇게 이상하게 머리가 아팠던 거였나.’

네이선 라이네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열했다.

‘젠장. 이제 뭔가 좀 시작해보려고 했더니. 하느님, 좀 얄밉네요.’

그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좋은 일이 이렇게 많이 생기고 있는데.

자신 스스로도 천재성을 알고, 이제 좀 꽃피워 보려는데.

그게 그렇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건가.

네이선 라이네.

그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대로, 흔히 기억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 어릴 적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원래 이름도,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

핀란드 출신으로 미국에 이민 와 미 북서부의 워싱턴주 포틀랜드 근방 작은 마을에서 5대째 뿌리를 내리고 있는 라이네 집안이 그를 받아들였고,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식이 귀한 앤드류 라이네와 부인은 그와 다른 한 명의 입양 자식을 친자식 못지않은 애정으로 키웠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자질을 보이던 네이선.

그는 불과 일곱 살 때부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문학적 재질의 싹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학교 내 글쓰기 관련한 상은 모두 휩쓸었을 뿐 아니라 카운티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에 최우수상을 거머쥘 정도였다.

선생님들은 그의 자질에 경악했고,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미 북서부 시골구석 작은 마을에 황인종이라고는 그 한 명밖에 없었던 탓에 네이선은 또래 아이들로부터 은근히 인종차별이란 걸 당해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그의 재능을 대놓고 칭찬하며 기특해 마지않아 했다.

그렇게 무탈하게 잘 자라줄 줄 알았지만, 그 누구의 역사에도 위기는 찾아오는 법.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던 청소년기에 방황을 시작했고 때문에 그의 재능은 잠시 다른 갈등에 파묻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사실 네이선의 일탈은 주위 사람들이 그를 다르게 보는 시선과 더 관련이 있었다.

즉, 가치관이 형성되어 가며 스스로에 대한 자아의식이 활발해지는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면서 내적 갈등이 심해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과 그의 재능은 영원히 묻혀버릴 것 같았는데.

다행이랄까, 운명이랄까.

양부모의 진정한 사랑과 타고난 착한 본성이 그를 각성하게 했고, 그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재능 발휘를 이어갔다.

대학교도 들어갔다.

워싱턴 주립대에 들어가 문학과 언어 공부를 하는 한편 작품 활동도 이어가던 그.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수의 추천을 통해 출판사와 연결된 후 내놓은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평론가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10대 시절 습작처럼 썼던 단편소설들까지 출간되어 세상에 빛을 보며 그야말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그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설은 물론 시나리오, 극본 등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네이선 라이네.

불과 약관이 지나 20대 초중반의 짧은 몇 년에 그가 이루어낸 성과들은 빛이 날 지경이었고,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아우른 그의 작품들에 콘텐츠 제작자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의 첫 소설이 드디어 세계 최대 제작사에 의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그 순간.

그게 바로 이 날인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 하필 오늘이라니. 적어도 이 며칠 정도는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릴 시간을 주셔도 되지 않았을까.’

씁쓸한 웃음이 네이선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이후로 그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가끔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아버지. 저 죽으면 장기 기증하려고요.”

“네이트! 지금 너 무슨...”

“그러고 싶어요. 저 머리 빼고는 아무 문제없이 건강하다잖아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하지만 아들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리고 또 하나 허락 부탁할 게 있어요. 저 한국에 좀 다녀올게요.”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한국? 지금 네 몸으로? 무리 아니겠니?”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있으면 영영 못 가볼 것 같아서...”

네이선은 자신을 버린 친부모의 나라 한국을 내심 원망하며 의도적으로 멀리 하고 있었지만, 역시 피는 어쩔 수 없던 걸까.

씨앗을 품고 싹을 틔웠던 그 땅.

거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혈육을 찾겠다는 희망은 아니다.

그저 죽기 전에 눈에 담고 싶고 잠시나마 발을 딛기를 원할 뿐.

‘이유는 모르겠고, 알 수 없는 본능이랄까.’

생의 마감을 앞둔 자식의 소원이다.

라이네 부부는 동행의 조건으로 그의 요청을 허락했다.

집안의 경제적 사정이 나름 부유한 편이라 가능한 일일 터.

며칠 후 세 사람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네이선은 기억의 능력이란 걸 갖추게 된 이후 최초로 그가 태어난 곳의 풍광 앞에 서게 됐다.

‘여기가, 내가 나고 버려진 그 곳이란 말이지...’

그는 자신이 발견되었다는 서울의 한 동네를 찾았다.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었지만.

‘혹시, 이 즈음 어딘가에 친부모가 살았던 건가.’

그저 무심하게 두리번거리던 그가 어느 소로로 접어들려 할 때였다.

교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10대 소년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오다가 횡단보도 근처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게 보였다.

네이선이 본능적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이봐요, 학생. 왜 그래요? 괜찮아요?”

그 학생은 알아듣지 못했다.

네이선의 입에서 영어가 나와서가 아니었다.

눈에 초점이 없어졌고 입에 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슴에 귀를 대 보니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장마비.’

그는 학교시절 운동을 하면서 배워두었던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하고 그 학생은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건네는 구급대원에게 연락처를 알려줬다.

‘내가 죽어가는 마당에 남을 살릴 기력은 있었네.’

그래도 나를 잉태해준 땅에 대한 최소한의 보담은 한 건가.

학생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지으며 숙소로 돌아온 네이선.

그런데 그날 밤.

그의 상태는 갑자기 악화가 되었다.

‘하아, 끝까지 신은 나한테 여지를 주지 않으시는군.’

다음날 아침.

네이선은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

마치 긴 잠을 잔 듯했다.

격렬한 두통을 느끼며 무력한 공포 속에서 어둠이 뒤엉키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그게 죽음이 아니었나.

다행히 다시 시한부로 삶이 연장된 건가.

네이선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병원?’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하루 씨. 정신이 드세요? 저 알아보겠으면 눈을 깜빡해보세요!”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이 희미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

분명 간호사 복장이다.

그런데.

‘뭐지, 이 낯선 언어는. 혹시, 한국말? 그런데...다 알아듣겠어. 그것도 너무 생생하게 말이지.’

게다가.

‘잠깐, 지금 나를 ‘우하루’라고 부른 건가?’

어찌 된 시추에이션인지.

그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입에 뭔가가 물려져 있기도 하고 기력도 없어서 말을 뱉어낼 수가 없다는 상황이란 것이었다.

잠시 후, 의사로 보이는 사람 한 명과 30대 초중반의 여자 한 명이 급하게 들어오는 게 그의 눈에 보였다.

‘아, 맞다. 내가 한국에 와 있었지. 그럼, 또 쓰러져서 병원에 이송되어 온 건가?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느낌이 좀 이상했다.

“하루야. 고마워. 네가 이겨내 줘서. 이렇게 잘 버텨줄 줄 알았어. 수술 잘 됐대. 이제 빨리 건강해지자!”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그의 볼을 어루만지며 손을 잡아줬다.

처음 보는 얼굴.

자신과 같은 피부다.

옆의 서 있는 의사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인다.

“우리 하루 군. 수술은 완벽하게 성공적입니다. 이제 6개월간 거부반응만 잘 관찰하면서 주의해서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어려운 심장이식 수술을 잘 해주셔서. 이 은혜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뭐라고?

심장 이식수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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