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2화 (2/69)

2화. 너희들한테 사과를 받아야겠다

일주일 후, ‘우하루’라 불리는 그는 중환자실에서 벗어났다.

격리병실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완전히 다른 모습.

거울 속에는 전혀 익숙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직 앳된 티를 채 벗지 못한 10대 한국 소년.

‘나, 죽고 나서 이 아이에게 빙의된 거야?’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다가 떠오른 기억.

‘설마!’

거의 확실했다.

생전 처음 가본 그 소로 어귀 건널목에서 쓰러졌던 그 학생.

자신이 직접 심폐소생술을 해줬던.

거울 속 얼굴에서 그 친구의 모습이 분명 보인다.

*****

수술실에서 눈을 뜬 지 약 3주.

네이선은 이제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생소하고 이상한 점투성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건 자신이 이놈의 한국말을 다 알아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는데 말이다.

‘내가 태어난 땅이라서 그런 거야?’

다행이랄까, 영어 역시 온전히 다 기억이 난다.

일부러 혼잣말로 지껄여보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너튜브를 시청해 봐도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러다 미국 뉴스에서 발견한 기사.

[천재 작가 ‘네이선 라이네’,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에게 새 삶을 안겨주고 아름다운 죽음 맞이해.]

내용을 읽고선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맞았네. 내가 죽고 장기기증을 했어. 아마 이 심장도 내 것이겠지. 그래서 빙의를 하게 된 건가.’

네이선 라이네의 소설 ‘오르테가의 비밀’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으며 관계자 모두가 원작자의 사망에 애도를 표한다는 기사가 연이어 떴다.

그 소식에 우하루는 착잡하다.

‘남들 좋은 일만 시켜줬군.’

이제 ‘네이선 라이네’란 이름은 과거의 것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묘비석에서 그 이름이 발견되겠지.

그리고 양아버지 양어머니의 마음속에는 꽤나 길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그 삶은 끝이 났다.

적어도 본인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양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이제 어쩌랴.

다른 사람으로 빙의했다라고 알릴 수도 없는 노릇.

그래봤자 누가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신께서 병 주고 약까지 주셨네. 내 짧은 인생이 안타까우셨나. 그래도 내가 태어났던 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게 해주신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거울을 봤다.

꽤나 멀끔하게 잘 생긴 육체.

“그래. 이제 신이 주신 이 생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설마 저번처럼 빨리 불러올리시지는 않겠지.”

그런데 그 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사이 우하루의 어머니인 우지연이 병실로 들어온 모양이다.

“네? 아, 아녜요.”

그는 재빨리 아무렇지 않은 듯 수습했다.

다행히 헛소리인 양 대충 넘어갔다.

“몸은 좀 어떤 것 같아?”

“뭐, 괜찮은 거 같아요.”

“약 먹는 거 잊지 않았지?”

“네. 잘 챙겨먹고 있어요.”

“이제 이번 주말이면 퇴원하네. 조만간 학교도 다시 가야하고.”

학교라.

그 말을 하니 갑자기 이 몸의 주인공을 처음 만났던 그 때가 생각났다.

겁에 질린 듯 허겁지겁 뛰어오던 우하루.

몸이 반응하는 건지, 별로 등교가 내키지 않는 기분이다.

“네, 그래야겠죠.”

“근데 너, 좀 달라진 것 같다?”

갑자기 의아한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는 어머니.

괜스레 우하루가 뜨끔하다.

뭔가 눈치 챈 건가.

아까 주절대던 걸 다 들은 건가.

“네? 뭐, 뭐가요?”

“이제 나하고 눈도 잘 맞추네. 말도 더 밝게 잘 하는 거 같고.”

“아...”

“좀 더 어른스러워진 거 같기도 하고.”

당연하겠지.

20대 중반의 젊은이 멘탈인데.

‘말투나 행동 같은 걸 일부러 어리게 해야 하나. 근데,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건 또 무슨 말이지...’

그 소리와 관련된 내막은 퇴원 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하아, 경계성 자폐.’

집으로 온 우하루는 이 몸의 이전 주인의 일기를 보고 알게 됐다.

우하루는 자폐 증상을 갖고 있었던 것.

다행히 심한 중증은 아니었고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하루 본인이 그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없다. 아니 친구를 사귈 수가 없다.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데 뭐가 다른지 논리적으로 적어낼 수가 없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두렵고 어색하다. 이것 역시 내 스스로가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니까.]

이 일기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가 겪었던 사건들과 그의 생각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알려줄 정도로 내용이 자세했다.

[내 친구는 소설이다. 영화다. 드라마와 만화다. 나는 그 속에서 행복하고 영원하다. 두려움도 없고 불행한 느낌도 없다. 그건 내 삶의 전부다.]

갑자기 지난 삶에서 학창 시절이 떠오르는 우하루다.

네이선 라이네의 생은 비교적 무난했다고 남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과 사이에 존재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던 알 수 없는 벽.

그건 태생과 생김새에 기인했다.

유일한 황인종 외관인 그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강을 영원히 건널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그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에 침잠했었다.

‘넌 나하고 좀 닮은 데가 있었구나.’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

우하루는 학교폭력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죽이고 싶다. 하지만 두렵고 무섭다. 그 애들은 내게 많은 걸 부당하게 요구한다. 내가 좀 다르다는 걸 트집 잡아 못살게 군다. 엄마한테 알리고 싶지 않다. 나는 엄마가 괴로워하는 게 싫다.]

인간이 존재하고 덜떨어진 철부지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이전 삶에서 당했던 게 생각이 나니 우하루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다른 점이라면, 네이선 라이네는 권투와 운동 및 강인한 정신력으로 그들의 도발을 단칼에 도려냈던 데 반해 이 아이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인간 망종들은 약한 놈들에게 강한 법이지. 갑자기 흥미진진해 지는데.’

우하루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어느새 그는 빠르게 이번 생에 동화되기 시작하며 우하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더불어, 왠지 새로운 삶에 흥미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 우하루. 네 억울함을 내가 풀어주마. 그리고 내가 지난 삶에서 못 이루었던 꿈도 이번 생에서는 꼭 성취하리라!”

*****

우하루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인 우지연의 말에 따르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 없잖아.’

만약 그렇게 일찍 남편이 세상을 떴다면 그에 대한 그리움은 더 애틋할 테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을 리가 없다.

물론, 오히려 그런 그리움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흔적을 일부러 지워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성까지 어머니 쪽으로 바꿔 버렸다는 건, 분명 뭔가 사연이 있다는 건데.’

일단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언젠가 때가 되면 이야기해 주시겠지.

“가자, 하루야.”

등교하는 날.

우지연은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중견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반차를 냈다.

“하루 수술 잘 됐다면서요? 다행이에요, 정말.”

기호중학교 교무실.

우하루의 담임인 이종만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요.”

그렇게 말했지만, 우지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담임이란 사람이 자기 반 제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와 보지도 않고 연락도 한 번 주지 않았지. 만약 지가 허리를 굽신대는 학부형의 자식들이었다면 과연 그랬을까.’

서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종만 선생이란 작자는 학부모 사이에도 소문이 유별나니까.

아이들의 집안 환경에 따라서 대하는 게 티가 날 정도로 다르다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구석이 있는 우하루는 그의 관심과 케어의 완전 밖이었고 그건 심지어 이 반 이 학교 누구나 다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하루는 그런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했다.

차 안에서 담임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친 어머니의 말에서 눈치를 챈 것도 있고.

‘선생들 중에서도 철없는 애들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사실 우하루는 당분간 연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태도,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적 자세, 늘 책과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고립 지향적 행동 등, 일기에서 봐왔던 그런 특성이 갑자기 바뀌어버리면 선생들이나 친구들이 당황해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어색해할까 봐.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그런 걱정 자체가 어불성설인 듯했다.

어차피 혼자였던 거였고, 아무도 관심 없어했고, 친구도 없으며 담임도 무관심인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아마 바뀐 점을 알아차리지도 못하지 않을까.

우하루를 괴롭히던 놈들만 빼면 말이다.

그래서 얻은 결론.

‘될 대로 되라지. 수술 받았다더니 뇌를 다친 거 아니냐고 하겠지 뭐.’

우하루는 가뿐하게 꼴리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있을 때에는 나긋나긋한 척이라도 하던 담임.

우하루 혼자 남으니 역시나 표정이 싹 바뀐다.

“맨날 잘 봐달라고 하면서, 뭔가 성의를 보여야지 성의를. 쯧쯧.”

대놓고 혀를 차는 그.

자기반 제자를 앞에 두고 저게 할 소린가.

우하루는 기가 막혀서 쓰레기를 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뭐해? 가 봐!”

어이가 없네.

우하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릿한 웃음을 날리고서는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뭐야? 저 자식 웃는 게 왜 저래? 좀 이상해진 거 같은데.’

기분 나빠하는 담임을 뒤로하고 3학년 3반 교실로 향한 그.

일기 덕분에 몇 반인지도 알 수 있었다.

예상대로 다른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서 오전 세 시간의 수업을 마쳤다.

‘아우, 오랜만에 수업이란 걸 들으려고 하니 따분하네. 근데, 내가 이렇게 똑똑하고 암기력이 좋았나?’

이상하다.

이전 삶에서 글재주는 있었어도 암기력이나 논리력이 최상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보는 대로 외워지고 머리가 지나치게 맑은 것 같다.

뭔가 뇌 기능이 좀 달라진 듯.

‘혹시, 우하루 얘 천재였나.’

몸이 합쳐지면서 능력도 합체?

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한다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기분 나쁜 톤으로 툭 친다.

“야, 우중충!”

우중충?

‘뭐야, 날 부른 거야?’

뒤편으로부터 에워싸듯 자리 양쪽으로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

명찰을 보니 한 놈은 이길중, 또 다른 놈은 마장우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무래도 이 두 놈 같은데. 일기에 따르면 괴롭히는 놈들이 같은 반 애들이라고 했지.’

우하루가 그들을 쳐다봤다.

“여어, 이제 괜찮아진 거냐? 맨날 골골대더니. 수술했으니 이제 잘 뛰겠네. 이제 이것도 좀 빨 수 있으려나?”

이길중이란 놈이 담배 피는 시늉을 하자 마장우가 낄낄댄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하는 우하루.

“엇쭈, 너 되질 뻔 했다더니 좀 달라진 거 같다, 분위기가. 짜식, 째려보는 것 좀 봐.”

“정말? 호오, 이제 강심장 됐다 이건가? 큭큭.”

“어쨌든 너 이제 빵셔틀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거지? 기대해 봐도 되겠지?”

대놓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우하루가 대뜸 입을 열었다.

“이따가 점심시간에 따로 좀 보자.”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두 인간.

“너, 지금 뭐라고 지껄였냐?”

“점심시간에 보자고 했는데.”

“왜? 빵 셔틀 제대로 해보겠다 이거냐?”

“빵 셔틀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너네한테 사과 좀 받아야겠어서.”

잠시 멍하게 입을 벌리고 있던 그들이 어이없다는 듯 둘이서 마주보고 웃는다.

“뭐라카노, 이 새끼가. 미쳤구나. 심장이 아니라 뇌수술 받은 거야? 다시 한 번 말해봐라.”

“귓구멍이 막혔나.”

“하아, 나 참 미치겠네. 이게 몸 좀 아팠다고 좀 좋게 봐줬더니, 뭐 어쩌고 저째? 수술하면서 약을 통째로 처먹었나.”

당장 책상이라도 뒤엎을 기세.

그 때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디 보자. 이따가. 옥상으로 튀어 와라. 저번처럼 토끼면 뒤진다. 얼마 못 가서 쳐 자빠질 거면서 튀긴 어딜 튀어. 그 때 뒤졌어야 되는 건데, 씨발.”

가만 있자.

이길중의 말이 우하루의 뇌리에 와서 콕 박혔다.

튀다가 자빠졌다라.

‘그 때 뒤졌어야 된다고? 설마...’

그거 혹시 소로 건널목에서 달리다 쓰러져 심장에 발작을 일으킨 그 원인이...

그러고 보니 뭔가 쫓기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이 자식들, 선을 넘은 것 같네.’

우하루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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