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 방법대로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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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건물 옥상.
우하루를 셋이 둘러싸고 있다.
‘둘에서 하나가 더 늘었네. 이건 뭐 다른 반 똘마니인가?’
딱 보니 우하루를 괴롭힌 주범은 같은 반 맨 뒷자리의 이길중이란 놈이고, 저 마장우와 김광덕이란 자식들은 그의 부하 쯤 되는 모양이다.
“너 여기 심장이 아니라 대가리 수술한 거냐? 정신 못 차려? 우리가 누군지 몰라? 벌써 치매라도 왔어?”
“.......”
“엇쭈. 씹어? 이게 예전에는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더니 이제 눈깔을 들이박네. 아이쿠, 무서워서 어쩌나. 너 봐주려고 했더니, 진짜 안 되겠다.”
“내 심장이 터진 게 너희들 때문인데, 사과 안 해?”
우하루가 일단 넘겨짚고서 질렀다.
이 자식들을 피해서 도망을 가다가 벌어진 사고였단 심증이 간다.
하지만 아직 물증은 없으니 일단 확정적 가정 하에 떠보자는 거다.
그런데.
“그게 왜 우리 때문이야? 네가 그 때 안 도망갔으면 됐을 거 아니야?”
그렇지.
걸려들었다.
아주 자기 입으로 자백을 하네.
“이런 식으로 위협하고 못되게 구는데 도망가는 게 맞지. 너희들이 괴롭히던 피해자가 너희들 때문에 죽을 뻔했으면 진심으로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 죗값을 받는 게 사람으로서 도리 아닌가?”
우하루의 말에 낄낄대고 웃는 세 명.
반성의 기색이라고는 개미 코딱지만큼도 없다.
“미친. 뭐래 이 새끼가?”
“내 말이 틀렸어?”
“이제 보니 아주 말을 꽤 하는데. 그 동안 겁먹고 말 한마디 못 하더니 다 연극이었나?”
“.......”
“씨발, 안 되겠나, 좀 봐주려고 했더니. 정신 차리게 몇 대만 맞자. 그래도 수술했으니 조금 약하게...”
짝!
뺨을 강하게 얻어맞고 휘청거린 건 우하루가 아니었다.
분노에 찬 거들먹거림으로 소매를 걷어 올리던 이길중 쪽이었다.
그의 몸이 밀려나며 쓰러질 뻔했다.
“어...씨발...”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
금세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똘마니 두 명도 모두 이 상황에 당황스럽다.
‘뭐야. 저 모지리가 우리 대장 뺨을 때려?’
차라리 주먹이었으면 나았을 텐데.
뺨을 맞으니 기분이 더럽다.
자존심 상하는 수준이 다르다.
더 열 받는 건...
‘존나 아파...!’
이길중이 폭발했다.
“으아아!”
그가 팔을 들어 올리며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하루는 살짝 위빙 모션을 취하더니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억!”
이길중은 자신의 내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앞으로 그대로 고꾸라지는 바람에 얼굴이 콘크리트 바닥에 갈렸다.
“길중아. 괜찮아? 이런, 미친!”
이렇게 되면 시나리오는 뻔하다.
나머지 둘이 함께 달려드는.
우하루는 그들에게 시선을 두면서 침착하게 대응했다.
먼저 들어오는 마장우의 급소를 한 발로 들어 까면서 동시에 60도 각도에서 들어오는 나름 몸집이 웅장한 김광덕의 펀치를 피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며 비어버린 그의 턱에 훅을 꽂았다.
“우엑!”
“꺼억!”
두 놈이 코뿔소 공격을 받은 멧돼지마냥, 그렇게 나동그라졌다.
혹시나 쓰러진 이길중이 뒤쪽에서 공격하지나 않을까 경계하며 우하루가 손바닥을 털어냈다.
‘나름 일진이라고 해서 뭔가 무술 고단자라도 되는 줄 알았네. 기초도 없는 좆밥 새끼들이었군.’
지난 삶에서 학창시절 권투와 격투기 경력이 있던 우하루로서는 참 하찮은 상대들이었다.
널브러져 있는 그들을 향해 우하루가 말을 뱉어냈다.
“내가 원하는 건 앞으로 다시는 나를 비롯해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과 각서. 그리고 진정한 사과야. 더불어, 그 동안 내가 피해본 것들에 대한 피해보상도 해야겠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좆까. 오늘은 우리가 갑자기 당해서 이랬지만 두고 보자고.”
“하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안 되겠다 싶은 우하루가 옥상 가장자리에 나동그라져 있던 각목을 주워들었다.
그러자 그들의 안색이 하얘졌다.
말은 호기로웠지만, 금세 손을 저어내는 이길중과 일당들이다.
잠시 고민하던 우하루.
여기서 이 자식들을 요절내 봤자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가해자로 몰릴 수도 있고.
죽도록 맞았다고 뉘우칠 종자들도 아니니까.
패는 건 나중에도 더 할 수 있으니 근본적인 제거가 필요하다.
“망종들이 이 정도에 반성할 리가 없지. 그럼 할 수 없지. 내 방법대로 해야겠네.”
우하루가 각목을 내동댕이치고선 유유히 옥상 문을 나섰다.
*****
수업이 끝나고 담임 이종만이 우하루를 상담실로 불렀다.
놀랍게도 거기엔 이길중 일당 세 명이 먼저 와 있었다.
뭔가, 상황이 애매질 것 같은 분위기다.
“우하루. 네가 얘네들 때렸어?”
“네?”
“체육관 옥상에서 팼다면서!”
어이가 없네.
우하루는 그들을 쳐다봤다.
‘이 새끼들은 쪽 팔린 것도 모르나. 에효, 이런 것들한테 빵셔틀 당하고 맞고 살았다니. 우하루, 너도 참.’
그가 대답했다.
“선생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지금 여기서 싸우면 제가 쟤들한테 맞겠어요? 아니면 제가 쟤들을 한꺼번에 패겠어요?”
“뭐?”
“제가 무슨 격투기 선숩니까? 격투기 선수도 세 명 한꺼번에 이기기 힘들어요.”
말이 막히는 담임이다.
비록 우하루가 또래 아이들 중에서 키가 큰 편이지만 근육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소심한 성격에 비정상적인 측면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말이 안 되는 거다.
“그, 그래도. 저렇게 증거가 있는데.”
김광덕의 턱에 나 있는 상처와 이길중의 갈려진 얼굴.
담임 입장에서 헷갈린다.
근데 물증이 없잖아.
“정말이에요, 선생님. 저 새끼가 그랬어요!”
“맞아요.”
이 때다 싶은지, 이길중과 일당들이 담임에게 읍소한다.
우하루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쉰 후 입을 다시 열었다.
“선생님. 지금 저 새빨간 거짓말이나 듣고 계실 게 아니라, 제가 그 동안 저 자식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빵셔틀 당한 게 중요합니다. 저 자식들 피해서 달아나다가 심장에 무리가 온 거라구요.”
이참에 모든 사실을 담임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그의 말을 들은 담임 이종만.
그런데 예상 외로 반응이 덤덤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얘들이 어딜 봐서?”
“네?”
“증거 있어? 너 원래 심장 안 좋았던 건 나나 아이들도 다 알고 있던 건데, 갑자기 얘들 때문에 그랬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야?”
“선생님! 학교폭력 신고를 이렇게 무시하셔도 되는 겁니까?”
“학교 폭력은 무슨 학교 폭력! 얘들이 깡패야? 어딜 봐서! 솔직히 네가 정상이 아니니까 그런 대접도 받는 거 아니야!”
헐.
우하루는 기가 막혔다.
“일단 오늘 건은 더 조사해 보기로 하고 돌아가 봐.”
담임이란 사람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든다라?
정말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힐 노릇이다.
이제 보니 어머니의 말과 소문들이 전부 맞았던 거다.
쓰레기 새끼가 선생질을 하고 있었던 거네.
우하루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을 나온 그.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선 액정 가운데의 빨간색 ‘녹음 저장’ 버튼을 눌렀다.
*****
“세영아, 그럼 이제 당분간은 학교 나오겠네?”
“응. 드라마 끝났으니까. 올해는 계속 나올 거야. 나도 공부좀 해야지.”
“좋다. 네가 없으니까 다닐 맛 안 났다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지?”
“티 났나? 호호.”
강세영.
아역배우부터 시작해 학창시절에도 쭉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녀는 기호중학교의 꽃이다.
그녀의 미모를 영접하기 위해 주위 다른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보러 올 정도.
우하루와 같은 반이지만 서로 말을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늘 내가 먼저 다가가도 두 마디 이상 이야기하기가 힘드니. 난 하루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늘 그를 안쓰러워하고 걱정하는 그녀.
타고난 성품이 착하고 정의감이 투철한 탓이다.
“근데, 하루는 수술 잘 됐나 보더라. 다행히 얼굴도 좋아 보이고.”
“응. 그렇대. 근데 어제 다시 등교한 애를 그 자식들이 또 괴롭히는 거 같던데.”
“또? 심장수술까지 하고 온 애를? 나쁜 놈들. 내가 저번에 담임한테 말을 했는데도 별다른 일이 안 생기더라고.”
“소용없어. 알잖아. 걔네 부모들하고 담탱 어떤 사이인지. 그렇게 사고를 쳐도 어떻게든 싸고도는 거 봐. 아마 네 말 듣고도 그 자식들한테 잔소리 한 번 안 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아...”
답답한지 강세영이 한숨을 쉰다.
“근데, 나 소영이한테 이상한 얘기 들었어.”
절친 오지윤의 말에 강세영이 귀를 쫑긋 세운다.
“무슨 얘기?”
“우하루 쓰러진 날, 그게 저 자식들 때문이란.”
“정말?”
“응. 그걸 소영이가 목격했대.”
“리얼리?”
“응. 게다가, 폰으로 찍어 놨다는데? 이길중하고 마장우가 우하루 때리려고 해서 도망치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걸.”
“그 장면을 찍었다고? 소영이가?”
“응. 골목길 모퉁이 편의점에서 김밥 먹다가 우연히 보게 됐는데, 마침 너튜브에 뭐 올리려고 찍던 도중이어서 촬영하게 됐나 봐.”
“그럼 그걸 담임한테 말했어야지!”
“말해봤자 뭐하겠어. 괜히 자기 입장만 난처해질 거고, 잘못하다가 이길중하고 걔 엄마아빠한테 찍혀서 무슨 일 당할지도 모르는데.”
“하아...안 되겠다.”
“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지.”
강세영이 박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영아, 나 세영인데. 지금 학교 앞 카페에서 나 좀 잠깐 보자.”
*****
주말.
금요일 밤에 네온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 때문에 온라인이 시끄럽다.
- 세영아. ‘네온’에 올라온 글 봤어? 학폭.
오지윤과 더불어 강세영과 가장 친한 윤준환이 일요일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왔다.
“응. 어제 밤에 지윤이가 말해줘서 봤어.”
- 그거 딱 우리 반 이야기 아니야?
“맞아. 내가 보기에도 그래. 지역만 봐도 그렇고, 우리 동에 중학교가 몇 개나 있다고 그 중에서 저런 상황에 있는 반이 우리 말고 다른 데가 또 있겠어? 아무래도 우리 반 애 누군가 올린 거 같은데.”
- 혹시, 하루가?
“글쎄, 그건 모르지. 근데 아닐 거 같아. 제 3자 입장에서 썼잖아. 게다가 어찌나 애절하게 썼는지 나 읽다가 울었어.”
- 그러니까, 나도. 완전 몰입되게 잘 썼더라. 단편 소설 보는 줄. 긴장감 쩔고 반전 죽여주고. 읽고 나니까 마치 내가 당한 것 같이 느껴져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주인공한테 감정 이입 완전 되더라니까.
“그러니까 온라인이 난리가 났겠지. 이게 실화란 걸 막판에 밝히니까 다들 가해자 찾아내서 고발하고 손해배상 물게 해야 한다고 난리잖아. 거기다 담임 징계하고 쫓아내라고 하고.”
- 좀 전에 기사까지 났어. 아마 내일 학교 분위기 장난 아닐 거 같지 않아?
“그렇겠지.”
- 어?
전화기 너머 윤준환이 갑자기 뭔가에 놀란 듯 비명을 질러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누가 이거 우리 학교라고 이름을 아예 올려버렸어. 방금.
“뭐? 누가? 설마, 우리 학교 앤가?”
- 모르겠어. 완전 난리 났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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