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증거 여기 있습니다
*****
월요일 아침.
강세영의 말대로 교무실은 초비상 사태다.
밤새 온라인에 올라온 글들에 대한 전 국민적 반응이 최고조로 격앙돼 있었다.
누군가의 내부 고발 글까지 올라오고, 네티즌 수사대의 쾌속 조사로 인해 이 소설 같은 글의 배경이 바로 여기 기호중학교라는 게 거의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해당 가해학생을 찾아내 엄벌하고 담임과 학교를 징계하라는 글들이 빗발치듯 쏟아지고 있었다.
* 저것들은 범죄자들이지. 설마 저 새끼들도 촉법인가 그거로 빠져나가는 거 아니야?
* 중3이면 아님. 무조건 교도소 가야지.
* 기호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 쉿. 괜히 또 고소당할라. 사실 적시도 모욕죄 성립한다고.
* 뭐 그런 좆같은 경우가. 근데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 같은데.
* 불쌍한 아이 더럽게 괴롭힌 놈들이 좀 사는 집 자식들이라면서. 뭔가 있구만, 담임하고.
* 정도가 있지. 심장이 약한 자폐아 친구를, 하아...진심 죽이고 싶다. 그러면서 사과도 안 하고 또 빵셔틀을 시킨다고?
* 어그로 글 아닌가?
* 녹음파일도 있다잖아. 필요하면 공개한다고. 그러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 저건 부모부터 싸다구를 맞아야지. 잘못 키운 죄.
* 근데, 심장 약한 애를 위협해서 도망가다가 쓰러져서 죽을 뻔했다면, 죄목은 어케 되는 거야? 미필적 고읜가?
* 만약 이대로 묻혀 버리면, 이거 가만 두면 안 됨. 저런 일들이 얼마나 많겠어. 본보기로라도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봄.
* 글 쓴 사람한테 포상해줘야 함. 너무 흡입력 있고 말도 안 되게 잘 썼더라. 나 무슨 소설 보는 줄 알았다니까.
* 다들 그 말 하더라. 끝까지 한 번도 눈 안 뗐어. 숨도 안 쉰 거 같아.
* 이게 바로 글의 힘이구나.
교장실에 불려갔다 나온 담임 이종만이 곧장 3학년 3반으로 향했다.
“이길중, 마장우, 그리고 우하루. 따라 와!”
상담실로 불려온 세 명.
이종만이 대놓고 우하루를 노려본다.
“지금 너 때문에 온 학교, 아니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어!”
다짜고짜 화부터 뱉어내는 그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우하루는 그저 덤덤한 눈빛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정작 분노를 뱉어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어이가 없을 뿐이다.
“너야? 아니면, 우리 반 누구야? 이 글 써서 올린 놈이.”
“.......”
“넌 알 거 아니야?”
“글쎄요.”
“글쎄요? 하아, 참. 솔직히 너밖에 더 있어? 지난번에도 네가 얘들한테 괴롭힘 당했다고 나한테 와서 고자질 했잖아!”
“고자질이라구요? 그런 걸 고자질이라고 하시나 봐요, 선생님께서는?”
“뭐야? 이 자식이 정말...”
피해자의 사연과 아픔을 먼저 청취하고 그 진실을 가려내려는 의지따위는 조금도 없는 담임이다.
애초에 저번 일이 있고서 조금의 기대조차 갖지 않았으니 우하루로서는 별반 유난스러울 일도 아니다.
“저한테 중요한 건 이 글 쓴 게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용이 전부 사실인 것이고 그에 합당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갑자기 꽤 어른스러운 말투를 뱉어내는 우하루에 이종만은 순간 움찔했다.
‘뭐야, 이 자식. 지난번부터 뭔가 달라진 것 같다싶더니. 왜 이리 말을 잘 해? 시선도 똑바로 쳐다보고. 왠지 좀 섬뜩하잖아.’
이내 지릴 뻔한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서 애써 엄한 표정을 되찾는 그.
그런데 그 다음이 가관이다.
“너희들 정말 그 글 내용대로 얘를 괴롭혔어?”
“아뇨! 저희들은 그저 재미있게 놀자고 그런 겁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도망가다 붙잡힌 도둑놈 데려다놓고 네가 훔쳤냐고 물어보는 격이다.
긍정할 리가 없지.
“봐, 그런 적 없다잖아. 너 좀 유별나, 내가 보기엔. 너 성격상 문제 있잖아. 말도 없고 누구하고도 안 어울리고, 그러니까 얘들이 다가가 줬으면 어떻게든 잘 지낼 생각을 해야지.”
이건 뭐 대놓고 가해자 편이다.
우하루는 한심하단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너 그게 선생님 앞에서 무슨 행동이야?”
이종만의 호통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는 휴대폰을 열어 녹음 파일을 틀었다.
“네티즌들이 이걸 공개하라는 의견들이 많더라고요. 전 경찰한테 주려고요. 아니, 검사님이나 판사님한테 직접 넘겨야 하나?”
스마트폰에서는 그동안 우하루를 괴롭히던 그 장면들이 그대로 녹음된 파일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누가 들어도 이길중과 마장우의 목소리.
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루야. 네가 녹음을 해둔 걸 이제야 찾았다. 잘 했어.’
괴롭힘을 당한 상황 전부는 아니었지만 꽤 많은 케이스가 그 파일 안에 담겨 있었다.
“너...이게...”
빼도 박도 못하게 생긴 시추에이션.
우하루는 어느 정도 선에서 일단 멈춘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날, 제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날도 이 애들이 괴롭히는 걸 피해서 도망가다가 무리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그로 인해 겪은 정신적 손해배상과 수술비까지 받아낼 겁니다.”
“우, 웃기시네. 우리가 언제? 증거 있어?”
“이 자식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우하루가 다시 다른 파일을 틀었다.
며칠 전 옥상에서 이길중과 일당들이 뱉어낸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쓰러진 게 너희들 때문인데, 사과 안 해?]
[그게 왜 우리 때문이야? 네가 그 때 안 도망갔으면 됐을 거 아니야?]
다시 그들의 낯빛에서 핏기가 가셨다.
근데 왜 담임 이종만의 얼굴도 창백해지는 걸까.
뭔가 그들 모두가 운명 공동체인 것 마냥 말이다.
“이걸로만 그 날 있었던 일을 유추한다는 건 무리다. 그냥 말싸움 하다가 나온 대답일 수도 있고 말이지.”
“맞아요, 쌤. 쟤가 추궁을 하기에 둘러대려고 그랬던 거라니까요.”
그런데 그 때.
노크도 없이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증거 여기 있어요!”
강세영.
그녀가 손에 태블릿을 들고 나타났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허락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지금이 그렇게 여유 부리실 상황이 아닐 텐데요. 자, 보세요.”
그녀가 태블릿을 담임에게 디밀었다.
거기에서 재생되기 시작한 영상.
그건 우하루가 쓰러지던 날 박소영이 찍었다는 그 파일이었다.
거기에는 이길중과 마장우가 우하루를 괴롭히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물리적 폭력과 협박에 견디다 못한 그가 길 아래쪽으로 달아나다가 쓰러지는 상황도 모두.
경악스러운 건, 그를 쫓아가던 이길중과 마장우가 거품을 물고 누워있는 우하루를 모른 체하고 내버려둔 채 낄낄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이었다.
일말의 죄책감이나 양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영상을 확인하고 있던 찰나, 열려 있는 문에 나타난 세 사람.
기호중학교 교장과 교육부 파견 조사관, 그리고 우하루의 어머니였다.
“교, 교장 선생님...”
이종만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들이 좀 전의 상황을 모두 지켜본 게 확실했다.
*****
“네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줄은, 이 엄마는 꿈에도 몰랐어. 미안해, 하루.”
우하루 어머니 우지연이 아들을 꼭 안아줬다.
그녀로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모든 걸 알게 된 날 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혼자서 아이를 키워 오면서도, 아이가 아스퍼거 증후군 의심 판정을 받은 후에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 적이 없었는데.
그저 남과 좀 다른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 우하루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아 마음고생 하는 정도로만 알았지, 저런 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녀다.
‘이제 걱정 마세요. 더 이상 예전의 우하루가 아니니까.’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는 우하루는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아 안심시켜줬다.
“그 세 놈은 퇴학 결정이 내려졌다고 연락이 왔어. 그리고 이번 일 덕분에 걔들 부모들과 담임의 커넥션도 드러났고. 정식으로 고소장과 고발장이 접수돼서 경찰 수사를 받는대. 민사 진행해서 손해배상까지 받아낼 거야.”
이번 일이 온라인에서 크게 이슈가 되면서 이길중 일당은 물론 그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둘 다 부모가 의사라니까 이 일로 그들 집안이 망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자식들이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게 되고 신상까지 털리는 바람에 이사까지 가야될 상황인데다 극악의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줄 게 뻔하다.
혐의가 확실한 세 명은 결국 빨간 줄을 두를 게 확실해 보인다.
“우리도 이사 갈까? 아무래도, 전학 가는 게 낫겠지?”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젓는 우하루.
“아뇨, 그냥 다닐래요. 가해자가 사라져야지, 왜 피해자가 눈치를 보고 도망을 가야 해요?”
그 대답에 우지연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하루가 달라졌어. 이제 내 눈을 피하지도 않고, 표정도 다 드러나고, 이렇게 자기 의견을 논리정연 똑 부러지게 표현하다니.’
그녀의 마음 속 한 구석에 이유 있는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우하루가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던 한국대 부속병원.
정기적으로 경과를 관찰해야 하기에 오늘도 담당 교수를 찾았다.
“허허, 이거 참. 희한한 일이네요.”
수술을 집도한 교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뇨. 오히려 반댑니다.”
“반대...라구요? 그게 무슨...”
“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경과를 관찰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이식 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수치가 너무 좋아요. 마치 이식한 게 아니라 원래 자기 심장인 것 같이 말입니다.”
이건 뭐, 경사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괜스레 잠깐 가슴을 쓸어내렸던 우지연은 반가운 소식에 눈물이 날 정도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부작용이나 심각한 면역반응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감사할 일인가요. 아드님의 몸이 잘 적응하는 것을요. 하하.”
우하루도 그 이야기를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얻은 새로운 생의 몸.
그로서도 이식 수술을 했다는 데 대해 걱정을 했었는데, 이 정도면 연구 대상일 정도로 완벽하게 받아들였다니.
정말 무슨 인연인 건가.
우지연은 곧이어 찾은 정신과에서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아드님의 자폐성향이 놀라울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해도 되겠어요.”
“네? 그게 정말인가요, 선생님?”
“네. 조금 전에 검사에서 그렇게 나왔어요. 축하드립니다. 나중에 이 케이스에 대해 연구가 필요할 때 협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한 내막을 알게 된 후 힘들고 우울했던 기분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우지연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을 더 힘껏 안아줬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우리 하루, 이대로 잘 자라게만 해주세요.’
입 밖으로 소리를 낸 건 아니었지만, 우하루는 어머니의 기쁜 감정과 희망의 기도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
“강세영, 고맙다.”
우하루가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마주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두 사람 사이를 타고 흘렀다.
“고맙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 일에도 너처럼 용기를 내 줄 사람은 극히 드물지. 뒷감당이 두려워서라도 말이야.”
타인의 일에 선뜻 나서준 친구.
그녀가 고발해준 영상 덕분에 묻힐 뻔했던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더불어, 우하루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원인 제공의 죄를 물어 손해배상 소송도 가능해진 것.
사실 강세영이란 아이 자체가 정의감이 보통 이상인 탓도 있지만, 그녀의 집안이 법조계 유력 인사 가문이라 이길중 부모 정도는 가볍게 지르밟고도 남을 수준이기에 겁을 먹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어쨌든 학우의 일에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을 걸 각오하고서도 직접 행동에 나서주는 일은 쉽지 않을 터.
우하루로서는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다.
“우하루.”
“응?”
그녀가 갑자기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솔직히 나한테만 이야기해 봐. 그 글 네가 쓴 거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