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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가 우하루-5화 (5/69)

5화. 일단 이것부터 시작해보자

“음...맞아.”

우하루는 주저하지 않고 솔직히 답해줬다.

사실 이제 와서 누구든 알게 되어도 상관없고.

더구나 이 아이라면 털어놔도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럴 줄 알았어. 진짜 글 잘 쓰더라. 하긴, 그러니까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겠지.”

“내가?”

아차차.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건데.

우하루는 곧바로 수습 멘트를 날렸다.

“아, 그 때 그거!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대단한 게 아니긴. 전국 대회에서 그 정도면 장난 아니지. 중학교 고등학교 다 합쳐선데.”

‘그런 일이. 우하루, 역시 너도 재능이 있었구나.’

강세영에게 찬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우하루다.

“좋게 봐줘서 고마워.”

“그동안 같은 반이면서 이야기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네. 내가 드라마 촬영이 많아서 결석이 잦아 그런 거겠지만.”

“드라마 촬영? 너, 배우야?”

“어머. 나 몰라?”

우하루가 알 리가 있나.

헐리웃 스타라면 모를까.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오자 못내 서운한 그녀다.

“내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섭렵하지는 못해서. 미안.”

하지만 강세영은 금세 자신의 서운함을 툴툴 털어버렸다.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앞으로는 내가 출연한 드라마도 좀 봐줬으면 해.”

“오늘부터 당장 그러려고. 밤 새워서라도 다 볼게.”

그 말에 그녀가 꺄르르 웃는다.

“어머, 뭘 그렇게 까지나. 고마워. 근데, 네가 이렇게 말도 잘 하고 싹싹한 애인 줄은 몰랐어. 이런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친해질 걸 그랬다.”

“앞으로 잘 지내면 되지. 나도 너하고 잘 지내고 싶다.”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좋은데. 하루야, 나하고 어디 갈까?”

“어디?”

“너한테 소개시켜 줄 곳과 사람들이 있어.”

“그래.”

우하루는 강세영을 따라나섰다.

이번 생에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

더구나 그녀는 천사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예쁜 여학생이니 그의 마음이 모처럼 설레고 심장이 뛴다.

도착한 곳은 학교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헤어샵이었다.

“이모, 나 왔어.”

“어, 세영이 왔니?”

강세영이 ‘이모’라고 부른 여성이 우하루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친구네?”

“응. 이제 금방 친해졌어. 우리 반이고 이름은 ‘우하루’야. 하루야 인사해. 우리 이모.”

“안녕하세요?”

“그래, 이름도 예쁜데 잘 생기기까지 했네. 어쩌면 피부도 이렇게 뽀얗고 곱니. 헤어스타일만 조금 바꾸면 완전 배우 뺨치겠다, 얘.”

‘헤어스타일만 조금 바꾸면’이라는 그녀의 말에 우하루는 속으로 동감을 표했다.

치렁치렁 더벅머리 반곱슬인 지금.

이번 생에서 제일 적응 안 되는 요소 중 하나다.

“이모도 참. 지금도 배우 뺨칠 만큼 잘 생겼는데 뭐.”

강세영이 이모를 흘기며 우하루를 다시 한 번 쳐다보더니...

“이모가 한 번 스타일링 해주던지.”

결국 진심이 나와 버렸다.

그래도 잘 생겼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단지 스타일을 더 좋게 하면 미친 듯 더 잘 생겨보일 것 같은 마음은 사실이니까.

“그럴까? 지금은 예약이 있어서 이따가 해줄게.”

“땡큐, 이모. 하루야, 들어가자.”

어딜 들어가자는 건지.

강세영이 샵의 뒤쪽으로 성큼 걸어갔다.

웬 문이 하나 나오고, 그녀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늑한 다락방 같은 공간이 나왔다.

“오...”

“여기가 우리 아지트야.”

정말 ‘아지트’란 이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책도 꽤 많이 있었고 PC에 스크린에 기타까지.

아늑한 소파도 준비돼 있었고 바닥에는 큰 러그가 깔려 있어서 편안한 분위기다.

심지어 빵하고 컵라면 같은 간식거리도 보인다.

“비번 알려줄 테니까 혹시 나 없을 때에도 와 있어도 돼. 지윤이하고 준환이도 다 그렇게 해.”

“정말, 그래도 돼?”

“그럼. 이제 우리 절친이잖아!”

친구.

지난 삶에서도 학교 안에서 별로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었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유일하게 다르던 네이선.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마음 속 깊은 곳으로 그를 받아들이기 거부했었다.

처음엔 아닌 줄 알았었는데, 그들의 속마음을 엿듣게 되면서 그의 영혼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짙게 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제, 학창시절에서 진짜 ‘친구’라는 게 생기게 된 건가.

강세영의 눈빛과 말투가 따스하게 우하루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어, 와 있었네?”

십 분이나 지났을까.

아지트에 두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오지윤과 윤준환.

두 명 모두 며칠 간 보아서 낯이 익다.

“오, 우하루. 드디어 이 곳에 입성했네. 환영한다!”

“하루야. 잘 왔어!”

그들 역시 환한 웃음으로 진심의 환영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부탁이랄 게 뭐 있어. 친구끼리 잘 지내면 되지. 뭐, 나도 잘 부탁해. 하하.”

“나도, 호호.”

이렇게 우하루는 세 명과 ‘절친’의 일원이 되었다.

*****

“자, 됐다!”

강세영 이모인 서윤희의 말에 우하루가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반곱슬 더벅머리가 어느새 사라지고 깔끔하고 세련된 숏컷이 되어 있었다.

“와, 이게 누구야. 이렇게 헤어스타일 바꾸니까 그 잘생긴 얼굴의 분위기가 더 확 살잖아! 진즉 이렇게 하고 다니지! 아이돌 뺨친다, 얘!”

자기 솜씨를 자랑하려는 걸까.

호들갑을 떨며 감탄하는 그녀다.

그런데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는 강세영의 눈이 반짝인다.

그녀의 시선이 우하루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좀, 괜찮은 거 같아?”

“.......”

멋쩍은 표정으로 거울을 통해 의견을 물어본 우하루.

그런데 강세영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쳐다볼 뿐, 한동안 대답이 없다.

넋이 나간 것 같은데.

“세영아.”

“으...으응?”

“괜찮은 거 같냐고. 난 좋은데, 네가 보기엔 어때?”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것 같은 그녀가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응. 너무 괜찮아. 진짜 잘 생겼다.”

숨김없이 직진으로 나오는 감탄사.

아무래도 반해버린 것 같은 느낌인데.

“어째. 우리 눈 높은 세영이 입에서 누구보고 잘 생겼단 소리 처음 들어보는 거 같다. 그 날아다니는 보이그룹 멤버들도 하나같이 별로라면서.”

“이모는 참. 잘 생긴 걸 잘 생겼다고 하는데 뭘 그래. 하루야, 올라가자.”

“그래.”

2층 아지트로 올라와 보니 언제 올라왔는지 오지윤과 윤준환이 자리를 잡고 뭔가를 하고 있다.

그들 역시 우하루의 달라진 모습에 감탄을 뱉어냈다.

“미친. 너 배우 해라.”

“됐고. 뭐 해 지금?”

우하루가 윤준환의 옆에 앉아 그의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빼곡한 글자들.

“혹시, 글 쓰는 거야?”

“응, 맞아. 웹소설 쓰는 중이야.”

“웹소설?”

우하루도 이전 삶에서 접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장르소설가 겸 극작가였기에 출판소설에 익숙했던 터라 웹소설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더욱이 미국은 출판소설 시장이 무척 거대해서 아직 웹소설이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는 환경이라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역시 앞으로 웹소설이나 웹툰이 성장할 분야라는 정도는 그도 짐작하고 있다.

“왜 웹소설을 쓰는데?”

“왜 쓰냐고?”

“응.”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글 써서 용돈 좀 벌어보려고.”

“돈을 번다고?”

“응. 종이책을 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나 내기도 힘들고 돈도 들잖아. 근데 웹소설은 이 문스피아를 비롯해서 유명한 플랫폼 중 몇 군데 올려서 인기 끌면 굳이 돈 따로 안 들여도 짭짤하게 벌 수가 있거든. 그러면서 이름도 알리고.”

“오, 그래?”

“내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좋아했으면 웹툰을 시도했겠지만, 나한테는 신이 그런 재주를 안 주신 데다 원래 꿈이 작가니까 이걸로 시작해 보려는 거야.”

“그래? 글을 써서 그냥 사이트에 올려서 사람들이 많이 읽으면 바로 돈이 된다는 거지?”

“맞아. 근데, 너 백일장에서 우수상도 탔으면서 웹소설을 모르는 건 좀 의외다. 하긴, 영역이 좀 다르긴 하지. 순문하고 웹소설은. 문법 자체가 다르니까.”

“문법이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특징이 서로 틀리단 거지. 책으로 출판되는 순문이나 추리소설, SF 같은 식으로 쓰면 웹소설 독자들은 아마 거의 안 볼 거야.”

꼬치꼬치 캐묻는 친구에 살짝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윤준환은 마치 선생님처럼 정성을 다해 우하루의 질문에 답을 해줬다.

“보는 사람 층이 다르다는 거구나.”

“그렇지. 게다가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웹소설에 기대하는 거하고 다른 류의 소설에 기대하는 게 같이 않으니까.

“취향도 다른 거고.”

“맞아. 웹소설 독자들의 취향과 욕구에 맞추지 않으면 눈길조차 얻기가 어렵지.”

우하루는 웹소설에 급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궁극적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전 삶에서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

일종의 호기심이기도 했지만, 지금 일개 중학생이며 무명이라는 사정을 감안해 볼 때 당장 종이책 출간을 해줄 회사도 없을 것이며 극본이나 시나리오를 쓴다 해도 곧장 휴지통으로 들어갈 게 뻔하다.

그러니 그 대안으로 웹소설이란 걸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금세 돈을 벌 수 있다지 않은가.

‘집안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혼자서 회사를 다니며 우하루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

실력을 인정받아 연봉이 그리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 없이 외벌이로 살림을 꾸려가느라 그리 넉넉한 형편으로 지내올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우하루는 야근을 밥 먹듯 하시며 집안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조금이나마 경제적 조력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준환아. 웹소설 그 사이트가 어디라고?”

*****

우하루는 윤준환이 알려준 ‘문스피아’를 비롯해 몇 곳의 웹소설 사이트를 들어가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친구의 말대로 자신이 알고 있던 흥행의 문법들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와, 이건 뭐 내 예상과는 완전 다르네. 이전 삶에서 했던 방식대로 써서 올렸다가 좌절감만 들 뻔했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며칠간 웹소설 사이트의 유명 히트작들을 탐독하면서 그는 이 바닥에 필요한 게 뭔지 머릿속에 감이 오기 시작했다.

물론 윤준환의 컨설팅이 큰 도움이 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소위 고구마란 걸 혐오하는 수준이구나. 빌드업 자체가 내가 지난 삶에서 썼던 그 방식하고는 완전 차원이 틀려. 기대감과 뽕이 가장 중요하단 말이지. 그래서 회빙환이니 천재니 복수니, 그런 것들이 주 소재가 되는 거고. 뚜렷한 목적의식이 주어지니까.”

우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실전에서는 더욱 많은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일단 웹소설 시장의 핵심적인 특성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저 회빙환 중에 하나잖아. 그러고 보면 내 사연이 웹소설 스토리?”

희한한 기분이 드는 우하루다.

자신이 왠지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혹시라도 아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에이, 그건 나중에 다른 작가한테 소스를 양보하자. 솔직히 잘 먹힐지도 모르겠고.”

흐음...

어쨌든.

“이래서 준환이가 순문이나 다른 장르문학과 문법 자체가 다르단 소리를 했군. 잘못 했다가는 소프오페라 극본을 가지고 뮤지컬 감독한테 보내는 격이 될 뻔했네. 하지만 이렇게 파악을 하고 보니 어느 정도 공식이 보이잖아. 뭐, 처음부터 대단한 성적을 기대하는 건 아니니, 일단 열심히 써서 시험 삼아 올려봐야겠다.”

우하루는 고민 끝에 지금 대인기라는 ‘현대판타지’ 대신 정통 ‘판타지’ 작품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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