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반응 장난 아닌데
윤준환이 첫 작품은 가급적 ‘현대판타지’ 장르를 공략해보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하루가 다른 선택을 한 건 이유가 있어서다.
일단, 한국의 현대사회에 대해 아직 생소한 게 너무 많다.
물론 미국이나 여기나 공통점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부분에 있어 개연성이 지나치게 떨어질 우려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일일이 공부하고 조사를 해가며 쓴다는 것도 쉽지 않다.
어찌 됐든 학생의 신분이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우하루가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스토리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에 맞는 장르가 바로 ‘판타지’였다.
‘그걸 웹소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구성과 스토리로 꾸며서 한 번 도전을 해보자. 판타지도 잘 쓰고 재미있으면 오히려 더 대박이 날 가능성 있다고 준환이가 그랬으니까.’
처음부터 빅히트작을 쓸 거라고는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잘 되면 좋은 건 당연한 일.
결과에 개의치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기로 했다.
우하루가 모티브로 삼기로 한 소재와 세계관은 바로 핀란드 신화다.
이전 삶에서 양아버지의 고향이었던 곳.
그래서 어렸을 적에 많이 들었던 스토리들을 바탕으로 해서 윤준환이 말해줬던 웹소설식 문법을 적용해 내용을 구성해보기로 했다.
북부대륙 동쪽 왕국 페루나스의 비루한 사생아 서자로 태어난 주인공 페르티.
그는 다른 정실 자식들을 비롯한 왕가에서 멸시와 학대를 받고 자란다.
그래도 국왕만큼은 그를 신경 써주는데.
어느 날 서부 숲 지대에 이물들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고 페르티는 그 전장터로 보내진다.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
지략과 검술에 뛰어난 그는 용감하게 싸웠고 적의 패퇴를 앞둔 순간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도륙을 당하게 된다.
죽기 전, 그는 이 모든 것이 페루나스 왕가의 계략임을 알아채고, 심지어 국왕의 윤허까지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을 낳은 후 숨진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이 속한 왕가의 음모와 관련이 있다는 비밀까지 알게 된 그.
하지만 때는 늦었고, 그는 비통함과 억울함을 안고 숨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암전이 된 얼마 후, 페르티는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이 네 살로 회귀한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생모를 위기에서 구하고 이 빌어먹을 페루나스 왕국을 도륙 내어 버리고 나아가 자신이 국왕이 되어 북부대륙을 지배하기로 결심하고서 복수와 야망을 향한 새로운 귀환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다.
단순히 보면 다소 흔한 판타지 복수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북반구 대륙의 얼음성, 침엽수림, 빙하의 바다 및 북부유럽의 다양한 몬스터들이 등장함으로써 독특한 세계관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었다.
제목을 지어 봤다.
‘페르티 왕자의 복수’,
‘화이트 엠파이어 오브 리벤지’,
‘페루나스 왕국의 전설’,
‘프린세스 페르티’,
등등.
“하아, 뭔가 약한데...”
미국이라면 나름 통할 수도 있는 제목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이 작품은 웹소설이다.
그 특성을 잊으면 안 된다.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목을 써야 한다.
멋있는 건 포기해라.
‘기획하는 것보다 이름 짓는 게 더 어렵냐.’
결국 우하루는 윤준환이 충고를 해준 바대로 이야기의 배경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타이틀을 고민해 봤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몇 가지 대안 중에서 그래도 이게 가장 낫다.
물론 100프로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그래도 일단 이걸로 해보자! 나중에 제목을 바꿀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우하루는 구상을 빠르게 마친 후 곧바로 집필에 들어갔다.
작업에 들어가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
수업이 없는 주말이라 온전히 글 쓰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불과 주말 이틀 만에 7만 자, 약 11화 분량을 마쳤다.
이전 삶에서도 집중력 하나는 끝내줬고 나름 집필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능력치가 훨씬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가만 있자. 이게 종이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편집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맞다, 준환이가 일단 몇 편을 올려보면서 일단 반응을 보는 게 좋다고 했지.’
우하루는 ‘문스피아’에 작가 등록을 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그도 필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이전 삶의 이름을 사용할까 하다가, 이젠 그 기억에서 벗어나 이번 생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를 그냥 영어로 풀어서 쓰기로 했다.
“에이데이!”
썩 내키는 건 아니지만 필명 정하는 데에 심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등록을 마친 후 곧바로 연재에 들어갔다.
[어차피 처음에는 ‘자유연재’라고 초보들의 승급용 습작 코너 같은 곳에 글을 올리게 돼. 거기는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기대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까 글자 수만 채워서 ‘일반연재’에 올라갈 생각하고 아무거나 습작한 걸 올리는 게 아깝지 않을 거야.]
윤준환의 말을 떠올렸다.
‘하아, 그럼 다른 걸 여기 올렸다가 승급하고 나서 이걸 등록할까?’
잠시 고민하던 우하루는 결국 그냥 이 작품을 ‘자유연재’에 올리기로 했다.
비록 노출이 잘 안 되는 곳이라고 하지만 재미있으면 봐 주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다.
정 안되겠으면 다른 작가들처럼 승급만 하고 다음 작품을 시도해볼 수밖에.
‘그래.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는 말자. 실전을 치러 봄으로써 웹소설 독자들의 반응을 제대로 경험해보는 게 이번 작품 등록의 목적인 거다!’
우하루는 일단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1화부터 3화까지 사이트에 올린 후 다시 12화를 쓰기 시작했다.
*****
“어떤 거 같아?”
“.......”
“친구라고 무조건 좋게만 말해주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건 솔직한 비평이야.”
“.......”
윤준환에게 다그치는 우하루.
자신이 주말에 올린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3편까지를 보여주며 평가를 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중이다.
과연 자신이 쓴 첫 번째 한국 웹소설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어째, 반응이 시원치 않은 분위기다.
대답이 안 돌아온다.
“하루가 물어보잖아. 왜 대답을 안 해주냐.”
두 사람을 지켜보던 강세영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하아...”
“왜 그래?”
“왜 그렇긴. 자존심 상해서 그렇지.”
“자존심이...상한다고?”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 나오자 나머지 세 사람이 윤준환에게 시선을 꽂았다.
“나는 3년 넘게 웹소설을 읽고 또 1년 동안 몇 편이나 자유연재하고 일반연재에 글을 올렸던 사람이야.”
“그런데?”
“근데, 하루는 웹소설이란 게 뭔지도 몰랐다면서. 그나마도 며칠 사이에 읽어봤다는 게 고작 히트 친 거 몇 편이라고 하고. 근데 지금 이 소설은...”
“?”
“너무 재미있잖아. 수준도 장난 아니고. 내가 바로 이런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자존심 상했다는 게 이런 이유였구나.
근데, 윤준환의 말이 진심이라면 정말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강세영과 오지윤이다.
“정말이야? 그렇게 재미있어? 나 좀 보여줘 봐봐. 제목이 뭔데?”
“남성향이라 너희들은 별로일 수도 있을 텐데.”
“재미에 남녀가 어디 있어.”
스마트폰으로 문스피아에 접속한 그녀들이 초집중으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하루는 윤준환에게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좋게 평가해 줘서 고맙다, 윤준환.”
“내 솔직한 심정일 뿐이야.”
잠시 후.
세 편을 모두 본 강세영과 오지윤이 고개를 들었다.
“나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 다음 편 보고 싶어!”
“나도, 나도!”
“몰입감 장난 아니다. 나 이런 판타지 웹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 거라면 되게 좋아할 거 같은데.”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거하고는 또 다른 매력이 있네. 재미있어 진짜로. 문장도 유려해. 술술 잘 읽히기도 하고!”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배경이 머릿속에 그대로 떠오르는 거 같아. 게다가 이름도 특이해. 페루나스 왕국, 페르티.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여자들의 반응에 윤준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거 같았어. 묘하게 여자들한테도 인기를 끌 요소들이 섞여 있더라고.”
“아까는 여자라서 별로 재미 못 느낄 거라며.”
“성별 따라 취향이 갈리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너희들 반응 보니까 결론은,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그거지.”
그의 후한 평가가 믿어지지 않는 우하루다.
자신이 쓴 첫 웹소설.
너무 찬사 일색이잖아.
윤준환이 덧붙였다.
“보통 첫 작 쓰는 사람들은 자신감하고 욕심이 과해서 너무 독창적인 소재나 장르를 고집하는 경향이 많거든. 근데 하루는 그걸 최대한 자제하면서 창의적 요소하고 클리셰를 적절히 버무렸더라. 그래서 진짜 놀랐어. 우하루, 너 괴물이었던 거냐. 아니, 천재인 거네.”
그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역력했다.
“그거 네가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잘 된 작품들 좀 읽어보니까 진짜 대부분 그렇더라고.”
“말이 쉽지. 그걸 다 알고도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 게 바로 나라고. 하아..”
이 정도 되니 우하루가 좀 민망하다.
“야, 쑥스럽게 왜 그래. 너희들이 나 생각해서 너무 후하게 점수 주는 거란 거 다 알아. 아직 반응도 별로 없잖아.”
우하루의 말대로 5화까지의 총 조회수는 500이 채 넘지 않고 있다.
언뜻 봐도 그 숫자가 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하루의 생각일 뿐.
윤준환의 분석은 달랐다.
“작가나 일반연재도 아니고 자유연재에다가 올린 지 3일도 안 지났으니 그건 당연한 거야. 오히려 그 정도면 완전 좋은 편이라고. 게다가...헐...”
다시 한 번 혀를 차는 그.
“조회수가 400인데 추천이 150이 넘다니...이거 잘못하다가, 아니 잘 하면 대박 나겠는데...”
“왜? 좋은 거야?”
“당연하지! 일반적으로 초반에 조회수 대비 추천이 20퍼센트만 넘어도 놀라운 건데, 솔직히 이 추천비는 말도 안 되는 수치라고. 거기다 이 연독률 좀 봐.”
“연독률?”
“그래. 한 화 본 사람이 다음 화를 보는 확률 말이야. 이게,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잖아. 줄어들지를 않아, 어떻게. 이건 1화를 본 독자들이 읽는 족족 추천을 누르면서 다음 화를 이어 본다는 이야기라고. 아...진짜, 현타 오네...흑...”
우하루를 비롯해 나머지 아이들은 윤준환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건 그의 반응으로 볼 때 긍정적인 상황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다만, 상대적으로 윤준환이 상대적 열화감에 빠질 수 있으리란 점은 안타까운 점이었다.
*****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6화를 올린 그 다음날.
댓글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유연재에서 이렇게 댓글의 숫자가 많은 건 오직 이 작품 하나뿐이었다.
- kks**** 미친 듯이 재미있어요, 작가님!
- mps*** 이게 자유연재?
- uti*** 아무래도 기성이 계정 따로 판 거 같은데. 자수하시죠.
- par*** 독특한 배경에 독특한 서사. 뻔할 줄 알았는데 전개가 완전 신박. 긴장감 쩔고. 작가님 분명 신인은 아닌 것 같음.
- kdm*** 작가 놈아. 야금야금 올리지 말고 한 번에 몇 편 연참 좀 안 되겠니. 안달 나서 죽갔다.
- pak*** 오늘도 페르티가 내 속을 시원하게 해주네. 근데, 히로인은 언제 나오나요?
- qor*** 이거 정말 재밌음요. 초반 조금 고구마가 있기는 한데, 이런 식이면 그런 건 대환영임.
- vbm*** 제목이나 전개 패턴은 전형적 웹소 문법을 따르고 있기는 한데, 문장력이나 묘사 수준이 너무 뛰어남. 글을 읽는 맛이 납니다.
- cgv*** 이 소설 읽으면서 생각난 제목. 천재 웹소설가는 자유연재부터 시작한다.
- dlk*** ‘에이데이’ 작가님. 설마 연중은 안 하시겠죠? 만약 그런 잔혹 동화를 찍으신다면 밤길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 aod*** 내가 하다하다 자유연재 소설에 빠져들 줄이야.
물론 부정적 댓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또 회귀냐거나 세계관이 너무 생소하다거나 제목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등의, 논리적 비평보다는 무조건적 적대감의 표시랄까.
그나마 그런 의견들은 호의적인 큰 반응의 파도 속에 휩쓸려 곧장 심해에 가라앉아 버렸다.
‘이 정도면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네. 일단 계속 써보자.’
우하루는 첫 시도인 웹소설에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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