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절대 신인작가일 리가 없어
독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고무되어 더욱 몰두해 소설을 써내려가던 우하루.
그가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근데 참 이상하단 말이지. 지난 삶에서는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지도 않았었고, 글 쓰는 속도도 이 정도로 빠르지 않았는데. 뭔가 많이 달라졌어.’
희한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몰랐던 내 머릿속에서 이런 단어들과 표현들이 쑥쑥 뽑혀져 나온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 건지.’
네이선으로 살던 이전 삶에서도 비록 천재 작가란 소리를 들었었고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도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심지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한국어 능력 획득까지.
‘혹시, 내가 빙의된 이 꼬마의 능력과 합쳐진 거란 건가...’
폰에 남겨진 어렸을 적 우하루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귀엽네.’
잠시 후, 그는 이내 의문을 거둬들였다.
어차피, 인간의 힘으로 밝혀낼 수 있을 리 없는 미스터리.
세상에 사람의 힘으로 알아낼 수 없는 게 어디 이뿐이랴.
‘그래. 중요한 건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우하루의 꿈을 이루는 거겠지.’
이제 우하루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신께서 주신 이 기회를 넋 놓고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앞만 쳐다보기로 했다.
그러기에도 할 일은 많고 이루고 싶은 꿈은 크다.
그리고 그 첫 시험대인 소설의 성적이 나름 괜찮을 것 같다.
*****
공부하랴 소설 쓰랴.
우하루는 요즘 잠이 모자란다.
고3이 아닌 게 다행이다.
마음 같아서는 소설만 쓰고 싶지만, 그는 엄연히 학생 신분이다.
그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은 희망사항이 더 크다.
그래서 둘 다 손에 쥐고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의아할 정도로 좋아진 기억력 덕분에 이 새로운 교육과정의 진도를 따라가는 게 나름 수월하다.
희한한 건, 암기력이 좋아지니 수리력과 논리력을 요하는 수학과 과학도 공부가 쉬워졌다.
‘역시 암기력은 모든 분야의 기본이군. 심지어 소설 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니까. 하아, 지난 삶에서도 머리가 이 정도만 되었다면 학창시절이 조금 더 편안했을 텐데.’
쉬는 시간.
졸음을 쫓기 위해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올라오던 우하루가 계단참에 올라섰다.
그런데 갑자기 낯이 익지 않은 어느 예쁘장한 여학생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비킬 생각도 안 하고 볼 빨간 낯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우하루가 물었다.
“누구...?”
“오빠.”
오빠?
아, 3학년이 아니라 후배구나.
“무슨 일인지...”
“저기, 이거요.”
그녀가 두 손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곱게 접은 카드.
아니, 편지인가.
“이게 뭐지?”
“저, 오빠하고 만나보고 싶어요. 오빠 좋아해요!”
헐.
헤어스타일 하나 바꿨다고 인기남 된 건가.
아니면 설마 진짜 원판이 엑설런트?
‘하여튼, 최근 들어 이게 몇 번째더라.’
근데 그 중에서도 이 아이가 제일 용감하긴 하다.
옆에 지나다니는 애들도 있는데.
“그 안에 제 소개 글하고 연락처 적혀 있어요. 읽어보시고 번호 등록하시면 받아주시는 걸로 알게요.”
그녀가 꾸벅 인사를 하더니 어느새 밑으로 달아나버렸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등을 툭 친다.
“어이, 요새 인기 짱이야, 이 친구.”
돌아보니, 강세영이다.
다 보고 있었던 거냐, 너.
“쟤는 좀 신선하네. 컨셉이 뭐 레트로인가? 게다가, 편지는 요새 같은 세상에 참 드문 일인데. 나도 안 받아본 걸 우리 하루가 받네.”
우하루는 그녀의 반응도 어이가 없다.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인 것 같은데.
뭔가 못마땅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너 지금, 혹시 연기하는 거야? 불량 청소년 배역?”
“왜? 내가 불량스러워 보이나, 친구?”
“안 어울려. 그만 해.”
그 말에 기가 죽는 강세영.
“역시. 연기 공부를 더 해야겠네. 하여튼 축하해.”
“뭘?”
“고백 받은 거. 애도 꽤 귀엽던데. 좋겠다, 인기 많아서. 연애사업 성공하길 바랄게.”
말은 그렇게 하는데, 이상하게 뭔가 불만스러워 보이는 투다.
그녀가 픽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 반으로 향한다.
‘지 예쁜 건 생각 안 하고 무슨. 근데, 혹시 쟤 질투하는 건가?’
강세영의 뒤를 따라 들어간 교실.
옆자리의 윤준환은 쉬는 시간에도 글을 열심히 쓴다.
노력만큼은 우하루 못지않은 듯.
아니, 더 절실한 것 같다.
자리로 돌아오는 그를 보더니 뭔가가 생각이 난 것 같다.
“하루야. 너 문스피아 연재 몇 화지 지금?”
“나? 이제 15화.”
“칠만 오천 자 넘었잖아.”
“음. 넘었더라고. 아차!”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이제 알아차린 우하루.
“일반연재 승급신청!”
“그래.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좋아. 필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유입 생각하면 말이야.”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다. 집에 가면 바로 할게.”
우하루 때문에 진한 현타의 향기를 느끼고 있는 윤준환은 그래도 친구가 잘 되는 걸 진심으로 바란다.
먼저 잘 돼주면 자신도 더 자극받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
그래서 그에게 더욱 큰 고마움과 우정을 느끼는 우하루다.
잠시 후 수업 종이 울리고, 이종만이 잘리고 나서 새로 반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담임인 김미진 선생이 들어왔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진학상담 있는 거 다들 알고 있지? 미리 부모님과도 상의해서 준비해 오도록. 자, 지난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진학상담이라.
아직 한국의 교육체계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우하루다.
그는 지난 생에서 워싱턴 주의 12년제 사립 초중고등학교를 쭉 다녔기에 더 그럴 것이었다.
궁금하던 차에, 쉬는 시간이 되자 강세영이 세 명을 모아놓고 묻는다.
“지윤이하고 준환이는 전부 송하예고 목표 변함이 없는 거지?”
“당연하지.”
“말이라고.”
벌써 세 사람은 어디 목표로 한 곳이 있나보다.
이제 한 명 남았다.
“하루 너는 어때? 그러고 보니 우리하고 진학 이야기 한 건 처음이네.”
“글쎄 말이야.”
“그냥 일반고 갈 거야? 아니면 외고?”
어렵다.
가만히 눈을 껌뻑거리며 생각에 잠긴 우하루의 팔을 강세영이 톡톡 두드린다.
“하루야. 너도 우리하고 함께 예고 가는 게 어때?”
“예고?”
“응. 너 글에 소질도 있고 앞으로 소설하고 극본 같은 거 쓰고 싶다고 했잖아. 드라마나 영화도 좋아하고.”
“그렇긴 하지. 근데 그 예고란 데에서 그런 걸 할 수 있나?”
“다 그런 건 아닌데,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송하예고’에는 그 과가 있어.”
대학교도 아닌데 ‘과’라는 게 있나보다.
“나하고 지윤이는 연극영화과를 가려고 하거든. 준환이는 아직 고민 중이고. 어쩌면 얘도 문예창작과를 갈 지 몰라. 너도 그 과 가면 되잖아.”
처음으로 진심이 가득 담긴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
그들과 떨어지기 싫은 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로를 정에만 맡길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우하루다.
“한 번 고민해 보고 엄마하고 상의도 해볼게.”
“좋았어. 내가 송하예고 웹사이트하고 SNS 주소, 그리고 자료들 네 폰으로 보내줄게.”
“땡큐!”
금세 그녀가 보내온 내용들을 훑어보며 우하루는 왠지 설레는 고민에 빠졌다.
*****
국내 최고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 기업 ‘문스피아’의 직원식당.
“요즘 자유연재 작품 하나 때문에 화제구만.”
“그러게 말이야. 나도 완전 빠져있는 걸 뭐. 그거 읽다가 보면 나 자신이 매니지먼트 직원 입장이란 걸 까먹게 되더라고.”
“그렇게 힘주고 쓴 거 같지도 않은데 한 화가 끝날 때마다 기대감에서 나오는 도파민이 쫙쫙 솟구치는데, 와 진짜 대단하더라. 캐릭터 들은 또 어떻고. 그냥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야. 매력들도 장난 아니고 말이지.”
과대해 보이는 찬사인 것 같은데도 옆에 앉아 밥 먹던 동료마저도 주저 없이 공감을 표시한다.
“그러니 자연에서 시작해 일주일도 안 돼 투베 100에 들어갔지. 그 정도면 기록 아닌가?”
“기록일 거야.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근데, 아무리 봐도 기성 작가 같지 않아요? 부계정 텄거나 아이디 갈고 나온 거 같은데.”
“혹시, 순문 작가 아닐까? 아니면 드라마작가일지도 모르고. 분명 웹소가 맞기는 한데 플롯이 너무 탄탄하고 글을 그냥 완전 갖고 놀더만. 잘 읽히면서 무겁지 않은 데다 문장력이나 표현 수준이 그 정도란 게, 솔직히 사기캐란 생각이 들더라고.”
“웹소에서 흔히 쓰는 그 ‘천재작가’가 진짜 현실에서 나타난 건가.”
“오 피디는 좋겠어. 그 작가 담당하기로 했다면서. 근데, 그거 아직 일연 신청 안 했던데?”
“알고 있습니다. 오늘만 기다려 보죠 뭐.”
“허 참. 일연 신청 안 한 자유연재 작가 때문에 애가 타보기는 또 처음인 것 같네.”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이삼일 사이 회사 내 단연 화제는 최근 올라오기 시작한 자유연재 신작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에 대한 이야기였다.
몇 편 연재가 되지 않았는데도 인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기세 탓일까, 과연 이 작가가 정말 신인일지 설왕설래라 더 이슈가 되고 있는 중이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온 오정민 피디가 그 작품을 들여다본다.
‘진짜, 아직 일연 승급신청을 하지 않았네. 설마 연중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조금 전 동료 피디 말대로 왠지 자신이 더 애가 타는 느낌이다.
‘이렇게 유려한 글이 창의적 배경과 스토리와 함께 전형적인 웹소 문법과 적절하게 어울리는 건 여태 본 적이 없거든. 단순히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작품성도 뛰어난 수작이기에 모든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이겠지.’
물론, 아직 초반이기에 더 지켜봐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언제나 때라는 건 있는 법.
‘자연으로도 유료는 갈 수 있으니까. 일단 컨택부터 해보자.’
일반적으로 문스피아 매니지먼트는 기성이 아닌 경우에는 웬만하면 유료 각이 보일 때 즈음 컨택을 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미 다른 매니지먼트사와 출판사들이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작가에게 정신없이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눈 뜬 채 허무하게 빼앗겨 버릴 수 있으니까.
“문체나 글을 풀어가는 걸 보면 절대 신인은 아니야. 만약 그렇다면 이건 천재를 넘어 거의 신 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니까. 풍기는 분위기로 보면 순문이나 방송계 쪽에서 유입된 분인 거 같기도 한데...”
오 피디는 호기심과 궁금함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이렇게 강한 끌림과 신비함은 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이다.
정말 신인인지 아니면 기성인지 아직은 모른다.
그래서 더 만나보고 싶다.
얼굴을 마주하면 어떻게든 정체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 피디는 다시 한 번 그 작품을 읽으며 캬아, 감탄사를 뱉어내고는 곧바로 컨택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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