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계약하시죠!
“일단, 지금 독자들 반응이 정말 뜨겁거든요. 자연에서 시작해서 아직 16화밖에 안 됐는데 유입이 장난 아니고 연독률이 115프로라는 건, 참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노골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오 피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독률이 100프로를 넘는 이 상황에선.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한데, 중간 중간 이전 화수보다 조회수가 더 많으니 가능하다.
그 이유는 추천 글들이 올라올 때마다 최신화수를 조회해 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작품에 빠지게 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유료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작가님께서는 의향이 있으신 거겠죠?”
벌써 유료화 이야기가 나오다니.
윤준환은 보통 40화 이후에 가능성이 판가름 난다고 했는데.
‘지표가 좋아서 그런 건가?’
잠시 뭔가 생각을 하던 우하루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료화 가고 싶어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긴장한 듯 보였던 오 피디의 얼굴이 그제야 활짝 개었다.
“그러면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제안드릴 게요. 작가님께서 우리 문스피아 매니지먼트의 케어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는 이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 한국 최고의 웹소설 플랫폼인 문스피아의 계열사로서...”
이후에는 회사의 장점과 자랑, 그리고 다른 매니지먼트사나 출판사에서 제공해주기 힘든 정산비율 등등, 자기 회사가 가진 매력적인 부분들에 대해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우하루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윤준환의 강력 추천이 있었기에 말이다.
누구보다 친구의 말을 믿는다.
은근히 밀당을 좀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자신이 중학생인 걸 감안한다면 쓸데없는 짓거리란 판단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문스피아하고 하죠.”
그 한 마디에 오 피디가 감격에 찬 포효를 숨기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데이’ 작가님께서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저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은근히 목이 탔는지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오 피디다.
식었기에 망정이지 뜨거운 거였으면 119 불러야 할 뻔했다.
“작가님. 그러면 어머님하고 함께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다행히 작가님께서 15세라서 유료화는 가능한데 아직 미성년자시라서 계약을 하고 은행계좌 거래를 하려면 법정대리인인 보호자 분의 동의가 필요하거든요.”
“음...알겠습니다. 근데, 엄마가 직장을 다니셔서 토요일밖에 안 될 거 같은데. 힘드시죠?”
“힘들 리가요. 완전 괜찮습니다. 그 날 뵙도록 하죠.”
작가님이라.
아직 1질도 안 친 이번 생에서 이렇게 또 작가님 소리를 한국말로 듣게 될 줄이야.
자꾸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호칭이다.
우하루는 괜스레 감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유입과 조회수가 이틀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추천 글이 더 올라온 데다 입소문까지 난 덕분일 것이다.
일연으로 승급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내일이면 1위하겠네. 와 장난 아니다, 우하루!”
문스피아에 가입조차 안 했던 강세영이 계정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요즘 아예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물론 우하루의 소설을 보기 위해서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에이데이’ 작가의 가장 극렬한 팬이 되었다.
“축하한다, 우하루. 오늘 저녁에 계약한다고?”
한없이 부러운 표정의 윤준환.
그도 곧 새 작품을 올리려 준비 중이지만, 왠지 기가 죽는 느낌이다.
“응. 엄마하고 같이 만나기로 했어. 분명 너도 이번 작품 잘 될 거야, 준환아.”
“글쎄, 모르겠다. 천재 친구가 옆에 있으니까 너무 좋긴 한데, 가끔가다 내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이니 말이지. 장단점이 있는 거 같어.”
“왜 또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괜히 미안해진다.”
“하루 네가 그럴 게 뭐가 있어? 그냥 그렇단 거지. 에이,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보다. 나도 이번에 더 분발해서 곧 계약할 수 있도록 할 게. 좀 전에 한 소리는 그냥 푸념이니까 잊어버려.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려고 그러네, 하하.”
다행히 윤준환이란 친구는 그리 속이 좁거나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아니다.
우하루는 그의 어깨를 한 번 다독여줬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우하루의 진학상담 차례가 되었다.
“그래, 어머니하고 상의는 해봤어?”
“네, 선생님.”
우하루는 어머니와 의논한 결론을 담임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해주었다.
“그래. 하루는 백일장에서 장원도 했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니 한 번 그 쪽으로 노력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무엇보다 본인의 희망이니까. 어머니께서도 동의해 주신 바이기도 하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만, 하루는 백일장에 참가해서 수상한 경력이 한 번뿐이라 경쟁자들에 비해 조금 적은 편이야. 그러니까 내신하고 실기에서 점수를 많이 따야 안정적으로 합격이 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시간이 충분하고 남은 기회가 많다면 중학생 대상 백일장에 열심히 참가를 하겠지만, 이미 시기가 늦은 감이 있다.
담임의 말대로 실기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네 사람의 진학 상담이 모두 끝났다.
다들 송하예고 지망에 담임의 공감과 동의를 받아냈다.
“우리 다 함께 송하예고 가는 거야, 진짜?”
“이제 시작이지. 다들 내신 관리 잘 하고 실기시험 짱 잘 봐야 해!”
“맞아. 우리 진짜 잘 해보자. 다들 함께 그 예쁜 교정에서 공부하게 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힘내자!”
“화이팅!”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그 날을 위해 네 친구는 손을 맞잡았다.
*****
우지연은 ‘문스피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웹소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을 갖고 있었다.
비록 제대로 읽어본 작품은 아직 하나도 없지만 회사에서 그걸 보는 후배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네가 쓴 웹소설이 이거라고?”
“네, 엄마.”
우하루가 가리킨 노트북 화면.
그의 손가락 끝에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란 제목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붙어 있는 숫자.
“이게 순위인가?”
“맞아요.”
“그럼, 이 많은 작품들 중에 하루가 쓴 소설이 2등?”
“네, 엄마. 피디님 말씀도 그렇고, 아마 주말 지나면 1위도 가능할 거 같아요.”
“오 마이 갓...”
아들이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떠올렸던 건 그동안 가끔 볼 수 있었던 습작들과 백일장에서 받은 장려상 정도였다.
이렇게 소설을 써서 이런 곳에 올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기 이 소설들, 전부 프로 작가들이 쓰는 거 아니야?”
“그렇진 않아요. 저 같이 처음 써서 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유명 기성 작가님들도 많구요.”
“아, 그래?”
“네. 이렇게 처음에 몇 십 화 정도를 써서 무료로 올리면 독자들의 반응을 알 수 있어요. 호응이 좋으면 그 다음부터는 돈을 받고 팔게 되는 거죠.”
우하루가 어머니에게 웹소설 판매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그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쓴 작품이 이렇게 성적이 좋으니까 이제 유료화를 하게 된 거다, 이거지? 서점에서 돈 받고 책을 팔듯이 하루 글을 사람들이 사서 본다는 말이잖아, 그렇지?”
“네, 맞아요. 엄마.”
딱 보기에도 쟁쟁해 보이는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 속에 당당하게 두 번째 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작품.
거기에는 바로 ‘에이데이’라는 작가명이 붙어 있었고.
그 닉네임이 바로 아들이라니.
우지연은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하아, 이렇게 대견할 수가...’
감격이었다.
“근데 제가 미성년자라서 유료화 계약하는 자리에 엄마와 함께 가야 할 거 같아요.”
“그래, 당연히 같이 가야지.”
너무나 뿌듯하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그녀가 놀랄 일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우하루와 함께 오정민 피디와 만난 자리.
거기에서 더 입이 벌어지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이 추세라면 유료화 하고 나서 첫 달에 못 해도 이천에서 삼천만 원 이상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겁니다. 아, 물론 연독이 계속 잘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이...천에서 삼천이요? 그것도, 처음 한 달에요?”
“네. 솔직히 이 금액은 가장 비관적으로 잡은 액수고요, 지금 추세로 보면 그 이상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우지연은 마시려던 커피를 하마터면 쏟을 뻔했다.
너무 ‘억’ 소리 나잖아.
액수 자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저 정도 금액이면 자신의 연봉과 맞먹는 금액인데.
그걸 아들이 단 한 달 만에 벌어들일지 모른다고?
우하루로부터 유료화 하게 될 것 같단 말을 들었을 때만해도 그게 이 정도의 액수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쪽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고작 소설로 무슨’이란 선입관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귀로 듣고서도 아직 믿어지지가 않는다.
물론 그녀에게 돈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우하루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니 뭐든 뒷받침을 해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열다섯 살 우하루가 돈을 번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요즘엔 10대가 아이돌로 데뷔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예계 스타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않나.
아무래도 이제 자신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가보다, 그런 생각이 드는 그녀다.
“원래 이 웹소설이란 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요?”
“하하, 아뇨.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아드님처럼 특별한 자질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을 쓰는 경우에는 상상을 초월한 수입을 가져갈 수 있는 거죠. 다만, 그런 케이스는 많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들의 재능이 정말 뛰어나다는 이야기잖아.
대놓고 그런 칭찬을 들으니 우지연은 하늘을 날아갈 듯 기쁘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을 때에나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만해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살짝 불안감이 있었다.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우하루의 재능이 확실해진 것이다.
잠시 우하루가 화장실을 간 사이, 오 피디가 우지연에게 귀띔을 해줬다.
“아드님께서 중학생이란 걸 듣고 저뿐 아니라 회사 모든 사람들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대표님께서도요.”
“아, 네.”
“잘 보이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구요, 진심으로 아드님은 글에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평가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우하루 작가님은 단지 글을 잘 쓰는 건 기본이고 창의적인 소재들로 능숙하게 글을 풀어나가면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드는 스킬을 갖고 있어요. 솔직히 웬만한 기성 분들도 이 정도 레벨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정말 기대가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어머님.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오 피디가 우하루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모자가 외식을 했다.
무역회사의 특성상 토요일에도 자주 일을 해야 하는 우지연.
그마저도 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밀린 집안일 하랴 모자란 휴식 취하랴 이상하게 여유가 잘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처럼 함께 외출한 김에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 것.
“맛있었어?”
“네, 너무 맛있었어요.”
“우리 아들이 너무 잘 먹어서 엄마가 기분이 좋다.”
“엄마도 잘 드시던데...”
“그랬나? 호호. 나도 배가 좀 고팠거든.”
살짝 멋쩍었는지 우지연이 웃자 아들에게 웃음이 전염됐다.
배부른 모자가 차 안에서 한바탕 폭소했다.
“기특하고 대견해, 우리 아들. 글을 그렇게나 잘 쓰는 줄은 몰랐네. 몰라 봐서 미안해요, 작가님! 호호.”
“엄마도 참. 이제 첫 작품인데요. 아직 유료화도 안 했고.”
“계약 했잖아. 그리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하고. 그러니 작가님이지.”
“아녜요. 커리어가 쌓여야 작가란 말 들을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하루 겸손해서 좋다. 근데, 공부하랴 소설 쓰랴 힘들지 않니? 나는 그래도 네 건강이 가장 중요한데.”
아무래도 심장 수술을 한 아들의 몸 상태가 가장 걱정일 수밖에 없다.
“의사 선생님께서 제 몸이 놀랍게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하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무리하지 않게 잘 조절할게요.”
“그래. 열정도 좋고 돈도 좋지만 건강 잃으면 다 소용없어.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된다.”
“네. 명심할게요.”
두 사람은 행복이 가득한 주말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
월요일.
수업을 마치고 모인 아지트에서 우하루가 갑자기 당황스런 소리를 뱉어냈다.
“나 생각을 바꿨어. 송하예고 가는 거.”
“뭐?”
우하루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 토끼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본다.
“설마, 다른 데 가려는 건 아니지?”
강세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기겁한 표정이 너무 대놓고 드러난다.
함께 고등학교를 다닐 생각에 그녀의 기대가 부풀어 있던 상황에서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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