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무조건 작가님 따라갑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과를 바꾸려고.”
“과를?”
“응, 문창과 말고 연영과로 가려고 해. 영상연출 전공으로.”
“정말?”
“왓? 리얼리? 그럼 나하고 같은 과?”
“너무 좋아!”
지옥에서 천당으로.
이럴 때 적절한 표현인 건가.
‘휴우...’
강세영은 우하루가 갑자기 다른 학교를 가겠다는 건 줄 알고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금세 환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난 또 다른 학교 간다는 건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아, 그랬어? 미안.”
“근데 왜? 무슨 과로 바꾸려는 건데?”
“내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건 맞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꿈은 내가 쓰는 이야기를 영상화하고 싶은 거야.”
“그건 드라마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하면 되는 일 아니야?”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것도 내가 하고 싶은 거지. 게다가 나는 영상화가 될 수 있는 대중소설을 쓰고 싶어. 그러려면 영상 연출을 알아야 하니까.”
윤준현이 무릎을 탁 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다 해먹겠다는 거구만!”
장난끼에 부러움과 시샘이 더해진 행동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고.
우하루가 멋쩍게 머리를 쓸었다.
“헤헤, 그런가?”
“난 멋진데. 왜, 음악 분야도 가수가 곡도 쓰고 작사도 하고 디렉팅도 다 하잖아. 악기까지 직접 연주하기도 하고. 작가는 왜 그러면 안 되는데?”
가장 먼저 강세영이 강력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윤준환과 오지윤도 합세한다.
“맞아. 세영이 말도 일리가 있어. 하루가 갑자기 영화감독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소설가가 극본이나 시나리오를 못 쓸 것도 없고, 영상 제작 디렉팅에 참여를 못 할 것도 없지.”
“게다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하루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
“그렇지. 하루 같은 천재라면 해낼 수 있지.”
이번엔 모두가 완벽한 진심이다.
“아이 또, 왜 그러냐. 나 진짜 창피하다. 그 ‘천재’ 소리 좀 그만 하라니까.”
“천재를 천재라고 하는데 뭐. 솔직히 세영이는 천재배우, 너는 천재작가. 맞잖아? 이제 몇 년 지나면 두 사람은 ‘스타배우’에 ‘스타작가’가 돼 있으려나?”
민망한 우하루가 윤준환을 말렸지만 도무지 이 아이는 감속할 기세가 아니다.
“부럽다, 이 천재들아!”
“으이그, 고만 하라잖냐.”
결국 강세영한테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아야! 너무 아포. 넌 여자 애가 무슨 힘이...근데, 이렇게 되면 나도 연영과로 방향을 틀어야 하나. 나만 괜히 소외되는 느낌인데.”
“그런 걸 감정적으로 결정하면 어떻게 해. 어차피 같은 학교고 이 아지트도 계속 열려 있을 거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말고 신중하게 더 생각해.”
그 말에 윤준환이 그녀를 살짝 못마땅하게 째려본다.
“세영이 너, 어째 하루한테 대하는 거하고 좀 다른 거 같다. 서운한데.”
“내가 뭘 또? 한 대 더 맞을래?”
“오 노. 사양, 사양!”
그 와중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오지윤이 갑자기 ‘꺄악’ 소리를 질렀다.
“넌 또 왜 그러는 건데?”
“이거 봐! 하루가 드디어 1위 먹었어!”
“정말?”
네 사람이 전부 그녀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액정 화면에 뜬 문스피아 투베 목록 맨 위에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게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정상이다.
주말이 지나면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오 피디의 예상대로 이 날 오후 투베 1위 자리를 꿰찬 것이다.
“으하하! 드디어 1위로구나! 축하한다, 우하루!”
“진심으로 축하해!”
“콩그레츌레이션, 콩그레츌레이션!”
우하루는 세 사람으로부터 진심어린 축하를 받았다.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의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올라왔다.
“축하는 축하고, 우하루! 필명 에이데이 작가님! 연독 잘 유지해야 할 겁니다. 내 작품이 조만간 치고 올라가 네 작품을 2위로 끌어내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제발 좀!”
“농담 아니다!”
오늘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게 될 윤준환.
그가 제법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자신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단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
하루에 3화 정도를 쓰고 주말에는 더욱 속도를 내다보니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비축분이 빠르게 쌓여갔다.
어느덧 30화가 지나면서 선작이 7만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성장의 기세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었다.
문스피아 매니지먼트 오정민 피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작가님. 유료화를 좀 빠르게 가도 될 거 같은데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들어가시죠.
“보통 40화 중반에서 50화 정도에 유료화를 하는 걸로 들었는데. 그렇게 빨리 가도 될까요?”
- 정답은 없습니다. 그건 평균적으로 봤을 때 그렇단 거구요, 성적에 따라서 더 빠르게 가거나 늦게 가기도 하거든요.
“그럼 제 작품은 조금 일찍 가도 충분할 것 같다고 판단을 하시는 건가요?”
- 물론입니다. 이 상황이라면 굳이 더 기다릴 이유가 없어요. 유료화 한다고 해서 인기의 기세가 줄어들 것 같지도 않고요. 추천비 또한 너무 좋아서 전환비율도 굉장히 좋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하루는 오 피디를 믿고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유료화에 따른 구독자 이벤트는 물론이고 프로모션까지 빵빵하게 제공해주기로 약속받았다.
사실 우하루가 따로 요청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작품이 더욱 대박이 나면 날수록 문스피아나 매니지먼트사도 이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싫다고 해도 모든 혜택과 마케팅을 알아서 밀어 넣어줄 판이다.
- 이것도 들으셨겠지만, 보통 유료화 시점에서 연참을 하시거든요. 그래야 연독률도 잘 유지되고 애독자들의 욕구도 만족시켜 드릴 수 있으니까요.
“아 네, 알고 있습니다.”
- 혹시, 가능하실까요? 작가님께서 무리가 되시면 최소한으로 하셔도 되고요.”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3일 동안 20연참을 풀어 보겠습니다.”
- 오,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첫 날에는 7연참 정도가 되는 건가요?
아마 오 피디는 20연참을 3일 동안 나눠서 한다는 줄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아뇨. 20연참 씩 3일을 한다는 건데요.”
그 말에 갑자기 정적.
우하루의 말에 아무래도 상대방이 조금 놀란 보양이다.
“여보세요?”
- 저기...그럼, 60연참을 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3일간?
“아 네, 맞아요.”
- 가, 가능하세요? 정말로?
“네. 이미 비축분을 100화 이상 갖고 있어서요.”
‘뭐 이런 괴물이 다 있나. 60화 연참이라니.’
오 피디는 매번 전화를 하거나 만날 때마다 이 중학생 때문에 놀라는 일이 잦다.
하긴, 이미 첫 통화에서 중학생이란 것 때문에 경악을 했었으니 이 정도쯤이야.
아니다, 근데 자꾸 더 입이 벌어질 일들이 생긴다.
통화를 마친 우하루.
이제 유료화가 공식적으로 결정이 됐다.
‘처음으로 돈을 받고 내 작품을 판매하게 됐다니까, 좀 긴장이 되네. 이게 또 종이책이나 극본 계약하는 거하고는 느낌이 달라.’
무료 때는 성적이 좋았다가 전환이 별로인 작품도 많다는 걸 윤준환에게 들었다.
괜스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우하루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이 정도도 어디냐고. 웹소설이라고는 처음 써보는 건데. 잘 하고 있어, 우하루!’
우하루는 왠지 독자들의 반응이 좀 두렵다.
이렇게 빨리 유료화를 가는 게 어디 있냐고 아픈 소리를 할 것만 같은...
그는 마음을 비우고 유료화 공지를 올렸다.
그러자 부리나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댓글 자체를 안 보니 이것도 스킵할까 하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그냥 눌러봤다.
*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당연히 유료 따라갑니다!
* 이제야 맘 놓고 보겠네요. 혹시라도 연중이라도 하실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화이팅입니다!
* 요즘 삶의 낙입니다. 애정합니다, 작가님.
* 3일 동안 60화 연참이라니. 오, 감사합니다, 작가님. 사랑합니다!
* 아무리 봐도 이 분 기성임. 홍우산 작가님이나 쌩쑈 작가님이 필명 갈고 오신 거 같기도 하고. 문체나 스타일, 장르 보면 쌩쑈 쪽이 맞는 거 같긴 한데. 알 길이 없으니. 어쨌든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연중 금지 아시죠? 무조건 따라갑니다!
* 끊었던 웹소설을 다시 피게 만든 작품. 대박입니다.
* 근래 들어 이렇게 재미있게 읽게 된 작품은 처음이에요. 꼭 끝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늘 건강 조심하시구요!
* 늘 한결같은 설정이 아니라 독특해서 끌렸구요, 끊임없이 나오는 신선한 에피와 시원시원한 전개, 그리고 가끔 있는 놀라운 반전에 매번 무릎을 탁 칩니다. 유료화 축하드리며 연참 칭송합니다. 가즈아!
.......
다행히 부정적인 글은 거의 없었다.
*****
드디어 유료화 첫 날.
당사자인 우하루만큼, 아니 어쩌면 더 흥분이 돼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문스피아와 문스피아 매니지먼트 직원들이었다.
심지어 대표이사도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 중이다.
“근래 들어 전사적으로 이렇게 한 작가의 작품에 포커스가 집중된 경우가 있었나?”
“제가 입사하곤 처음인 것 같습니다.”
신기해할 정도로 ‘에이데이’ 열풍이다.
그들이 주목하는 건 단지 놀라운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높은 조회수와 선작을 기록한 작품이 없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작가의 나이와 경력이었다.
물론 신인도 대박 작품을 뽑아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작가가 어린 중학생이란 점이다.
아무리 웹소설이 항간의 식자와 순문 작가들에게 간혹 상대적 무시를 당하는 지경에 있다 하더라도 분명 기본적 재능과 경험, 그리고 피나는 노력이 겸비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그 치열한 바닥에서 열다섯 살의 신인이 내로라하는 기성들을 제치고 한 해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뭐 그냥, 천재라고 볼 수 있지. 솔직히 몇 십 질을 낸 기성도 이 정도 성적과 퀄리티의 작품을 커리어에 갖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으니까.”
“솔직히 성적만 따진다면 운이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스토리 자체의 신선함과 창의성은 물론이고 문장력, 구성, 소재 등이 레벨이 너무 높잖아.”
“맞아. 플롯도 탄탄하고 글의 모든 요소들마다 필연성이 존재하니 기가 찰 노릇이지. 떡밥도 풍부해서 기대감 쩔게 만들고.”
“그 떡밥 중에서 이미 몇 개는 벌써 회수했고 지금도 줄줄이 탄생하고 있잖아. 그거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읽는 걸 멈출 수가 없는 거지. 게다가 페르티의 단기적 성장과 장기적 목표를 절묘하게 유지시켜 가면서 주기적으로 새로운 에피를 창조해내고 있으니. 난 아직도 이게 중3 작품이란 게 믿겨지지 않아.”
저마다 ‘에이데이’라는 작가와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라는 작품에 대해 자신의 생각들과 감탄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추천수로 볼 때 올해 기록은 가볍게 깨겠는데.”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근데 아무래도 학생 신분이라서 꾸준하게 오래 연재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초반에 연참을 달리려는 것 같기도 하고.”
유료 전환 후 24시간.
모두가 하나같이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첫 날 성적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궁금해 한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를 확인한 그들은 탄성을 참지 못했다.
“와, 미쳤네. 진짜!”
“이럴 줄 알았지, 내가.”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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