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보고도 못 믿겠네
전문가인 그들의 예상보다 지표가 더 좋았다.
5만 6천 전환.
올해와 작년 2년간의 유료 당일 첫 화 구매수 기록이 깨졌다.
경이로운 성적이었다.
자연부터 시작한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란 걸 감안하면 그 놀라움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게다가 모두를 더욱 경악하게 한 건, 이 날 연참을 한 20화 전체의 구매수 변화가 거의 미미했다는 점이었다.
한 마디로, 유료화 이후 연독률이 100퍼센트에 근접하고 있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못 믿겠네. 또 한 명의 스타작가가 탄생한 건가.”
“근데 정말 그럴 만 해. 나도 못 견디고 어제 밤에 다 읽었으니까.”
“추천비 좀 봐봐. 어떻게 유료에서 구매수 대비 20퍼센트에 달하냐고. 이건 웹소설 역사에서 가장 히트한 작품도 못해낸 비율이잖아.”
“그러게 말이야. 이게 과연 신인 작가한테서 나올 수 있는 성적인지 난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신인도 신인 나름이지. 중학생이라잖아.”
“그러니까 더 놀라 자빠질 일이지.”
“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오 피디 한 번 따라가야겠어.”
“뭔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잖아. 천재의 아우라라도 보인다는 건가.”
센세이셔널 했다.
휴게실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계약을 위한 작가와의 미팅 자리에서도.
문스피아 사옥 내 어디를 가나 모두가 ‘에이데이’와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올 한 해 이 회사 내 떡밥은 우하루가 도맡아 놓은 듯싶다.
*****
오늘도 야근이다.
일찍 들어가서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놈의 무역회사를 때려 치고 다른 곳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우지연에게 그다지 선택지가 여유 있지는 못하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나이.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니다.
무역상사의 업종 현황도 별로 좋지 않은 상황.
이 정도 연봉을 주고 경력까지 제대로 인정해주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20대 중반부터 꽤 오랫동안 다닌 탓에 사람들과 나름 정이 들기도 했고, 집과 멀지 않아 위치도 좋으니까.’
섣부른 결정으로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든 버티는 게 자신과 아들 두 식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루야, 엄마 오늘도 야근이네. 미안.]
그녀는 아들에게 깨톡을 보냈다.
곧장 들어온 답장.
[전 걱정 마세요. 친구들하고 함께 저녁 먹고 공부하다 들어갈게요.]
[그래. 너무 늦게 다니지는 말고. 나도 많이 늦어지지는 않을 거야.]
[네, 엄마. 저녁 드시고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그래, 아들. 사랑한다.]
[저도요!]
빙긋 웃음이 도는 우지연.
우하루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지고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하던 찰나, 폰에 전화가 들어왔다.
‘누구지, 이 시간에...’
액정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받을까 말까 갈등을 하는 듯 하더니 결국 통화버튼을 누른 그녀.
“하아. 저 바빠요. 이러지 마시라니까요.”
난감한 얼굴로 이마에 손을 짚었다.
“알겠어요. 좀 이따 회사 건너편 커피본에서 봬요.”
잠시 후 회사를 나선 그녀가 약속한 그 커피숍에 들어가 60대 전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앞에 앉았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시면 어떻게 해요.”
“모녀 사이에 꼭 그래야겠니?”
그녀는 우지연의 어머니, 즉 우하루의 외할머니였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모녀 사이는 아니잖아요.”
“언제까지 이럴 거야. 정말 영원히 연 끊고 살 거야?”
“연을 끊고 살겠다고 하신 건 아버지하고 어머니 아니었어요?”
“하아, 그 때에는 그럴 만했잖아.”
우지연이 커피 대신 물을 들이켠 후 반응했다.
“그럴 만 했다구요? 마음에 상처 한가득 입고 쏟아지는 비 맞으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딸내미한테 그렇게 모질게 대하셨으면서, 그럴 만하셨다고요?”
“너도 잘 한 건 없잖아. 우리가 그래서 그 자식 만나는 걸 반대한 거야.”
“맞아요. 그래요.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너무 감동이네요.”
“비꼬지 말고.”
“이거 봐요. 어차피 우리는 만나면 도돌이표예요. 어차피 아버지는 꿈쩍도 안 하실 거고. 그러니 이제까지 해오던 그대로 살아요.”
“아버지도 이제 늙으셨어. 직접 너 보면 달라지실 거야.”
“아뇨. 절대 그럴 분 아니세요. 어차피 저 힘든 시기 다 지났어요. 이제 와서 상황 바꿀 이유 없어요. 죽을 것 같다 할 때 뒤도 안 돌아 보시더니 지금 와서 무슨.”
어머니와 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는 듯 보였다.
“애는? 속 안 썩여?”
“애요? 이름도 잊어버리셨어요?”
“알아. 하루.”
“알면 이름을 부르셔야죠. 그래도 외손자잖아요.”
“그래 미안하다.”
“여전히 부끄러우시군요, 못마땅하시고.”
“그런 거 아니야.”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거 다 들었어요, 그 때. 하루에 대해서.”
딸의 말에 집어 들던 커피를 다시 내려놓는 김미정.
하마터면 손잡이를 놓칠 뻔했다.
“저, 정말이냐?”
말없이 우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이 참담해보였다.
“그래서 네가 그 때 갑자기...”
“맞아요.”
“하아, 우린 그것도 모르고...”
“저한테 그러신 것까진 상관없어요. 저라고 제 잘못 모르겠어요. 그러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저 때문에 가족들도 상처를 입었으니 감당해야죠. 하지만 하루한테까지 그러는 건 아니었어요.”
“미, 미안하다.”
“지숙이하고 강민이한테도 너무 실망했어요. 정말 그런 애들인 줄은 몰랐었거든요.”
“그건...”
이내 우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울렸다.
“저 들어가 봐야 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녀의 뒤에 김미정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지연아. 너 그 놈 한국에 들어온 건 아니?”
그 말에 걸음이 뚝 멈춘 딸.
어머니는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심하게 굳어졌다.
“지숙이가 우연히 봤다더라. 하필, 아는 선배 회사에 근무하게 됐다나 봐. 혹시나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잠시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던 우지연이 이내 그대로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
혹시나 해서 일찍 집에 귀가하려던 우하루.
어머니로부터 야근을 하게 됐다는 문자를 받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아지트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강세영의 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 알았어, 이모. 그렇게 할게.”
통화를 마친 그녀가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아지트 안 되겠다.”
“어? 왜?”
“전기에 문제가 생겼대. 그래서 내일 수리해야 한대.”
“아, 그렇구나. 그럼 어떡하지? 스터디룸으로 갈까?”
“우리 집에 가자.”
“세영이, 너희 집에?”
“응. 엄마가 너희들 같이 오라고 하셨대.”
강세영 어머니의 갑작스런 초대로 모두가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윤준환과 오지윤은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녀의 어머니도 구면일 테고.
하지만 우하루는 처음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주상복합 중 한 곳.
강세영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세영이가 여기 사는구나...’
딱 봐도 부유한 집.
집에 들어가자 몇 평인지 모를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엄마. 나 왔어!”
“세영이 왔어? 너희들도 같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세 명이 합창을 하듯 강세영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 와. 준환이, 지윤이. 어머, 네가 혹시...하루?”
우하루의 이름을 아는 그녀다.
“네, 우하루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유, 예의도 바르네. 어쩜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윤희가 말한 그대로네.”
‘윤희’는 그녀의 여동생이자 아지트 공간의 주인인 ‘서윤희’를 말하는 거다.
아마 동생으로부터 하루 이야기를 꽤 들었던 모양이다.
“세영이가 하루를 입에 달고 사는 이유가 있었구나.”
급 당황하는 강세영.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엄마. 그런 이야기를 굳이 지금...”
“어때? 네가 하도 하루, 하루 이야기를 해서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엄마? 나 배고픈데?”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자,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
유쾌한 스타일의 그녀 덕분에 아이들도 마음이 편하다.
식당에는 역시나 일하시는 분이 따로 계셨다.
식탁에는 푸짐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맛있게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역시나 또 한 번의 합창 후, 네 명은 배가 터지도록 식사를 했다.
우하루도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눈치가 제법 있는 강세영의 어머니가 자리를 비켜준 탓에 아이들은 마음 편하게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내 방으로 가자. 거기에서 공부하다 가.”
식사를 마친 네 명이 강세영의 방으로 갔다.
그녀의 방마저 넓다.
의자와 소파까지 따로 있어서 네 명이 공부할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아기자기 여자여자 아담하고 예쁜 공간.
우하루는 방이 꼭 그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야, 편하게 앉아서 공부해.”
“고마워, 세영아.”
그가 소파 대신 나무의자에 앉아 그 앞의 테이블에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는 곧장 인터넷에 접속.
문스피아 계정에 로그인을 했다.
유료화를 한 첫 날.
성적이 얼마나 나왔을까 무척 궁금했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유료화 전환 구매수 숫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와아...’
믿어지지 않는 숫자들.
놀라움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이리저리 방안을 둘러보다가 달력을 보게 된 윤준환이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다. 오늘 우하루 유료화 날이잖아!”
“벌써? 정말 그러네.”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서는 문스피아에 접속한다.
드디어 우하루의 성적을 확인한 그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와, 미쳤네 정말. 우하루. 이제 너 재벌 되는 거냐. 재벌집 외아들 되는 거냐고!”
“난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하루가 잘 풀리는 거라니 좋다, 호호.”
“이게 현실이 되네. 축하해, 하루야!”
우하루는 얼떨떨하다.
무료 마지막 날까지 조회수가 잘 나오고 연독이 잘 풀려서 기대를 좀 하긴 했지만, 이렇게 예상보다도 더 잘 나오다니.
게다가 유료화 이후의 편수에서도 힘이 빠지지 않고 있다.
“다들 축하해줘서 고맙다. 근데 솔직히, 아직 실감은 안 나. 돈이 통장에 들어와 찍혀줘야 그 때 좀 그런가 보다 할 거 같아.”
“하긴, 아직은 추상적인 숫자만 보이는 거니까. 한 달 후 통장 확인할 때에는 꼭 우리 옆에서 해라. 기절하면 구급차 불러줄 사람 필요할 테니까.”
너스레를 떠는 윤준환을 툭 치며 우하루가 답했다.
“집에서 확인해 보면 되지. 엄마 계실 때.”
“아서라. 너 혼자 확인 먼저 하고 나서 어머니께는 일단 청심환 먼저 드시게 한 다음 조용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놀라실까 봐 걱정이 되서 하는 말이야.”
“그 정도로 많아? 하루가 이걸로 벌게 될 돈이?”
“당연하지. 정산 페이지 들어가서 오늘 번 돈만 확인해 봐도 감이 잡힐 거야.”
우하루도 이번 작품으로 벌게 될 수입에 대한 감이 잘 안 잡힌다.
그러니 강세영과 오지윤은 더할 나위 없을 터.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하루가 한 달에 얼마나 벌 것 같은데?”
결국 윤준환이 결국 자신의 예상 금액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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