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13화 (13/69)

13화. 우리 꼭 다 같이 합격하자!

일반적으로 웹소설의 경우 원소스 멀티유즈 시도는 연재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게 보통이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는 이제 100화 중후반을 한참 순항 중이다.

최종화가 몇 화가 될지 아직도 모른다.

그런데 국내 최고 최대 포털 플랫폼 기업이자 엔터테인먼트사 보유 회사에서 콕 짚어 웹툰화를 먼저 적극 제안했다.

이건 누가 봐도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회귀서자는 군주를 꿈꾼다’가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의외네. 반가운 소식은 분명하긴 한데, 시기적으로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일단, 초유의 흥행작에 대해 선점을 해야겠다는 선제적 판단이 깔려 있을 테구요.”

“그건 그렇겠지.”

“다른 엔터 사들한테 자칫 빼앗겨버릴 수 있다는 조급함도 있을 겁니다.”

“댓츠 롸잇!”

“더불어, 절묘하게 100화를 기점으로 시즌 2에 돌입하는 형태가 되어서 일단 그 시점까지를 각색해서 밀고 나가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군.”

갑작스런 칭찬에 오 피디의 어깨가 으쓱한다.

고개를 끄덕이던 김 팀장이 자기 앞에 놓인 기안 서류를 잠시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오 피디.”

“네, 팀장님.”

“네온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합시다. 그쪽이라면 우리와 계속 작업하는 건들도 있고 신뢰할 수 있으니까.”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팀장님.”

“빠른 시간 안에 ‘에이데이’ 작가님하고 협의해서 경과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오 피디가 뭔가 또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부 언론사들이 ‘에이데이’ 작가님한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사들이?”

“네. 아무래도 근래에 들어 가장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웹소설과 웹툰 업계에서 화제가 되다 보니까 그런 것이겠죠. 혹시 인터뷰가 가능할 수 있겠냐며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 팀장이 테이블 위의 볼펜을 들어 톡톡 두드린다.

“그럴 만도 하겠지. 하지만 절대 작가님 인적사항 공개되지 않도록 모두가 주의해 주세요. 본인의 의지 없이 우리 쪽에서 개인정보가 절대 누출되면 안 됩니다. 작가님들에 대한 신상정보 보호 차원이기도 하지만 ‘에이데이’는 더구나 학생 신분이잖아. 자칫 가십 형태로 흐를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오 피디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이 점 유념해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팀장님.”

기본적으로 작가들에 관련된 모든 프라이버시는 플랫폼과 매니지먼트사가 철저히 보호하는 게 원칙이다.

물론 본인의 동의나 의사가 있으면 예외겠지만 말이다.

회의가 끝나고, 오 피디는 우하루와 통화를 해 미팅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우하루를 다시 만난 그는 웹툰화 제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달하며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된다면 저야 고맙고 반가운 일이죠. 계약 내용 메일로 보내주시면 살펴보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역시 오늘도 참 어른스러운 이 중학생.

세 번째 만남이지만,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오 피디다.

“작가님 대외 공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우시죠?”

“네. 아직은 좀 그러네요.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 자연스레 알려지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지금 기자를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그러는 건 좀 내키지 않습니다.”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뭐라고 기자 분들이 알고 싶어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씀을요. 지금 웹 콘텐츠 업계에선 난립니다. 이렇게 대 히트작이 나왔으니 당연한 거죠.

“그런가요? 제가 좀 까다로운 거라서 회사 의도와는 달리 행동하는 거라면 유감입니다.”

뭐야.

고작 중3 아이가 말을 왜 이리 어른스럽게 해.

오 피디는 괜히 움찔했다.

“아유, 무슨 말씀을요. 당연한 거고 그게 원칙 맞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신중하고 침착한 우하루.

그의 의젓함과 신중함에 오 피디는 다시 한 번 속으로 감탄했다.

상의를 마친 후 헤어진 그.

‘분명 나보다 나이가 12살이나 어린데 왠지 형 같은 느낌이야.’

왜 ‘에이데이’ 앞에서 은근히 주눅이 드는 것일까.

괜스레 살짝 자존심이 상할라 그러는 오 피디다.

하지만 그게 기분 나쁜, 그런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그가 대단하다 생각되며 은근히 팬심마저 느껴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나름 많은 작가들을 담당해오고 있는 그.

이번만큼 강력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정말 처음이다.

*****

입시철이 다가오고, 마침내 송하예고 입학을 위한 실기시험이 목전에 다다랐다.

같은 학교를 지원하는 우하루와 세 친구들.

한 명의 낙오자가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며 결의를 다졌다.

“우리 꼭 다 같이 붙자!”

“당연하지!”

“만약 한 사람이라도 낙오한다면...”

“낙오한다면?”

“음...그건 뭐 어쩔 수 없겠지만...”

“뭐야, 그게?”

“아니야.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 반드시 해내고 말자!”

“아자아자!”

실기시험 당일.

네 명은 아침 일찍 만나서 다시 한 번 서로를 격려한 후 송하예고 안으로 입장했다.

마치 자대 배치를 받아 각자의 부대로 향하는 병사들처럼 저마다의 표정은 비장했다.

강세영은 연영과 연기 전공, 오지윤은 역시 연영과 뮤지컬 전공 입시장으로 각각 흩어졌다.

그리고 윤준환은 문창과 실기시험장이라고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다 보고 난 후 그제야 이동하는 우하루.

2층으로 올라가자 ‘연영과 영상연출 전공’이라고 표시된 팻말을 발견했다.

‘여긴가...’

생각보다 지원자들이 많은 것 같다.

같은 과 같은 전공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한 반도 아니고 여러 교실에 대기 중인 게 보였다.

‘와, 경쟁률 장난 아닌 것 같네.’

괜스레 긴장이 되는 그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린 지 얼마 후.

여자 선생님 두 명으로 구성된 감독관들이 들어오고 곧이어 실기시험이 시작됐다.

문예창작과의 경우 어떤 단어나 문장 등의 주제가 제시되는 반면, 영상연출 전공 지원자들에게는 몇 가지 키워드가 주어지고 그게 포함되는 스토리를 구상해 내는 형식이다.

즉, 스토리텔링 능력을 시험하는 것.

따라서 에세이가 아닌, 영상화가 가능한 초단편 이야기를 써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든 시나리오이든 형식은 상관이 없었다.

‘저게 오늘 시험 주제란 말이지...’

* 물건 : 나무의자 (사진참조)

* 배경 : 자연

* 위 물건과 배경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며서 적어 내시오.

어떤 해에는 문장으로, 또 어떤 해에는 단편 영화를 보여준 적도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달랑 사진 한 장이다.

수험자들은 이걸 갖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꾸며내야 한다.

비교적 제한이 없으니 쉬울 것 같지만 실상은 저렇게 단순하게 제시하는 케이스가 더 어렵다.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시험시간은 두 시간.

1,500자 이상의 길이면 된다.

구상을 하느라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우하루.

얼마 후, 눈을 번쩍 뜬 그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주저 없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성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45분.

오타가 없는지 교정까지 마친 후 분량을 계산해 보니 3천 자 가까이 됐다.

살짝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한창 열심이다.

펜을 내려놓은 건 혼자밖에 없는 듯.

다시 한 번 자신이 쓴 걸 쭉 읽어본 우하루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다가 이내 가방을 챙겨 앞으로 나와 감독관에게 작성지를 건넸다.

그녀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은 벌써 다 쓴 거야?”

“네.”

“빠르네. 그래요, 고생 했어요. 나가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시험지를 받아든 시험관은 인사를 하고 나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좀 당황스러운 듯 쳐다봤다.

‘별 의지가 없는 건가. 아니면 부모님이 떠밀어서 온 거?’

이렇게 일찍 실기시험을 마치고 나간 예는 두 해 전인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 했었던 수험생 빼고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두 시간의 실기시험이 모두 끝난 후.

교실의 좌석을 돌며 점검과 정리를 마친 다른 감독관이 교탁에 아직도 서 있는 여선생 곁으로 다가왔다.

“유하연 선생님! 뭐 하세요?”

“.......”

“선생님!”

조금 더 강하게 주위를 환기시키자 그제야 알아채는 그녀.

“아, 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계세요?”

“그게, 다름이 아니라 아까 40분도 안 되서 일찍 나간 친구 말이에요.”

“아, 그 아이요? 다 쓰긴 했어요? 대충 쓰다 말고 간 거 같던데. 좀 안타깝네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거 보세요. 그 학생이 쓴 글이에요.”

유하연 선생이 내민 종이를 받아든 다른 감독관.

그녀가 호기심에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40분 동안 썼다고 여겨지기엔 꽤 긴 분량의 글.

하지만 물 흐르듯 줄줄 읽혀나갔다.

잠시 후.

처음엔 입을 삐죽이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던 그 감독관의 표정이 우하루의 글을 모두 읽은 후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 아이, 중학생 맞아요? 현직 작가나 연출가로 활동하는 삼수생인가?”

“그럴 리가요. 어때요? 장난 아니죠.”

“네. 이건 뭐, 절대 대충 쓰고 나간 게 아니었군요. 제가 섣불리 판단을 했던 것 같네요.”

“맞아요. 할 거 다 하고 시간 남아서 먼저 간 거죠.”

“그러네, 진짜. 준비를 했던 게 나온 건가. 근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정말 놀라운데요.”

“게다가, 글 구성 자체가 너무 완벽하잖아요.”

“문장력의 세련됨도 남다르고요.”

두 사람의 입에서 칭찬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감동은 덤이죠. 저 솔직히 울컥 했어요. 어떻게 나무의자를 자신이 어렸을 적 집 앞에서 자라던 친구 같은 고목나무와 연결 지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거죠.”

“글쎄 말이에요. 마치 뮤직비디오 한 편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네요. 지금 당장 이걸로 단편 만들어도 되겠어요.”

실기시험이 다 끝나 교무실로 돌아갈 시간임에도 그것마저 잊은 그들은 마치 자신이 열광하는 팬의 노래나 드라마를 갖고 토론하듯 우하루가 제출해놓고 간 글에 대해 열띤 찬사를 오래도록 뿜어냈다.

*****

시험장을 빠져나온 우하루.

한 시간 그냥 더 있어 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교실 안 공기가 너무 답답했다.

게다가 졸리기도 하고.

자칫 잠들어 코를 골기라도 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나와 버렸다.

일찍 작성이 끝난 사람은 먼저 나가도 좋다는 공지가 있었기에 주저는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일찍 나와 버렸나.’

학교 안을 둘러봤다.

당연한 거겠지만, 다른 학과와 전공 시험장에서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수험일이라 재학생과 외부인의 출입을 막은 교정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우하루는 여유 있게 송하예고 여기저기를 천천히 둘러봤다.

‘합격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 3년을 보내게 될 곳이라 이거지.’

예술고등학교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송하예고 교정.

사진으로 보아 온 것 이상으로 분위기가 독특하면서도 아주 깔끔했다.

‘꽤 마음에 드네.’

우하루는 잔디 운동장의 구석 한편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은 후 노트를 꺼내들었다.

노트북을 소지할 수 없었기에 거기에라도 끄적거려 보려는 것이다.

그가 쓰고 있는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는 어느새 200화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유료화를 하게 된다면 못해도 200화는 써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얼개를 잡았기에 아직은 큰 무리를 느끼지는 않고 있다.

다만, 앞으로 얼마나 더 쓸 건지 대략적인 목표는 잡고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다.

아직 오 피디와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한 적은 없지만 그는 분명 가능한 한 오래 끌고 가보기를 권할 것이 뻔하다.

아직도 24시간 구매수가 4만이 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비축분도 넉넉한 편이고 에피 소재는 아직 나올 게 충분하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우하루가 노트를 펼쳤다.

그는 볼펜을 들고 이내 다른 작품들에 대한 아이디어와 구상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매일 하나의 장편소설만 생각하고 쓰고 하는 건 싫증이 좀 난다.

뭔가 신선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새로운 스토리를 상상해보는 게 필요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어깨를 수줍게 톡톡 치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시야 속으로 찬란한 햇빛과 함께 더없이 예쁘고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쏙 하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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