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15화 (15/69)

15화. 이 친구는 압도적입니다

“응. 나 이거 읽으면서 ‘드라마 단편선’이나 ‘심야 드라마극장’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두 프로그램은 KTBS에서 정기적으로 제작해 내보내는 단막극 시리즈 프로그램이다.

‘드라마 단편선’은 한 화, 그리고 ‘심야 드라마극장’은 주말에 두 화를 내보낸다.

우하루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공모에 당선되면 그 시리즈에서 드라마화가 되나?”

“그럼, 말이라고. 꼭 대상이 아니어도 우수상 까지는 드라마로 제작이 될 거야.”

“그렇구나.”

“네 소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게다가 소재도 너무 독특해. 진짜 한 번 내보자, 응?”

강세영이 거의 조르는 수준이다.

그러니 우하루도 마음이 간다.

비록 극본을 염두에 두고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야 당연히 반가울 일이니까.

“언제까지 내야 하는데?”

“이번 주 금요일이 마감이야. 조금 시간이 촉박한 감이 있긴 한데, 지금 접수 말미거든. 시작한지 벌써 좀 됐어.”

“세영이 네가 높게 평가해주는 건 너무 기쁜 일이긴 한데, 이게 그 정도 레벨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각 잡고 쓴 게 아니라서.”

“정말? 그런데도 정말 이런 수준이면, 진짜 넌 천재 맞네.”

“이젠 너까지 그 소리...”

“이럴 땐 해도 돼. 천재한테 천재라고 하는데 뭘. 어쨌든 진짜 이건 그냥 묻히기에 너무 아까운 스토리야. 아니, 절대 그래선 안 돼. 대한민국의 콘텐츠 업계의 손실이라고.”

얼마나 우하루의 글이 마음에 들었으면 저 정도일까.

하긴, 친구들 있는 데에서 대놓고 감동의 눈물까지 흘린 걸 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긴 하다.

그 때, 윤준환이 다시 끼어든다.

“그렇더라도 공모에 내는 건 하루한테도 무리가 아닐까?”

“왜?”

“야, 그거 날고기는 드라마 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건데 그걸 하루 보러 참가하라고? 경험도 전혀 없는 애가 말이나 돼? 우리가 다 큰 거 같아도 이제 고작 중학생이라고.”

“그래, 그건 내가 보기에도 버거울 거 같은데.”

오지윤까지 부정적 의견을 보이자 강세영이 다들 모르는 소리들 한다는 표정으로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방송국 공모라 하더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어. 아니, 웹소설은 뭐 어른들하고 경쟁 아니었나? 거기에서 당당히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잖아, 하루가.”

“그건 그렇지만, 이건 경우가 좀...”

“다르긴 뭘 달라. 내가 봤던 웬만한 작품들보다 더 훌륭한데. 그리고 꼭 상을 받아야 맛인가. 경험도 되고 좋잖아. 전문가의 평가도 받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강세영의 말이 맞다.

꼭 당선이 되어야 맛은 아니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쌓아 나가는 과정일 테니까.

“근데 마감도 얼마 안 남았다며.”

“응. 그게 조금 문제지. 이번 주 금요일까지거든.”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건 촉박한 시간이다.

불과 3박 4일 안에 마지막 분량까지 마무리한 후 극본으로 각색까지 끝내야 한다.

물론 교정 교열 작업은 당연히 필수적인 작업이고.

누가 봐도 쉽지 않아 보인다.

“가능은 할 거 같아. 한 번 해보지 뭐.”

그 말에 강세영의 표정이 급 환해졌다.

사실 우하루로서는 그 일련의 작업들이 별로 어려운 건 아니다.

소설을 극본으로 각색하는 건 지난 삶에서 이미 이골이 나 있으니까.

물론 완성도의 문제이긴 한데, 우하루의 집필 방식이 원체 초고부터 수정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꽤 단단하게 구상한 후 얼개를 짜고 들어가기 때문에 별로 고칠 건 없다.

최근의 작업 속도를 감안하면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단 생각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큰둥하던 윤준환과 오지윤이 궁금해 하며 우하루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기에 그러는 거야? 잠깐만 봐도 될까?”

결국 그들이 빼앗다시피 우하루의 노트북을 낚아챘다.

아무래도 우하루는 한동안 또 작업을 또 못하게 될 것 같다.

쫓기듯 비켜난 그가 강세영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하루야.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이거 나머지 결말 부분 다 쓰고 나면 나 좀 보여주면 안 될까. 예약 걸어둘게.”

“예약씩이나?”

“나 지금 이 다음이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거든. 꼭 좋아하는 만화 다음 화 기다리는 기분이야.”

강세영의 눈빛에는 애절함이 가득했다.

만약 안 보여주거나 하면 그녀한테 결국 꿀밤이라도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보고 싶다니.

사실 속으로는 기분이 째질 것 같은 우하루다.

“그래, 알았어. 바로 알려줄게.”

“고마워, 하루야!”

당장이라도 콩콩 뛰어다닐 것만 같이 좋아하는 강세영.

환한 웃음으로 새끼손가락을 걸어왔다.

이렇게 되면 공모 출품 여부는 제쳐두고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 소설은 꼭 계속 써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난데없는 흥분과 소란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장본인들은 바로 우하루의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있던 윤준환과 오지윤.

“미친! 개슬퍼! 나 울고 있냐?”

“우하루, 도대체 네가 쓴 건 왜 이리 다 재미있는 거야! 엉엉!”

“나머지 내놓으라고!”

“너 이거 공모에 출품 안 하면 내가 가만 안 놔둔다!”

강세영한테 왜 질질 짜냐며 핀잔을 주더니.

게다가 공모는 무슨 공모냐 역정 내던 장본인들이 아닌가.

그들이 막상 소설을 읽고 나선 완벽한 태세 전환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

“헐. 어이가 없네.”

우하루와 강세영이 황당하다는 듯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반 년 후 어느 날. 누군가 전혀 찾아올 사람도 그럴 만 한 시각도 아닌데 초인종이 울렸다.]

강세영이 홀딱 반한 우하루의 소설 ‘아임 유어 팬’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극본으로 이렇게 시작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소설과 달리 어떤 배경 설명도 덧붙이기가 힘드니까.

장면으로 모든 걸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부터 시작하면 되겠군.’

**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주인공 윤주아는 몇 달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후, 어떤 중년 여성이 갑자기 찾아왔다.

“주아야, 나 네 이모야.”

“이모...라구요?”

그녀는 사진을 비롯해 여러 증거를 제시했다.

자신을 낳고 바로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는 어머니의 동생.

이모가 한 분 있단 걸 알기는 했기에 얼마간 머물게 해달라 부탁하는 그녀를 받아들였다.

결국 그렇게 시작된 애매한 동거.

생전 처음 보는 이모는 자신이 전직 배우였고 지금은 연기 트레이너를 한다고 했다.

마침 윤주아는 연기하는 게 꿈인 배우 지망생.

하지만 실력은 볼품없었고 노력 또한 어떻게 하는 줄 모르고 있다.

이내 그녀의 이모는 마치 자신을 학원의 학생 다루듯 하며 연기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처음엔 의문을 가지고 충돌을 빚었지만 점점 그녀의 연륜 깊은 실력을 알게 된 윤주아는 그녀를 따른다.

치열한 하드트레이닝을 받아낸 윤주아는 연기력이 놀랍게 향상되고.

결국 방송국 드라마의 오디션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주연으로 발탁이 된다.

그렇게 윤주아가 꿈을 처음 이루던 그 날.

이모는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다.

몇 년이 흐르고.

윤주아는 마침내 톱스타가 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대선배 배우로부터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명 배우인 줄 알았던 그녀는 한 때 최고의 연기자였었던 것.

그리고 더불어 놀라운 사실.

이모인 줄 알았던 그녀는 윤주아의 생모였다.

그럼에도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에 원망을 하던 차에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고.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모정이 품는 욕심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란 걸 이해하게 된다.

윤주아는 갖은 방법을 써서 생모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머물던 방 서랍장에서 처음 보는 CD를 발견하는데.

거기에는 그녀가 예전에 활동했던 영상과 사진, 그리고 윤주아 자신이 어렸을 적 어머니의 예쁨을 받는 장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기록을 보며 가슴을 치며 아파하는 윤주아.

그녀는 결국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곳을 찾아내고.

찍던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마자 종방연도 참석하지 않은 채 어머니에게 달려간다.

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어머니는 이미 임종 직전.

이미 몇 년 전 딸을 찾아왔을 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혼수상태에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생모를 품에 안으며 그녀가 속삭인다.

“사랑해요, 엄마. 전 엄마의 팬이에요, 영원한.”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한 줄기 흐른다.

***

우하루는 이 소설의 종장을 마무리 지은 후 곧바로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금요일 저녁까지 제출하려면 당분간 이 작업만 해야겠네.’

다행히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는 이미 비축분이 차고 넘치는 상태.

예약을 걸어 놓은 것만 해도 수십 화가 넘는다.

3일 동안은 온전히 KTBS 공모에 낼 이 작품의 각색과 퇴고에만 몰두할 생각이다.

*****

송하예고 회의실.

연극영화과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입학심사가 거의 끝을 보이고 있다.

“올해 영상연출 전공 지원자들은 지난해보다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향된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그 중에서도 두 명이 압권이군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박정도 선생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그녀는 바로 국내 추리와 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커리어가 화려한 드라마작가 이연하였다.

이번 입시의 실기 심사위원으로 특별히 위촉되어 참여 중이다.

아무래도 다른 선생들의 의견보다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네?”

“뭐,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두 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 단연코 한 명이 압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는 그럼 나중경 학생과 우하루 학생 중에...”

“당연히 후자죠. 우하루!”

“아, 네...”

너무 단호한 대답에 박 선생은 꼬리를 말았다.

“물론 나중경 학생의 경우 중학교 3년간 꽤 많은 활동을 했더군요. 내신도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편이기도 하고요. 뭐, 그 부분은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차치하고서라도, 실기에서 제출한 글의 수준 차이는 솔직히 너무 큽니다.”

“저도 이 작가님 말씀에 동의해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유하연 선생이 이 작가에 의기투합했다.

“솔직히 제가 입학 심사를 담당하고 나서 본 글들 중 가장 좋았어요. 사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중학생 레벨은 아니다 싶었거든요. 아, 치팅 했다는 건 절대 아니구요.”

그녀는 바로 우하루의 실기시험 작성지를 받고서 감탄했던 바로 그 장본인이다.

곧바로 이연하 작가의 평가가 다시 계속됐다.

“나중경 학생 글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우하루 학생을 제외하고 본다면 단연 우수한 편이죠. 하지만 둘의 차이는 너무...크네요. 구성의 탄탄함에 있어서나 이야기의 참신함, 상상력의 크기, 심지어 문장의 수려함까지 말이죠.”

테이블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사실 두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창의성과 재미예요. 크리에이티브한데다 재미까지 있어야 하는 것,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잖아요. 적어도 이 글에서 느끼는 우하루 학생의 스토리 창작 능력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학생들 중 최고예요. 바로 각색해서 단편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가 샘솟아 났으니 말 다했죠, 뭐.”

줄줄이 이어지는 이하연 작가의 우하루에 대한 찬사.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하연 선생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내 판단이 틀리진 않았네. 하긴, 좋은 스토리는 누가 봐도 좋은 거니까.’

잠시 후 심사위원들의 총평과 소감의 공유를 끝으로 심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작가님.”

“선생님들께서 고생하셨죠. 저기, 유 선생님.”

“네, 작가님.”

이연하 작가가 유하연 선생을 따로 살짝 불러냈다.

“저는 실기시험만 채점을 해서 총점을 알 수가 없잖아요.”

“네, 그렇죠.”

“제가 궁금한 건 정말 못 참거든요. 혹시 최종 등수 나오면 저한테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미리 그러실 필요는 없고, 다음 날에라도 말이에요.”

부탁을 받은 유 선생이 이 작가를 보며 빙긋 웃었다.

“우하루 학생 등수 궁금해서 그러시는 거죠?”

“어머, 제 마음이 읽혔어요? 네, 맞아요!”

“그럴 게요. 총점은 어떻게 될지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감사해요. 그리고 우하루 학생 관련해서 또 하나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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