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미친 듯한 감동이야
“혹시 나중에 우하루 학생 따로 좀 만나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따로요?”
“네. 궁금한 것도 있고 물어볼 말도 있구요.”
유하연 선생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작가님. 제가 한 번 물어보고 조만간 자리 한 번 꼭 마련해 볼게요.”
“감사해요, 선생님.”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우하루는 아직 송하예고 입학 전이다.
그럼에도 마치 그가 이 학교 학생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들.
이정도 되면 우하루의 실기 시험 평가가 대략 어떤 수준인지 알 만 했다.
“대학 때까지 기다리기 힘드시군요. 그렇게 벌써 탐이 나세요?”
“솔직히, 그러네요. 호호.”
“3년 후에 연서대로 데려가시면 되죠.”
“글쎄요. 그 때까지 제가 거기 전임강사로 계속 출강을 할지 모르죠.”
“저 좀 욕심 내 주시지. 왠지 슬쩍 질투가 나는데요?”
“아이 참, 유 선생님도. 선생님은 이미 경지에 오르셨잖아요.”
“경지에 오르긴요. 히트작 하나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한 주제인데요.”
“어머, 왜 그러세요.”
두 사람은 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교정을 빠져나가는 이 작가의 뒷모습을 보며 유 선생이 입맛을 다신다.
‘하아, 나도 좀 재능이 좀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우하루 그 아이. 그나저나 내 반이면 좋겠는데, 제발.’
입학 전부터 송하예고 여기저기에서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우하루.
정작 본인은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
우하루는 3일 동안 잠을 줄여가면서 ‘아임 유어 팬’의 극본 각색 작업을 마쳤다.
아무리 능숙한 그라고 하더라도 이 짧은 시간에 3시간에 가까운 분량을 이 짧은 기간에 대본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일 수만은 없다.
그나마 이상하리만치 향상된 집중력과 뻥 뚫린 듯한 상상력 덕분에 쾌속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설로 집필을 할 때에도 이미 머릿속에는 영상으로 담겨 있었기에 그저 그 장면들을 글로 내려 적을 뿐이었다.
“오케이. 이 정도면 된 것 같네.”
만족스러운 표정의 그.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잠을 포기하고 일찍 등교한 우하루는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친구들과 함께 여느 때처럼 아지트로 향했다.
“자, 이거 한 번 읽어볼래, 다들? 냉정하게 평가를 해 줘.”
“맞아. 오늘이지? 마감!”
“응.”
“정말 네가 해낸 거야? 그 촉박한 시간에?”
“간신히 완성했어. 그러니까 한 번 읽어봐줘.”
제출 시간은 오후 일곱 시.
KTBS 홈페이지에서 파일 형태로 보내면 된다.
아직 여유가 조금 남아 있다.
“보자, 보자!”
“와, 다 된 거야? 고생했어, 하루야!”
“자, 조용조용.”
마치 자신들이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의 따끈따끈한 신곡 뮤직비디오가 나온 듯 그들이 노트북 앞으로 몰려들어 넋을 놓고 우하루가 띄워준 극본을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하루는 자신의 폰으로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에이데이’ 작가님. 웹툰화 작업에 대한 진행상황과 협의사항에 대한 메일을 보냈습니다. 검토하시고 다음 주 중으로 응답 주시기 바랍니다.]
문스피아 오 피디가 보내온 연락.
드디어 ‘네온 엔터테인먼트’에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웹툰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내 작품을 만화로 보는 기분은 또 어떨지 궁금하네. 그런데, 아무래도 각색을 좀 하겠지?’
대부분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바꿀 때 원작과 완벽하게 똑같이 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건 원저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콘텐츠 형태에 따라 각각 특성과 소비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 오 피디가 보내온 동의 요청 자료에도 그런 내용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메일을 열어 첨부파일을 눌러보려는 순간.
며칠 전과 같은 훌쩍거림이 들려왔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었다.
집단적인 흐느낌.
사정을 모르는 이가 들었더라면 등골이 오싹했을 거다.
“하아, 얘들아. 또 울어?”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노트북을 앞에 두고 저마다의 뺨에 눈물을 흩뿌리고 있는 장면.
우하루는 자신이 저 아이들을 울렸다는 미안함이 들 정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낼 걸 그랬나.’
그래도 저렇게 감정이입하는 걸 보면 각색이 잘 됐다는 증거인지 모른다.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그대로 느껴진다면 충분하니까.
“얘들아, 좀 괜찮아?”
“하루야. 소설로 읽었을 때 그 이상으로 슬프고 감동적이야.”
“정말?”
“응. 나 너무 안타까워. 연주도 그렇고 얘 어머니도 그렇고.”
“맞아. 둘 다 너무 불쌍해. 이모로 알고 있던 사람이 어머니인 걸 알고 우는 장면도 미치게 슬프고, 어머니 생전의 영상을 보면서 오열하는 건 정말, 하아...”
“그리고 마지막에 ‘난 엄마의 영원한 팬이에요’, 이 말. 너무...흐엉엉...”
아, 이 아이들 또 울음이 터졌다.
우하루는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글을 쓴 사람과 독자가 느끼는 감동의 차이가 약간은 존재하는 가보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비평은 듣기가 좀 힘들 것 같다.
이제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됐기 때문.
우하루는 친구들을 달랜 후 노트북을 회수해 KTBS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이미 회원가입은 해놓은 상태.
저장돼 있던 양식에 원고 파일을 얹어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간신히 울음을 멈춘 강세영과 아이들이 그 장면을 마치 신성한 뭔가를 보는 듯 진지하게 지켜봤다.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공모에 참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성공.
그러자 모두가 와아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근데, 어땠어? 괜찮았어?”
그제야 완전히 진정한 그들에게 우하루가 소감을 물었다.
“정말 최고였어. 미친 듯 감동적이었다니까!”
“나 같으면 무조건 대상 준다! 이 정도로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아련한 작품은 찾기 쉽지 않아!”
“맞아. 나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규!”
우하루에게 찬사를 보내는 친구들.
그들은 결코 인사치레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고, 또 그럴 애들도 아니다.
가끔 보면 은근히 냉철하니까.
아이들의 격한 반응에 우하루도 괜히 기대가 좀 된다.
*****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음, 그래. 내일이 송하예고 합격자 발표일이라고?”
“네.”
“어때, 자신은 있겠지? 이번에도 1등 가능한 거지?”
송하예고 연영과 영상연출 전공을 지망한 나중경.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천재란 소리를 지겹도록 들어왔다.
글짓기 경시대회에 나가는 족족 수상을 도맡아 해왔을 뿐 아니라 영상 도구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어린 나이에 콘텐츠 제작과 편집까지 숙달해 자신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너튜브에 업로드시키면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그의 아버지 영향이 컸다.
바로 부친이 유명한 배우 출신의 연출가인 나극상이기 때문.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이어받았다는 판단으로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도원예중에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아들 나중경이 당연히 송하예고 입시에서 수석을 하리라 장담하고 있다.
“송하예고는 내가 나온 학교야. 이사장님하고 교장 선생님하고도 막역한 사이고. 네가 1등으로 들어가면 다들 기뻐하실 거다. 물론 나하고 네 엄마가 가장 그럴 거고. 네가 내 면을 살려줄 거라고 믿는다.”
“열심히 했습니다. 실기시험도 잘 봤구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아버지.”
은근히 어른스러운 태도와 말투.
그 이면에는 아버지를 좀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엄하게 키운 티가 나는 것.
“그래야지. 난 뭐 한 번도 널 의심해 본 적이 없으니까. 하하.”
호탕하게 웃는 아버지에게 그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버지는 피곤해서 들어가 쉬어야겠구나. 너도 어서 방에 가서 공부해라.”
“네.”
방으로 들어온 나중경.
책상 대신 침대에 멍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하아, 아버지가 점점 너무 부담스러워. 이게 아닌데...’
얼굴을 감싸는 그.
‘어쨌든 수석은 도맡아 놓은 거고, 박정도 선생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니까.’
잠시 후, 그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접속.
거긴 다름 아닌 ‘문스피아’ 사이트였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 정도면 괴물 아니냔 말이야.”
나중경이 선호작으로 등록해 놓은 유일한 소설.
그 제목은 바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였다.
‘나도 이런 소설 한 번 써볼 수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빠져든 적은 처음이야. 내가 쓸 수 없다면, 나중에 이걸 영화로 만들어 볼 수라도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연참으로 올라온 새 글들을 정신없이 읽기 시작하는 그다.
*****
송하예고 실기시험과 면접을 본지 정확히 2주일이 지난 오늘.
바로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이다.
우하루를 비롯해 네 명 모두 아침부터 얼굴이 유난히 굳어져 있다.
분명 다 같이 합격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그들.
하지만 막상 발표 시간이 다가오면서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루야.”
“응?”
“나, 떨고 있냐...”
“응.”
“세영아, 진짜 나 떨고 있어?”
“맞아 윤준환. 너 떨고 있어. 주접떨고 있다고.”
“헐...”
역시 오늘도 강세영한테는 안 통한다.
그런 그녀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긴장 중이다.
“솔직히 실기시험 때 대사 칠 때에도 별로 떨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좀 콩닥콩닥 하네. 하아.”
“넌 당연히 합격할 거야. 내가 문제지.”
오지윤의 그 말은 진심이다.
비록 몇 작품의 뮤지컬에 참여했지만 실제 아역 배우로 활동 중인 강세영에 비해 아무래도 커리어가 달린다는 판단이다.
더구나 내신도 최상은 아닌 상황.
그래서인지, 그녀는 네 명 중에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건 자신일 거라 여기고 있다.
“지윤아.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니까. 실기시험 다 잘 봤으니까 분명 좋은 결과 나올 거야. 너무 걱정 마.”
“그런데 아침에 발표하면 될 것을 왜 하필 두 시야. 점심 먹은 거 체하겠다.”
드디어 오후 첫 수업이 끝나는 타종이 울렸다.
네 사람은 극도로 긴장된 표정으로 우하루 자리로 모였다.
그의 노트북으로 확인하기로 한 것.
합격자는 송하예고 웹사이트에 게재가 된다.
“후우, 하아...”
우하루가 심호흡으로 숨을 고른 다음, 접속을 했다.
“떴어?”
“잠깐만...와, 발표 났다!”
메인화면에 ‘송하예고 합격자 명단’이라는 공지와 함께 링크가 걸려 있다.
네 사람이 침을 꼴까닥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우하루는 마치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조심스레 그곳을 클릭했다.
새롭게 뜨는 창.
거기에 각 학과의 합격자 명단이 나와 있었다.
순서는 문예창작과, 연극영화과 순.
연영과는 연기 전공, 영상연출 전공, 그리고 마지막으로 뮤지컬 전공의 순서였다.
우하루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네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고 얼굴은 극도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가장 위는 문예창작과.
스르르르.
합격자들의 이름이 차례로 지나간다.
열 명도 넘은 것 같은데 ‘윤준환’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하아...”
그의 손에 땀이 밴다.
그 순간...
“있다! 준환이!”
우하루가 외쳤고, 화면 맨 밑에서 그의 이름이 올라왔다.
“아, 신이시여!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주먹을 불끈 쥐는 윤준환.
이번엔 호들갑이 허락됐다.
나머지 세 사람이 그를 축하했다.
그는 환호를 자제했다.
모두 합격해야 기뻐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다음은 어디지?”
“연영과다!”
우하루와 강세영이 지원한 과.
먼저 연기 전공 합격자 명단이 나타났다.
웬만해선 긴장을 잘 하지 않는 강세영도 지금은 달랐다.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무는 게 보였다.
이번에는 윤준환만큼 극적이지는 않았다.
맨 위에서 두 번째에 강세영의 이름이 바로 나타났기 때문.
“세영아, 축하해!”
“우리 세영이야 뭐.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까.”
이제 영상연출 전공.
바로 우하루가 지원한 분야다.
“어머! 뭐야!”
우하루 대신 강세영이 놀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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