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도대체 뭐야, 괴물이야?
우하루가 인사를 했다.
순간 회의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멍한 표정의 심사위원들.
그러니 이제는 오히려 우하루가 살짝 당황스럽다.
‘뭐야. 뭐가 문제지...’
그는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자신을 보고 너무 어려서 깜짝 놀랐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아, 여기 앉으세요.”
그나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손 차장이 자리를 권했다.
“저, 혹시...나이가...”
“열다섯 살입니다.”
“그럼, 중학생?”
“네. 정확히 말씀드리면 지금 졸업반이구요, 3월 되면 고등학교 입학합니다.”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다들 충격을 받은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들이다.
그제야 우하루는 심사위원들이 놀란 이유를 알아챘다.
‘뭐야. 내가 학생이란 걸 모르고 있었단 거야?’
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이해했다.
공정하고 선입견이 배제된 평가를 위해 심사위원들에게 지원자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걸 말이다.
가운데 앉아있는 심사위원장 나극상 감독이 우하루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속으로 경악 중이었다.
‘중3? 그럼 이 아이가 중경이하고 동갑이란 말인가...’
늘 진지하고 과묵하기 그지없는 그의 입이 다물어질 기미가 안 보일 정도였으니.
얼마나 놀란 건지 충분히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눈치를 보던 손 차장이 질문을 재빨리 이어간다.
“저, 혹시라도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 이 ‘아임 유어 팬’ 정말 본인이 직접 집필한 게 맞는 거죠?”
한없이 부드럽게 물어보긴 했지만.
자칫 굉장히 예의 없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네, 맞습니다.”
우하루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좀 전에 그들이 놀란 모습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니까.
“혹시, 경력이 있으신가요? 극본이라든지 시나리오, 아니면 소설...”
“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요? 신춘문예?”
“그건 아니구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아, 소설요? 그럼 혹시 출간한 책이...”
“아직은 없습니다. 현재는 웹소설을 연재중입니다.”
“아...웹소설.”
반응이 애매하다.
역시나 괜히 말한 걸까.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아예 더 묻지도 않는다.
“우하루 님.”
굵직한 목소리가 처음 들렸다.
주인공은 바로 나 감독.
우하루는 당연히 그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다.
“네.”
“혹시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동기라든가. 그런 걸 좀 듣고 싶은데.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일말의 주저도 없이 대답하기 시작하는 우하루.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아련함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것, 그런 와중에 미국 팝가수의 사연을 읽고 모티브로 삼아 구성을 해봤다는 사정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너무도 뚜렷한 동기와 배경이다.
물론 극본이나 소설이 어떤 이유나 모티브가 꼭 있어야만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하루의 설명은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 같은 걸 충분히 납득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나 감독은 의구심에 이 질문을 했을지 모른다.
자신이 직접 구상하고 쓰지 않았다면 분명 어딘가 어색하고 작위적인 부분이 발견되리라 생각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이 아이의 대답은 오히려 자신의 질문 의도를 옹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하루는 더불어 이 공모에 참여하게 된 사연도 덧붙였다.
“원래는 소설로 먼저 썼는데 친구들이 읽고서는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면서 이 공모에 내 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각색한 다음 응모하게 된 겁니다.”
“뭐라구요? 처음부터 극본을 쓴 것도 아니고 소설로 쓴 걸 또 각색했다구요?”
“네.”
“그럼 각색 작업도 직접 했단 말입니까?”
“네, 당연합니다. 궁금하시면 소설 원본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나극상 감독은 속으로 혀를 찼다.
솔직히 그 소설 꼭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아닌 것 같아 그냥 넘겼다.
‘얘 도대체 뭐야. 괴물이야?’
해맑은 눈빛으로 대답하는 이 중학생 아이.
자신들이 지금 어떤 의문을 갖고 있는지 알고서 오히려 스스로 해명을 해주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일반적인 중학생이 저럴 수 있나.
저 말투하며 쓰는 언어의 레벨하며, 침착함에 의젓함까지.
‘같은 열다섯을 보는데 왜 이리 중경이하고 차이가 나는 걸까...’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궁금한 걸 질문하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들이 진정되자 입들이 트였다.
중학생의 나이로서 부담스럽고 버거울 수도 있을 텐데.
우하루라는 이 친구는 면접 대상자 다섯 명 중 가장 많은 시간의 질의응답을 시종 침착하고 차분하게 치러냈다.
꽤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도 있었지만 전혀 막힘이 없었다.
마치 몇 십 년간 많은 작품을 써 온 사람인양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회의실을 나간 후 또 한 번 정적이 흘렀다.
거의 넋이 나간 모습들.
“하아,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허허, 글쎄 말입니다.”
“직접 보고 들었는데도 믿어지지가 않네.”
그 때, 나 감독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새 별이 탄생하는 순간을 우리가 직접 지켜본 거죠.”
*****
면접을 끝내고 KTBS 사옥을 빠져나온 우하루.
시간을 보니 역시나 다음 약속시간까지는 한참 남았다.
“어딜 가 있을까...”
커피전문점에라도 들어가서 콜라 한 잔 시켜놓고 시간을 때울까 생각하던 그.
이내 대형 서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트북도 안 가져왔으니 그게 더 낫겠다 싶다.
‘낮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네.’
이렇게 바글거리는데 책 잘 안 읽기로 소문난 국가가 바로 한국이라니 좀 의아했다.
하긴, 서점에 온다고 꼭 서적을 사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서점 안을 둘러보던 그.
자연스레 소설과 시가 있는 문학 코너 쪽으로 몸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베스트셀러’ 코너에 눈길이 멈췄다.
외국소설 섹션.
거기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제목에 시선이 꽂혔다.
‘뭐야, 네가 여기 어떻게!’
놀라움일까.
아니면 반가움일까.
거기엔 이전 삶에서 ‘네이선 라이네’의 이름으로 냈던 소설 ‘오르테가의 비밀’이 거기에 당당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한국에도 출간이 된 거야?’
어느새 3위에 오른 걸 보면 인기도 꽤 있는 것 같다.
감개가 무량했다.
‘잘 했다, 네이선!’
그는 뿌듯함이 가득 찬 미소를 지은 후 책을 들어 훑어봤다.
미국판과는 꽤 많이 달랐다.
한국 정서의 특성을 고려한 편집일 터였다.
나쁘지 않았다.
우하루는 한 권 구입을 할까 망설이다 그냥 다시 꽂았다.
‘더 필요한 독자를 위해서 양보하는 게 맞지.’
대신 그는 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 뒀다.
기분이 한껏 달아올랐다.
“여기 오길 잘 했네!”
역시, 소설책 더미에 둘러싸이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속의 많은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서로 자기를 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기분이다.
그 안에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세우고 싶다.
갑자기 강한 욕망이 꿈틀대는 걸 느끼는 우하루.
‘여기 베스트셀러 코너에 우하루 이름으로 된 작품들을 진열해 주마. 조금만 기다려라!’
그런 다짐을 속으로 외친 그는 수많은 경쟁자들의 책들을 한참동안 둘러보고 난 후 ‘문스피아’ 오 피디와의 미팅 약속 장소로 향했다.
*****
“생각해보면 더 기가 막힌다니까요. 너튜브 촬영이나 편집 같은 것도 한 번도 안 해봤다잖아요. 근데 어떻게 저런 수준의 극본을 쓸 수 있냐는 거죠.”
우하루가 떠난 회의실.
이미 면접이 끝난 지 한참 뒤였지만 심사위원들은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북받쳐 오르는 감탄인지 감동인지를 토로 중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까 겪은 상황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게다가 초보 작가들이 흔히들 하는 실수도 없어요. 독백을 줄줄 나열해버린다던가, 한 씬을 지나치게 지루하게 끌고 간다던가, 장면 전환이 어색한 것. 그런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다구요.”
“대사는 또 어떻구요. 마치 배우가 바로 살아나와 눈앞에서 칠 것만 같이 어색함이라곤 전혀 없이 생생하잖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라요. 앞에 네 명은 유명작가 곁에서 몇 년 커리어를 쌓은 세미 프로작가들인데 그들보다도 더 능숙하다구요. 이게 말이 됩니까, 진짜?”
그런데 그 때.
“말이 될 수도 있죠.”
“네?”
이번에도 가만히 있다 한 마디 툭 내뱉은 건 다름 아닌 바로 나 감독이었다.
“모든 걸 우리 시각으로 보니까.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천재의 세상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겠어요. 납득하려고 에너지 낭비할 필요 없는 거죠.”
그 말에 나머지 네 사람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자기들도 알면서 그냥 그리 투덜대 본 것이니까.
사실은 한없는 부러움과 경탄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수상을 하게 되면 인턴 작가로 근무를 해야 하는 규정인 것 같은데. 그건 어떡하죠? 다섯 명 중에서 우하루 지원자만 문제네요.”
잠시 고민하던 손 차장이 답했다.
“그건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사실 규정이라곤 하지만 강제적인 건 아닙니다. 일종의 관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죠. 이번에 예외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행여 그 규정 때문에 별을 못 따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손 차장과 나머지 심사위원들이 웃었다.
“수상자들은 변동이 없는 거죠? 제 의견은 그런데 다들 어떠신지.”
“네. 동의합니다.”
“저도 같습니다.”
모두가 의견 일치.
심사위원장을 맡은 나극상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번 공모는 대성공인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우하루가 공모 최종면접을 본 지 열흘 정도가 지난 어느 날.
KTBS 미니시리즈 ‘미몽’을 촬영 중인 파주 스튜디오 세트장에서는 오전 일정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막 시작됐다.
오늘은 특별히 제작사 대표가 푸짐한 밥차를 보내준 덕에 모두가 함께 모여 즐거운 식사 중이다.
“세영이 많이 먹어. 오늘도 최고야, 아주!”
“네, 감독님. 감독님도 많이 드세요.”
“그랴. 하하.”
아역배우부터 시작해 어느덧 탄탄한 연기실력을 지니게 된 그녀.
오늘도 역시 대활약 중이다.
어느덧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크랭크인이 된 촬영은 벌써 3화에 돌입했다.
여주의 학창시절을 맡아 열연하는 그녀로서는 반환점을 돈 셈이다.
이제 보름만 더 하면 끝이다.
‘하아, 벌써 애들 엄청 보고 싶네. 빨리 모여서 맛있는 거 많이 먹으러 다녔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우하루.
자주 깨톡을 하지만 한창 촬영 중에는 얼마간 건너 뛸 때도 있다.
요 며칠 사이처럼 말이다.
갑자기 그에게 응모해보라고 했던 공모가 떠올랐다.
‘아, 맞다. 결과가 나왔나 모르겠네. 아직 더 있어야 하나.’
그 때였다.
과연 우연일까.
옆 테이블에 앉아 식사 중인 장강호 감독과 조연출 사이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 참. 이번에 공모 결과 어제 나왔대요.”
“그래?”
“네. 어제 잠깐 들어갔다가 고 피디한테 들었어요.”
“발표 난 거야?”
“아뇨, 공지는 내일 띄운다고 하던데요. 근데 이번 결과가 우리 드라마국 내부적으로 좀 화제가 되고 있나 봐요.”
“화제? 왜?”
“대상 탄 작가가 엄청 어리다나 봐요.”
“뭔 소리야? 어리다고? 뭐, 대학생이 당선되기라도 했나?”
“그게...중학생이라던데요.”
장 감독의 입에 반쯤 들어갔던 수저의 음식이 그대로 뱉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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