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세상은 천재와 영웅에 열광한다
“중학생? 지금 장난해?”
“정말이라니까요.”
“그게 말이 되냐고. 장려상이라고 해도 안 믿을 판에 대상을 중학생이 받는다니.”
“저도 안 믿겨져서 몇 번이고 물어봤어요.”
그 때 옆 테이블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공 피디님?”
장본인은 다름 아닌 강세영.
그녀는 귀를 쫑긋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의 반쯤을 완전히 이쪽 테이블로 들이밀고 있었다.
“정말 대상이 중학생이래요?”
“어? 응. 근데 갑자기 넌 웬 관심?”
“혹시, 이름 아세요? 그 학생이요.”
“이름까지는 나도 모르지. 사내 소문만 들은 거니까. 정 궁금하면 내일 오전에 발표하는 거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면 될 거야. 근데 왜? 세영이 너 아는 사람이 거기에 응모하기라도 했어?”
“네, 제 친구요.”
“친구? 그럼 걔도 중학생이겠네? 뭐야. 이번 공모엔 웬 학생들이 그렇게나 많이 참가를 한 거지.”
그 와중에 장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음식 흡입을 재개했다.
조연출의 말을 여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말도 안 돼. 네가 잘 못 들은 게 맞아, 내가 보기엔.”
“쩝. 내일 보시면 아시겠죠.”
다시 자신의 식탁으로 정자세를 찾은 강세영.
좀 전과 달리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고 얼굴에 생기가 돈다.
사실 그녀는 오전에 촬영분량이 많아 심신이 좀 지쳐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소식에 기분이 들뜬다.
‘분명 하루일 거야. 중학생 중에서 걔 말고 누가 대상을 받을 수 있겠어. 또 해냈구나, 우하루!’
그녀는 이미 그렇게 확신을 하고 있었다.
급격히 식욕이 폭발하고 도파민이 분비되기 시작하는 강세영.
아까까지만 해도 깨작거리던 그녀의 젓가락질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세영아. 갑자기 왜 이래? 무섭게...”
“호호, 모르겠네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배가 막 고프고 그러네요.”
그 모습을 장 감독과 조연출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KTBS 공모 결과가 발표되기 하루 전날 오후.
‘문스피아’와 ‘네온’ 발 보도자료가 뉴스 기사로 작성되어 쏟아져 나왔다.
[문스피아 최고 화제작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일명 ‘회서군’의 웹툰화 작업 진행 중!]
[웹소설계의 GOAT ‘회서군’, 곧 웹툰으로 만난다!]
[스타 웹툰작가 ‘재거20’,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작화 맡았다!]
10일 전 미팅에서 우하루는 오 피디로부터 이 즈음 기사가 날 거라고 언질을 받았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웹툰화 속도는 더 빨랐다.
이대로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개학 후 얼마 안 돼서 자신의 작품이 웹툰으로 ‘네온’에서 연재되는 걸 볼 수 있을 터였다.
- 우하루! 축하한다! 진짜 대단하다!
기사를 읽었는지 윤준환에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 완전 쩐다.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대박. ‘재거20’이 그림을 그린다고? 와, 나 오늘 충격 받아서 정신이 다 없다!
“그 ‘재거20’이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 지금 무슨 말을. 아, 참. 너 소설하고 영화는 좋아하는데 웹툰은 거의 안 보지.
“요즘 조금 보긴 보는데, 이 분은 잘 몰라서.”
- 재거20, 지금은 연재 안 하고 있지만 이삼 년 전만 해도 네온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가였어. 인기 정말 많았지. 최근엔 다른 데 좀 한 눈을 판 모양인데 그래도 그 바닥에선 아직 탑 파이브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어.
“그래?”
- 하긴 네 작품만큼 최고의 흥행 작품을 아무한테나 맡긴다는 건 말도 안 되지. ‘네온’으로서는 이 단단히 악 물었나 보더라. 하하.
오 피디에게서 그 작가가 참여한단 말은 들었다.
그래서 ‘네온 웹툰’에 들어가 전작을 찾아서 봤는데.
화풍이 꽤 마음에 들긴 했지만, 이 작품과 어느 정도 궁합이 맞을지 우하루로서는 확신이 서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윤준환이 저 정도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믿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원소스멀티유즈 전문가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 ‘회서군’ 웹툰으로 나온다고 하니까 온라인에 벌써 반응 핫하더라. 너도 봤어?
“아니.”
- 아 참. 넌 그런 거 아예 안 보지...
우하루는 커뮤니티 사이트나 댓글들을 전혀 보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 궁금할 만도 한데 그는 일절 눈길도 안 준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 또는 영화를 보는 게 낫다는 주의다.
- 다들 엄청 반기고 기대하는 분위기기는 한데, 소설이 완결도 안 났는데 너무 빠른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더라.
“흠...”
- 게다가 원작이 넘사벽인데 과연 웹툰이 그 결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애들도 있고. 괜히 최고급 차에 기스 낼까 봐 그러는 거겠지. 그냥 그런 말들이 있더라, 그 정도로만 알아 둬.
“그래, 고맙다. 참, 너 유료화 성적 좋던데?”
- 하아. 말도 마.
윤준현의 한숨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누가 들으면 세상 무너진 줄 알 정도의 크고 긴 탄식.
“왜?”
- 생각만큼 전환이 나오긴 했는데, 그 다음 부터가 문제더라. 연독이 하루가 다르게 확확 떨어지고 있어. 역시 내가 너일 수는 없는 거였어.
- 이제 들어간 지 얼마 됐다고. 점점 좋아질 거야. 걱정 마.
“지난번에 네가 코치해줘서 그나마 얼마간 성적이 좋았던 거였어. 역시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 싶다.”
역시나 오늘도 신세한탄 이어가는 윤준환.
아무래도 진짜 문제는 그의 실력보다 약한 멘탈인 듯하다.
우하루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힘내고 열심히 해보란 말밖엔 없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하루의 폰에 벨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우하루 님 맞으시죠?
“네, 전데요.”
- 안녕하세요. KTBS 단편 드라마 공모 심사팀 담당자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 다름이 아니라 결과 말씀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살짝 두근두근.
지난 번 면접 때 알려준 발표예정일보다 조금 이른 타이밍이다.
- 축하드립니다.
“.......”
- 우하루 님께서 이번 공모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시게 됐습니다.
하아.
이게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번에도 수석이라고?
최종 면접자에 들었다고 했을 때 수상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게 대상일 줄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우하루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대상이라구요?”
- 네. 제출해주신 ‘아임 유어 팬’이 이번 공모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습니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이거 혹시 보이스피싱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귀에서 폰을 떼 번호를 확인해 봤는데.
KTBS가 맞는 것 같다.
이전에 연락 왔던 그 번호와 대부분의 자리가 같았으니까.
하긴, 누가 이런 걸 갖고 그런 짓을 할까.
무슨 이득이 있다고.
- 공식 발표는 내일 오전인데 수상하신 분들께는 미리 연락을 드리는 겁니다. 추후 일정은 이번 주 안으로 다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우하루.
요즘 자주 실감이 나지 않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송하예고 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데 이어 연이은 낭보.
비록 두 곳 모두 1등이란 건 동일했지만 느낌은 같지 않았다.
입시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의 경연이라면 지금 이 드라마 공모는 남녀노소는 물론 지망생과 기성들을 가리지 않고 나선 경쟁에서의 승리니까 말이다.
물론 네임드 작가들이야 참여할 리 없지만 그래도 꽤 커리어 있는 신인 작가들도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 전쟁터에서 당당히 우승을 한 것이다.
‘실력이 줄지 않았구나. 아니, 오히려 쑥쑥 자라나고 있어.’
우하루는 스스로가 꽤나 대견하다.
지난 삶에서 ‘오르테가의 비밀’을 직접 각색했을 때 호평을 받았지만 그 경험과 능력이 이번 삶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지 사실 겁이 좀 나긴 했었다.
그런데 작업을 해나가면서 보니 캐파와 레벨이 오히려 향상된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이 바닥의 프로들로부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점수를 받아들었다.
자신의 느낌이 일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야근을 할 것 같다고 깨톡을 보내오신 어머니.
‘이따 이 소식을 들으시면 또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이 드니 우하루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곧장 주방으로 가서 휘파람을 불며 밥을 짓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KTBS 홈페이지에 이번 단편 드라마 공모 결과가 게재됐다.
**
[대상 : 우하루 작, ‘아임 유어 팬’]
[최우수상 : 궁현주 작, ‘비 내리는 교차로’]
.......
이상 총 여섯 작품이 당선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역시, 보이스피싱이 아니었다.
이 결과는 KTBS 방송사 발 기사로 송고가 되었고 신문과 인터넷 뉴스에 실렸다.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강세영이 우하루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다.
-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진심으로 축하해, 우하루!
“고마워. 다 네 덕이야. 네가 이 공모 알려주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 내가 기여한 건 거의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감격스럽다.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만나서 떡볶이 쏴. 이번에 학교 건너편 골목에 새로 오픈한 데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
역시나, 소원도 참 귀엽다.
“얼마든지. 네가 그 말 하니까 나도 먹고 싶네.”
- 빨리 봤으면 좋겠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기대해!
“조심해서 촬영하고, 끝나면 바로 연락하고.”
대상 수상 소식에 얼마간은 마음이 들뜨기도 하련만.
그녀와의 전화를 끊고 난 우하루는 여느 때처럼 차분히 오후 작업을 시작했다.
온전히 글 쓰는 데 모든 걸 쏟을 수 있는 시간.
방학인데다 낮에는 어머니가 출근을 하시니 사방이 조용한 때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클래식이나 재즈를 은은하게 틀어놓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우하루는 가장 행복하고 포근하다.
얼마가 흘렀을까.
갑자기 그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학교 같은데?’
번호를 보니 기호중학교다.
일단 받았다.
역시나, 담임인 김미진 선생이다.
- 하루야. 너 KTBS 단편 드라마 공모전에서 대상 받았다면서?
어라.
어떻게 아셨지.
이런 게 학교로도 직접 연락이 가나?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 나도 기사 보고 알았어. 지금 교감 선생님께서도 뉴스 보고 너한테 전화 걸어 보라고 하셨다니까.
그럼 그렇지.
방송국에서 학교로 알린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잠깐.
‘기사라고? 공모 발표 기사엔 이름하고 작품명만 나오던데.’
- 지금 학교에 기자들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
“기자들 전화요?”
- 그래. 네가 우리 학교 다니는 걸 알았으니 일단 여기로 연락하는 거겠지. 네 번호 알려줄 수 없느냐, 인터뷰 좀 하자. 난리야 지금.
헐.
축하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후 전화를 끊은 우하루.
곧바로 포털에서 기사를 검색해봤다.
역시나.
공모 발표 보도와는 별도로, 다른 류의 기사들이 뜨고 있었다.
[KTBS 드라마 공모 역사상 최초, 중학생이 대상 수상.]
[기호중학교 우하루, KTBS 단편 드라마 공모에서 대상 수상!]
[KTBS 드라마 공모 역사상 초유의 ‘중학생 대상 수상자 탄생!]
[중학생 작가,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임 유어 팬’,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만장일치 떴나 - 작가는 기호중학교 우하루]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는 우하루도 이번엔 깜짝 놀랐다.
불과 공모 결과 발표된 지 반나절 만에 이런 기사가 주르륵 올라오다니.
그 때, 전화벨이 또 울렸다.
이번엔 윤준환이다.
그래도 전화번호가 공개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런 상황에선 전화를 꺼놔야 할 수도 있을 터였다.
- 커뮤니티에서 난리다. 기사 댓글, 역시 아직 안 봤겠지?
“응. 안 봤어. 근데 원래 방송국 공모 결과 하나로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고 그러진 않잖아?”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거의 없으니까.
한국도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고.
고작 시상식 때 사진 한 장 정도와 몇 줄 기사로 나가고 마는 게 일반적이란 걸 우하루도 잘 알고 있다.
- 얘 답답한 소리 하네. 네가 받았으니까 화제가 되는 거야. 꼬맹이 중학생이 어른들 잔치에서 일등을 먹어버렸으니 다들 놀랄 수밖에. 하루야, 세상은 두 부류에 열광을 해. 천재와 영웅. 그게 스타인 거야.
말은 참 잘 한단 말이지.
글도 이 정도로만 쓰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하늘이 그에게 말재주는 줬으되 글재주는 빼앗아간 모양이다.
“뭔 소리야. 그럼 내가 스타라도 된단 말이야?”
- 이미 그 길에 들어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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