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22화 (22/69)

22화. 장하다, 우리 아들!

“우하루, 잠깐 앞으로 나와 볼래?”

벌써 와 있던 담임이 그를 불렀다.

교단 쪽에는 그녀 뿐 아니라 교장선생님과 처음 보는 중년 남자 한 명이 그에게 시선을 꽂고 있었다.

‘누구지?’

우하루는 일단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이번에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더구나. 축하한다!”

교장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

“감사합니다.”

“이 분은 우리 기호학원 재단 이사장님이셔. 처음 뵙지? 하루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는지 몰라. 인사 드려라.”

아, 이사장이었구나.

근데 설마...

‘나를 보려고 일부러 교실까지 왔다고?’

반가움 보다는 부담감이 밀려드는 우하루다.

드라마 공모 대상 받은 게 뭔 그리 큰일이라고 교장, 교감에 이사장까지 교실로...

괜히 아이들한테 미안한 기분이다.

자기 때문에 이런 괴상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아서 말이다.

“아하, 네가 우하루구나! 맞아. TV에서 본 그대로네. 실물이 더 나은데! 하하, 좀 늦은 감이 있지만 KTBS 드라마 공모 대상 받은 거 축하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네가 아주 큰일을 했어. 너 덕분에 우리 기호중학교가 전국에 이름을 크게 알렸지 뭐냐. 이번에 얼마나 홍보효과를 톡톡히 봤는지 몰라, 하하!”

뭐지.

우하루를 진심으로 축하하러 온 건지, 아니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학교의 홍보를 잘 해줘서 장하다고 격려하러 온 건지.

뉘앙스가 좀 애매하다.

착장이나 생김새도 어째 좀 뺀질뺀질해 보이는 사람이다.

“딴 건 다 좋았는데 말이야, 우리 학교 이름 좀 더 많이 언급해줬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게 아쉬웠어. 근데 뭐, 자막으로 나가고 기사에 언급된 것만으로도 나름 괜찮았으니까. 하하.”

이거 뭐라 반응하기도 애매하다.

우하루는 그저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짜식. 생기기도 잘 생겼네. 저기, 교장 선생님.”

“네, 이사장님.”

“이제 우리 학교 어떡해요?”

“네?”

“아니, 세영이도 졸업하는데 이 친구도 나가잖아요. 너무 아쉽다.”

“.......”

“이렇게 되면 우리 학교 대표할 얼굴들이 졸지에 사라지는 건데...”

어이가 없는 우하루다.

이 이사장이란 사람,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학생들을 격려하려는 게 아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학교의 돈벌이에 이용해먹을 수단을 찜하러 온 거였다.

이 학교 소유 재단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은 건 우하루도 잘 알고 있다.

학폭에 대해 대응하는 수준을 봐도 짐작이 가는 바였다.

이사장이 그와 관련된 보고를 받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재단 측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다.

이 사람을 보니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우리 하루하고 세영가 1년간 명예 홍보대사를 하는 겁니다. 동문이 되는 건데 당연히 해주겠죠. 그쵸? 하하하.”

“그건 한 번 상의해보겠습니다.”

“상의는 무슨. 하라면 하는 거지.”

“흠흠...”

헛기침을 하는 교장.

역시나 이사장 앞에서는 ‘을’일 수밖에 없다.

“하루야. 혹시 그 동안 우리 학교 다니면서 뭐 좋은 일 없었니? 그런 거 잘 좀 써서 어디 글을 올리거나 인터뷰할 때 말해주는 것도 모교를 위해서 큰 도움이 될 거야. 그치?”

“좋았던 거요? 글쎄요. 한 번 찾아는 보겠습니다. 근데 워낙 희귀템이라.”

“뭐라고?”

우하루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 그.

‘희귀템’이란 말뜻이 뭔지 모르는 눈치다.

아이들 몇 명이 킥킥거린다.

“아 참. 제가 소설을 하나 구상 중인데요, 우리 학교를 모델로요.”

그 말에 이사장의 얼굴이 급 환해지며 눈이 반짝인다.

“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혹시, 학교 이름을 그대로 쓸 수도 있나? 우리 재단에서 허용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치?”

방송사 드라마 공모 최연소 수상에 빛나는 천재작가의 새 작품.

그게 이 학교를 모델로 했다는 게 소문이 나게 되면 당연히 화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래, 대략적인 내용 좀 알려줄 수 있니? 간단하게 만이라도.”

“네. 일단 주인공은 아주 순진하고 착한 학생입니다.”

“시작 좋고!”

“그 아이는 부푼 꿈을 안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죠.”

“으음.”

“그런데 학교폭력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

“견디다 못해 담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놀랍게도 아무 조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가해자의 사정을 들어 줍니다.”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웃음을 머금고 있던 이사장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낙담한 그에게 가해지는 학교폭력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그가 앓던 심장병이 악화되죠. 다른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웬일인지 윗선에서 전혀 나서주지를 않았죠.”

“저기, 잠깐.”

“결국 가해자들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던 그 아이는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하루야?”

“그리고 가해자와 학교에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뭐 그런 내용인데, 어떠세요? 좀 식상하고 유치한가요? 우리학교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서?”

“지금 너 뭐 하냐?”

“구상 중인 소설 내용을 말해보라고 하셨잖아요.”

“우리 학교를 모티브로 하는 거라면서!”

“네, 맞아요.”

“이 내용이 어떻게 우리 학교야? 제 정신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저거든요.”

순간 웅성웅성.

이사장은 말할 것 없고 담임과 교장의 표정도 돌처럼 굳었다.

‘이 인간들, 하루가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할 때에는 완벽하게 외면을 했으면서. 이제 내가 좀 잘 나가는 것 같으니까, 뭐? 홍보에 이용?’

갑자기 침이라도 퉤 뱉고 싶어졌다.

‘그런 거 애쓸 여력이 있으면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신경이나 좀 써줄 것이지.’

우하루의 일기.

참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당시 담임이었던 이종만의 비리와 편애.

동료 교사들의 미필적 동조.

그리고 학교폭력에 대한 교장과 재단의 철저한 무관심.

그나마 우하루 자신의 기지와 노력, 그리고 강세영의 결정적 증거 제시 덕분에 최소한의 징벌은 주어졌지만 이 학교의 썩은 문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걸 알기에 오늘 이사장의 행동과 태도에 구역질이 난 것이다.

어색한 웃음을 웃고선 사람들을 데리고 교실을 나가버린 이사장.

복도를 걸어가다 휙 돌아보며 교장을 째려본다.

“혹시 저 자식이 연초에 이종만 날린 걔야?”

“네, 맞습니다.”

“이중하 교수 아들 퇴학하게 만든 걔!”

“네.”

“아이, 씨발. 근데 왜 미리 그걸 말 안 해줬어? 완전 쪽 당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아시는 줄 알고...”

“젠장. 학교 홍보 한 번 제대로 해보려다가 욕 봤네. 저 자식 눈빛 봤어? 어우, 살벌해. 말은 또 어찌나 잘 하는지. 보통내기가 아니야. 완전 식겁했네. 졸업하길 다행이지. 어우, 추워.”

이사장 무리를 따라 나간 담임 덕분에 다시 아이들만 남은 교실 안 분위기가 갑자기 후끈 달아올랐다.

전부 우하루에게 몰려든 것.

“우하루. 나 TV에서 너 봤다. 진짜 대단하더라.”

“나도 사인 좀 해 주라. 친해지지도 못하고 헤어져서 아쉽다.”

“예전에 못 도와줘서 미안해. 분위기가 그 땐 좀 그랬어.”

“나도 정말 미안. 그 정도의 사정이었던 줄은 진짜 몰랐어.”

같은 반 아이들을 타깃으로 발언한 게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왠지 제 발이 저린가 보다.

당시에 그들은 방관자에 가까웠고, 그걸 스스로도 아는 거겠지.

우하루는 왠지 이 상황이 기꺼우면서도 씁쓸하다.

‘하루 넌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 앙금이 없겠지? 그럴 거야.’

그래도 끝나는 이 마당에 아이들이 미안함을 전달해 오니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그다.

하교 후, 오랜만에 친구들과 아지트를 찾았다.

“잘 했어. 하루야. 그 인간 재단 소유주 아들이야. 안하무인에 개차반이라고 소문 자자해.”

“맞아. 경영도 못해서 재단이 간당간당 하다더라. 능력도 안 되는 인간이 이사장 맡아서 학교 개판되게 만든 거지. 동문회에서도 말이 많다더라고.”

“그래, 아주 속 시원했어. 이 학교는 좀 정신 차려야 해. 물론 더한 곳도 있겠지만 여기 진짜 너무 썩어 빠졌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 다 송하예고 학생이 되는 거잖아. 그 생각만 하자.”

“거기도 뭐 완벽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평판이 좋으니까.”

우하루 역시 후회는 없다.

속도 나름 시원하고.

“그나저나 하루야. 웹툰 연재 시작한다며?”

“정말? 벌써 그렇게 됐어?”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웹툰이 드디어 런칭을 앞두고 있다.

우하루도 기대가 크다.

자신의 소설이 처음으로 만화로서 재탄생하게 되는 순간이니까.

“정확히 언제야, 연재 시작하는 날이?”

“딱 우리 졸업식 하는 그 날이야.”

“그래? 하아, 그러고 보니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네. 중딩 시절이...”

“그러게...”

그들은 쏜살같이 달려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컵에 담긴 콜라를 원샷으로 들이켰다.

“캬아, 좋다!”

*****

기호중학교 졸업식에서 우하루는 공로상과 동창회상을 받았다.

함께 참석한 우지연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단상에 올라 당당한 자세로 상을 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장하다, 우리 아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이곳에서의 아들의 3년.

무사히 졸업만 해다오, 간절히 기도했건만 그 이상의 성장과 함께 놀라운 기적을 보여준 우하루.

그렇게 고맙고 대견할 수가 없다.

“엄마. 우리 저기 가서 밥 먹고 들어가요.”

“그럴까? 오랜만에?”

두 사람은 집 근처 고급 중국 요릿집으로 들어갔다.

우하루가 돈을 많이 벌고 있지만 우지연은 여전히 절약 또 절약이다.

오늘도 졸업식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평범한 날이었으면 이런 요릿집은 어림도 없었을 터.

자장면에 탕수육, 군만두까지 시켜 두 사람은 배불리 식사를 즐겼다.

“엄마. 우리 이사 갈까요?”

“이사? 갑자기 웬?”

“갑자기는 아니구요, 지금 집 좀 많이 낡았잖아요. 좁기도 하고.”

“글쎄. 그렇지 않아도 전세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긴 한데. 왜? 다른 데 가고 싶어?”

“네. 엄마 직장도 멀고 저 학교도 교통이 애매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송하예고에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면 우지연의 직장이나 강세영 이모 아지트와도 더 가까워진다.

교통편도 좋아지고.

고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근데 그 쪽은 돈이 아무래도...”

문제는 전세 가격.

지금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건 상대적으로 꽤 저렴한 시세 때문이다.

부촌인 그 쪽으로 가려면 꽤 많은 돈을 얹어야 한다.

“엄마. 제가 벌고 있는 돈 있잖아요.”

“그건 안 돼. 내가 말했잖아. 네 미래를 위해 남겨 놓아야...”

“엄마 말씀은 잘 알아요, 저도.”

평소와 다르게 우지연의 말을 끊고 나서는 우하루다.

뭔가 작심한 게 있는 걸까.

“하지만 전세금이나 집 사는 비용은 엄마와 저희 공동 부담이잖아요. 게다가 그 돈은 없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또, 전 계속 벌 거예요.”

“그렇더라도...”

“엄마가 그러셨죠. 제 돈의 주인은 저라고요. 주인인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문제될 게 있을까요?”

반박이 불가능한 논리다.

우지연이 주장했던 바 그대로 역공을 당했다.

“엄마. 이사 가요, 우리. 더 이상 바퀴벌레하고 녹물과 친구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알아봤는데, 지금 통장에 있는 돈 더하면 충분히 좋은 아파트 갈 수 있어요.”

시세까지 이미 알아봤다니.

얘가 정말 중학생이 맞는 걸까.

우지연은 가끔 아들이 동년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동생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 그러자. 사실 나도 여기 좀 지긋지긋해.”

“잘 생각하셨어요, 엄마.”

우하루가 세상없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집에 돌아온 우하루는 ‘네온’에 접속했다.

오늘 공개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웹툰을 보기 위해서다.

“오오.”

첫 눈에 드는 생각.

그림 죽이네.

역시 윤준환 말대로 실력파 작가임이 체감된다.

다만, 우하루가 예상했던 각색과는 좀 차이가 나 보였다.

“뭐, 만화의 특성은 나보다 훨씬 잘 아는 분들이니까.”

반응을 훑었다.

웹소설 최고 흥행작의 웹툰화라서 그런지, 아니면 네임드 웹툰작가의 복귀작이라는 화제성 때문인지 첫 화에 몰린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느낌이 좋다.

*****

개학을 며칠 앞둔 날.

송하예고에 동문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교장 선생님?”

놀랍게도 그는 바로 나극상 감독이었다.

그가 이 학교 출신이란 건 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아버님에 이어 아드님까지, 우리 송하예고는 정말 영광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저희가 영광이죠. 이렇게 훌륭한 학교를 2대에 걸쳐 다닐 수 있게 되어서요. 부디 모자란 점 있더라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모자라다니요. 오히려 차고 넘치죠. 워낙 어려서부터 유명했잖습니까? 그 재능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대화의 대부분은 나극상의 아들 나중경에 대한 것이었다.

“나중경 군이 입학은 아쉽게도 수석을 놓쳤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참. 연영과 수석 입학한 친구는 어떤 아이인지...”

그 말에 교장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모르고 계세요? 나 감독님께서 상까지 주시고선.”

“네? 그게 무슨...”

“드라마 공모 대상 탄 그 친구가 우리 학교 수석이잖습니까.”

“서, 설마...우...하루.”

“네, 맞아요. 우하루 학생이 수석인데, 모르고 계셨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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