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23화 (23/69)

23화. 네가 우하루구나

나극상 감독은 경악했다.

그 놀라움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벌어진 입이 잘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하아...”

자신의 손으로 KTBS 단편드라마 공모 대상을 수여한 우하루.

그 아이가 바로 자신의 아들 나중경을 제치고 송하예고 입학 수석을 차지한 장본인이라니.

“저는 알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몰랐습니다. 전혀.”

“하긴, 홈페이지 이외에는 공고한 데가 없으니까 그거 안 보시는 한 아실 수가 없으시겠죠.”

“네...”

“그러고 보면 그 학생하고 회장님 인연도 보통이 아닌 것 같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

송하예고 교장 앞에선 억지로 웃어 넘겼지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꽤 한참이 걸렸다.

자신이 직접 심사를 하고 그 놀라운 재능에 감복했던 응모자.

알고 보니 열다섯의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그 아이.

그래서 본인 입으로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라 했는데.

‘중경이가 밀린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교장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등과 2등의 점수 격차가 꽤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재의 벽이 가로막고 있구나.’

괜스레 아들이 안쓰럽기까지 한 기분이다.

게다가, 눈도장을 콱 찍어놨던 차세대 유망주와 이런 식으로 얽히게 됐으니 마음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퇴근 후 아들과 마주앉은 저녁 식사 자리.

나 감독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넌 알고 있었니? 수석 차지한 아이가 이번 드라마 공모에서 대상 탄 학생이란 걸 말이다.”

“네, 아버지.”

“근데 왜 나한테 이야기 안 했냐?”

자신이 물어봐 놓고도 좀 아차 싶다.

그걸 굳이 말해줄 의무도 없을 뿐더러, 아들 스스로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터인데.

“말씀 드리는 거 깜빡했어요. 죄송합니다.”

“흠흠. 뭐, 미안할 것까지야 없고.”

“.......”

“이제 송하예고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그 아이와 경쟁하게 될 텐데, 자신은 있느냐?”

잠시 주춤한 아들.

이내 말을 이었다.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 말이 나극상 감독의 성에는 좀 덜 찬다.

미간에 미세하게 주름이 지어졌다.

“열심히라. 그 정도로는 안 되는 게 세상에 너무 많다.”

“죽기 살기로 해보겠습니다.”

“그래,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겠지. 그리고...”

“.......”

“요즘 아이들 말로 근자감이라는 거, 괜히 그런 거 갖지 마라.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이다. 이번 결과도 그에 기인한 거라고 본다. 세상을 오르려면 네 위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걸 배워야 한다.”

아버지의 그 말이 나중경에게는 자존심의 상처로 다가온다.

왠지 우하루란 그 아이를 의식한 말 같아서.

“알겠습니다, 아버지.”

나중경은 입에 들어온 밥알들이 마치 모래처럼 느껴졌다.

*****

실력파 네임드 작가인 ‘재거20’에 의해 웹툰화가 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세간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만큼 극초반에는 놀라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탄탄대로를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런칭 후 몇 주가 지난 시점.

웬일인지 인기의 기세가 꺾이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별점과 댓글의 반응 또한 굉장히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불만은 아무래도 원작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네온 웹툰 사업부 콘텐츠 7팀 담당자인 양후준 대리가 재거20의 작업실을 다급히 찾았다.

좋지 않은 시그널을 강하게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그 ‘원작의 묘미’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답답하지만 저도 종잡을 수가 없어요. 각색을 위해 정말 얼마나 피똥 싸면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며칠 만에 눈에 띠게 수척해진 볼.

양 대리는 그 모습에서 재거20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성적은 성적이다.

“너무나 잘 알죠. 하지만 독자들 반응이 이러니...”

“처음에는 좋았잖아요.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저희도 난감합니다.”

“말씀드렸지만, 저 이 소설 광팬이에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완벽히 이해하는 것도 모자라 지명이나 인명 다 꿰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에이데이’ 작가님을 지나치게 애정하고 계시는 것도요.”

이 네임드 웹툰 작가는 그래서 더 괴롭다.

자신이 이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열혈 애독자라 웹툰화 작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던 건데.

괜스레 자신이 자칫 이 명작을 말아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두고 말이 없어진 두 사람.

각자의 난감함을 안주 삼아 정적을 한 잔 기울이고 있던 그 때.

양 대리의 폰이 울렸다.

“네, 팀장님.”

회사에서 온 전화인가 보다.

“알겠습니다.”

한참을 통화한 그가 전화를 끊었다.

“작가님.”

“네.”

“저...”

말을 주저주저하는 양 대리.

이내 용기를 낸다.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참 조심스럽게 드리는 말씀인데요.”

“?”

“절대 오해하거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해 보세요.”

“원작자 분을 한 번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원작자라면, 에이데이 작가님을요?”

“네. 두 분이 한 번 상의를 해보시면 뭔가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팀장님도 그렇고 문스피아 측에서도 그렇게 기대를 하는 모양입니다.”

양 대리가 ‘조심스럽게 드리는 말씀’이라며 양해를 먼저 구한 이유.

아무리 원작을 기반으로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거지만 그 작업을 맡은 작가는 각색에 대한 우선적 권리를 갖는다.

그 말은, 2차 저작물의 내용에 대해 원작자를 포함해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란 말이다.

특히 재거20과 같은 네임드 기성 작가일 경우에는 그런 원칙을 지키려는 자존심이 지극히 까다롭다.

즉, 원작자를 한 번 만나보라는 말을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와 각색의 권리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용기를 내 공을 던진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가뜩이나 자존심이 세다고 소문이 나 있는 네임드 작가 재거20에게 혹시나 뺨이라도 한 대 맞지나 않을까 긴장된다.

그런데.

“좋습니다.”

“네?”

“저, 에이데이 작가님 꼭 한 번 뵙고 싶었거든요.”

뭐지.

이 반응은.

이렇게 쉽게 풀리나.

“저, 정말이세요? 오케이 하신 겁니까, 그럼?”

“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네요.”

너무나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 재거20.

‘에이데이 작가님 광팬이란 말이 사실인가 보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양 대리.

그가 어느새 이마에 맺힌 얕은 땀방울을 닦아냈다.

*****

드디어 개학이다.

우하루와 친구들은 모두 새 교복을 입었다.

“와, 역시. 하루 넌 송하예고 교복빨도 완벽히 잘 받는구나. 아이 엔비 유!”

우하루를 보자마자 윤준환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옆에 서 있는 강세영도 상태가 좀 이상하다.

“야, 강세영. 정신 차려. 얘 또 하루한테 넋이 나가버렸네!”

“응? 아...응.”

날이 갈수록 더 훤칠해지고 어깨가 살아나며 잔근육까지 붙어나는 우하루.

교복 핏은 가히 예술이라 할만 했다.

그 모습에 강세영의 정신이 온전할 리 만무하다.

오늘도 그녀는 또 새롭게 반한다.

“학교는 같지만 반은 다 다르네. 그게 좀 아쉽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너무 붙어 있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더 나을 지도 몰라. 애절함이 있잖아.”

“애절함? 야, 준현아. 너 문창과 가지 마라. 별로 어울리는 단어 선택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런가?”

머리를 긁적이는 윤준환.

그러자 우하루가 그의 등을 토닥이며 두둔을 해준다.

“그래. 준현이 말이 맞을지도 몰라. 지나치게 가까이 오래 있으면 소중함의 향기가 옅어지는 법이지. 우리도 조금만 떨어져서 간절함을 느껴 볼 때가 됐어.”

“역시, 하루! 이게 맞지!”

“하아, 그래. 내가 말하려던 게 ‘간절함’이었다구. 미묘한 단어선택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결과를 만들어 내다니. 역시 난 문창과 가서 더 배워야 해.”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우리 그리워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오늘은 개학식 겸 상견례 날.

이른 하교가 예정돼 있다.

파한 후 아지트에서 서로 만나기로 하고 네 명은 저마다의 교실로 흩어졌다.

우하루도 자신의 반으로 향했다.

이미 실기시험과 면접 때 구경해 본 건물 안.

역시나 기호중학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게 청결하고 정돈된 느낌이며 여기저기 예쁜 게 많았다.

아마 예고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가 가장 마음에 든 것 중 하나는 바로 냄새.

분위기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면 향기가 달라진다.

기호중에선 정글의 각종 동물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비물의 냄새가 났다면, 이곳에서는 한국 최고의 명문 예고답게 성숙한 인간의 향기가 난다고나 할까.

우하루는 자신의 후각이 틀리지 않기를 기대하며 교실로 들어섰다.

아직은 반 정도밖에 자리가 차지 않은 상태.

그는 창가 쪽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밖을 보니 서서히 세상으로 스며들기 위해 찬 공기를 밀어내려는 봄기운이 교정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넋을 놓고 풍광을 감상하던 그의 곁에 누가 와서 서는 게 감지됐다.

고개를 돌렸다.

웬 처음 보는 남학생이 우하루에게 시선을 꽂고 있다.

“네가 우하루구나?”

명찰을 보고 알았겠지.

“응, 맞아.”

“반갑다. 나 나중경이라고 해. 너한테 1등을 아깝게 빼앗긴.”

*****

네온 본사와는 조금 떨어진 어느 소로변의 커피전문점.

낯 시간대라 꽤 한적한 그 곳 구석 테이블에 재거20이 앉아 있다.

그는 연신 다리를 떨고 있었다.

뭔가 긴장을 하거나 하면 여지없이 나오는 습관.

어머니에게 복 달아난다며 야단을 그리 맞아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본능적 발현이다.

‘하아, 좀 떨리네.’

천하의 유명 웹툰 네임드가 긴장을 하면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

바로 ‘에이데이’ 작가다.

양 대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잡은 약속시간과 장소.

당연히 원작자의 작업실이나 네온 본사 쪽에서 만날 줄 알았건만, 눈에도 잘 띠지 않고 찾기도 힘든 이런 곳이라니.

‘정보 보안 때문이겠지. 아무리 작가님에 대해 알려달라고 해도 탑 시크릿이라며 거절하더니. 나한테도 만나고 나서 절대 작가님에 대해 외부에 언급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정도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 걸까.

근데 희한하게도 그래서 더 궁금하고 신비한 느낌이다.

‘이것도 마케팅의 일환인가?’

시계를 보니 올 시간이 거의 다 됐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건 온전히 자신의 탓이다.

약속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한.

그 때.

땡그렁.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재빠르게 그 쪽으로 시선을 가져간 재거20.

‘하아...’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다.

들어온 건 어린 미소년 학생.

무심하게 다시 노트북으로 눈길을 향한 재거20.

화면에 띄워져 있는 미팅 자료들을 다시 훑고 있는데.

“저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

바로 조금 전 들어온 그 학생이었다.

“네?”

“재거20 작가님이시죠?”

“그렇습니다만.”

“안녕하세요, 에이데이 작가입니다.”

헐.

재거20의 입에 물려 있던 빨대가 툭 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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