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너무 행복했습니다, 오늘
구체적으로 ‘에이데이’가 나이가 몇 살이고 어떻게 생겼을 거라 추측해본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어린 미소년이라고는...
정말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재거20이다.
잠시 멍하게 앉아 있던 그가 아차 싶은지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재거20입니다.”
“에이데이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웹툰 너무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그 원작이 자기면서.
어쨌든.
“저도 영광입니다. 앉으시죠.”
“네.”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아무래도 첫 만남이다보니 괜히 뻘쭘하다.
그러고 보니 우하루 앞에 아무 것도 안 놓여 있다.
“참, 내 정신. 저, 커피 하시겠어요? 아, 아니지. 내가 미쳤나 봐. 핫초코?”
학생이 커피 마시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좀 그렇다.
재빨리 메뉴 체인지.
“제가 사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네온에 청구하면 되는 거라서요.”
“아, 네. 그럼 전 아이스티, 복숭아 맛이요.”
귀엽네.
그 말에, 역시나 학생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자신도 먹고 싶어진 재거20은 두 잔을 주문했다.
‘하아. 내가 그렇게 경외해 마지않던 작품의 작가가 이렇게 어린 학생이었다니.’
솔직한 심정으로, 좀 난감하다.
말이 잘 통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할 여유가 생긴 재거20.
그 사이, 생각이 바뀌었다.
‘가만. 저 나이에 그런 초유의 대작을 쓰고 있다는 건, 진짜 놀랍고 대단한 일이잖아. 그리고 나이가 뭐가 중요한가.’
잠시나마 단편적인 일면을 보고 스스로 선입견에 빠졌었던 자신이 괜스레 부끄러웠다.
정작 생각이 어린 건 본인일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그제야 재거20은 자신이 그렇게나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 너무 광적으로 좋아하는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를 집필한 원작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간단한 입학식을 치른 신입생들이 이른 하교를 한 오후.
송하예고 교무실에서는 1학년 반 배정 발표를 앞두고 있다.
원래 어제까지 각 반의 담임이 모두 결정돼 있어야 했지만, 갑작스럽게 학교에 사정이 생겨 늦어지게 된 것.
다행히 내일 학급 아이들과의 상견례는 무리가 없을 듯싶다.
선생님들 중 유난히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는 한 사람.
바로 유하연이다.
그녀는 실기시험 때 우하루의 작성지를 직접 받았던 감독관.
아직도 그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의 글을 읽고서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꼭 그의 담임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녀.
‘우하루! 우리 과 입시 수석에 방송국 단편 드라마 공모 대상까지. 내가 정말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유 선생은 자신에게 타고난 재능의 부족함을 아쉬워한다.
그래서인지 천재적인 아이들만 보면 유난히 탐을 낸다.
마치 여러 사정으로 자신이 현역 선수로서 꿈을 이루지 못한 코치들이 가망 있는 제자들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유 선생님은 꼭 우하루가 있는 3반 담임이 되셔야겠네요.”
얼마나 그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으면 다른 선생들도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할 정도다.
점심식사를 마친 지 약 한 시간 후.
“발표 났대요!”
누군가의 외침에 유 선생은 재빨리 교내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정말이네!”
가슴이 두근두근.
그녀의 손가락이 마우스의 클릭 버튼을 눌렀다.
바뀐 화면을 그녀의 시선이 재빨리 훑었다.
드디어 발견.
[1학년 3반 담임 : 유하연]
기적과도 같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배정표!
3분의 1의 확률을 뚫어냈다.
드디어 자신이 우하루의 담임을 맡게 된 것이다.
“이얏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린 유 선생.
그 탓에 교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어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동료 선생들에게 연신 미안하다 인사를 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다.
*****
노트북과 아이스티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앉은 ‘에이데이’와 재거20.
“드시죠.”
“감사합니다.”
“혹시 외람되지만, 지금 나이가...”
“오늘 오전에 고등학교 입학했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예상보다 많이 어려서 좀 당황하셨죠?”
“네? 아, 아닙니다. 하하.”
들켰어, 인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재거20은 괜히 나이를 물어봤다고 속으로 자책했다.
“작가님께서 회서군 웹툰 작화를 맡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주위에서 다들 환호했습니다.”
“아, 정말요?”
“네. 레전드시잖아요. 팬이 많더라구요. 물론 저도 팬이구요.”
뭔가 그 때에는 팬이 아니었다는 뉘앙스다.
괜스레 섭섭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정작 자신은 에이데이의 광팬인데 말이다.
“오늘 네온하고 문스피아 측에서 저희 둘 미팅을 주선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제가 의견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되죠. 저도 동의한 사안인데.”
“그렇다면 실례를 무릎 쓰고 말씀 올리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에 들어가자는 이야기.
근데 뭔가 말하는 톤앤매너가 정말 자기 나이대답지가 않다.
저 어려보이고 귀여운 얼굴에서 나올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이 의젓함은 또 무엇.
‘은근히 빠져든다...’
우하루는 곧바로 ‘회서군’ 웹툰이 현재 감지하고 있는 정체와 위기에 대해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웹툰 보면서 너무 감탄을 했습니다. 작가님께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를 완벽하게 꿰뚫고 계신다는 걸 느꼈거든요.”
“정확히 보셨네요.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나름으로 상상했던 웹툰으로서의 구도와 전개, 그리고 작화. 그 모든 게 작가님의 작품에 담겨 있어서 너무 기뻤구요, 존경심이 느껴졌습니다.”
우하루의 찬사에 재거20은 금세 구름 위에 둥둥 뜬 기분이 되었다.
처음부터 날카로운 비평을 쏟아낼 줄 알았다.
그래서 꽤 아플 거라 각오를 하고 나왔건만.
그런데 이 사람.
좋은 말부터 푸짐하게 풀어놓는다.
가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추세에 모두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혹시, 재거20 작가님께서는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먼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우하루는 우선 재거20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의 의견과 어떤 격차가 있는지 파악해서 그에 따라 맞는 처방을 조언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기에.
“제가 생각하기에는...”
재거20이 자신이 추측하는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쏟아냈다.
주의 깊게 그의 말을 끝까지 청취한 우하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작가님과 팀원 분들, 그리고 네온 담당자님의 의견이 종합된 거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렇죠. 거기다 독자님들의 댓글도 참고를 했구요.”
“네. 한 마디로, 원작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이거네요.”
“맞습니다.”
재거20은 원작자인 에이데이도 이 분석에 어느 정도 동의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네?”
“오히려 작가님께서 원작에 너무 깊게 빠져 계셨던 게 문제일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에요.”
“그게 무슨...”
전혀 의외의 의견을 내놓는 원작자.
우하루는 차근차근 자신의 의견을 이어갔다.
요지는 이거였다.
원작을 충분히 반영하는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각 형태의 콘텐츠들에는 그 나름대로의 문법과 독자의 니즈가 있다.
그렇기에 각색을 하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재거20이 원작에 너무 깊이 몰입이 되어 있다 보니 웹툰으로의 변신에 필요한 전환과 변형의 묘미가 제대로 살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
지나친 이해가 오히려 필요한 진화를 막고 있다는 이야기다.
“원작을 완벽히 그대로 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순서나 장면에 구애받으실 필요도 없구요. 예를 들면 여기 이런 거예요.”
우하루가 웹툰의 한 화를 노트북에 열어 가리켰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을 통째로 날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에요. 다음 화의 장면 순서도 바꾸고요. 그게 웹툰 독자들에게는 더욱 흥미로울 거라고 판단됩니다.”
결코 복잡하거나 구구절절 난해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하루의 처방은 굉장히 심플했지만,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재거20은 머리를 뭔가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스스로 빠져있던 투명한 굴레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이 작품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과 접근이 가능해지리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다른 콘텐츠를 웹툰으로 각색하는 건 이번이 첫 경험이다.
그래서 팀원들과 네온 담당자들과도 자주 회의를 진행했지만.
생각보다 급박하게 잡힌 일정 때문에 충분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 원작자의 말대로 가급적 충실한 각색을 모토로 삼았었다.
그러다보니 웹툰 문법을 원하는 독자들의 취향에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것.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게 문제였어. 에이데이 작가님은 그걸 정확히 캐치하고 있었던 거고. 하아, 진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아까 첫 만남에서 어리다는 걸로 살짝이나마 색안경을 낄 뻔했던 자신이 다시금 부끄러워졌다.
소통이 제대로 될까 우려했던 것 역시 기우였다.
자신이 만났던 그 누구보다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게다가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의견을 피력했다.
‘정말 천재 맞구나.’
재거20의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를 읽으며 작가가 천재일 거라고 여겼었는데.
정말 맞다는 확신이 이제 든다.
미팅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해법에 공감하게 되니 소모적 논쟁이 필요치 않았으니까.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전 잠시 여기서 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오늘 유익했습니다.”
먼저 문 밖으로 나가는 에이데이.
그의 뒷모습에서 역대 최고의 인기 웹소설 작가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오늘.’
재거20의 얼굴에 경외감과 만족감이 번져갔다.
*****
송하예고 신입생의 공식적 첫 수업일.
유하연 선생은 자신이 맡은 반 아이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그녀의 눈은 당연하다는 듯 우하루를 찾았고.
창가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그를 이내 발견했다.
“자, 출석 불러볼게.”
차례대로 부르는 아이들의 이름.
그 중에서 유난히 ‘우하루’을 호명할 때 한 톤이 높아졌다.
“그럼 오늘 하루, 열심히 해보자. 시작이 반이란 말 있듯이 처음이라고 대충 하면 안 된다!”
“네, 선생님!”
조례를 마친 후, 몇 명이 우하루의 자리로 다가왔다.
“하루야, 안녕?”
“안녕!”
“네가 그 KTBS 단편 드라마 공모에서 대상 탄 거 맞지?”
“응. 맞아.”
“진짜 대단하다. 장려상이나 우수상 같은 것도 아니고 대상이라니. 상금 받았어? 드라마는 진짜 제작되는 거야?”
몇 명이 인터뷰를 하듯 달려들자 갑자기 전체 급우들의 관심이 쏠린다.
오직 한 명.
반대편 복도 쪽에 앉아 있는 나중경 만이 그 장면을 불편한 표정으로 힐끗거렸다.
“자, 자. 자리에 앉자!”
어느새 교단에 벌써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드디어 대망의 첫 수업 시작!
첫 시간은 전공 전문 교과 시간으로 ‘스토리 창작과 구성의 기초’이란 과목이다.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 콘텐츠로 구체화시켜내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이 창작해 낸 콘텐츠를 영상으로 제작까지 하게 될 건데, 여섯 명이 한 조를 이뤄서 과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론과 실습이 함께 이루어지는 커리큘럼 중 하나.
평가는 수행 과정에서 보여주는 능력과 리포트, 그리고 여섯 명이 함께 제작해 제출하는 영상 결과물의 총합 점수로 매겨진다.
즉, 개인의 역량과 함께 협동능력과 조원의 실력 또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유능한 급우들과 함께 팀을 꾸리고 싶은 건 당연한 이야기다.
“자, 시간을 줄 테니까 일단 너희들끼리 조를 짜 봐. 그게 잘 안 되면 내가 구성을 해줄 테니까.”
학생들한테 자유롭게 팀을 구성할 기회를 준 선생님.
이를 통해서 아직은 서먹서먹할 수 있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웅성웅성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
이내 유독 한 급우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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