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25화 (61/69)

25화. 오래 오래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우하루! 나 너하고 같은 조 하고 싶어.”

“나도! 껴 줘, 제발.”

“우리 같이 멋지게 한 번 해보자!”

창가에 있는 우하루 자리 주위에 갑자기 바글바글.

비교적 널찍한 교실에서 이 지역만 인구밀도 폭발이다.

당연히 우하루로서는 당황스럽다.

“얘들아, 저기, 고맙기는 한데...”

난감하다.

이걸 어쩌나.

누가 누구인지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이 중에서 다섯 명을 어떻게 선택하느냔 말이다.

게다가.

‘내가 무슨 조장도 아니면서 애들을 뽑고 말고 하냐고.’

제정신이 금세 들었다.

잠깐의 인기로도 이렇게 사람이 자만해진다.

반면 복도 쪽 나중경 자리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2등이란 걸 좀 더 널리 알릴 걸 그랬네. 역시, 세상은 1등만 알아주는 군. 아, 외롭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우하루 쪽의 장면을 그저 바라만 보는 그.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면 될 것을.

이전 학교에서 나름 수재라며 대접받던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며 남들이 먼저 와 주기를 기다리는 나중경이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극한의 불균형.

자연스러운 조 구성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선생님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 아이들이 서로 팀을 꾸릴 정도의 친분이 없는 상황이라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판단하고서 자율적인 조 구성을 취소했다.

“자, 어쩔 수 없겠어. 제비뽑기로 조를 정하는 수밖에.”

우하루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몇몇 아이들이 땅을 치며 아쉬움의 탄성을 뱉어냈다.

결국 무작위 추첨으로 조 편성 방식을 급히 변경.

상자 안에서 같은 색깔을 고른 학우들끼리 조가 되는 거다.

의도적인 선생님의 배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맨 먼저 우하루가 선택.

상자에서 나온 건 자주색 공이었다.

컬러가 결정되자 그 다음 순서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이 교실을 메웠다.

열기만 따지고 보면 월드컵 조추첨식에 못지않다.

“하아...”

탄식과...

“앗싸! 나이스!”

환호.

저마다 둘 중의 하나를 내뱉으며 우하루와 함께 할 다섯 명의 같은 조원들이 결정됐다.

“하루야. 잘 해보자!”

“너하고 같은 조가 돼서 정말 영광이야!”

“난 진짜 행운아인 가 봐. 열심히 할게!”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고.

그 광경을 보는 다른 조 아이들은 아쉬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반면 우하루는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

재거20이 우하루를 만나고 작업실로 돌아온 날.

곧바로 팀원들을 소집한 그가 폭탄을 투하했다.

“이번 주 분량은 무리고, 다음 주 것부터 시작해서 다 뜯어고친다!”

그는 우하루의 조언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그런 결정을 내렸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결국 따를 수밖에 없는 지시.

재거20은 초심으로 돌아가 웹툰 독자들의 니즈와 욕구를 고민하면서 다시 각색을 시작했다.

이미 연재된 편수를 없는 걸로 할 수는 없지만, 아직 초반이니 벌어지려던 틈을 메울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몇 주 후부터 확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춤하던 조휘수 상승세에 다시 가속도가 붙었고 평점이 잘 나가던 극초반 화수들의 평균치를 회복했다.

댓글 역시 마찬가지.

비난 일색이었던 한 달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이제 볼 만 하네요. 너무 늘어져서 짜증 엄청 났었는데.]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쓸 데 없는 장면들도 빠지니까 낫구요. 다만 페르티의 활약과 운명이 원작과 달라지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합니다.]

[작가님, 화이팅! 초심을 찾으셨네!]

[원작을 충실히 살리는 것도 좋지만 이제야 웹툰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네요.]

비로소 재거20과 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데이 작가님하고 미팅 안 하셨더라면 큰 일 날 뻔했네요.”

“그러게. 솔직히 원작자로서 그런 정확하고 날카로운 충고를 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기 분야는 물론 웹툰이라는 콘텐츠의 특성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거야. 어떻게 보면 나보다도 더.”

메인 어시의 말에 마치 회상을 하듯 우하루와의 만남을 추억하는 재거20.

“통화 한 번 해보셨어요?”

“아니. 연락처 몰라.”

“왜요? 작가님 그 분 광팬이시잖아요. 전번 교환 안 했어요?”

“좀 그럴 사정이 있어. 대신 회사 통해서 감사의 인사 전달했어.”

그의 말대로 네온을 거친 그의 메시지가 문스피아 오 주임을 통해 우하루에게 전해졌다.

- 거듭거듭 감사의 말씀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더불어, 꼭 다시 만나고 싶으시답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겠죠. 아무튼 다시 지표가 좋아져서 다행이네요.”

- 이번에 웹툰 기세가 다시 상승하면서 우리 원작 초반 화수의 조회수도 덩달아 엄청 뛰고 있는 거, 알고 계세요?

“아뇨. 그것까지는 잘...”

초반 연재분의 조회수 동향을 계속 지켜보는 작가는 거의 없다.

우하루 역시 마찬가지.

- 그러시겠죠. 그래서 저희 문스피아가 지난 번 웹툰 런칭 기념으로 프로모션을 한 데 이어 다시 한 번 ‘회서군’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해요.

“또요?”

- 네. 이번에는 웹툰하고 연계해서 진행할 겁니다. 다양한 아이템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되면 매출이 또 뛰겠다.

원래 화수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수익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라던데, 우하루의 경우 자꾸 이런 모멘텀이 발생해서인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타 플랫폼 수익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오래 오래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오늘도 전화를 끊기 전에 또 저런 노골적인 멘트를 날리는 오 피디다.

절대 우하루를 다른 매니지에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집념의 표현이다.

‘이렇게 되면 구상 중인 신작하고 동시 연재를 돌려야 되나...’

정이 많은 우하루는 살짝 고민이 된다.

*****

송하예고 입학 후 한 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우하루는 반 아이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구심점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 그건, 처음에는 그가 수석에다 공모전 대상을 탄 화제의 인물이란 것 때문일 터였고, 그 이후로는 또래보다 유난히 어른스러워 보이고 여러 면에서 품이 크다는 느낌을 다들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나중경은 첫 날 먼저 와서 아는 체를 했던 것 빼놓고는 단 한마디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심지어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우하루도 처음에는 신경이 좀 쓰였지만 이내 별 감흥이 없어져갔다.

절친 네 명은 여전히 방과 후 아지트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입학 때 누군가 말했던 대로, 예전처럼 하루 종일 붙어다지니 못하니 오히려 간절함이 더한 느낌이다.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거의 매일같이 모인다.

다만 중학교 때보다 수업이 늦게 끝나다보니까 아지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각 전공 전문교과 수업량이 많아지고 체험활동 시간도 늘어나면 오기 힘든 날도 많아지겠지.”

“그렇겠지, 아무래도.”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여기가 있으니까 항상 돌아올 고향이 있는 느낌이야.”

오지윤의 말에 다들 공감 백퍼센트다.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자주 다 모이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함께 마음을 두고 있는 이 곳.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고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포근하고 든든한 거니까.

“하루가 집이 제일 머니까 힘들겠다. 중학교 때엔 학교라도 가까워서 괜찮았지만 이젠 더 멀어졌으니.”

“괜찮아. 너희 보고 싶으니까 오는 거지 쉬러 오냐. 그리고 나, 이사해.”

“정말? 어디로?”

우하루의 말에 다들 깜짝.

물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세 명 중 가장 집이 멀어서 다들 마음에 걸려했었으니까.

“송하예고에서 그리 멀지 않아.”

“와 잘 됐다! 언제 이사 하는 거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나가면 중순 쯤 바로 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사는 당연히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하겠지?”

“그래야겠지.”

“그 전에 꼭 말해줘라.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아서라. 요즘엔 포장이사가 다 해주니까 도와줄 필요 없어.”

“도와준다는 게 아닌데?”

“그럼, 뭔데?”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을 시켜 먹어야지. 그거 먹으러 가려고.”

“뭐야. 그럼 날로 먹겠다는 거네?”

“뭐, 굳이 말하자면?”

“에라, 이!”

비록 아이들은 농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상황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얼마 후 우하루는 이사를 하게 됐고, 강세영까지 포함한 세 명 모두 목장갑을 끼고서는 현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꽤 서비스 좋은 포장이사 업체 덕분에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너희들이 자잘한 거 도와주고 청소를 해줘서 큰 도움이 됐어. 둘이서 하면 그런 게 또 얼마나 힘든데.”

우하루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곧 배달되어 온 중국요리들로 다들 배가 터지게 식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진짜 잘 먹었어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머니!”

“저희가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호호호.”

‘어머니’ 소리도 참 찰지게 잘 부르는 아이들.

우지연은 아들의 친구들이 너무 귀엽고 감사하다.

“얘들아, 우리 하루하고 이렇게 소중한 우정 쌓아줘서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앞으로도 변함없이 잘 지내기 바래.”

“당연하죠, 어머니. 이렇게 네 명은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고 회갑 잔치할 때에도 모일 거예요.”

윤준환의 너스레에 웃음이 터졌다.

물론 네 명 모두의 마음은 같았다.

뿌듯함과 고마움에 우지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정적이 되자, 옆에 있던 강세영이 그녀의 손을 따스하게 꼭 잡아준다.

그 모습을 본 우하루는 마음이 따스했다.

굳이 정리하는 것까지 다 도와주고 가겠다는 아이들을 어둠이 깔리기 전에 돌려보낸 우하루와 어머니.

그동안 살던 좁고 낡은 집과는 너무 다른 이 공간을 잠시 함께 둘러봤다.

집도 집이지만 바깥 풍광이 또 예술이다.

노을이 짙게 깔리는 저녁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발코니.

사실 이 집을 고른 건 확장형이 아니기 때문인 것도 컸다.

비록 아파트지만 꽤 넓은 발코니가 꼭 마당처럼 느껴졌고 이렇게 여유 있게 바깥 공기와 경치를 즐길 수 있으니까.

“엄마. 좋죠?”

“그럼. 당연하지. 다 네 덕분이야.”

“무슨 말씀을요. 그 집 전세금에 얹은 것뿐인데요.”

“거기 전세금이 얼마나 된다고. 그만큼의 이상을 더 보태서 온 건데.”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로 인한 수익이 점점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

물론 초대박 작이어서 가능한 일.

그 돈이 없었다면 이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문스피아 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들에 풀리면서 타플 정산이 무지막지하게 들어오고 있다.

거기다 웹툰 수익의 로열티까지.

물론 이 작품의 인기가 이대로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런 추세로 가면 앞으로도 꽤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란 건 예상이 가능하다.

우하루는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며 말했다.

“엄마. 이제 다음번엔 집 사서 이사 가요.”

“말이야 고맙지. 하지만 내가 늘 말하잖니. 너무 욕심 부리지는 말라고. 몸 상하게 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네, 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우하루는 이제 어머니에게 일 그만두고 쉬시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시는 게 돈 때문만은 아니란 걸 이해하기에.

그 자신도 글을 쓰는 게 이렇게 부자가 되어가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약 부자가 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돈 되는 글만 열심히 써서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나면 일을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우하루 역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 거두고 있는 이 성과도 애초에 쓰고 싶은 걸 썼는데 결과가 잘 나오고 있는 거지 돈에 큰 욕심을 내려던 건 아니니까 말이다.

“엄마. 너무 좋네요. 이사 진짜 잘 왔어요.”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은 기대보다 더 멋진 주변 야경에 푹 빠져 한참 동안을 발코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 감독님?”

시상식 때 명함을 받아 저장해 놓은 연락처.

나극상 감독의 번호가 액정에 떠 있었다.

“왜, 무슨 전환데?”

“저 대상 주신 분이요. 잠시만요, 엄마.”

우하루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 다행히 저장을 해놓고 있었나 보군. 안 받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 때 신신당부를 하셔서 바로 입력해 놓았습니다.”

- 하하, 고맙군. 다름이 아니라, 기쁜 소식 하나 전하려고.

“기쁜 소식이요?”

- 그래. 자네 작품 ‘아임 유어 팬’의 제작 편성이 확정됐네. 그것도 2부작으로. 우하루 극본의 첫 드라마가 만들어지게 됐단 말을 전하게 돼서 기쁘구만. 축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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