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32화 (68/69)

32화. 시작부터 스타작가네요

“넌 그 배우들이 이 작품에 출연한다고 한 게 신기한 거냐, 아니면 불만인 거냐. 묻는 태도나 표정을 보면 후자인 것 같구나.”

아버지의 그 말에 당황한 나중경.

속내를 들켜 버렸다.

역시 연기는 소질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

“그, 그게 아니라...”

“어쨌든 대답을 해주지. 그 배우들 모두 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아임 유어 팬’이라는 작품 자체가 좋아서 오케이를 한 거다.”

“정말...인가요?”

“그래. 믿어지지가 않아?”

“.......”

“왜? 프라임 타임도 아니고 고작 단편 드라마에 급이 맞지 않으니 그런 탑배우들은 절대 얼굴을 비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니?”

“.......”

무언의 긍정.

역시 아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

누가 아버지 아니랄까 봐.

그래서 나 감독은 서운하다.

다른 드라마도 아니고 아버지가 제작하게 된 작품이지 않나.

그걸 모르면 몰랐을까 알고 있는 아들인데.

최고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게 됐으면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도대체 지금 이 태도는...하아...’

잠시의 정적을 뚫고 아들에게 물었다.

“혹시 너, 우하루 때문이냐?”

“네?”

“이 작품이 우하루가 쓴 거라서 잘 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거냐는 말이다.”

“아, 아닙니다.”

거짓말이 너무 티가 난다.

자신의 속내를 완벽히 숨기기에는 아직 조금은 어린 나이인가.

“중경아.”

“네, 아버지.”

“네가 저번에 죽을힘을 다하겠다고 했었지.”

“네. 그랬습니다.”

“나는 네가 되지도 않을 경쟁과 질투를 하는 데 죽을힘을 다하는 건 원치 않는다.”

“.......”

“그 때 분명히 말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있으면 쿨하게 인정하고 배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나중경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오늘도 그의 위에 들어간 밥알은 모래알이 되었다.

“네 생각대로 1프로의 시청률을 넘기기도 쉽지 않다는 심야 드라마에 그 스타들이 왜 몸값을 낮춰 가면서까지 스스로 출연을 원했을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봐. 그 이유를 작품이 아니라 내 입김과 인맥에서 찾을 생각을 했다니 너한테 실망스럽구나.”

“하아...”

혀를 한 번 끌끌 찬 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나 감독.

식탁을 벗어나려던 그가 다시 아들을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나는 네가 우하루 그 친구의 대본을 한 번 보고 싶다고 조르기를 바랐다. 나 같으면 그랬을 테니까.”

“.......”

“도대체 어떻게 썼기에, 얼마나 작품이 좋기에 그럴까. 경험하고 배워서 자신의 실력을 높이는 자양분으로 써야겠다. 그런 생각이 안 드냐? 하여튼, 못난 놈. 쯧쯧.”

잠시 후 아버지가 짐을 갖고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순간.

나중경은 여전히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뺨에 한 방울 눈물이 자국을 내며 흘렀다.

그리고 무릎 위에 주먹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학교가 끝나고 아지트로 가는 길.

우하루는 잠시 서점에 들렀다.

이동 경로에 있는 중간 규모의 책방.

먼저 참고서 두 권을 산 그는 이내 소설 코너로 향했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오, 베스트셀러에 아직도 있네.’

해외소설 중 그가 이전 삶에서 썼던 ‘오르테가의 비밀’이 무려 2위 자리에 아직도 놓여 있다.

꽤 오래 가는 인기.

이제는 지금의 자신과 상관없는 작품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뿌듯하고 반갑기는 여전하다.

그는 신간 소설 코너에서 한참동안 시간을 보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알고 싶은 작가들도 많다.

이 장소만 오면 종이책을 빨리 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웹소설도 좋고 드라마 극본도 좋지만, 이렇게 물리적인 형태가 있는 ‘책’은 그 내용에 더해 구체적 실체의 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요즘 새 소설의 구상을 거의 끝낸 상태다.

이전 삶에서도 관심이 깊었던 분야.

바로 추리 서스펜스 장르다.

물론, 새롭게 구상한 이 작품은 웹소설이 아니다.

문스피아에 올리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역시나 웹소설 독자들의 취향과는 꽤 다른 문법이다.

지금 여기 이 서점 안에 진열돼 있는 아이들과 같은.

바로 종이책 발간을 목표로 하는 우하루의 첫 기획인 셈이다.

소설 세 권을 더 사서 서점을 나온 그가 서둘러 아지트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다들 이미 와 있다.

“하루야. 이거 봤어?”

“뭐?”

“너 나온 ‘문화이슈’ 너튜브 영상. KTBS 계정에 올라온 거.”

“아니. 난 못 봤는데 아직.”

강세영이 그의 눈앞에 폰 화면을 디밀었다.

“봐봐. 조회수하고 댓글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가만히 보니 조회수는 나름 되는 것 같고 댓글들도 몇 백 개가 달려 있다.

하지만 요즘 인기 영상들 중 이 정도면 그냥 그런 정도라.

“이게 왜?”

“역대 문화이슈 영상들 올라온 것 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아. 아니 압도적이야. 게다가 온통 너를 칭찬하고 감탄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고.”

“그래?”

별반 기뻐하거나 신기해하지 않는 우하루.

아이들은 그런 그가 더 신기하다.

“하여튼. 넌 이런 거에 너무 무심하더라. 관심 좀 가져.”

“뭐, 굳이. 그래도 노력은 해볼게.”

그 때,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윤준환이 나선다.

“너 나한테 꿀밤 한 대 맞자.”

“얘가 왜 이래 갑자기. 미쳤냐?”

“응 미쳤다. 나 미쳤어. 너 도대체 우리 현주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한겨?”

“뭔 소리야 대체?”

현주 누나라니.

도대체 그 누나가 누구...

‘아, 문화이슈 장현주 아나운서 누나!’

“지난번에 수빈이 누나도 그러더니. 이번엔 또 어떻게 홀렸기에 이렇게 SNS에 몇 장이나 사진을 올리고 태그까지 달면서 너한테 열광하게 만드는 거냐고.”

그가 내민 폰 액정에 떠 있는 건 역시나 그 아나운서의 인별이었다.

우하루와 함께 찍은 몇 장의 사진들.

모든 사진에 너무도 환하게 웃고서 그와 붙어 있는 그녀.

그리고 그 아래 그녀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우하루작가님.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너무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우리 귀여운 미소년 천재작가님! 내 막내 동생보다 어린데도 하마터면 오빠라고 부를 뻔. #아임유어팬 화이팅이에요! 꼭 다시 만나요!]

뭇 남성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꼽는 차세대 KTBS 간판 아나운서의 인별 때문에 또 SNS 상에서 또 한 번 화제가 된 우하루.

윤준환은 또 한 명의 짝사랑하는 누나를 빼앗겨서 서럽다.

“이자식! 이대로 가다가 내 짝사랑 상대들의 마음을 다 가져가 버리겠어! 으, 분해!”

씩씩대는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강세영.

“얜 도대체 짝사랑하는 연예인이 몇 명이야. 한심. 하루야, 신경 쓸 거 없고. ‘아임 유어 팬’ 대본 리딩 언제야?”

“다음 주.”

“와, 이제 촬영 임박이네.”

“그러네, 벌써.”

“애들한테는 말했는데, 나 주말부터 드라마 들어가.”

“드라마? 갑자기 무슨?”

“TVNT에서 하는 거야. 미니시리즈. 퓨전사극. 갑자기 정해졌어.”

“그럼 학교 많이 빠지겠네.”

“응. 아마 한동안 거의 출석 못하게 될 거야.”

어차피 한 반도 아니라 학교에서는 자주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왠지 아쉽고 허전하다.

이 아지트도 주인이 없으니 잘 오게 되지 않겠지.

열쇠번호는 알고 있고 언제라도 와서 있으라 했지만 그래도 강세영이 없으면 역시나 편하지가 않다.

“고생하겠네. 건강 잘 챙기고 너무 무리하지 마라.”

“아마 네 드라마 촬영장에서 볼 수도 있겠더라. 감독님한테 말해서 꼭 본방사수할게.”

“그게 가능해?”

“나 이래 뵈도 10년차 배우야. 임정화 선배님은 몰라도 수빈 언니도 경력으로 따지면 나보다 아래라고.”

“맞다. 그렇지. 아이고,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강세영 대배우님! 아니, 원로배우님!”

“우씨, 원로배우는 아니고!”

“하하, 알았어 알았어. 하여튼 열심히 잘 해. 나도 네 드라마 빼놓지 않고 볼 테니까.”

얼마간 뜸하게 될 친구들과의 아지트 방문이 못내 아쉬운 우하루.

그가 저녁으로 맛있는 피자와 파스타를 푸짐하게 쐈다.

그 덕인지 윤준환의 뒤틀렸던 심사가 조금은 풀린 듯 보였다.

*****

드디어 ‘아임 유어 팬’의 대본리딩이 열리는 날.

행사 장소인 파주의 KTBS 드라마 세트장에는 예상치 못했던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부분은 기자와 리포터들.

나 감독과 홍 조감독은 좋으면서도 당황스럽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그러게요.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수빈 씨하고 정화 씨 파워겠지.”

“아무래도요.”

“단막극 대본리딩에 이런 광경은 또 처음 보네.”

“저도요.”

하지만 그들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당연히 현수빈과 임정화에게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놀랍게도...

“우하루 작가님!”

“작가님. 오늘 대본리딩 처음이신데 소감이 어떠세요?”

“공모 대상 수상작 촬영이 실감 나십니까?”

“작가님 작품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 배우 분들이 자진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시던데, 그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그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가 우하루에게 쏟아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사자인 그는 당황.

물론 다른 스태프들과 연기자들도 희한한 장면을 보는 심정이다.

“놀랍네. 네임드 작가님들한테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인데.”

“그러게요. 최연소 공모 대상 작가라는 레코드가 크긴 크네요.”

“그것뿐이 아니지. 스타 배우 두 분이 작품만 보고 덜컥 결정을 하셨잖아. 그 작품을 쓴 장본인이고. 그러니 화제가 될 만하지.”

“더구나, 저렇게 잘 생겼고요. 일요일에 TV 나온 것도 반응이 장난 아니던데.”

“시작부터 스타작가네.”

중요한 질문에만 답한 후 양해를 구하고서 대본리딩이 열리는 회의실로 들어온 우하루.

자리해 있던 연기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어머!”

여기저기서 작지만 분명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신인과 무명 배우들도 있었지만 임정화와 현수빈이라는 유명 배우가 자리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그들이 연예인을 대하는 듯한 분위기.

이 무슨 희한한 광경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오늘은 상식이 역전되는 순간순간이다.

아직 나 감독과 홍 조감독이 사무실에서 오지 않은 상황.

우하루가 좌중을 향해 몇 번 인사를 하면서 임정화와 현수빈이 앉아있는 쪽으로 향하려는데.

오히려 그녀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먼저 빠르게 다가왔다.

“우하루 작가님!”

“어머, TV에서 본 그대로세요!”

마치 좋아하는 아이돌을 만난 것 마냥 신이 나 반기는 그녀들.

이래도 되나 싶은 우하루다.

반갑게 인사를 먼저 드려야 할 사람은 정작 자신인데.

“안녕하세요? 우하루라고 합니다. 어려운 결정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의도 바르시고 참하실까.”

“그러게 말이에요. 진짜 얼마나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몰라요. 작가님 작품이 너무 제 가슴을 후벼 파 놔서 남아나지 않았다니까요. 정말 최고의 작품이에요.”

“우리 아들보다 어린데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가. 거기다 이렇게 의젓하고 멋질 수가 있을까...”

어느새 다른 배우들도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건 흡사 팬미팅 분위기다.

나 감독과 홍 조감독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콘서트라도 열릴 뻔.

간신히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본리딩에 돌입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인 ‘윤주아’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런 만큼 그녀의 시작이 중요하다.

은근히 긴장한 그녀.

대본을 수십 번 이상 읽으며 자신의 극중 배역의 처지와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연구해온 현수빈이 대본을 거침없이 쳐 내려갔다.

‘와아, 역시...’

우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치 음색이 기가 막힌 가수의 첫 소절을 듣고서 곧바로 마음이 동한 느낌이랄까.

사실 어젯밤에도 고민이 됐었다.

막상 대본리딩이라고 나가서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혹시나 현수빈 배우나 임정화 배우의 연기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르면 곧바로 지적을 해야 하나.

나이는 둘째 치고, 이번 생 이 바닥에서 완전 초짜인 내가 그래도 되는 건가.

그런 걱정들.

하지만 적어도 주인공인 현수빈에 한해서는 완전 기우인 걸로 판명됐다.

“어떠세요, 작가님?”

첫 신의 연기를 마친 현수빈이 우하루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한 치의 과장이나 보탬 없이 말씀드릴게요.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요, 작가님?”

“네. 제가 작품을 쓰면서 그리던 바로 그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예요. 딕션, 톤, 눈빛과 표정, 분위기. 전부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우하루의 그 말.

극찬.

그리고 누가 느끼기에도 진심.

그게 너무 감격스러웠던 것일까.

이 작품이 그녀를 얼마나 절실하게 만들었기에.

현수빈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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