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33화 (69/69)

33화. 분명히 좋은 결과 나올 겁니다

우하루와 나극상 감독은 물론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까지도 일동 당황.

펑펑 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예상치 못하게 주연 배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니까.

순간 어떤 이유인지 다들 궁금하다.

“아우, 제가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나 봐요. 괜히 민폐네요.”

“아닙니다. 저, 여기...”

우하루가 자신의 손수건을 현수빈에게 건넸다.

역시나 고1 남학생에게서 기대하기 쉽지 않은 행동.

그 모습에 다들 감탄을 뱉으며 누군가는 부러워한다.

“솔직히 걱정 많이 했거든요.”

“어떤 걱정을요?”

“이 작품이 너무 좋은데, 그리고 이렇게 주연을 맡게 되서 정말 기쁜데. 괜히 제가 처음부터 작가님이 그려왔을 그 그림과 너무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면 어쩌나 하는.”

“아, 그러셨군요.”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던 차에 너무 극찬을 해주시니까 너무 기쁘고 안심이 되서 순간 감정이 탁 풀리면서 울먹했나 봐요.”

“그런 거라면 다행이네요. 전 또 제가 말실수라도 한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럴 리가요. 너무 자상하고 따스하게 격려해 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힘이 나요.”

현수빈과 우하루의 애틋함에 가까운 대화를 듣고 있던 나 감독.

한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내가 드라마를 연출한 이래로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대본리딩이 시작된 경우는 처음입니다. 너무 좋네요, 진짜. 자, 우리 현수빈 배우님과 우하루 작가님한테 박수라도 한 번 드립시다! 하하.”

기꺼이 호응하며 배우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갈채.

메이킹 필름을 찍는 카메라 렌즈에도 이 장면이 그대로 담겼다.

이어진 대본리딩.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된 후라서 그런지 조금 긴장했던 나머지 배우들의 몸이 풀린 듯했다.

물론 아무 지적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나 감독은 나 감독대로 의견을 제시했고.

우하루 역시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배우들에게 최대한 겸손하게 소통하면서 설득을 해나갔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비슷한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거나.

“지금 너무 좋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이것만 조금 바꾸시면 진짜 대박이겠다, 이렇거든요.”

칭찬과, 그에 이어지는 의견 제시이거나.

또는,

“제가 한 번 대본 쳐 봐 드릴게요. 자, 이런 느낌 어떠세요?”

“음. 무슨 느낌인지 알 거 같아요.”

심지어 자신이 직접 나서서 대사를 쳐주기까지.

그런데 또 그걸 너무 잘한다.

어느 순간 대본리딩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르고.

자리한 모든 배우들은 누구 하나 열정과 진지에 빠지지 않은 이가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장면까지 등장했다.

“오, 그 애드립 좋네요.”

현수빈과 임정화가 조연과 함께 대화를 끌어가던 도중에 나온 예정에 없던 애드립을 우하루가 반색한 것.

그리고는 즉석에서 그렇게 해주십사 부탁을 하고.

더불어 임정화의 옛날 동료 역을 맡은 중견배우의 이미지를 보고는 그에 어울리게 캐릭터의 말투와 행동까지 즉석에서 바로 수정을 해버렸다.

“저게 되네.”

“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이런 식의 대본리딩은 정말 처음인 거 같아. 대부분 무언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호통을 치거나 농담 위주의 진행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저렇게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게 고칠 거 즉석에서 수정하고 받아들일 거 다 받아들이면서 필요한 건 다 바꿔주는 작가는 처음 봤어.”

“나도. 심지어 대사 다 외우고 있는 거 봤어?”

“그러게. 아무리 똑똑한 작가님이라도 저렇게 대본을 다 암기하고 있는 경우는 처음 본 거 같아.”

배우와 스태프들은 우하루에 의해 진행되는 한 편의 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미 없는 참견이나 오지랖이라 할 만한 것들은 극도로 자제.

하지만 꼭 필요한 의견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편하게, 동시에 배우들이 몸과 심장으로 느끼게 만드는 소통 능력.

그는 분명 글뿐 아니라 말과 분위기로서도 타인을 감화시키는 신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이 아이의 포텐셜은 어디까지인 거야.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작가의 모습. 그걸 내 눈 앞에서 직접 보여주고 있잖아. 하아...’

바로 옆에서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는 나 감독.

우하루에 대해 느끼는 놀라움과 경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국내 굴지의 출판 기업 중 한 곳인 ‘이엘 출판사’.

최근 급격한 시장상황 변화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이 회사는 최근 세계 최대 다국적 기업인 ‘빌햄 하우스’의 투자를 받아 숨통을 틔웠다.

무능하고 무력한 대표이사가 교체되고.

새로 부임하게 된 사람은 서인희.

‘빌햄 하우스’ 본사의 상무이사로 재직하던 그녀가 이 회사의 수장 자리에 오르며 한국으로 왔다.

“현 임직원들의 성과를 측정할 겁니다. 조직을 개편하고 업무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구요.”

예상대로 칼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부임하고 파악한 것 중에서 가장 경악했던 것 중 한 가지.

그건 바로 좋은 작품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대한민국의 최고 출판 회사 중 한 곳의 수준이란 게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능한 창작가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탓이 컸다.

그 현실에 그녀는 분개했다.

“출판회사가 단지 아무한테나 글을 쓰게 해서 그럴 듯한 내용으로 책을 만들어 적당한 도매상에게 넘겨 유통시키는, 아직도 그런 수동적이고 단순한 제조업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설마?”

호통을 치는 대표이사 앞에서 임원들은 고개를 푹 숙일 뿐이다.

자신들도 지금까지의 나태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고도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갈 수 있었던, 그들에게 좋았던 시절은 확실히 지나가 버렸다.

“공지한 대로 우리 회사는 이제 이름이 바뀝니다. 더 이상 ‘이엘 출판사’가 아니라 ‘이엘 퍼블리싱&콘텐츠’입니다. 겉만 바뀌면 될까요? 여러분도 바뀌어야죠!”

바뀔 생각 없는 이들은 나가라 이 말이다.

“저자 발굴하는 시스템을 보니 가관이더군요. 책 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 원고료 싼 무명 신인들, 그저 이름만 유명해서 그 값으로 기본 판매량 채울 수 있는 인사들 위주.”

답답한지 한숨을 푹 쉬는 그녀.

“임 이사님.”

“네, 대표님!”

자신의 이름이 갑자기 불리자 후다닥 놀라 부동자세로 각 잡고 대답을 하는 임원.

잘리기는 싫은 게 확실해 보인다.

“혹시 얼마 전 KTBS 공모 당선된 작가와 작품 이름 아세요?”

“네? 아 그, 그게...”

“알고 계시는 게 뭘까요?”

“보긴 했는데...죄송합니다.”

그 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손을 번쩍 드는 사람.

다른 이사 한 명이다.

“말씀해 보세요.”

“강하루 군이고 작품 이름은 ‘아임 유어 맨’입니다. 하하하.”

칭찬을 받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뿌듯해하는 그를 보면서, 서 대표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아. 뭐가 틀렸나. 표정이 왜 저렇지...’

“이사님. 아시려면 제대로 아셔야지. 강하루가 아니고 ‘우하루’. 그리고 ‘아임 유어 맨’이 아니라 ‘아임 유어 팬’! 지금 드라마도 나온다고 하고 그렇게 화제가 됐는데 그것도 하나 똑바로 몰라요?”

괜스레 나섰다 오히려 면박만 당한 그.

다시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우리가 찾아내고 다가가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런 잠재력 높은 작가들이에요. 시그널이 안 보여요? 지금 이 드라마, 소설 출간 계약 맺었는지 아는 분, 손!”

역시나, 아무도 없다.

“KTBS 드라마 공모 대상작 아닙니까.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고, 작가가 중학생 때 쓴 거라면 분명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을 거 아녜요. 어떻게든 접촉해서 만나고 손을 내밀어야죠. 도대체 뭣들 하시는 거죠?”

“.......”

“딱 3일 드립니다. 우하루 작가와 접촉해서 결과물 갖고 오세요!”

“네? 그, 그건 너무 짧...”

“포기하던가요, 그럼. 제가 직접 나서게 만들면, 그 때에는 정말 각오하세요!”

책상을 꽝 내려치고선 회의실을 벗어나는 그녀.

기세가 너무 무섭다.

30대 후반의 냉혹한 대표이사 앞에서 모두가 잔뜩 주눅이 들었다.

*****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한 ‘아임 유어 팬’.

대본리딩 때부터 분위기가 훈훈했던 탓인지 그 어느 촬영장보다 열기가 넘치고 팀워크가 최상이다.

“이게 다 우하루 작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다들 모인 첫 자리에서부터 뭔가 구심점을 단단하게 만들어 줬거든.”

“감독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30년차 노련한 원로 작가도 쉽지 않을 일을 간단하게 해버리다니 말입니다.”

“그건 어떤 의도에서라기보다 타고난 재능 같아. 그게 마음먹는다고 갑자기 될 일도 아니고 또 할 수 있어도 성격상 안 되는 사람들이 많거든.”

“덕분에 이 분위기, 얼마나 좋습니까. 하하하.”

몇 시간 안 되는 대본리딩 장에서 행한 우하루의 인스트럭션.

배역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완벽한 중심을 잡아주는 바람에 나 감독과 스태프들 모두 편하다.

게다가 대본을 머릿속에 줄줄이 외우는 고등학교 1학년생 작가에 자극받은 배우들이 여간 열심이 아니다.

다른 촬영에 비해 NG 발생 숫자도 확 줄은 모양새다.

그 덕분에 일정도 이삼일 이상 앞당겨질 가능성도 보인다.

물론 나 감독은 스케줄에 맞추면서 더 완벽한 그림을 담기 위해 여유 시간을 모두 소진할 생각이다.

토요일 오후.

오전부터 달려온 작업에 조금 지칠 즈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던 찰나.

“감독님. 간식을 잔뜩 실은 차가 왔는데요? 네가 배달시켰어?”

“아뇨?”

“나도 아닌데. 수빈 씨 회사에서 보냈나?”

“거기에선 엊그제 밥차 쐈잖아요.”

“정화 씨도 아닐 텐데. 설마 방송국 짠돌이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나와서 입맛을 다시고 있다.

뭔가 푸짐한 것들이 차에서 내려진다.

“누가 보냈죠, 이걸?”

사장인 듯 보이는 사람에게 감독이 묻자.

“글쎄요, 전 전화만 받고 온라인을 결제만 받아서요. 성함이 뭐더라. 좀 독특하던데...”

그 때.

“접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우하루가 바로 뒤에 서 있다.

무슨 축지법이라도 쓰는 걸까.

“앗. 깜짝이야! 언제 왔어?”

“지금 왔는데요.”

“잠깐만. 지금 이걸 우 작가가 주문해서 보낸 거라고?”

“네.”

그 말에 모여 있던 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어느새 현수빈과 임정화도 바로 옆에 와 바짝 붙어있다.

“우 작가가 돈이 어디 있어서!”

이 음식들이 싫어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나 감독은 고등학생이 너무 무리를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다.

사실 당연한 반응일 터.

재벌집 막내아들일 리도 없으니 말이다.

우하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저 상금 탄 거 있잖아요. 꽤 많이 받았으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드세요. 한 번은 대접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공모전 상금 뿐이겠나.

웹소설로 버는 게 지금 어마어마한데.

쓸 일도 별로 없으니 쌓이는 게 돈이고.

하지만 그걸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 작가님! 최고! 잘 먹을게요!”

“감동이에요!”

“방송국에서도 안 보내주는 걸 작가님이 해주네.”

“역시 작가님밖에 없습니다! 든든하게 먹고 힘내서 촬영하자구요!”

여기저기서 고마움의 인사말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 감독은 오늘도 역시 또 충격을 받았다.

까도 까도 자꾸 나오는 이 어린 학생의 신선한 면면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어른들도 이렇게 기특한 일을 잘 못하거든.

‘이 친구는 진짜 보물이야.’

잠시 지쳐가던 촬영장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불끈 달아올랐다.

우하루는 늘 그들의 에너지였다.

*****

어느덧 ‘아임 유어 팬’의 마지막 촬영이다.

미니시리즈나 주말드라마가 아닌 단 2부작의 작품이기에 제작 기간이 당연히 짧을 수밖에.

그런데 희한한 건,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뭔가 다 아쉬워하는 분위기란 것.

일이 빨리 끝나면 보통 좋아하고 시원해 하는 게 정상인 법인데.

“우리 드라마 미니시리즈였으면 좋겠다.”

“글쎄 말이에요. 시작하려는데 끝난 거 같아요.”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다들 케미도 참 잘 맞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헤어지는 게 아쉬운 느낌인 거 같아요.”

나 감독으로서는 행복할 따름이다.

다들 이렇게 즐겁게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었고 몰두해 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었고 말이다.

“모두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우리 드라마 분명 좋은 결과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나 감독의 인사에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환호를 하며 박수갈채를 뿜었다.

“감독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배우들이 유난히 반색하는 표정으로 나 감독의 뒤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하루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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