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우 작가한테 너무 고마워
삼성동 어느 소로에 위치한 빌딩.
알고 보니 그곳은 연예인들이 이용하는 스타일링 샵이었다.
‘뭐야. 왜 날 여기로 오라고 했지.’
마침 문 앞에 있던 정우주 매니저가 우하루를 알아봤다.
“우 작가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촬영하면서 인사를 해둔 사이.
“그렇지 않아도 누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들어가시죠.”
그를 따라 들어간 곳에서 현수빈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작가님! 어서 오세요!”
“어머. 이 분이 이번에 수빈 씨 출연한 작품 쓰신 그 분?”
“맞아요, 원장님.”
“어머. 진짜 아이돌 뺨치게 잘 생기셨다. 키도 훤칠하고!”
어느새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여자들.
“반가워요, 작가님. 수빈 씨하고 임정화 선생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임 유어 팬 진짜 잘 봤어요.”
“와, 너튜브에서 인터뷰 영상 봤는데 실물도 장난이 아니네.”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그런 드라마를 써요? 놀라워요!”
스타일링 샵이라 그런지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현수빈이 얼마나 그들에게 이야기를 했으면.
우하루가 나타나자마자 몰라보는 사람이 없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머리하고 복장이 뭐예요.”
현수빈의 말에 자신의 착장을 다시 확인해보는 우하루다.
검소하고 수수하고.
학생다워서 별반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명색이 인터뷰 자리잖아요. 사진 엄청 찍힐 텐데. TPO에 맞는 세련된 착장과 스타일링이란 게 있는 거예요.”
하긴.
‘문화이슈 초대석’에 나갔을 때에도 방송국 자체 메이크업 팀에서 손을 봐주긴 했다.
“원장님. 부탁드릴게요!”
“걱정 말아요!”
우하루는 곧바로 원장의 손길에 맡겨졌다.
헤어 스타일링 뒤 메이크업을 받은 뒤 옷까지.
‘근데 내가 이걸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나...’
너무 자연스레 일이 시작되었고.
왠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시간은 꽤 걸렸지만.
“자! 어때요?”
벽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우하루는 신기했다.
집에서 나왔을 때와는 꽤나 달라진 많은 것들.
정돈되면서도 세련된 헤어스타일.
조금 더 뽀얘진 피부색.
과하지 않으면서도 트렌디한 착장.
어느새 뿌려졌는지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기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듯 한데도 종합적으로 보면 분위기가 꽤 바뀌어 있었다.
역시, 이래서 프로라 불리는 사람들인가.
“어머! 진짜 미소년 오브 미소년이네!”
“우리 샵에 오는 아이돌 그룹에 지금 당장 합류해도 되겠어요!”
“이 정도면 글이 아니라 연기를 해야 되는 거 아녜요?”
“원판이 최고니 어떻게 스타일링을 해도 이렇게 잘 사네요!”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우하루를 보며 감탄을 주저 없이 내뱉었다.
“작가님, 진짜 최고예요. 자, 여기 보세요!”
찰칵.
그의 곁에 붙어서 셀카 몇 장을 찍은 그녀.
“이거 제 SNS에 올려도 되죠?”
“네? 아, 네.”
“고마워요, 작가님. 우리 그럼 출발할까요?”
지극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하루를 이끄는 현수빈.
두 사람은 그녀의 밴을 타고 단체 인터뷰가 열리는 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도착했습니다!”
차가 멈추고 문을 연 우하루는 눈에 비친 광경에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기 때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전 삶에서 자신이 집필했던 ‘오르테가의 비밀’의 제작발표회 때 경험했던 장면이 오버랩처럼 회상이 됐다.
‘이런 경험, 오랜만이네.’
장소도 다르고 분위기도 사뭇 상이했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기시감이랄까.
그 때 느꼈던 신선한 긴장감과 흥분감이 다시 몰려왔다.
“봤죠? 이러니 어느 정도 착장을 갖추는 건 매너이기도 한 거거든요.”
현수빈의 말이 맞다.
어떤 자리에 나갈 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건 사치나 허영과는 다르다.
드레스 코드라는 게 그래서 있는 거니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다.
“배우님 덕분에 욕 안 먹겠네요. 감사합니다.”
“전 작가님 있는 그대로가 좋아요. 다만,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타 작가님이 이런 자리에서 남들한테 더 멋있고 훈훈하게 보였으면 하는 팬심의 발로인 거죠.”
팬심이라.
정작 우하루는 현수빈의 팬이기도 한데.
이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는 건가.
“가요, 작가님.”
환한 미소를 띤 현수빈과 함께 우하루는 기자들과 리포터들의 겹겹을 뚫고 인터뷰장으로 들어갔다.
*****
‘아임 유어 팬’의 단체 인터뷰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우하루와 나 감독, 그리고 현수빈과 임정화 등 네 명이 나선 자리.
“안녕하세요? ‘아임 유어 팬’의 작가, 송하예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우하루입니다.”
그는 교장선생님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장면이 방송되면 황도헌 교장은 쓰러져라 기뻐할 것이다.
인터뷰 내내 기자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냈고.
탑배우인 현수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우하루에게 좀 더 많은 질문이 몰렸다.
이 신인 괴물 작가에게 대한 언론이 지대한 관심의 증거였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당황할 만도 한데.
정신없이 들어오는 질문들을 우하루는 시종일관 느긋한 표정으로 응답했고.
심지어 곤란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유머까지 섞어가며 재치 있게 받아 쳐냈다.
그 나이 또래답지 않은 여유와 침착함.
모든 이들은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KTBS 연예 프로그램의 별도 인터뷰까지 마친 후 이어진 종방파티.
모두가 이번 성과에 대해 자축을 하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술고래인 나 감독은 우하루가 미성년자이다보니 아무래도 부담스러운지 음주를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대신 투머치토커로 변신해 곁에 있는 사람을 공략했다.
“우 작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내가 사실 왕년에 꽤 잘 나갔었거든.”
역시나 연장자에게 빠질 수 없는 필살기 ‘왕년 시리즈’.
이를 필두로 방송국을 나와 직접 제작사를 차린 후 겪었던 자신의 히스토리를 줄줄 읊었다.
“솔직히 돈을 긁어모을 줄 알았지. 내 이름값이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회사 밖은 전쟁터였단다.
“작품 의뢰가 밀려들고 투자금이 막 들어올 줄 알았는데. 허허, 역시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더라고.”
결국 몇 건의 투자 무산과 제작 작품의 흥행부진으로 위기를 맞이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휴식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
이번 작품으로 워밍업을 한 후 미니시리즈를 어떻게든 따 내서 거기에 모든 걸 걸어보려고 했다는 말까지 털어놨다.
“이번 공모전을 맡은 게 내 생애 통틀어 한 선택들 중 가장 잘 한 거였지 뭔가. 우 작가 자네를 만나게 됐으니까 말이야. 하하하!”
나 감독은 우하루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마운 존재 중 한 명이라는 말까지 했다.
“나를 살려준 사람이 바로 우 작가네. 이번 작품 성공으로 벌써 외주제작 문의가 밀려들고 있어. 정말 고맙고, 이 은혜는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거야.”
너무나 과한 감사의 인사.
사실 이 작품의 성공이 우하루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잖은가.
그런데도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니, 말은 고맙지만 좀 부담스럽다.
나 감독뿐이 아니었다.
“이번 드라마 출연하고 나서 평판과 평가가 크게 올라갔어요. 연기력도 더욱 인정받게 됐고. 이게 다 우 작가님 덕분이에요.”
“맞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작품을 보는 눈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현수빈과 임정화 역시 우하루에게 아낌없이 고마움을 전했다.
아홉 시가 좀 넘어서 파티장을 나온 그.
이제 미성년자가 사라졌으니 남은 사람들은 마음껏 술을 들이부을 것이다.
“타시죠, 작가님.”
버스를 타러 가려는데 우하루를 누군가 붙잡았다.
현수빈의 매니저인 정우주였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누님께서 작가님 꼭 집에 모셔다 드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냥 가시면 저 엄청 혼납니다.”
괜히 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우하루는 현수빈의 밴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로 붐비는 늦은 저녁 강변도로.
그 찬란한 불빛들 사이로 많은 생각이 든다.
*****
이엘 퍼블리싱&콘텐츠 서인희 대표는 마냥 조카 강세영만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일단 그녀의 촬영이 끝나야 일이 되도 되는데.
정작 아직 두 주나 남았으니.
그렇다고 학교나 방송국에 무작정 진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SNS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이 친구는 아예 그런 게 없네.”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된 마당에 KTBS로 직접 연락을 해보는 게 가장 낫겠다. 어차피 공모 당선작이니 방송사도 저작권과 OSMU 관련 계약 문제도 걸려 있을 테니.’
그녀는 곧장 드라마국으로 문의를 했고, 다행히 담당자인 손민호 차장과 미팅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국내 최대 출판기업의 대표라는 네임밸류가 통했다.
“공모는 주최측마다 서로 다른 정책을 갖고 있기는 한데, 저희 같은 경우엔 OSMU도 일정 조건을 지켜주는 선에서 작가님께 전적으로 권한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우 작가님께서 이 작품을 소설이나 전자책 같은 형태로 출판을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간섭은 안 하시는 거군요.”
“네, 물론입니다. 다만, 대본으로 내는 건 안 되죠. 또한 공모 타이틀이나 우리 방송사 명의가 활용되는 건 사전협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작가님의 의사를 물어보는 게 우선이겠네요.”
“네, 맞습니다. 제가 작가님께 문의를 드리고 오케이를 하시면 연락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결국 결론은 강세영과 같은 방식.
역시 기다려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여기는 금세 피드백을 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만 벌써 몇 군데에서 연락 받았는지 모릅니다.”
“출판사에서요?”
“네. 아주 이 작품 소설 발간에 목매시는 회사들 많으시더군요. 또 다른 한 분도 지금 오신다고 했는데.”
그 때.
노크 후 미팅룸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몸을 빼꼼 들이민다.
“여기 오셨네요.”
순간.
서인희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소란해!”
“서인희, 너!”
*****
TVNT 방송국 본사.
드라마국 인력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다.
제법 삼엄한 분위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너네들 요즘 얼굴은 들고 다닐 수 있디?”
“.......”
맨 앞에 앉아 있는 원지윤 국장이 3면을 둘러싸고 있는 피디들을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낸다.
“지금 이게 현실이야. 한 때 10프로 넘는 작품을 1년에 몇 개씩 제작해내던 우리가 작년 가을부터 7프로짜리 꼴랑 하나 내고 전부 5프로 미만으로 꼬라박고 있다고.”
“.......”
“이러다 우리 다 잘려. 아니, 아예 드라마 안 만든다고 할지도 몰라. 이제 예능만 가는 거야, 그렇게 되면.”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반응이 없다.
“이번에 KTBS 애들 보고 느낀 게 없니? 단막극으로 10프로 가깝게 나왔어.”
“그, 그건 아무래도 지상파라서...”
누군가 용기를 내 반응을 해보지만.
“지금 그런 게 어디 있어. 요즘엔 주말 빼놓고 미니는 케이블이나 종편이 더 잘 나오는 경우가 많은 거 너희들도 잘 알잖아!”
사실에 근거한 반박에 금세 깨갱.
“걔들처럼 우리도 공모를 해보던지 아니면 원소스멀티유즈 적극 파 보던지!”
피디들을 둘러보며 눈을 흘기던 그가 노트북에 연결된 전면 대형 스크린을 켠다.
“너희들 이 작품 알아?”
피디들이 저마다 고개를 들고 화면을 주시한다.
거기에는 포털 사이트 네온의 웹툰 섹션이 열려 있었다.
원 국장이 그 중 한 작품을 클릭.
화면이 바뀌며 나온 웹툰의 제목이 보였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드라마 피디란 놈들이 설마 이 작품 들어본 적도 없다면 걘 자격 없는 거니까 지금 여기서 나가면 돼.”
그 말에 저마다 안다고 나선다.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거 원래 문스피아 웹소설이잖아요. 전 원작 광팬입니다!”
“모를 리가 없죠. 최근 몇 년 간 최고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 중 하나인데요.”
쥐죽은 듯 아래만 보고 있던 피디들이 아는 체를 하고.
그런 장면을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원 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작품 드라마화 추진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