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40화 (31/69)

40화. 좋은 작품은 누구나 알아보는군요

관련업계가 요동쳤다.

이미 웹툰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선두권에 서 있는 네온.

하지만 웹소설 콘텐츠에 있어서는 전문 플랫폼에 비해 다소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뒤집으려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

웹소설 콘텐츠에 있어 부동의 국내 1위 기업인 문스피아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로서 네온은 두 부문에서 경쟁자들을 완벽히 따돌릴 수 있게 됐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어권의 웹소설 플랫폼으로는 가장 많은 저자들과 회원수 및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겟픽’.

이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단번에 글로벌 마켓에 진출해 버린 것이다.

겟픽은 웹툰 섹션도 시장 3위에 올라 있기에 네온의 야심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국내와 국외에 대한 투트랙 공략에 발동을 건 네온.

웹소설과 웹툰 콘텐츠 비즈니스를 총괄 담당하고 있는 민동욱 전무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 대표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가 반색을 하며 맞이하는 사람은 바로 겟픽 창업자인 제임스 한 대표.

계약 후 첫 한국 방문이다.

그는 재미교포 2세다.

LA에서 큰 규모의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그는 명문 U.C.버클리 경영학과를 다니며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게 바로 이 겟픽이었던 것.

평소 장르문학 광이었던 그가 자신의 취미를 살려 선택한 분야였다.

당시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도 웹소설 플랫폼들이 있었지만 그는 특유의 사업 감각과 창의적인 비즈니스 전략으로 그들을 모두 앞질러 버렸다.

“부친도 함께 들어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네. 아버지께선 얼마 전부터 이미 와 계십니다.”

“아, 그러시군요. LA에서 사업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업이라고까지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레스토랑 몇 개 운영하고 계십니다.”

“아유, 그 정도면 당연히 큰 비즈니스죠.”

네온의 인수가 양자 간에 보다 호의적이고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데에는 그와 그의 아버지가 한 몫을 했다.

비록 회사의 경영권은 네온으로 넘겼지만.

제임스 한은 여전히 대표이사를 맡아 실무를 함께 수행하기로 결정이 된 상황이다.

민 전무는 그와 점심식사를 함께 한 뒤 전략 미팅을 가졌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겟픽을 인수한 목적은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접근과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과 더불어 우수한 한국 콘텐츠의 세계 진출을 추진하는 데 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많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언어와 문화적 배리어인데, 웹툰은 상대적으로 그 장벽이 좀 낮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활자체인 웹소설은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동의합니다. 작가와 작품만 있어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유능한 번역도 뒷받침되어야 하겠구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그런 인재는 나타나기 때문에 차근차근 노력해 보도록 하시죠.”

두 사람과 담당자들은 이번 계약을 기념할 만한 이벤트에 대해 논의를 했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했다.

“제 생각엔 독자들에 대한 다양한 메리트를 제공하는 혜택과 더불어 한국의 매력적인 작품을 때에 맞춰 런칭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겠죠.”

“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눈여겨보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제임스 한 대표의 말에 민 전무의 눈이 반짝인다.

“한국 웹소설 작품 중에 말이죠?”

“네.”

“혹시, 문스피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하하. 맞습니다.”

“역시 이심전심이군요. 이러니 최고의 사업 파트너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탁월하게 재미있으니까요. 게다가 스토리와 세계관에 있어서 완성도의 레벨 또한 높고요.”

그 말에 민 전무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작품에 대해선 대륙이 달라도 생각이 같구나, 하는 생각에.

“사실 그 작품이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현대판타지 장르라면 아무래도 망설였을 겁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먹힐지 확신이 안 들었을 테니까요.”

“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경과 인물 설정을 포함해 세계관 자체가 미국과 유럽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중세 판타지 물이다 보니 어서 빨리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입니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읽어 보셨군요?”

“그럼요. 당연하죠!”

“미국에서 태어나셨다면서 대단하시네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한국말만 꼭 쓰고 한국어 책을 읽게 하신 아버지 덕분이에요. 다만, 이해가 잘 안 되는 단어나 표현들도 꽤 있더군요. 그래서 전 번역은 안 되는 거죠. 하하.”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

첫 시작부터 합이 잘 맞는다.

“그 작품으로 미국에 한국 웹소설의 첫 깃발을 한 번 꼽아보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까 말이 나왔던 것처럼 번역인데...”

“이게 또 영어와 한국어에만 능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서 말이죠.”

“맞습니다. 두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작품의 세계관과 판타지 소설에 대한 지식까지 잘 알고 있어야 영어 독자들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제2의 창조를 해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방법이 있겠죠. 일단 작가님의 허락이 필요하니 그것부터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의견으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힘껏 악수를 나눴다.

*****

그 시각.

문스피아 오정민 주임은 너무나 단호한 우하루의 난색에 다소 당황해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혹시 그렇게 단호하게 반대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문스피아에서는 찬성하시나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작가님의 의견을 정확히 알아야 그쪽과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의 말에 우하루는 차분하게 거절 이유를 말했다.

“이 판타지 소설은 스토리 자체가 세계관의 비중이 크게 차지합니다. 그걸 시대와 지역을 꼬아서 변형시키면 그 맛이 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가 그럴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하루는 TVNT 측의 꼼수를 눈치 채고 있었다.

진정성이 있는 기획이 아니라 단순히 화제성에 업혀 가보려는.

게다가 사전에 어떠한 사전 접촉도 없이 찌라시를 흘렸다.

그런 행동 자체만으로도 괘씸한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그저 바이럴만을 목표로 삼는 파트너와는 일을 해봤자 좋은 과정이나 결과를 얻기 힘들 게 뻔해.’

우하루의 말을 오 주임은 금세 알아들었다.

“저도 작가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위에 보고하고 TVNT 측에도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말씀하시죠. 작가님.”

“이번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는 걸 언론에 확실하게 밝혀 주세요. 독자 분들의 혼란도 막고 쓸 데 없는 뒷이야기도 차단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작가님.”

우하루와 오 주임이 미팅을 한 다다음날.

일제히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TVNT 드라마화 사실 무근이라는 기사가 동시에 떴다.

기사만으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없었지만.

커뮤니티와 업계 내에서는 ‘에이데이’ 작가가 단칼에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에이데이’ 팬클럽 회원들은 환호했다.

“역시! 우리 작가님이 최고세요!”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게 만들어 주셨지 뭡니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유 때문 아니겠어요? 역시 ‘에이데이’ 작가님은 돈과 유명세 같은 것들만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그 중에서도 가장 흥분하며 작가에 대한 찬사를 외친 이는 다름 아닌 나중경 회장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차하면 TVNT 앞에 드러누울 생각까지 했던 ‘에이데이’의 광팬들.

이번 일로 인해 자신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스타작가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우리가 ‘에이데이’ 작가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 않습니까? 솔직히 궁금한 것도 많은데. 직접 만나보고 싶기도 하구요.”

“그렇긴 해요. 알려져 있는 게 너무 없긴 하죠.”

“문스피아 측에 작가님에 대해 좀 알려달라고 해볼까요? 우리 팬클럽 존재감도 높일 겸 말이에요.”

몇몇 회원의 호기심.

하지만 우리의 나중경 회장님은 점잖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왜죠?”

“물론 저도 궁금하긴 해요. 하지만 그 분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는 건 본인 스스로가 원하시기 때문일 거예요.”

“흠...”

“만약 작가님께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면 많은 게 알려졌겠죠.”

“그건 또 그러네요.”

“우리가 팬심을 갖는 이유는 ‘에이데이’ 작가님의 배경이나 정체 때문이 아니잖아요. 그 놀라운 작품세계와 그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 때문이죠.”

“맞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 파고들면 자칫 작가님께 큰 누가 될 지도 몰라요. 우리 이대로 순수한 팬으로서 자리를 지켜요. 때가 되면 보여주실 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나중경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 앞에서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말하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역시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건 대단한 일이야. 이렇듯 신이 나고 행복하다니.’

‘에이데이’와 ‘회서군’은 요즘 그의 유일한 낙이다.

*****

우하루는 ‘아임 유어 팬’의 소설 출간에 대한 제안서를 받았다.

보내온 출판사는 무려 열 두 곳.

대부분 낯이 익은 회사들이다.

소설을 많이 읽다보니 자주 접했던 이름들이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비록 공모 대상을 수상하고 필명으로 웹소설을 히트시키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종이책은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자신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면 보통 내가 출판사들을 찾아다니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오히려 기라성 같은 회사들이 제안서를 보내오다니.

그건 당연히 드라마의 성공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마음먹었던 대로 소설로 먼저 출간하려고 했다면 지금 이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새삼스레 강세영이 또 고마워진다.

진지하게 꼼꼼히 살펴본 제안서들.

역시나 회사의 네임밸류는 무시할 수가 없는 건가.

가장 알차고 성의 있는 건 제일 규모가 크고 평판이 좋은 두 곳이었다.

‘이엘 퍼블리싱&콘텐츠, 그리고 에스오 북스라...’

우하루는 그 중에서도 ‘이엘’에 관심이 간다.

사실 내용은 두 곳 모두 만족스럽다.

그들의 레퍼런스도 뛰어나고 출간계획이나 마케팅 전략도 알차다.

다만 좀 다른 게 있었다.

이엘은 세계적인 다국적 출판기업인 ‘빌햄 하우스’의 투자사란 것 때문이다.

“더글러스 해밍턴 회장!”

우하루는 빌햄 하우스의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

이전 삶에서 ‘오르테가의 비밀’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그와의 인연이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한국에 번역 출간된 그 책의 정보를 온라인 서점에서 찾아봤다.

역시나, 이엘 퍼블리싱&콘텐츠가 발간사였다.

“세계 시장 진출을 고려한다면 선택지는 결국...”

그 때.

스마트폰에 새로운 이메일 도착 알람이 떴다.

무심히 그걸 눌렀고.

[에이데이 작가님. 네온 콘텐츠 사업부 개발2팀 팀장 정한호입니다.]

‘회서군’ 웹툰이 네온에 연재된다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접점도 없는 회사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단 읽어나 보자고 확인한 메일의 내용에 우하루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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