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44화 (35/69)

44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에이데이 작가님께 번역 작업에 대한 원고료를 인센티브 형태로 별도 지급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저희가 직접 운영하는 웹소설 섹션의 수수료도 50프로 덜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제임스 한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역시. 통이 크신 건 제가 아니라 전무님이셨네요. 이렇게 되면 3사가 ‘에이데이’ 작가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거군요,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 작품의 성공이 곧 겟픽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테니까요!”

네 사람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전무실에 울렸다.

“자, 그럼 이제 작가님과 직접 통화를 하는 일만 남았군요.”

*****

우하루와의 첫 만남.

서인희 대표는 왠지 은근히 긴장이 된다.

그렇게도 계약을 원하던 작가와의 첫 대면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자신의 조카인 강세영의 친구라는 것도 한 몫을 하는 듯.

- 이모. 아직은 나하고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지 마.

“왜? 굳이 숨겨야 할 이유는 없잖아?”

- 숨기려는 게 아니고, 지금이 타이밍은 아닌 거 같아. 알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하긴.

일은 일이고 사적인 건 또 다른 영역이니까.

그건 나중에 같이 만나서 솔직히 말하면 될 일이다.

드디어 우하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튜브에서 본 대로 훤칠하고 멋지게 생긴 미소년.

직접 대면하니 왠지 좀 떨리는 그녀다.

“안녕하세요? 서 대표님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잠시 후 그들의 테이블엔 아메리카노 한 잔과 복숭아 맛 아이스티가 놓여졌다.

“작가님께서 혹시나 다른 곳을 선택하실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이렇게 좋은 결정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안서가 너무 알차더라구요. 가장 현실성도 있구요. 감동받았습니다.”

그녀는 직접 제안서를 작업하면서 괜스런 허풍이나 허언 따위는 남발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작가라면 그런 것쯤은 단번에 눈치 챌 게 뻔했으니까.

오직 현실적인 계획과 서로의 이익.

작품과 작가에 대한 진실성 있는 배려.

그런 것들만 충실하게 담았다.

“거기에 담긴 내용 그대로만 해주시면 저는 만족합니다. 여기...”

우하루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서 대표에게 내밀었다.

제본 한 권과 USB 한 개였다.

“이게...”

“아임 유어 팬 소설 원고입니다.”

“네? 벌써요?”

이건 뭐 번개보다 더 빠르다.

오늘 이걸 받게 될 줄은 전혀 기대하지 못한 그녀.

적어도 몇 주는 걸릴 줄 알았는데.

“제가 대본보다 소설을 먼저 써놨었어요.”

이미 강세영을 통해 서 대표가 들은 바다.

“근데 드라마를 보다보니까 좀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내용도 좀 더 다듬고 교정 검수도 다시 봤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정작 감동받는 건 저네요.”

“무슨 말씀을요. 지금 드라마 효과 보시려면 한 시라도 빨리 책을 내놓으셔야 하잖아요.”

서 대표는 자신의 조급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다소 민망하다.

이 아이, 사람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재주도 있는 건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편집자 분께서 한 번 봐 주시고 피드백 주시면 저도 다시 검토해 최종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뭐지.

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업무 스트림이란.

분명 이전에 출간이란 걸 해본 작가의 스멜인데.

“혹시 이전에 책을 내보신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번 삶에서 말이다.

“하아, 그러시군요.”

역시나 강세영의 말대로 뭔가 다르긴 다르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이 어른스럽고 의젓한 기운과 차분함.

서 대표는 자기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이 미소년이 자신의 조카 친구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셋이서 만날 때에도 왠지 반말이 잘 안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네, 말씀해 보세요.”

“그 안에 파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요? 백업 본인가요?”

“아닙니다. 다른 소설입니다.”

“다른 소설이요?”

“네. 제가 최근에 틈틈이 쓴 건데요. 읽어보시고 솔직한 평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이엘에서 출간이 가능할지도 검토해 주셨으면 하고요.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다마다요. 최대한 빠르게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서 대표로서는 반색할 일이다.

물론 글을 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그의 이름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니까.

그런데...

“혹시 추가로 드린 그 글을 출간하게 된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뭘까요, 그게?”

“다른 필명으로 내고 싶습니다.”

“다른 필명으로요?”

“네. 제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새로운 소설은 ‘아임 유어 팬 작가 우하루의 신작 발매!’라는 마케팅 이슈를 사용하기 어렵게 되는 건데...

살짝 아쉬운 서 대표.

하지만 길게 봐야 한다.

이 천재 작가와 두 작품을 계약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앞으로 그와 계속 인연을 맺어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결국 관뒀다.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약 조건은 제안해 주신 그대로면 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또렷하고 명료한 의사표현과 결정력.

아쉬운 점이라면, 뭔가 좀 친해질 수 있는 유머라든가 가벼운 농담이라든가.

그런 걸 향유하기가 힘든 진중한 분위기랄까.

‘하아. 친해지고 싶은데...’

우하루가 나간 뒤.

서인희는 한참동안 이 신선했던 만남의 여운을 좇았다.

*****

우하루는 서 대표와 미팅을 끝낸 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아침에 받은 문자.

네온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긴히 논의할 일이 있다며, 꼭 통화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상대방을 생각해 토요일을 말했지만 굳이 오늘 밤에도 괜찮다고 하기에 그 시간에 맞춰 귀가를 한 것.

‘결국 내가 그 사람들 야근하게 만든 건가? 좀 미안하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학생인 걸 아니까.

충분히 이해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서둘러 들어왔더니 시간이 좀 남는다.

그는 새로 집필을 시작한 소설의 파일을 열어 다음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웹소설이 아닌 장르소설이다.

그가 지난 삶에서 가장 관심이 많았던 분야.

바로 추리 스릴러물이다.

금세 작업에 빠져든 그.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에이데이’ 작가님이시죠?

“네, 맞습니다만.”

- 안녕하십니까? 저는 네온 콘텐츠사업부를 담당하고 있는 민동욱 전무입니다.

‘전무’라고?

이 정도면 꽤 높은 직급인데.

이게 그렇게 큰 건인가.

“네, 안녕하세요? 에이데이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삼발이 컨퍼런스콜 장비로 연결된 이 통화에는 겟픽 대표와 문스피아 팀장까지 포함해 총 네 명이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다.

무슨 원격 회의를 진행하는 모양새다.

‘내가 무슨 제이케이 롤링이나 일론 머스크도 아니고.’

잠시의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곧바로 본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만났던 정 팀장이 후보자들의 번역본 검증 결과를 말해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결국 원작자가 직접 번역을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민 전무의 말이 뒤따랐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우하루로서는 원하던 바였다.

이러라고 자신이 직접 번역한 버전을 보냈던 거니까.

그들은 ‘에이데이’ 작가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 직접 번역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억양과 톤에서 그들이 꽤 긴장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우하루는 좀 재미가 있어서 괜스레 한 번 템포를 건너뛰며 고민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뒤, 답을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에 민 전무의 회의실에서는 ‘예스!’ 소리가 작게 울렸다.

너무 호들갑 떠는 소리가 송신되면 민망하니까 최대한 절제하면서 그들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감사합니다. 뜻을 같이 해주셔서.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네 사람의 풀어졌던 긴장이 다시 조여졌다.

- 조건이라면...

“제가 직접 업로드하겠습니다. 별도 피디 분이나 편집자 분의 검수 안 거쳤으면 합니다.”

우하루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한 다리 거치는 건 너무 번거롭고 불편하며 불안하다.

이번 검증에서도 확인됐지만, 자신보다 더 제대로 검수를 해낼 수 있는 작가나 번역가가 과연 주위에 있을까, 하는 생각.

그건 합당한 판단이었다.

게다가, 우하루 자신이 능력이 없다면야 모를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잠시 전화기 너머로 상의를 하는 듯한 웅성거림이 작게 일었고.

그리고 곧 답이 돌아왔다.

- 저희는 좋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게 여러모로 더 편합니다. 연참 이벤트나 연재 텀 조절이 필요할 때 따로 연락만 주시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하하, 잘 알겠습니다. 작가님께서 노력해 주시는 그 성의에 저희가 최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 마련한 베네핏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민 전무는 아까 회의를 거쳐 확정한 내용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우하루는 속으로 놀랐다.

그렇게까지 해줄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흠, 왠지 저 사람들 마음에 드는데.’

갑자기 자신이 속물처럼 느껴져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물론 상대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 어떠세요?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은 지원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에이, 나쁘지 않기는.

매우, 아주 매우 좋은데.

입가에 떠오르던 웃음을 재빨리 가다듬은 우하루는 혹시나 너무 가벼운 말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며 답했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신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 하하, 감동하실 것까지야. 흔쾌히 호응해 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비록 서로 떨어져 있지만 흐뭇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오고간다.

- 작가님, 외람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요.

“혹시 펑크라도 날까 우려하시는 거죠?”

귀신이다.

사람 마음 읽는 재능도 있나.

제임스 한 대표가 넋 놓고 있다가 움찔했다.

- 하하, 네. 한국 연재에 겟픽 연재까지, 거기다 학생이시니 학교를 다니시면서 그게 다 가능하실지...

“일단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현재 문스피아에 연재하는 본편은 현재 50화 이상 비축이 쌓여 있습니다.”

- 아, 네...

민 전무의 방에 있는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라이브로 연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50화 이상을 벌써 써 놨다니...

“그리고 영어 번역은 오히려 더 쉽습니다.”

- 네? 그럴 리가요.

“어차피 내용 써 놓은 거 다른 언어로 옮기는 거잖아요. 가장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건 아이디어 구상하고 글을 구성하는 단계입니다. 타이핑은 거들 뿐이죠.”

아무래도 오늘 누군가의 턱이 고장 날 모양이다.

우하루의 말을 듣고 있던 네 명의 입이 벌어진 채 다물어질 생각이 전혀 없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번역은 한 화 새로 쓰는 거에 3분의 1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러니 펑크나 오류에 대한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호쾌하게 단언하는 우하루.

너무 시원해서 속에 사이다를 들이붓는 느낌이다.

이런 작가가 어디 있을까.

- 하하, 알겠습니다. 작가님. 그렇게 자신이 있으시니 저희가 너무 든든하고 좋습니다.

“계약은 굳이 만나서 할 필요 없겠죠? 제가 여러모로 좀 불편해서요.”

- 네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굳이 대면 계약 필요 없죠. 이미 문스피아에 정보가 들어있으니 전자계약으로 하면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들 아쉬워하는 분위기.

특히 제임스 한 대표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 괴물 작가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감사합니다. 그럼 정확한 런칭 일자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전화를 끊은 우하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태연하게 주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야근을 끝내고 오시면 드실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하루의 첫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이엘 퍼블리싱&콘텐츠의 서인희 대표는 ‘아임 유어 팬’ 소설의 마케팅에 사활을 걸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릴 것 없이 광고홍보를 공격적으로 진행했고.

드라마를 방영한 KTBS와 연계해 공동 홍보도 전개했다.

우하루의 번개 같은 원고 완성.

그리고 서 대표의 처절한 시간과의 싸움.

그 덕분에 드라마의 화제성이 아직 식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이 출간될 수 있었다.

다시금 장작은 활활 불타올랐고.

KTBS는 비록 평일 늦은 밤이었지만 때를 맞춰 재방송을 다시 한 번 송출했다.

그런 노력들의 결과였을까.

대중들 사이에서 다시금 ‘아임 유어 팬’이라는 작품이 이슈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다녀올게요, 엄마.”

“그래, 오늘 잘 하고 와. 우리 하루!”

책이 출간된 지 3일째.

우하루는 국내 최대 서점에서 팬사인회를 가진다.

처음 경험해보는 이벤트.

하지만 드라마 제작발표회와 방송사 인터뷰까지 가졌던 탓인지 전혀 긴장감이나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헤어스타일도 다듬은 그.

서인희 대표가 픽업을 하러 온다고 하는 걸 극구 만류하고서는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이용해 시내 중심가 서점으로 향했다.

해당 역에 내리자 초여름의 화창한 저녁 공기가 그의 폐부로 스며들었다.

‘하아, 기분 좋네.’

상쾌한 느낌.

그 사이 길어진 해는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분주한 거리를 비추고 있다.

우하루는 천천히 서점으로 들어갔다.

조금 여유 있게 출발해서인지 행사 시간이 꽤 남은 시각.

그런데 서점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그는 안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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