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45화 (36/69)

45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어

비록 중심가에 있는 곳이지만 보통 이 시간에 이 정도로 붐비지는 않는데.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그 곳.

심지어 중앙 옆 통로 쪽으로는 줄 같은 게 길게 서 있는 장면도 보였다.

‘뭐야, 무슨 다른 행사라도 있나?’

혹시 유명 셀럽의 강의라도 있는 건가하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 때.

우하루는 누군가 자신의 팔을 낚아채는 게 느껴졌다.

“작가님.”

옆에 바짝 다가와 작게 부르는 소리.

바로 서인희 대표였다.

“어서 이리로 오세요.”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향한 그.

서점 벽에 있는 웬 문 안으로 들어간다.

‘STAFF ONLY’라고 쓰여 있는 공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오늘따라?”

“왜 많긴요. 작가님 때문이죠.”

“저요?”

“네. 오늘 팬사인회 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물론이죠. 근데 와 보니까...설마 진짜로 저 때문에...”

그제야 저 인파가 자신 때문이란 걸 알아챈 우하루.

정작 본인은 그 광경을 보고 무슨 이유인가 궁금해 했으니.

조금 웃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어떤 작가님 사인회 하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소소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던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구석에서 열 예닐곱 분 정도 간단히 사인해 드리고 사진 촬영 함께 해드리면 될 줄 알았던 그다.

“사실 서점 측도 그렇고 저희도 놀라고 있는 상황이에요.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오셨거든요. 지금 벽 쪽으로 줄이 쫙 서 있어요. 기자들도 꽤 와 있구요.”

“저는 정말 이 정도일 줄은 상상 못했어요. 썰렁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그럴 일은 애초에 없었죠. ‘아임 유어 팬’이 얼마나 센세이셔널 했는데요. 참, 그리고 좋은 소식 한 가지 더!”

“?”

“이 서점 체인 종합 집계에서 드디어 국내소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작가님 소설이요!”

출간한지 며칠도 안 돼 달성한 놀라운 성과다.

드라마로 인해 워낙 화제가 되었었던 데다 최연소 공모 대상 수상의 기록으로 인해 우하루의 이름이 알려진 게 아무래도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서 대표의 마케팅 푸시력도 큰 영향을 발휘했겠지만.

온라인 서점에는 호평의 후기들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도 너무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봤지만, 소설이 더 재미있어요! 꼭 보세요!]

[시간적 제약 때문인지 드라마에서 빠진 내용들이 소설에는 다 들어가 있네요. 보신 분도 또 보시는 것 강추합니다.]

[또 울었습니다. 나를 울보로 만드는 작가님, 미워요.]

[전 드라마를 아직 못 봤어요. 남편이 사온 이 책을 봤는데 정말 미친 듯 몰두해서 한 번에 다 읽었어요. 작가님, 사랑합니다.]

[드라마를 소설로 각색한 게 아니라 소설이 먼저였군요. 역시, 그래서 그런지 못지않게, 아니 더 빠져들었습니다. 최고의 소설입니다!]

더불어 평점은 최고 수준.

이제 ‘아임 유어 팬’은 드라마 못지않게 소설 자체로서도 독자들에게 큰 주목과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중이다.

이런 결과에 우하루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 진심으로 기쁘고 흥분이 된다.

“축하드려요, 작가님!”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게 다 대표님과 회사 직원 분들이 책을 잘 만들어 주신 덕분이죠.”

“지금 우리 회사 축제 분위기에요. 두 작품이나...아니, 하여튼. 정말 소설에서 간만에 큰 히트작이 나온 거라서요, 호호.”

서 대표가 이엘 퍼블리싱&콘텐츠에 대표이사로 부임하고서 첫 성과다.

주주와 이사회에 의해 선출된 CEO는 실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본인도 뭔가 빨리 해내고 싶은 의욕에 조급한 건 당연한 이치.

그래서 가시적인 첫 성과를 내기 위해 피치를 올리는데.

서 대표는 벌써 자신의 손으로 큰 건을 하나 해냈으니.

임원들이나 직원들에게도 면이 설 뿐 아니라 수장으로서의 자리도 굳건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낸 셈이다.

당연히 그녀로서는 옆에 있는 우하루가 예뻐 죽을 지경이다.

잠시 후.

약속된 팬사인회 시간이 되어 우하루가 서점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함성.

오늘 이벤트를 몰랐던 방문객들도 덩달아 가세를 했다.

“작가님! 잘 생겼어요!”

가장 먼저 나온 말.

“멋져요!”

“우하루 작가님, 여기요!”

사인을 받으면서 찍어도 될 것을.

줄 선 채 먼저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그들.

흡사 스타들의 팬사인회 못지않은 열기다.

기자들도 방해가 되지 않게 옆 쪽에서 플래시를 터뜨린다.

쉽게 들뜨거나 흥분하지 않는 우하루도 자신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하며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은 그.

한 분 한 분에게 책에 사인을 해드리고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신 분들은 정말 남녀노소 정말 다양했다.

심지어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온 독자도 있었다.

그 정도면 그냥 일반 독자를 넘어서 ‘팬’이라고 해야 할 듯.

“드라마도 너무 잘 봤는데 소설로 읽으니까 또 다른 감동이 있어요. 진짜 작가님 너무 존경해요!”

이런 또래 아이들부터.

“어머니께서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이 작품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작가님 효자라고 알려졌는데 그런 진심에서 나온 소설 같아서 나 이거 평생 간직하려고요.”

이렇게 마음을 찡하게 하는 중년 독자에다가.

“우리 손자하고 동갑인데. 이렇게 어리고 예쁜 학생이 어찌 이렇게 좋은 소설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 수가 있을까. 오래오래 좋은 작품 많이 내줘요. 앞으로도 작가님 책은 꼭 읽을 거니까.”

기특하고 대견해함을 숨기지 못하시는 어르신들까지.

우하루는 첫 팬사인회에서 격려와 감동, 그리고 무한대의 에너지를 듬뿍 받고 돌아왔다.

*****

“여보, 도대체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4화는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제임스 한 대표의 아내 벨라가 남편을 다그친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가 언제인데.

그녀는 한국에서 읽은 그 소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란 호기심과 궁금증, 기대감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벨라는 그 작품에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느꼈다.

그러니 쉽게 포기하거나 잊을 수가 없는 것.

“조금만 참아. 이제 런칭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자꾸 기다리라고 하니까 애가 타네. 사람 안달 나게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니까.”

“그렇게 재미있었어?”

“당연하지. 오랜만에 흠뻑 빠져드는 정통 판타지 소설인데다 우리 집안의 뿌리인 북유럽이 배경이다 보니 더 그런 거 같아.”

“미국 독자들도 그런 반응이었으면 좋겠다.”

“자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내 촉이 좀 좋거든.”

벨라는 지극히 확신을 한다.

자신을 매료시킨 그 작품이 영어권에서도 분명 통할 거란 걸.

남편도 큰 이견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

미국은 소설 시장의 주류 장르가 다양한 편이다.

SF,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할리퀸, 추리, 역사, 팬픽 등등.

이게 웹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판타지와 판타지를 중심으로 스포츠와 대역 정도가 강세를 보이는 한국과 상황이 좀 다른 것이다.

그나마 ‘판타지’가 영어권에서도 인기 있는 장르이긴 해도 세부 분류로 들어가 보면 미묘한 차이점이 또 있다.

그렇기에 ‘회서군’이란 선수가 과연 이 필드의 차이점을 얼마나 극복해낼 수 있을지가 우려되는 바다.

다행이라면, 이 작품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지극히 익숙한 정통 판타지라는 것과 원작자이자 번역자인 ‘에이데이’의 실력을 믿을 수 있다는 점이다.

‘K-Novel이 케이팝과 케이드라마에 이어 또 하나의 바람을 일으켜 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미국 웹소설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작품의 성공적 런칭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직접 진두지휘 중이다.

“예정일에 맞춰 차질 없이 오픈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더불어 관련 프로모션도 확실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세요.”

“빈틈없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표이사실로 돌아온 그.

새로운 이메일 도착 알람에 확인하고서는 반색을 한다.

“에이데이 작가님!”

민 전무를 비롯해 자신과 문스피아 팀장에게 동시에 보낸 편지.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1화부터 25화까지 예정된 오픈 일자에 맞춰 예약 업로드해 놓았습니다. 런칭 전까지 25화 더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메시지를 읽은 그는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이 정도면 거의 광속 급이네. 최대한 5화에서 10화 정도면 충분하다고, 무리 안 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는 곧장 관리자모드로 진입해서 업로드된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미친 듯 궁금했거든.’

정신없이 보면서 드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비록 그녀에게도 이런 식으로 보여줄 수는 있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업무 권한을 이용해 가족들에게 혜택을 줄 수는 없는 법.

‘자기야. 미안하지만 런칭되면 그 때 봐. 나 먼저 볼 테니까.’

금세 소설에 빠져든 그.

4화부터 25화까지 읽으면서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한참 후.

침도 거의 삼키지 않은 채 작품에 몰입한 그가 허리를 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후우...”

괜스레 한숨이 나온다.

독자의 입장에서 내용과 재미를 느끼며 읽은 것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번역의 퀄리티도 어느 정도 체크해가면서 봤는데.

“정말 이건 미친 거야.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글 꽤나 쓸 줄 안다는 나잖아. 그런데 그런 나보다도 수준이 더 높아. 지금 미국에서 쓰는 표현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고. 게다가 판타지 소설에서 쓰이는 특징적인 단어와 이디엄들까지. 이건 도대체...”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니, 그냥 경이롭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짜릿하게 느낀 건.

“젠장, 무엇보다 존나 재미있잖아!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해!”

창 밖 풍경 쪽으로 몸을 돌린 그가 갑자기 실실 웃기 시작했다.

*****

요즘 우하루는 학교에서 쉴 틈이 없다.

밀려드는 사인 요청 때문이다.

‘아임 유어 팬’이 소설로 출간된 후 며칠 사이에 반 아이들 모두가 책을 들고서 그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찾아왔다.

아, 한 사람만 빼고.

“부담되게 나 때문에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네가 우리 반이라서 의무감에 산 거 아니야. 진짜 읽어보고 싶고 배울 것도 있을 것 같아서 구입한 거야. 그러니 너야말로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맙다.”

“우리가 오히려 고맙지. 책 저자가 바로 여기 있어주니까.”

은근히 울컥하게 만드는 급우들.

얼마나 착한 마음씨의 친구들인가.

우하루는 그들이 내민 책에 정성을 다해 사인을 해주고 고마움의 메시지까지 일일이 적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다른 반 아이들까지 찾아왔다.

그러니 쉴 틈이 적어졌다.

그래도 마음은 너무 풍족하고 행복한 우하루.

“너 팔 아프겠다. 오늘도 열심히 해주더라.”

방과 후 아지트.

강세영이 우하루의 손목을 걱정한다.

“아프겠냐. 그 책 하나하나가 돈인데. 할 때마다 얼마나 아드레날린이 뿜뿜 나오겠어.”

우하루 대신 엄한 윤준환이 나선다.

가만 보니 은근히 질투를 하는 낌새다.

그래도 그렇지, 말이 좀 그러네.

“부러우면 너도 베스트셀러 하나 내면 되지.”

“세영아, 내가 몰라서 이러고 있겠니. 아직은 능력이 안 되니까 그러지. 두고 봐. 내가 문창과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서 하루 못지않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세상에 짠 하고 내놓을 테니까.”

“제발 좀!”

다들 그의 투지에 격려를 보내던 와중.

가만히 폰으로 뭔가 보고 있던 오지윤이 살짝 흥분을 한다.

“이 인간 또 이런 글을 올렸네. 미친.”

그러자 다들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왜? 무슨 일 있어? 누가 뭘 올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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