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46화 (37/69)

46화. 에이데이 러버

“피진구란 컬럼니스트 있잖아.”

“또 그 사람이야?”

다들 질색하는 분위기.

처음이 아닌 듯하다.

“그 작자가 오늘도 SNS에 글을 올렸는데 커뮤니티에서 그걸 갖고들 설왕설래야.”

“뭐라 했는데?”

“저번하고 비슷한 맥락이지 뭐. ‘아임 유어 팬’이 순수문학적 가치가 빈약하다는 거야. 깊은 심리묘사와 은유 없이 통속적 감정소모만 유발해 자극적 감동만 추구했다면서.”

“또 그 소리야? 미친 인간 아니니, 진짜? 그런 이야기를 지금 왜 또 하는데?”

강세영이 분개한다.

“그냥 놔 둬. 그러다 말겠지.”

하지만 정작 우하루는 별반 동요 없는 기색.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띤 채 입만 삐죽거리고 만다.

누가 보면 제 3자인 줄 알 정도로 태연한 모습이다.

“그러다 말지를 않으니까 그러는 거잖아. 하루, 넌 기분도 안 나빠?”

“그냥 관종이잖아. 일일이 대꾸하고 반응할 필요 없어.”

“그렇긴 하지만 얼마 전엔 너를 직접 걸고 넘어졌잖아.”

그녀의 말대로 피진구는 칼럼에서 우하루를 직접 겨냥했었다.

[그 나이또래에서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문학적 기본 소양도 부족하고 등단도 하지 못한 한 학생이 어디에선가 들었을 법한 스토리를 가져와 한 번 주목을 받았다고 천재적 작가가 탄생했다느니 우리 소설계의 유망주라느니 하는 걸 들으면 어이가 없다.]

그 아래로도 내용은 이어져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하루와 그의 작품을 싸잡아 평가절하 하는 논조였다.

윤준환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말로는 순수문학이 어쩌고저쩌고 입에 달고 살면서 오히려 그걸 도구로 삼는 인간이야. 타깃으로 삼는 작가나 작품 봐봐. 전부 히트작과 성공한 작가들이라니까.”

“그게, 어그로 끌어서 돈벌이 하려면 그래야 하거든. 먹이 주는 기자들도 문제고.”

“맞아. 이번에도 드라마 끝나고 열기가 좀 누그러지는 것 같을 때에는 가만있다가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를 하니까 또 건수 하나 잡아보려고 저러는 거야.”

모두들 답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이 정도 되면 어느새 이 아지트에서 유명 인사가 된 듯하다.

“오늘은 심지어 방송사 공모 수준이 낮아졌다느니 장르소설도 모자라 웹소설 같은 쓰레기가 나와 문학계의 가치와 수준이 훼손당한다느니, 이런 말도 올렸더라.”

오지윤의 말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아이들.

헛웃음이 절로 터진다.

엄한 ‘에이데이’와 ‘윤스펙터클’은 가만있다가 저격당한 셈이다.

“이젠 아주 대대적으로 싸움을 붙일 모양인가 보네. 허 참.”

‘자칭’ 문학비평 칼럼니스트 피진구.

정작 소설이라고는 한 편도 내 본 적 없고 국문학이나 영문학 전공자도 아니다.

지금은 쫓겨난 일간지에서 그럭저럭 기자생활을 하던 그.

우연히 베스트셀러의 비평 기사를 하나 썼다가 그게 나름 이슈가 되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누군가의 질투와 시샘을 자극하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혹세무민의 정신에 철저히 입각한 새로운 인간군상으로 거듭났다.

직장을 잃은 후 그런 기조 하에 컨셉을 잡은 게 바로 ‘문학비평 칼럼니스트’.

윤준환의 말대로 그는 논란이 될 ‘꺼리’만 노린다.

그래야 사람들이 주목하고 하나라도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니까.

기자들이 잘 받아주는 건 예전의 인맥과 그의 비굴한 접대질 덕분일 뿐.

우하루와 ‘아임 유어 팬’도 큰 인기를 끌다보니 그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이었다.

대단한 먹잇감이 될 거라 판단을 했을 터.

“그러면서 웃긴 건, ‘강소울’이란 작가에 대해서는 엄청 칭찬을 하는 거야. 거의 찬사 수준이더라고.”

“강소울? 그게 누군데?”

“세영이 너, 하루 소설 바로 턱 밑 2위까지 치고 올라온 소설 몰라? ‘무죄의 자격’. 그 저자야.”

윤준환이 아는 척을 한다.

“아! 그거? 알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평점 완전 좋던데.”

“하루 소설은 열라 까면서 그 소설은 순문의 정점이라고 치켜세우더라. 탁월한 관조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는 동시에 사회적 곪음까지 건드린 수작이래나 뭐래나. 그런 작품이야말로 1위의 가치가 있다면서 천재란 이름은 바로 이런 작품을 쓴 사람한테 주어져야 한대.”

무심코 말을 다 뱉어내고 나서 아차 싶은지 우하루의 눈치를 살피는 오지윤.

굳이 그런 시시콜콜한 발언까지 다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기분이 나쁠 텐데.

섣불렀다며 자신을 자책한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려는 그녀.

“하루야, 미안해. 내가 괜한 소리를...”

줄곧 노트북에 시선을 꽂고 있던 우하루가 고개를 들었다.

걱정과는 달리 너무도 평안해 보이는 그의 얼굴.

부드러운 시선을 확인하자 비로소 오지윤은 속으로 안도했다.

“지윤아,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그렇게 생각하지 마.”

“하아, 그래도...”

“얘들아.”

따스한 목소리로 친구들을 부르는 그.

“응?”

“누누이 말했지만, 어느 분야든 그런 종자들은 있기 마련이야. 나대신 분개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더 이상 신경 쓰지 마. 난 진짜 관심 안 가거든.”

“그래. 알았어.”

“나도 안 그러는데 괜히 너희들이 그런 감정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내 마음이 편치 않아.”

“하루 네가 멘탈이 이렇게 강하니까 우리가 든든하다. 이제 진짜 신경 안 쓸게.”

“고맙다.”

잠시 뭔가 고민하는 듯하던 우하루.

이내 노트북을 옆에 차분하게 내려놓으며 친구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얘들아. 사실은 말이야...”

*****

드디어 겟픽의 리뉴얼 오픈일이 다가왔다.

이는 동시에 우하루의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영문판이 미 대륙에 발을 딛는 순간이 도래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민 전무와 제임스 한 대표는 겟픽을 한국의 웹소설 플랫폼 사이트의 운영 체계와 유사하게 바꿨다.

기존에는 각 장르별 분류가 강조되었었던 반면.

새롭게 변화된 인터페이스에서는 통합 순위를 중심으로 해서 보다 역동적이고 직관적으로 인기 작품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더불어 유료회차를 구매하려면 일정 금액을 결제해서 ‘픽토큰’으로 적립한 후 편수마다 지불을 하면 된다.

“이번 개편의 성공 여부는 새롭게 올라오는 작품들이 얼마나 인기를 끌어 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기대주는 바로 우하루의 작품.

과연 한국의 메가히트작이 미국 독자들의 눈을 얼마나 사로잡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제임스 한 대표를 비롯한 겟픽 직원들은 모두 긴장에 또 긴장.

“하아...”

그의 입에서 저절로 심호흡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리뉴얼 목표일 자정이 되는 순간.

겟픽의 리뉴얼된 버전이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동시에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가 미국 웹소설 시장에 공식 데뷔를 했다.

“대표님, 아무 이상 없이 완벽하게 리런칭 됐습니다!”

“좋습니다. 모두들 고생 많이 했습니다!”

회사 안에 자축의 박수 소리가 울렸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제임스 한 대표로부터 서울의 네온 민 전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전무님. 성공적으로 오픈됐습니다! 버그도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고요.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표님.”

- 전무님께서 신경 써주시고 배려해주신 덕분이죠.

“변경된 인터페이스에 대한 유저 반응은 좀 더 두고 봐야겠죠?”

- 네. 일단 이삼 일 정도 뒤면 어느 정도 추정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도 역시...”

- 하하, 네. 당연히 좀 지켜봐야 합니다.

“이 작품이 독자를 얼마나 끌어주느냐에 따라 이번 우리 프로젝트의 향방이 결정될 텐데 말이죠.”

- 최선을 다했으니까 기다려 보시죠. 일단 확실한 건, 작품 자체는 정말 최고란 점입니다. ‘에이데이’ 작가님의 번역, 정말 완벽합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 모두가 감탄했으니까 할 말 다 한 거죠.

겟픽의 직원들은 대부분 젊은 미국인들.

그들의 평가가 그렇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정말 그 정도인가요?”

- 네. 조금 전에 와이프한테서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오픈되자마자 미친 듯이 그 소설 읽고 있다고요. 너무 보고 싶어 했거든요.

“하하, 인내하시느라 그 동안 고생하셨겠군요.”

- 벨라의 소설 선호 취향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저 정도로 열광한다는 건 미국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시그널입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한 번 진득하니 지켜봅시다!”

막대한 투자비용을 부담하면서 인수한 영어권 웹소설 사이트.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초반 성패여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바로 ‘에이데이’와 ‘회서군’.

네온과 겟픽 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둘에 집중돼 있었다.

*****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매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사실 다른 플랫폼에 풀리는 걸 감안하더라도 연독은 떨어지기 마련이라 장기적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줄어드는 게 이치인데.

이 작품은 그런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중이다.

‘이번 달은 유난히 많이 늘어났네.’

전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 한 작품.

그 매출이 우상향 중이라니.

윤준현이 이 사실을 알면 또 한 번 좌절하고 부러워할 일이다.

“아! 이렇게 이벤트를 빵빵하게 해주니까.”

겟픽의 영문판 런칭을 앞두고 한국 문스피아와 네온 사이트에서도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높은 구매율이 더 튀었다.

토요일이라 쉬는 날.

오전에 새로운 작품을 조금 쓴 뒤 회서군을 한 화 더 집필했다.

그리고 나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집을 나서는 우하루.

프로모션과 관련해 문스피아 오정민 피디가 미팅을 요청하는 바람에 그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하는 것이다.

“이 분은 토요일에 안 쉬나?”

결국 학생인 자신의 시간에 맞추기 위함임을 잘 아는 그.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왔는데, 그 이유는 근처 서점을 들르기 위해서였다.

며칠간 베스트셀러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서점에 가는 게 워낙 습관이다 보니.

책 속에 파묻히면 늘 마음이 편안하니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가기도 한다.

‘흠. 아직도 1위군.’

중소 규모의 지역 서점인데도 베스트셀러 코너는 잘 분류가 되어 있다.

국내소설 섹션의 맨 앞자리를 점하고 있는 ‘아임 유어 팬’.

그가 흐뭇한 미소를 띤 채 바로 옆에 있는 ‘무죄의 자격’을 집어 들었다.

피진구가 언급했다는 그 소설.

역시나 2위 자리를 유지 중이다.

잠시 서서 그 책을 죽 훑어보고 있는데.

“어머. 혹시, 우하루 작가님...아니세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바로 그 서점 여직원 분이 얼굴을 알아본 거다.

“네? 아...네.”

당황스럽지만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라고 거짓말 해봐야 요즘 세상에 괜히 커뮤니티에 이상한 경험담이라도 올라오면 난감한 일이니.

활짝 웃으며 답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 조용히 둘이 인사만 하고 끝났으면 되었을 텐데.

“저 너무 팬이에요, 작가님! 이 근처에 사시는 거였어요? 어머, 신기해라. 진짜 잘 생기셨어요! 저도 작가님 책 샀는데, 잠시만요. 사인 좀 해주세요!”

흥분한 나머지 큰 소리로 동네방네 우하루의 존재를 알려버린 그녀.

결국 주위에 있던 손님들 중 또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어느새 예정에 전혀 없던 게릴라 즉석 팬사인회가 되어 버렸다.

한참을 서점에 묶여 있던 우하루.

약속시간이 되어 그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휴우...”

방송에 두어 번 얼굴을 비쳤는데도 이 정도인데.

연예인들은 정말 편하게 아무 데나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착한 약속장소에는 오 피디가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업무에 관한 미팅을 진행했다.

몇 가지 온오프라인 프로모션에 관한 내용과, 놀랍게도 게임과 관련된 업체로부터 들어온 제안에 대해 논의를 했다.

“메가히트작이다보니 게임 업체 몇 곳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락을 주셨어요.”

역시 콘텐츠 업계의 화두는 OSMU,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인 듯하다.

회서군의 경우 이미 웹툰화가 되었으니.

그 다음은 또 어떤 영역이 되려는지.

“마지막으로, 혹시 작가님 팬클럽 만들어진 건 알고 계세요?”

“제 팬클럽이요?”

언뜻 들어본 거 같기도 하지만.

전혀 관심 밖이라...

“벌써 천 명이 넘어요. 물론 그 중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은 수십 명 정도인 듯한데. 자, 여기 한 번 보시겠어요?”

오 피디가 노트북 화면을 돌려 우하루에게 보여준다.

네온의 온라인 카페에 둥지를 튼 그의 팬카페.

이름은 '에이데이 러버', 슬로건은 '에브리데이, 에이데이'였다.

“저도 가입을 해 놨거든요. 이 분들이 오프에서 모임도 하시더라구요.”

“그래요?”

“네. 저번에는 팬클럽 회장도 투표로 뽑으셨어요. 운영진 모임 사진이 있었는데, 어디 보자...”

그가 몇 곳을 뒤지더니 이내 찾아낸 모양이다.

“아, 여기 있네요. 자, 이 분들입니다.”

오 피디가 가리키는 팬클럽 회장과 임원진 사진.

해맑게 웃는 그들의 얼굴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우하루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

“오우, 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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