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47화 (38/69)

47화. 한 번 열심히 해 봐

정말 상상도 못했던 얼굴.

거기에 그 낯이 딱 박혀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쳐다보다 그걸 발견한 우하루.

그로서는 당연히 화들짝 놀랠 수밖에.

“왜...그러세요, 작가님?”

당황하기는 오 피디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데이’ 작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거니까.

“네? 아, 아닙니다.”

우하루는 재빨리 평정을 되찾았다.

“저 같은 사람한테 이렇게 열정적인 팬클럽과 팬 분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서요. 그래서 좀 놀랐네요.”

“에이, 작가님도 참. 뭐 이런 정도 갖고 그러세요. 솔직히 지금 한국 최고의 인기 소설 작가님이신데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하여튼 너무 겸손하셔서 탈이라니까요.”

다시 봐도 나중경이 맞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장착한 그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으니.

‘도대체, 니가 왜 거기서 나오냐고.’

이 제목의 노래가 인기를 왜 끌었는지 이해가 간다.

갑자기 심경이 복잡해진다.

“팬클럽 회장이란 사람이 작가님하고 거의 동년배인 것 같더라고요. 주도적으로 창립한 바로 장본인이래요.”

“그렇군요.”

“작가님 작품도 작품이지만 ‘에이데이’에 완전 열광하는, 이른바 ‘덕후’ 수준이랍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신이 그리도 미친 듯 따르는 우상 같은 존재가 막상 자신이 학교에서 가장 싫어하고 증오해 마지않는 대상이란 걸 알게 되면...

과연 그는 어떤 기분일까.

어떤 종류이든 정신적 충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우리 회사에 이 분이 막 연락을 해 와요.”

“네? 왜요?”

“작가님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없잖아요. 완벽하게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보니 궁금한 거겠죠. 뭐라도 좀 알려달라고요.”

“절대! 절대 안 됩니다.”

“아우, 당연하죠. 지금까지도 철저히 비밀을 지켜 왔잖습니까.”

“그대로, 계속 그대로만 해주세요.”

우하루로서도 후폭풍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오 피디에게 기밀 유지에 대해 신신당부를 재차 거듭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작가님의 그 신비주의 전략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신대로 때가 될 때까지 완벽하게 시크릿 보장, 믿으셔도 됩니다. 하하.”

집으로 돌아오는 우하루는 한참동안 기분이 얼떨떨했다.

학교에서 같은 조 아이들을 모아놓고 ‘회서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얼핏 들은 적은 있었다.

나름 기분이 나쁘진 않았었는데.

‘팬클럽 만든 것도 모자라, 거기다 회장이라고? 허,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

미국 뉴욕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어느 사립학교 교정.

헐리우드의 신성으로 떠오른 열여섯 살 여배우 캐더린 해링턴이 그녀의 절친 에밀리아와 수다를 떨고 있다.

카메라와 군중 앞에서는 월드스타이자 인플루언서로서의 카리스마를 장착하는 그녀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면 한없이 앳되고 장난기 많은 10대 소녀로 돌아간다.

“케이트. ‘오르테가의 비밀’ 촬영은 다 끝난 거야?”

“응. 근데 이제 후시녹음이 꽤 남아있어.”

“그럼 또 당분간 안 나오는 거야?”

“아니. 띄엄띄엄 있어. 내일도 있고.”

“그렇구나. 오히려 더 정신없겠다.”

그 때 멀쑥하게 생긴 남학생이 다가오며 그들에게 반색을 한다.

“케이트! 오랜만이야!”

“안녕, 카일!”

“학교 복귀 환영한다. 이제 자주 볼 수 있는 거야?”

“응. 당분간은 그럴 거 같아.”

“잘 됐다! 너 없으니까 학교가 텅 빈 거 같더라니까.”

“호호,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말 하시지.”

어째 분위기가 강세영과 친구들과 비슷하다.

세계 어딜 가나 학생 스타들의 주변 상황은 유사한 면이 있나보다.

“마침 잘 됐다. 나 칭찬 좀 해주라.”

“뭔데?”

“나, 이 책 사서 다 읽었다! 역시 소설도 너무 재미있더라.”

그가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는 책.

바로 그녀가 출연한 ‘오르테가의 비밀’이다.

“어유, 이건 진짜 잘 했네. 드디어 네가 책을 다 읽을 줄 알고. 기특하다. 맨날 교과서는 내팽개치고 너튜브하고 SNS에만 푹 빠져 살더니.”

“그렇지 않아도 자꾸 그러니까 난독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나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구.”

“좋아. 칭찬해.”

“마침 이거 다 읽었는데, 혹시 또 다른 작품 소개시켜 줄 거 없어? 너희들 소설 엄청 좋아하잖아. 아무래도 나 맛 들였나 봐.”

그의 말에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는 에밀리아.

그녀가 두 사람에게 자신의 태블릿을 열어 보인다.

“이거 한 번 봐봐.”

“이게 뭔데?”

화면에 떠 있는 건 웬 웹사이트.

바로 ‘겟픽’이었다.

“웹소설 사이트야.”

“웹소설? 아, 이거 그 전자책 같은 거지?”

“전자책은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는 거고, 이건 웹사이트에서 바로 읽을 수 있는 거야.”

“그래? 어떻게 구입해서 보는 건데?”

“초반에 몇 편은 공짜로 읽다가 마음에 들면 유료 회차부터는 편 당 결제해서 보면 돼.”

“호오, 독특하네.”

카일도 카일이지만 캐더린이 특히 관심을 보인다.

사실 그녀는 활자 중독이다.

물론 배우이니만큼 영상 콘텐츠도 좋아하지만 소설 읽는 걸 너무 좋아해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들은 자신의 SNS에 올려서 널리 알리기도 하는 그녀.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책은 독자 스스로 마음속에서 무한한 상상이 가능하단 점을 매력으로 꼽는다.

“그러니까 결국 연재 방식이란 거네?”

“맞아, 맞아. 근데 여기서 진짜 재미있는 소설을 발견했지 뭐야.”

“그래? 에밀리아 안목이야 내가 믿지. 근데 장르는 뭔데?”

“판타지! 북유럽 정통 판타지야.”

“오, 하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세계관이잖아.”

“맞아. 그래서 케이트 너한테 꼭 소개해줘야겠다, 그러고 있었는데 마침 카일이 이야기해서 생각났다.”

에밀리아가 작품들 중 하나를 골라 손가락으로 터치를 했다.

“이거야.”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응. 맞아. 진짜 재미있어.”

“신인 작가인가? 처음 들어보는데?”

캐더린이 작가인 ‘에이데이’를 확인하고서 궁금해 한다.

“미국 작가가 아니고 한국 작가야.”

“오, 그래?”

“웹소설도 웹툰처럼 한국세가 강해. 콘텐츠 수준도 높고 재미있는 게 많아. 케이트 너야말로 케이팝 좋아하니까 더 친밀하게 느껴질 거 같은데? 한국어도 좀 알잖아.”

“알기는. 몇 단어 아는 거 같고. 그리고 이건 영어잖아.”

“호호, 그렇긴 하지.”

“주소 나한테 메시지로 좀 보내줄래? 집에 한 번 읽어볼게.”

“오케이!”

케더린이 지극히 관심 있어 해서 그런지 카일도 덩달아 그 소설을 유심히 눈 여겨 본다.

“나도 봐야겠는데.”

*****

월요일 송하예고 1학년 3반 교실.

‘스토리 창작과 구성의 기초’ 시간을 앞두고 조별로 모여 앉았다.

우하루는 오늘따라 유난히 나중경이 신경 쓰인다.

평소에는 서로 창가와 벽 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 시간에는 무리지어 앉다보니 어쩔 수 없이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거의 다 들리는 수준.

“야, 나중경. 넌 아까부터 무슨 그 이상한 영어 사이트를 자꾸 들여다 보냐?”

같은 조원이 궁금해 하자 대놓고 화면을 보여준다.

“이게 뭔지 알아?”

“모르니까 묻지.”

“미국 웹소설 사이트야. 말하자면 우리나라 ‘문스피아’ 같은 거지.”

“그래서? 그걸 왜 자꾸 들여다보는데? 그걸로 영어공부 하냐?”

“참, 나. 이렇게 소식이 더뎌서야. 우리 ‘에이데이’ 작가님의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가 드디어 미국에 진출하셨잖냐! 그러니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을 수가 없지, 내가.”

“그건 대단한 일인 것 같긴 한데, 왜 네가 흥분하는 건데?”

“이런 참, 답답하긴. ‘에이데이’ 작가님이 케이노블로 국위선양을 하는데 너희들은 가슴 뿌듯하지도 않은 거냐?”

“뭐, 잘 됐으면 좋겠단 생각은 하지. 우리도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까.”

“그럼 행동을 해야지. 너희들도 여기 즐겨찾기 해놓고 하나라도 조회수 늘려. 그리고 이게 다 그 작가님이 직접 번역해서 올린 거다. 읽고 영어공부 좀 해. 정말 내용도 수준도 주옥같으니까!”

하아.

저 소리가 우하루의 귀에 자꾸 들리네.

‘어우, 귀 간지러워.’

그는 짐짓 모른 체하고서 자기 조원들과 실기 준비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다.

그런데 또 나중경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이거 뭔지 너희들 알아?”

그가 자기 앞에 놓아두었던 책을 집어 든다.

“이건 또 뭔데? 아, 나 본 적 있다.”

“그래. 이게 지금 소설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바로 그 ‘무죄의 자격’이란 작품이야.”

“지금 2위인가 그렇지, 아마?”

“맞아. 조만간 1위를 따겠지.”

“근데 이 작가에 대해서 좀 아나보네?”

“나도 정확한 건 모르지만 30대 초반의 신예 작가님이라고 하더라고. 인서울 대학교 영문과를 당당히 졸업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근무를 하다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의 남편을 만나 결혼 후 학창시절 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는데. 기초가 완전 탄탄하고 깊이가 있어.”

“그렇구나. 나도 한 번 봐야겠네.”

“드라마 히트빨에 숟가락 얹어서 맹한 독자들 돈 빨아먹는, 어느 기본기 없는 대본작가의 허술한 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니까. 너희들 수준 높이려면 이 책 꼭 읽어라!”

근처의 우하루를 다분히 의식한 톤앤 매너.

‘아임 유어 팬’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저격한 발언이다.

그러자 조원들이 당황한다.

“야, 너 왜 그래? 하루 듣겠다. 그만 해, 좀!”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그런데 그 때.

드르륵.

의자를 젖히는 소리가 나고 우하루가 일어서는 게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이 기분을 잘 알 수 없는 차분하고 평온한 표정.

그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오늘따라 더욱 짙게 느껴지는 그가 갑자기 나중경이 있는 쪽으로 저벅저벅 다가온다.

“주, 중경아. 네, 네가 참아...”

당황한 같은 조원이 버벅대며 말리려 하고.

자신이 타깃이 확실해 보이는 나중경도 순간 긴장한다.

“뭐, 뭐야?”

그의 앞에 선 우하루가 오른 팔을 번쩍 들었다.

누가 봐도 한 대 칠 것만 같은 상황.

나중경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손은 조금 전 자신을 저격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던 친구의 어깨에 살포시 안착했다.

“왜...왜, 이래?”

“고맙다.”

“뭐라고?”

“한 번 열심히 해 봐.”

“?”

툭툭.

마치 삼촌이 조카를 격려하듯 부드럽게 어깨를 쳐 준 우하루.

영문을 몰라서 어버버 하고 있는 나중경을 향해 아주 미세한 마이크로미터짜리 미소를 입가에 살짝 올린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자기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를 보며.

‘하아, 나 쫄린 거야?’

갑작스런 다독임 공격에 당한 나중경.

이내 그는 자신이 겁을 먹었던 걸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찔끔...

*****

겟픽 본사의 아침 회의.

리뉴얼 오픈 이후 줄곧 전시 상황에 임하듯 하루하루 각종 데이터들을 체크하고 분석하며 그 결과에 대해 대처하느라 제임스 한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들이 눈코 뜰 새 없다.

극도로 긴장된 순간순간들.

일주일이 지나면서 몇 가지 지표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단 접속자수는 유의미하게 증가했습니다, 대표님.”

“전체 조회수와 이용자수는요?”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큰 폭으로 늘어난 건 아니지만 초반 이삼 일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걸로 봐서는 유저 분들이 이번 변화에 대해 점차 익숙해지는 걸로 판단됩니다.”

“헤비 유저 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 어떻습니까?”

“역시 긍정적입니다. 자세한 결과와 분석 보고서는 회의 시작 전에 메일로 대표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확인해 보죠.”

비록 모든 게 긍정적이고 상승 국면임은 분명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건.

뭔가 폭발적인 모멘텀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네온 민 전무에게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한 건 정작 제임스 한 대표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이번 대대적인 개편과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이 언제쯤 불길을 확 당겨 줄 수 있을지, 사뭇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개발팀 부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꽤 상기돼 있었다.

“대표님.”

“회의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급하게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요. 일이 좀 생긴 것 같습니다.”

“일이요? 무슨 일입니까? 혹시 중대 버그라도 터졌습니까?”

가슴이 철렁하는 제임스 한 대표.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치명적인 장애가 생기면 타격이 크다.

“터지긴 터졌는데, 버그가 아니라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접속자수가 갑자기 터져 버렸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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