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조회수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던 회의 참석자들.
제임스 한 대표가 개발팀 부팀장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그 말은, ‘회서자’ 조회수가 폭증했다, 그 말인가요?”
“네, 대표님. 맞습니다. 그냥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서요. 지금 한 번 확인해 보시죠.”
회의에 참석 중이던 개발팀 팀장이 자신의 노트북과 연결된 실시간 어드민 모니터링 화면을 빔프로젝트에 연결했다.
대형 스크린에 뜬 실시간 유저 접속 및 조회수 변동 현황.
약 1시간 전부터 움찔거리던 그래프가 갑자기 위로 솟구치기 시작한 게 보였다.
그 가파른 경사도가 심했다.
“헐, 정말이네.”
팀장이 뭔가를 조작했고.
그 급격한 변동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바로 그 위치는 부팀장의 말대로...
“맞네요.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가 터졌습니다!”
마치 떡상하는 주가 그래프를 보는 기분.
그 이상으로 튀고 있었다.
“와, 미친 듯 올라가네요.”
“글쎄 말입니다. 한국에서 메가히트 작품이라더니, 정말 이름값을 하나 보군요.”
모두의 얼굴에 환희가 서린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제임스 한 대표의 얼굴이 상기됐다.
하지만, 그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반가운 일이긴 한데, 갑자기 이런 급격한 변화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겁니다. 수퍼볼 광고를 집행하는 것도 아닌데 단시간에 이 정도의 변동폭은 좀 의아한 일이거든요.”
“대표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러네요. 원인을 정확히 알고 나야 좋아해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접속자수와 조회수는 여전히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상승폭을 더 키워가는 듯 보인다.
리뉴얼 오픈과 ‘회서군’의 연재 시작을 앞두고 겟픽은 네온과 함께 다양한 마케팅 및 홍보활동을 펼쳐 왔다.
당연히 그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는 건 맞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이렇게 한두 시간 사이에 몰려 순식간에 나타날 수는 없는 일.
보통 며칠을 두고 상승세를 타는 게 정상이다.
그 말인즉슨.
뭔가 비정상적인 원인이 게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기뻐해도 할 수 있는 법.
그래야 장기적인 예측이 가능하고.
혹시라도 비정상적인 접속 등과 연관돼 있지 않은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개발팀장이 또 하나의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해 영어권 국가들 전체의 접속이 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다. 한 마디로 글로벌 현상입니다.”
세계 대륙 지역별 접속자 현황이 떴다.
역시나 개발팀장 말이 맞았다.
그렇다면 이상한 현상은 아닐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 몰린다면 의아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광범위한 접속이라면.
“서버는 문제없나요?”
“네. 이번에 서버를 대폭 증설한데다가 주요국에 서버 분산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이전보다 폭주에 내성이 탄탄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팀장님은 대응 잘 해주시고, 일단 우리는 하던 회의는 마저 끝내도록 하죠.”
“네, 대표님.”
임원들과 팀원급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미팅에 돌입했고.
그게 거의 끝날 때쯤.
메시지를 하나 받은 개발팀 팀장이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대표님. 조회수 폭등 원인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
이른 아침, 캐더린 해링턴은 학교 대신 녹음 스튜디오로 향했다.
‘오르테가의 비밀’ 후시녹음을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그녀.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걸 보니 잠을 잘 못 잔 모양이다.
매니저가 룸미러를 통해 그녀를 걱정스러운 듯 힐끗거린다.
“케이트. 도착했어요!”
“네? 아, 네. 어우, 내가 깜빡 졸았나 보네요.”
간신히 잠을 깬 그녀가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 굿모닝!”
“좋은 아침!”
“일찍 왔네!”
녹음 감독과 엔지니어들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고.
옆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자 ‘오르테가의 비밀’ 연출을 맡은 세계적 거장 조셉 버튼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헤이, 캐티! 무슨 일 있어? 감기라도 걸렸나?”
“아뇨. 그냥 잠을 많이 못 잤어요.”
“그래? 그러고 보니 눈도 약간 충혈된 것 같은데.”
오늘이 촬영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물론 그랬다면 캐더린도 컨디션 조절을 했겠지만 말이다.
“무슨 일 있었어, 집에?”
“아뇨. 뭘 좀 하느라고요. 밤 새다시피 했거든요. 그래서 행색이 이러네요.”
그녀가 커피를 내려 조셉 버튼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하, 무슨 일이기에 우리 공주님 혼을 홀딱 빼놨을까?”
“소설 읽다가 그랬어요.”
“소설? 하여튼, 캐티는 소설 참 좋아해. 가만히 보면 영화보다 더 애정하는 것 같아. 작가 겸업해도 괜찮을 정도로.”
“맞아요. 언젠가는 글도 꼭 써보고 싶어요.”
참 욕심이 많은 하이틴 스타다.
“무슨 소설을 읽었기에 그렇게 밤을 꼴딱 샐 정도야?”
“감독님, ‘겟픽’이라고 혹시 아세요?”
“겟픽? 아, 알지. 웹소설 사이트잖아.”
“와, 역시! 제 나이또래 이외에 겟픽을 아는 사람이 드문데, 역시 감독님의 트렌드 감각은 최고세요. 근데, 감독님 종이책 애호가시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 근데 문화와 기술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잖아.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나도 살아남기 힘들지 않겠어?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감독님, 최고!”
그녀가 두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보였다.
아직 녹음 준비가 세팅되려면 이삼십 분은 더 걸릴 예정.
두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소설을 읽다가 밤을 샜다는 건가?”
“네, 맞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혀 그러려던 게 아니었거든요. 무료 몇 편만 볼 생각이었는데, 읽다가 보니 완전히 빠져들어서 올라가 있는 거 다 읽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구요. 휴우.”
“호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이 취향 지극히 까다로운 공주님을 그렇듯 완벽하게 매료시킨 걸까? 급 호기심 당기는데?”
“판타지예요.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 북유럽이 배경이고요.”
“한국 작가인데 북유럽? 의외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완전 그냥 미국 작가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원작자가 직접 영어로 썼다는데도 전혀 외국인 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 그 소설이 그렇게 괜찮단 말이지?”
“네. 한 마디로 ‘언빌리버블’이에요. 제가 감독님께 주소 보내드릴게요. 지금은 바쁘실 테고, 저녁에라도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그러다 나도 밤 새라고?”
“진짜 그러실 지도 몰라요, 호호.”
귀여운 금발 소녀의 당부에 조셉 버튼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감독님. 저 그 소설 읽으면서 묘한 게 느껴졌어요.”
“묘한 거? 뭔데, 그게?”
“소설의 문체라든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특유의 방식, 그리고 간간이 느껴지는 캐릭터의 특성 등등. 분위기가 왠지 우리 작품하고 닮았다는 느낌이 진하게 들더라구요.”
“그래?”
“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오르테가의 비밀’ 소설에서 풍기는 그 특유의 기운과 향기 있잖아요. 그게 이 소설에서도 나더라니까요.”
조셉 버튼 감독의 관심도가 대폭 상승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꼬마 아가씨의 재미있는 관심사 정도로 여겼는데.
지금은 뭔가 본능적인 흥미가 끌리는 기분이랄까.
“소설 제목이 뭐라고 했지?”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흠. 주소 꼭 보내줘.”
“물론이죠.”
안경 너머로 거장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반짝였다.
*****
개발팀장의 보고를 받은 제임스 한 대표.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자리한 임원들과 팀장들도 마찬가지.
“그럼 이 난리가 바로 그 ‘캐더린 해링턴’이 SNS에 올린 사진과 글 때문이란 겁니까?”
“네.”
그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무리 스타라도 그렇지. 그 사진과 메시지 몇 개가 이 정도로 파급력이 있다구요? 다른 이유하고 겹친 건 아닐까요?”
그 때, 마케팅 팀장이 나섰다.
“외람되지만, 그건 대표님께서 이 시대 탑급 스타 셀럽들의 영향력에 대해 조금 부족하게 판단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네. 대표님께서도 캐더린 해링턴 양은 잘 알고 계시죠?”
“그야 당연하죠. 영화와 드라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차세대 스타 배우 아닙니까. 몸값만 해도 어마어마한.”
“맞습니다. 이 배우의 경우 전 세계에 수천만의 팬을 거느리고 있죠. 그들이 SNS로 모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캐더린 양의 경우 특히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문학적 취향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과 젊은 층 팔로워들이 특히 많습니다.”
계속되는 그의 말을 제임스 한 대표가 경청한다.
“계속해보세요.”
“이 친구는 자신이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가끔 SNS에 올립니다. 그러면 그 책은 열에 아홉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오, 그 정돕니까?”
“네. 물론, 자신의 그런 영향력을 잘 알기에 출판사나 대행사에서 연락이 밀려들지만 절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이용해 먹으려는 거 잘 알거든요. 뭐, 그런 거 안 해도 남은 생애 충분히 먹고 살 돈은 이미 다 모아놨으니 아쉬울 것도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SNS에 책이나 감상평을 자주 올리는 건 절대 아닙니다. 바쁘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한 달에 고작 한 권? 어쩔 때에는 몇 달에 한 번 정도일 때도 있구요. 책벌레로 알려져 있지만 자신이 직접 읽고 진짜 마음에 꼭 든 책만 알리는 거죠.”
“그런데, 그런 스타 셀럽이 ‘회서군’을 콕 집어 사진과 메시지를 올렸다!”
“네, 이건 대단한 겁니다. 그야말로 ‘사건’인 거죠.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 마케팅팀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준 겁니다. 그러니 서버에 불이 붙은 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입니다, 대표님.”
이제 상황 인식이 정확히 된 제임스 한 대표.
그래도 소설업계의 상황을 좀 알고 나름 트렌디한 유행에 특별히 뒤쳐져 있다고 생각지 않던 자신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렇게 되면, 캐더린 해링턴 양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 건가요?”
“물론 그렇겠지만, 그 친구도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에 반한 거니까 결국은 ‘에이데이’ 작가님의 공인 게 맞지 않을까요?”
“그 말씀이 옳군요. 하하.”
원인이 밝혀졌으니 다들 속이 시원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일말의 궁금함이 담겨 있었던 임원들과 팀장들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리는 참 운이 좋네요. 세계적인 스타가 자발적 홍보대사 역할을 해주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천재 작가님이 우리 사이트에 글을 직접 올려주시고 말이죠. 자, 이제 원인을 확실히 알았으니 자축을 해도 되겠는데요?”
“맞습니다, 대표님. 하하하.”
그들은 회의실에 떠나갈 정도의 환호와 박수를 울리며 마음껏 기뻐했다.
*****
무역회사에서 그녀의 맡은 직책과 업무의 특성상 토요일에도 자주 출근을 해야 하는 우지연.
오늘도 마찬가지다.
우하루는 어머니가 나가시고 난 후 집안 청소를 했다.
“빨래도 놔두시라고 했는데, 어느 틈에 벌써 해버리셨네.”
간단히 토스트로 아침을 때운 그는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시간동안 종잇장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을 정도의 집중력으로 타이핑을 쳐내려가던 그.
문득 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보니 어느새 한낮이다.
우하루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서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 쪽으로 나온 그.
갑자기 어느 자동차 대리점 앞에서 잠시 머물며 구경을 한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자세를 살짝 취하던 그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고.
그는 이내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백화점 매장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주로 눈여겨보는 곳은 화장품 코너와 여성복, 그리고 명품 코너들.
하지만 뭔가 선뜻 내키지 않아 하는 표정이다.
그 때.
꼬르륵.
자신의 배에서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
‘이 놈의 배는 눈치도 없네.’
그런데 시간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데다 글을 쓰느라 당을 대량으로 써버렸으면서 에너지를 충전시켜주지 않았으니.
우하루는 불만을 내뱉는 위와 장을 달래기 위해 푸드코트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단 주문을 하고서는 매의 눈으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던 그.
잠시 후 전방 2시 방향에 세 명의 인원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목표 포착!
돌격!
그는 저돌적으로 그 쪽을 향해 돌진했다.
이 고급진 백화점에서 모양 빠지게, 그것도 쓸쓸이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가 너무도 싫었던 우하루.
빛의 속도로 대시를 해왔는데.
누군가의 손이 거의 동시에 테이블을 잡는 게 보였다.
“저기요, 여기 우리가 먼저 찜해 놓고 있었...”
“저야말로 아까부터 지켜보고...”
두 명의 여자들.
그녀들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런데.
“우하루! 너가 웬일로 여기에.”
“강세영!”
이런, 우연이 있나.
그런데 그 옆에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서인희 대표님?”
“우 작가님!”
뭐지?
이 조합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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