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50화 (41/69)

50화. 이번엔 양보 못 해요

“어? 그, 그래? 그렇게 빨개?”

“네. 눈병 걸리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쭈뼛거리는 조셉 버튼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캐더린 해링턴.

그런데 그 때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감독님, 혹시...”

“응?”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보셨어요, 어젯밤에?”

“하아...”

“어머. 맞구나!”

갑자기 호호 하하 웃기 시작하는 그녀다.

민망한지 자기 뒷머리를 매만지는 조셉 버튼 감독.

“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오늘 보내줬더라면 어젯밤 푹 잘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죄송해요, 감독님. 근데 피곤하면 그냥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내 잘못이지 뭐. 괜히 1화를 보기 시작해서.”

“한두 화만 보시려다 계속 보셨구나!”

“멈출 수가 있어야지. 그게 잘 안 되더라고.”

“그렇죠?”

“응. 연재소설을 안 본 건 아닌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정말 다음 화를 보지 않으면 안달이 나게 장치 설정을 어찌 그리 교묘하게 해놨는지 말이지. 나 완전 어디에 홀린 것 같아. 조종당하는 느낌이랄까.”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신도 미처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던 매력에 퐁당 빠져든 느낌.

바로 그도 ‘에이데이’의 덫에 걸려 버린 것이다.

“이제 감독님하고 이야기가 통하겠네. 소감 어떠셨어요?”

“캐티가 왜 그 소설에 그토록 빠졌는지 이제 완벽히 이해가 가.”

“어머나, 반가워라.”

“세계관 설정도 웅장하고 완벽하더군. 첫 편부터 긴장감과 기대감이 풍성하고. 주인공은 물론 주위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매력적이야. 어떻게 전개될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면서도 자주 기묘한 의외의 전개가 놀라워.”

“혹시, 제가 말씀드린 그 느낌은요? ‘오르테가의 비밀’과 닮았다는...”

그러자 버튼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느꼈어.”

“그렇죠? 맞죠?”

“응. 누구보다 그 소설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나잖아. 확실히 그 향기가 나더라. 참 묘한 일이지. 한국의 작가한테서 그걸 느낀다는 게.”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두 사람.

이내 캐더린이 폰을 들더니 버튼 감독의 곁으로 가 셀카를 들이민다.

[피곤한 우리 감독님. 그 이유는? 바로 겟픽의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를 밤새 탐독하셔서랍니다! #회서군 #웹소설 #겟픽]

오늘도 그녀의 메시지는 전 세계 팔로워 팬들에게 빛의 속도로 전송됐다.

*****

그런 그녀의 열정 덕분일까.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영문판의 인기 상승은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SNS와 입소문을 통해 유입되는 독자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라도 작품 자체가 흥미롭지 못하거나 수준이 떨어지면 연독이 이어질 리 없다.

놀라운 점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문판 역시 계속 이어보는 이들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캐더린 해링턴과 조셉 버튼처럼 말이다.

결국 ‘회서군’의 인기는 그 작품 자체의 힘 덕분이라는 게 글로벌 마켓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되고 있다.

“드디어 겟픽 통합 베스트 1위에 올랐습니다!”

결국 런칭 일주일 만에 겟픽 전체에서 ‘에이데이’의 작품은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제임스 한 대표는 이 소식을 재빨리 네온에 알렸다.

“통했군!”

민 전무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겟픽의 리뉴얼 오픈 초반에 노심초사하며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그.

목표로 했던 것보다 더 빨리 조회수가 상승하고 이슈가 되기 시작하니 안도감을 넘어 보다 높은 목표들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다.

“이렇게 되면 웹소설 자체도 미국에서 화제가 되겠는 걸요.”

“그런 기대까지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왜, 한 명의 걸출한 스포츠 스타가 팀뿐 아니라 그 종목 자체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작용하잖습니까. ‘회서군’와 ‘에이데이’ 작가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의 기대는 마냥 허황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 비해 종이책과 전자책보다 웹 기반 연재형 웹소설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영어권.

이번 일로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희소식은 문스피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와, 회서군이 결국 미국에서도 사고 치는 건가.”

“이게 바로 네온의 큰 그림이었군. 한국은 우리, 글로벌은 겟픽.”

“그러게 말이야. 근데 재미있는 건, 그걸 하나로 묶어 주고 있는 게 바로 한 작품이란 거지.”

“회서군? 하하, 그러게. 그 중심엔 ‘에이데이’ 작가님이 있어. 결국 지금 가장 웃고 있는 건 그 작가님일 것 같은데.”

“누가 아니래. 영문권 웹소 시장이 커지면서 들어오는 돈만 해도 장난 아닐 텐데.”

“소설만 있나. 앞으로 미국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한다면. 와, 상상만 해도 장난 아니다. 작가님, 갑부 되겠는데.”

“이미 여기 연재만으로도 부자 아닐까?”

우하루에게도 오 피디를 통해 이런 상황들이 그대로 전해졌다.

계정 내 모니터링 페이지를 통해서 최근 조회수의 급격한 폭증 현황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그.

원인에 대해 전해들은 후에도 그는 여전히 침착하고 차분하다.

너무나 큰 뉴스인데도 지난 번 자신의 팬클럽 온라인 카페에서 나중경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보다는 감흥이 덜한 것 같다.

다만, 기쁜 건 별개다.

당연히 행복하고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는 곧장 캐더린 해링턴의 SNS 계정으로 들어가 봤다.

[어제 밤 꼴딱 샜다. 이 작품 읽느라...]

[케이팝에 이어 내 마음을 앗아가 버린 또 한 가지, 케이노블이야.]

[내가 근 몇 년 간 읽은 장르소설 중 최고! 근데, 작가님 SNS 계정을 찾을 수가 없어. 누구 알고 있는 분?]

#K-Novel, #케이팝, #회귀서자는군주를꿈꾼다, #겟픽, #웹소설.

초미모의 금발 소녀가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기대 편한 자세로 웹소설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 사진들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 영어였지만 간혹 한글과 일어, 스페인어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스타들도 그 중에 눈에 띠었다.

그들도 겟픽에 접속해 봤음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내가 진짜 운이 좋긴 좋나 보네. 케이티 눈에 두 번이나 띠고.’

이전 삶에서 그의 첫 발간소설이자 히트작인 ‘오르테가의 비밀’도 그녀의 레이더에 감지됐었다.

역시나 그로 인해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게 됐었고.

단숨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으로 뛰어올랐었다.

아무래도 그녀와 우하루의 작품 사이에는 뭔가 궁합이 잘 맞는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런 인연 덕분이었는지, 이후 그녀는 영화화된 그 작품의 여주를 맡게 되었던 것.

“당분간 ‘회서군’ 영문판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겟픽에서의 성적에 자신 있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국과 달리 웹소설이 덜 알려져 있는 곳이라 걱정을 했는데.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가 되어 버렸다.

삐리릭.

어머니가 귀가를 하시는 소리.

우하루는 그녀를 반가이 맞이했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끝낸 후 오붓하게 거실에 앉아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들이 방에서 뭔가를 꺼내와 내민다.

얇은 컬러 인쇄물.

우지연은 그걸 들춰봤다.

“이게 뭐야?”

“차예요. 엄마 꺼. 생신 선물.”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녀.

확인해보니 SUV, 그것도 외제차다.

“하루야, 너 미쳤니?”

역시나 난리가 났다.

지난번에 새 차 사자고 했을 때에도 그랬으니까.

그 때에는 우하루가 바로 양보했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이번엔 배수진이다.

더 이상 물러나면 엄마 아들이 아니다.

“엄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이 불안하다잖아요. 그리고 차 가끔 같이 탈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솔직히 좀 그래요.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이왕 바꿀 거 조금 더 빨리 안전한 차로 바꾸자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이건 사치야.”

“절대 아녜요. 누구 보여주시라고 고른 게 아니거든요. 오로지 엄마와 제 안전만 생각하고 선택한 거예요. 버스나 트럭 제외하고 가장 튼튼해요.”

이번엔 너무도 강하게 나오는 우하루.

내심 우지연이 당황스럽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얘가 말을 잘하게 되니까 이런 난감한 점이 있네.’

예전만 생각했는데, 이제 그게 아니다.

논리적인 아들의 말에 다시 한 번 곰곰이 고민을 해보는 그녀.

“엄마. 거꾸로 내가 그 차를 몰고 매일같이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음 편하시겠어요?”

이 설득력.

이러면 할 말이 없잖아, 하루야.

“형편에 비해 과욕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이건 순전히 엄마와 나를 위한 일이에요.”

결국 우지연이 졌다.

우하루는 더 싼 차를 사자는 그녀의 제안마저 듣지 않았다.

하긴, 어떻게 고르고 고른 차인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녀의 직장에서 오래 다닌 경력 덕분에 외제차를 끌고 나온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내가 우리 아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차도 다 몰아보고.”

우지연의 눈에서 또 감격의 눈물이 쪼르르 내린다.

“엄마도 참. 이런 거 갖고.”

우하루는 어머니의 뺨을 닦아드렸다.

이제 너무 안심이 되는 그다.

다음 주 토요일로 계약 날짜를 잡기로 했다.

*****

TNVT 본사 드라마국 회의실에서는 주한영 국장 주재 하에 차기 드라마 라인업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무죄의 자격’을 드라마화 해보기로 의견을 모은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박 차장. ‘데어리북스’하고는 접촉해 봤어요?”

“네, 국장님. 지난 금요일에 제가 직접 찾아가서 만나봤구요,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 뭐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오, 정말?”

반색을 숨기지 않는 주 국장.

정체를 완벽하게 숨기고 있는 강소울 작가다보니 과연 이런 제안을 한 번에 순순히 받아들일지 다소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오케이라.

이건 분명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었다.

“근데 설마 우리하고 직접 만나지 않고 하나하나 출판사 통해서 협의하고 논의해야 된다, 뭐 그런 조건 같은 건 안 걸었겠지?”

“네, 그런 건 아닌데.”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있기는 있다는 건가?”

“네. 그렇지 않아도 조건을 하나 제시했습니다.”

“무슨 조건? 또 들어주기 애매한 그런 거 아닌가?”

“그게...”

모두들 궁금해 하는 눈빛으로 박 차장을 주시한다.

“우리 예능 프로인 ‘언베일’에 출연하시겠답니다.”

“뭐라고?”

“거기에 나와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독자들과도 먼저 만나보고 싶으시다네요. 그게 강소울 작가님께서 직접 내거신 조건입니다.”

그 말에 주 국장이 갑자기 테이블을 탕 치며 파안대소를 한다.

“우하하. 그거라면 우리야말로 좋지! 완전히 베일에 쌓여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우리 방송국 예능 프로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완전 공개한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이고, 그게 앞으로 제작될 드라마에 대한 화제성에 큰 도움이 될 거 아닌가!”

“맞습니다. 국장님 말씀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언베일’은 TVNT에서 방영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지식예능 프로다.

말 그대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들이나 사실들을 파헤치는 컨셉.

얼마 전, 목소리만 있는 가수의 정체를 공개해서 큰 화제를 얻은 후로 시청률이 상승 중이다.

연예, 음악, 미술, 문학, 정치, 경제, 요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잡학박사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패널로 나와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그 패널들 중 한 사람이 하필 피진구.

물론 실력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피디와 선후배 사이라 한 자리 꿰찰 수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예능국에선 또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렇지 않아도 런칭된 지 얼마 안 되서 한참 성장에 목마른 프로인데!”

주 국장의 예상이 맞았다.

연락을 받은 TVNT 예능국 최 피디는 옳다구나 환호성을 질렀다.

대박 느낌이 온 거다.

“고마워, 박 차장! 자네가 날 살려주는구나!”

“저한테 그러실 거 없어요. 고마워하시려면 강소울 작가님한테 하세요. 직접 요청하신 거니까요.”

“그래? 어서 만나뵈야겠네. 내가 업고 다녀야겠어. 하하하!”

“아서요, 유부녀시라는데.”

“앗, 정말? 그럼 뭔가 그 부부한테 감사의 선물이라도 해드려야겠네. 하하.”

언베일 연출을 맡고 있는 최정우 피디는 입이 째진다.

“최 피디님, 언제 녹화 가능할까요?”

“그야 당장 다음 주라도 가능하지!”

“그렇게나 빨리요?”

“지금 그 책 베스트셀러 1위로 치고 올라갔잖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상식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럼 작가님 측에 바로 연락 넣어 보겠습니다.”

잠시 후, 데어리북스를 통해 강소울 작가와 의견을 교환한 박 차장이 다시 나타났다.

“어떻게 됐어? 가능하시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