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52화 (43/69)

< 52화. 제가 강소울입니다 >

환호성과 함성.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 나오자 반기는 패널들.

방청객들도 신기해하며 미어캣마냥 고개를 쭉 뺀다.

그예 맨 가장자리에 앉은 피진구의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다.

‘거 봐. 내가 상상했던, 그런 분이 맞잖아!’

메인 패널이 반색을 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강소울 작가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죄송하지만, 저는 강소울 작가가 아닙니다.”

“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모든 게 포즈.

잠시 정지상태로 접어들었다.

울리던 박수도 이내 멈췄고.

“저는 강소울 작가님의 책을 발행한 출판사그룹 대표이구요.”

“.......”

“차가 막혀서 간신히 도착했거든요. 급하게 들어오느라 잠시 숨 고르실 시간이 필요해서요. 이제 나오실 겁니다. 작가님!”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부르자.

다른 누군가가 베일이 걷힌 문을 넘어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실루엣을 보니 이번에는 남자 같은데...

순간.

경악하는 패널과 방청객들.

“어머머...”

“이럴 수가...”

“왓 더...”

특히 피진구의 얼굴은 금세 굳었다.

뚜벅뚜벅 자신 있게 홀 가운데로 나와 선 강소울 작가.

훤칠한 키에 너무나 미소년의 모습.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사람은 바로...

“우...하루 작가님?”

모두가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웅성대는 방청객들.

이번에야말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분위기.

다만, 그의 수려한 외모에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저기. 우, 우하루...작가님 아니세요?”

메인 패널이 말까지 더듬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네, 맞습니다.”

“아임 유어 팬을 쓰신...”

“네.”

몹시 당황한 듯 스태프가 있는 쪽을 대놓고 힐긋거리는 그.

하지만 스태프들로부터 어떤 신호도 올라오지 않는다.

“저기, 오늘 모실 분은 ‘강소울’ 작가님이신데, 뭔가 착오가...”

“제가 강소울입니다.”

“네?”

다시 한 번 좌중이 술렁술렁.

“그게...무슨 말씀인지...”

좌중을 향해 미소를 한 번 발사한 후 답을 이어가는 우하루.

“강소울은 제 필명입니다. 작가가 필명을 쓰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

“지금 그...말씀은, 우하루 작가님이 곧 강소울 작가님. 그러니까 두 분이 동일인이라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여기저기서 ‘어머어머’와 함성 소리가 들려오고.

저마다 놀라서 입을 손으로 막는다.

그 중에는 발을 동동 구르며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는 이들도 목격된다.

“하아, 말도 안 돼.”

눈앞에서 직접 보고 귀로 듣는데도 쉽사리 믿어지지가 않는 패널들.

패닉에 빠졌다.

“그럼 지금 현재 대한민국 소설 베스트셀러 1위와 2위 작품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란 소리?”

“이러면 ‘언베일’에 ‘언빌리버블’까지 아닙니까, 이거?”

“잠깐, 그러면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들은 뭐지? 여자 분이고 30대 가량의 결혼 한 분이라는...”

누군가가 넋 놓고 주절거리는 말이 들리자.

우하루가 빙긋 웃었다.

“저나 제 주위에서는 그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모두 루머였던 건가요?”

“네. 누가 재미삼아 지어올린 걸 커뮤니티 등에서 퍼뜨렸겠죠.”

역시.

근거가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

패널들은 경악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어떤 이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올해 최대의 쇼킹 사건이네요, 진짜. 허허.”

그 중에 가장 당황한 인물.

바로 ‘피진구’, 자칭 문학평론 컬럼니스트다.

조금 전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할 때까지만 해도 우하루와 같은 원히트원더 작가는 절대 ‘무죄의 자격’과 같은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소설을 쓸 수 없다며 절묘하게 깎아 내리는 발언을 일삼던 그.

그런데 자신이 찬양해 마지않던 작가가 바로 그였다니.

그에게 있어 지금 이 상황은 비극 자체였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해 혼자서만 앉아있다.

후들거려 쥐구멍에도 못 들어가는 심각한 상태다.

‘그러니 어르신, 좀 작작 하시지...쯧쯧.’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힐끗거린 메인 패널.

이내 정신을 차린 뒤 재빨리 진행을 이어간다.

자신들의 우왕좌왕에 대해 우하루에게 미안하단 말을 건넨 후.

“작가님. 방청객 여러분과 시청자 분들을 향해서 인사 좀 부탁드릴까요?”

우하루가 정면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이제야 정식으로 카메라를 대면하는 그.

“안녕하세요? ‘강소울’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무죄의 자격’을 집필한 작가 우하루입니다. 반갑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미소년이 밝은 미소를 장착한 채 인사를 하자.

스튜디오 안이 그야말로 환하게 밝아진다.

방청객들이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그에게 보냈다.

“최 피디. 아무래도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대박인 것 같은데!”

“저 지금 너무 심장 떨리고 행복합니다, 국장님. 하하.”

카메라 맨 뒤편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는 두 사람.

최 피디와 주 국장이다.

놀라움과 흥분이 다소 가라앉은 후,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우하루와 서인희 대표도 지정된 좌석에 착석했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

아지트.

강세영과 윤준환 그리고 오지윤이 지들끼리만 떡볶이를 열심히 먹고 있다.

자리에 없는 우하루한테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어 보이는데.

“끝나고 이모가 맛있는 거 사준댔으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원래 그런 감정 없는데.”

“하여튼 이것들은 가끔 보면 의리가 좀 없어 보인다니까.”

“먹는 거 앞에서는 그런 거 따지는 거 아이다.”

어느 감정보다 식욕이 가장 우선하는 나이.

정신없이 폭풍 흡입하던 그들은 어느 정도 배가 차오르자 소파에 등을 기댄다.

“하아, 살 것 같다. 이게 인생이지.”

“풉. 어이 막히네. 누가 들으면 어른인 줄.”

“예전엔 우리 나이면 다 결혼하고 애 낳고 그랬을 시기야. 그리고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인가, 어른 값을 해야 어른이지.”

“그 말 하니까 갑자기 피진구 그 인간 생각나네. 지금쯤 하루의 정체를 다 알게 됐을 텐데. 그 핏기 가신 얼굴 빨리 보고 싶다.”

“글쎄 말이야. 하아, 본방까지 어떻게 기다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

사이다, 참교육이 함께 하는 그런 광경이다.

기회만 됐다면 세 아이도 방청을 하러 갔을 텐데.

못내 아쉽다.

“근데, 하루는 왜 필명을 ‘강소울’이라고 지었대?”

윤준환이 혀를 날름거리며 천장에 시선을 둔 채 궁금해 한다.

답을 강세영이 알고 있는 듯.

“진짜 몰라?”

“넌 알아?”

“바보. 성은 나를 따서 ‘강’으로 지었고, 이름은 내 영혼이 순수하고 맑아서 ‘소울’ 즉 영혼으로 지었다잖아.”

“정말?”

벌떡 일어나 그녀를 쳐다보는 두 사람.

하지만...

“농담이야, 농담. 호호. 놀라기는.”

“뭐야. 두 사람 정말 이상한 그런 건 아니지?”

“아니야. 사실은 ‘회서군’에 나오는 ‘영혼의 강’ 즉 ‘Soul River’에서 따왔대. ‘River’는 우리말로 ‘강’이고 ‘소울’은 그냥 영어로 소울. 그래서 ‘강소울’. 언더스탠?”

그제야 두 사람이 고개를 주억인다.

“그랬구나. ‘회서군’을 읽으면서도 난 상상도 못했네.”

“나도.”

강세영이 두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아, 다음 주가 기대된다. 하루가 바로 ‘무죄의 자격’ 작가란 게 밝혀지면 반응이 다들 어떨지.”

“한바탕 난리 날 거 같은데?”

“그러게.”

“하루 때문에 난리 나는 게 도대체 몇 번째야?”

“그거 말고 또 있잖아.”

“뭐가 또 있어?”

“지금 영어권에서 ‘회서군’ 반응 장난이 아니야. 조짐이 심상치 않다고.”

그녀의 말대로 미국에서는 단순히 ‘겟픽’ 웹소설로서의 화제성을 넘어서 우하루의 소설이 뭔가 다른 경로를 타기 시작했다.

*****

“정말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이 다 가시지 않았는데요. 그럼 여태껏 저희들은 동일한 작가님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 1위와 2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걸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곤 했던 거군요.”

한 패널의 말에 좌중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우하루로서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결과적으로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셈이니까 말이다.

다만 지금 그 누구도 그 상황에 대해 분하게 생각하는 이는 없다.

“네, 어떻게 그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우하루의 그 말 한 마디에 손을 내젓는 패널들.

“아닙니다. 그게 죄송할 일은 아니죠.”

“맞아요. 문학계나 예술계에선 말씀대로 흔한 일이라고 하셨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고요. 외국도 마찬가지던데요.”

“이렇게 솔직하게 밝혀 주셨고, 또 좋은 작품들을 선물해 주셨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놀라워야 할 건, 바로 고등학생 신인 작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국내소설 베스트셀러의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한 마디로 씹어 먹었다! 이겁니다.”

“네.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거든요. 이건 정말 기적이거든요.”

“우하루 작가님이 천재라는 게 증명되는 거죠. 그런 작가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 그게 기적이겠죠!”

이어지는 찬사, 또 찬사.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지 당사자는 얼굴이 좀 뜨겁다.

하지만 누가 생각해봐도 다 옳은 말.

어느 패널의 말마따나, 정말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작가님 지금 고등학교...”

“송하예고 1학년입니다.”

역시나 교장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을 잊지 않은 그는 학교 이름을 언급했다.

갑자기 이 장면을 보게 될 황두헌 교장이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는 장면이 생각나는 우하루다.

“와...”

“어머나...”

“진짜 천재 맞아.”

“어쩜, 다 가졌다!”

그의 이름과 ‘아임 유어 팬’은 알고 있어도 정확한 나이를 모르고 있는 이들은 꽤 됐다.

방청석과 함께 패널석에서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고등학교 1학년인데, 방송사 공모 대상에 드라마 대본 집필도 모자라 벌써 두 권의 베스트셀러 1위 작품이라...”

“허허허.”

“허허허허허허...”

“아우, 우리 아들하고 어쩜 저렇게 다를까. 맨날 게임만 하고 틀어박혀 있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았을 때야 나오는 그 특유의 너털웃음.

그게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정말 ‘천재’ 맞네요!”

“아닙니다. 전 너무 평범합니다.”

“우 작가님이 평범하시면, 그러면 나머지 우리들은 하아...”

다시 한 번 폭소.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혹시 이 ‘무죄의 자격’이란 작품을 필명으로 발표를 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 그게 진짜 궁금하거든요.”

우하루가 차분하게 답했다.

사실 오늘 그 이유를 밝히려고 나온 거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모 대상 수상과 드라마의 흥행 성공에 영향을 받지 않고서 이번 작품을 평가받고 싶어서였습니다.”

“아하!”

“아무래도 ‘아임 유어 팬’이 꽤나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타이밍 상 거의 동시에 발간되는 이 책이 제 본명으로 나오게 되면 그 화제성에 숟가락을 얹게 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진짜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지금 ‘무죄의 자격’ 흥행과 평가는 작가님의 정체를 완전히 알지 못한 백지 상태에서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를 하고 있는 거니까 말이에요.”

“네. 그래서 필명을 사용해서 책을 내기로 했고,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공개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이유가 명확할 수는 없다.

순수하고 또렷한 목적.

모두가 이해하고 납득했다.

누군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혹시, 이번엔 순문을 선택하신 배경이 궁금하네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우하루.

그가 질문자에게 정중하게 되물었다.

“저기, 거꾸로 여쭤보고 싶은데요, 과연 순수문학이 뭐죠? 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이해 좀 시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던졌던 공이 갑자기 다시 날아오자 그 패널이 당황해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누군가를 쳐다보고.

“그, 그게. 저기, 피 선생님. 대답 좀 해봐 주시죠! 전문가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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