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54화 (45/69)

< 54화. 한국에서 하죠 >

“그렇군요! 이게 그렇게나 재미가 있습니까?”

조셉 버튼 감독이 빙긋 웃으며 답한다.

“네. 어느 정도냐 하면, 제가 너무 피곤한 날이었는데 이걸 한 번 읽어보라고 캐더린 양이 추천을 해준 거예요. 딱 1화만 보려고 열어봤다가 그 날 밤 꼴딱 샜습니다. 덕분에 빨갛게 충혈된 눈을 선물로 얻었죠.”

“호오, 그 정도라구요?”

두 사람은 이 소설에 대해 찬사를 늘어놨다.

재미는 기본, 방대한 세계관의 탄탄함과 캐릭터들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필력과 상상력 그리고 문장 수준이 넘사벽이기에 전체 레벨이 언빌리버블이다.

한국 작가의 소설이면서도 영어가 너무 완벽하고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완벽한 서사가 너무 감동적이다.

그런 찬사들을 이어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들의 출연 시간 중 반을 ‘회서군’ 자랑에 써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와우, 놀랍군요! 저도 꼭 한 번 보고 싶네요.”

“제가 주소 보내드릴게요.”

“당장 보내주세요. 더는 못 참겠는데요? 하하하.”

다소 과장된 매튜 필먼의 리액션이지만 그는 정말 호기심이 생겼다.

다시 오늘의 본론이었던 영화 홍보에 대한 이야기.

“이제 ‘오르테가의 비밀’ 글로벌 프리미어를 도신다구요?”

“맞습니다. 아시아부터 돌게 될 예정입니다.”

“도시는 정해졌나요?”

“아직요. 아마 다음 주 안으로 확정될 것 같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겠군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만큼, 분명 흥행에 대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두 분 오늘 나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또 매튜 필먼은 빨갛게 충혈된 자신의 눈을 거울에서 발견했다.

캐더린 해링턴이 보내준 링크 때문이었다.

*****

일주일이 흘러, TVNT의 ‘언베일’ 본방일.

제작진의 철통같은 경계 태세에 힘입은 덕분일까.

녹화 내용은 전혀 외부로 사전 유출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시청자들이나 관련 업계는 기대감과 궁금증을 더 키워갔고.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로 초유의 관심 속에 방송이 시작됐다.

우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TV 앞에 앉았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던 그녀.

갑자기 아들이 베일 안에서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 우하루를 바라본다.

“네가 그럼 그 ‘강소울’ 작가였어?”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다.

소설과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를 시시콜콜하게 말씀드리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어차피 소설을 읽을 시간도 별로 없으시니.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화제 삼아 이야기하던데.”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엄마 아들이 우하루란 거 아세요?”

“아니, 말 안 했는데. 굳이 물어보지도 않으니...”

“잘 하셨어요. 괜히 언급하실 필요 없어요.”

우지연은 아들의 역량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이제는 가늠이 안 된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일이 생기고,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우하루.

‘그 어려운 베스트셀러 1위 책을 두 권 씩이나...’

이제는 장하다, 잘 했다, 기쁘다 내 새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입이 아플 정도.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같은 시각.

나중경은 자기 방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컵라면을 앞에 놓고서는 같은 프로를 시청 중이다.

‘오늘도 우하루 소설이 2위더라. 이거 방영되면 얼마나 코가 납작해질까. 하하하.’

드디어 베일이 벗겨지고.

여성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름 좋았다.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삼사십 대 여류 작가일 거라고 했잖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중경.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데도 신이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니 망정이지.

자칫 아버지한테 혼날 뻔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그녀가 강소울이 아님을 밝힌 것과 동시에 다른 남자가 베일 뒤에서 나오는 걸 목격한 그는...

“우웩!”

입에 넣었던 라면을 쏟아냈다.

“이...이게 뭐야!”

앞에 떨어진 오물은 관심도 없는 그.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고.

“우...우하루? 그럼 네가 바로 그...”

심지어 젓가락까지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이게. 말이 돼?”

머리를 쥐어뜯는 나중경.

그의 허망한 눈동자에 물이 차오른다.

*****

우하루가 바로 ‘무죄의 자격’의 작가 ‘강소울’이란 게 밝혀지자 관련 커뮤니티뿐 아니라 문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심지어 연예계 종사자들까지 화제.

‘언베일’은 이 회차에서 시청률이 무려 2배 이상 뛰어올랐다.

그리고 우하루가 나오는 장면의 영상클립은 네온과 너튜브에서 조회수가 폭발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정말 천재라고밖에 할 수 없네. 어떻게 한 작가가 1, 2위를 동시에...헐.]

[그것도 그렇게 어린 소년인데.]

[진짜 상상도 못했다. 대박이야. 난 처음에 나온 그 여자 분인 줄.]

[그 피 뭐시기 하는 패널은 너무 쪽팔리겠다. 이번 사건 최대의 피해자네. 아니지 그동안 우하루 작가한테 저지른 걸 생각하면 정의구현이 맞지!]

[두 작품에서 거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 놀랍고 신기해. 솔직히 같은 작가들 작품들에서는 문체라든지 전개방식, 표현 등에서 유사한 점이 발견되거든. 근데 이 두 작품은 전혀 그런 게 없다고. 진짜 괴물 같아. 이쯤 되면 정말 무섭다.]

[천년돌이 아니라 천년작가가 먼저 나타났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했던 건 우하루의 친구들뿐이었다.

“온 세상이 우하루와 강소울 이야기네.”

“그러게. 이제 진짜 다들 알아볼 거 같은데. 너무 유명해지는 걸.”

“세영이 너하고 하루 같이 다니면 볼 만 하겠다. 사람들 완전 몰리겠는데.”

“밖에서 같이 다닐 일이 뭐 있겠냐. 그나저나 피진구 그 인간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몰라.”

“며칠간 SNS 통 안 하는 거 같던데?”

“안 하는 정도가 아니야. 어제 잠깐 들어가 봤는데, 저번에 우하루 저격한 글 밑에 그 인간 비난하는 댓글들이 엄청 달렸더라.”

“나도 봤어. 그냥 뭐라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신 차리라거나 그러니까 사람 무시하고 못살게 구는 게 아니라며 난리 치는 사람들 태반이더라고.”

“저렇게 털렸으니, 이제 그 짓도 하기 힘들 거야.”

“모르지. 원래 저런 작자들이 얼굴은 또 엄청 두껍잖아. 나중에 좀 잊힐 만 하면 꾸역꾸역 모습을 드러낼지 몰라.”

“하긴. 쌀 떨어지면 구덩이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겠지.”

“하하, 맞아. 어쨌든 저 프로그램은 더 이상 못 나오지 않을까?”

아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날 ‘언베일’은 피진구 패널이 하차했음을 알렸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발표는 했지만 다들 이번 일 때문에 쇼크를 받은 게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

항간에는 TVNT 측에서 잘랐다는 말도 돌고 있다.

이번 일로 인해 희대의 놀림감으로 전락한 건 물론 그의 의심스러운 과거까지 다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난감한 사람은 또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나중경.

그의 손에는 더 이상 ‘무죄의 자격’이 들려있지 않았고.

말 수는 눈에 띠게 줄어들었으며.

더 이상 ‘아임 유어 팬’에 대한 언급도 일절 나오지 않았다.

왠지 수척해 보이는 그의 얼굴.

낙이 없는 사람처럼 동공에 초점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의 생명력은 질겼다.

얼마 후 다시 소생한 그에게는 삶의 여전한 이유가 있었으니.

“얘들아, 들었어? 캐더린 해링턴하고 조셉 버튼 감독님이 우리 ‘에이데이’ 작가님과 ‘회서군’을 토크쇼에서 언급해 주셨다고. 하하하. 역시 나한테는 ‘에이데이’ 작가님밖에 없어!”

다시금 생기를 되찾은 그.

약간 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 같은 낌새에 주변의 급우들은 다소 두려운 듯 그를 경계 중이다.

비록 나중경의 호들갑은 오버스러운 게 사실이었지만.

그의 말처럼 두 사람의 언급이 미국 대중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그동안 SNS를 통해 캐더린 해링턴의 팬들과 셀럽들 위주로 ‘회서군’의 이야기가 전파되었다면.

이번 토크쇼를 계기로 미국 대중들 사이에 이 소설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

재미있는 건, 북유럽권이 배경이어서 그런지 유럽의 독자들에게까지 입소문이 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낌새에 네온과 문스피아는 잔뜩 고무됐다.

*****

월드 프리미어를 앞둔 ‘오르테가의 비밀’.

그 스타트는 아시아로 이미 결정됐다.

다만 어느 나라에서 할 것인지를 두고 영화사와 홍보대행사는 갑론을박 중이다.

전통의 시장 일본?

아니면 쪽수의 중국?.

그도 아니면, 신흥 콘텐츠 강자이자 새로운 문화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에서 열 것인가.

안전빵이라는 의미에서 일본 도쿄 쪽으로 약간 무게중심이 기울어지는 듯 보이던 상황.

하지만 조셉 버튼 감독의 한 마디에 급반전이 일어났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서울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과거에는 몰라도 현재에는 한국 영화시장이 다른 곳보다 그 질과 양 뿐 아니라 성장성과 가능성 측면에서 가장 탁월하잖아요.”

“그건 그렇죠.”

“더구나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유행이 되면 전 세계가 다 따라하니. 우리도 그 열차 한 번 얻어 타 봅시다.”

결국 질질 끌던 사안은 단번에 확정이 됐다.

그 소식에 가장 좋아하는 한 사람.

바로 캐더린 해링턴이다.

“앗싸! 감독님만 믿었다구!”

“그렇게 좋아?”

“그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탄생한 나라를 가 보는 거잖아.”

“그것도 그거지만 케이팝 때문 아니고?”

“둘 다지. 근데 지금은 이 소설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좋아진 거 같아.”

“호오, 그 정도야?”

절친 에밀리아가 놀랄 정도.

요새는 정말 그녀의 낙이 바로 겟픽에서 ‘회서군’을 읽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또 한 가지가 있어.”

“뭔데?”

“지금 우리 영화 있잖아.”

“오르테가의 비밀?”

“응. 이 작품 원작자, 그러니까 소설 쓰신 분의 고향이 바로 한국이야.”

“아, 맞다. 네이선 라이네!”

“역시, 넌 잘 아네.”

“갓난아기 때 입양됐었다고 했지.”

“맞아. 그래서 한국에 정이 더 가곤 했는데 마침 ‘회서군’의 작가님도 한국 분이라잖아. 그러다보니까 꼭 가보고 싶었던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에밀리아.

그녀가 이번 결정을 유난히 반기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역시나 같은 소설의 광팬이 된 자신도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테가의 비밀’ 서울 프리미어 개최 결정 소식은 우하루에게도 전해졌다.

그의 심정이 묘하다.

이전 삶에서 그의 소설의 영화화를 채 못 봐서 아쉬웠는데.

그걸 이렇게 보게 되다니.

거기에다 감독과 작가까지 한국에 온다고 하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개봉하면 영화는 꼭 봐야겠군.’

기대감에 차 있는 그에게 문스피아 오 피디로부터 연락이 왔다.

- 작가님. 조셉 버튼 감독하고 캐더린 해링턴 배우가 한국에 온다는 뉴스 들으셨죠?

“네. 좀 전에요.”

- 저희를 통해서 그 분들께 연락이 왔는데요.

“두 분한테요?”

- 네. 한국 방문할 때 작가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하시네요.“

“저를요?”

화들짝.

그냥 이 땅에서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기묘하게 느껴졌는데, 직접 만나고 싶다고?

“왜요?”

- 자기들이 너무 좋아하는 작품의 작가를 직접 대면해보고 싶기도 하고, 긴히 논의할 사안도 있다고 합니다.

“논의할 사안이라...”

- 제 생각엔 아마, ‘회서군’에 대해 독자로서 말고 다른 쪽으로도 관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다른 쪽이라면.

‘뭐야. 설마...’

- 최대한 비공개 하에 만나서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잠시 고민을 하는 우하루.

솔직히, 피할 이유는 없잖은가.

그 두 사람도 ‘에이데이’의 팬이고.

우하루가 원하는 것과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비슷할 수도 있으니.

“좋습니다. 만나보죠.”

-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작가님 의중 전달하겠습니다.

사실 이제 ‘에이데이’의 정체를 숨기는 것에 대한 집착도 예전 같지는 않다.

경우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강소울’도 이미 공개해버린 마당.

웹소설 작가로서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기에 요즘엔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상태다.

이 정도면 ‘에이데이’를 공개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대비가 되었다는 판단이 들기도 하고.

그럼에도 가급적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게 진리.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그 때까지는 일부러 알릴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

보름 뒤.

영화 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조셉 버튼 감독과 캐더린 해링턴이 한국 땅을 밟았다.

두 사람은 일요일에 있을 아시아 프리미어에 앞서 이틀이나 일찍 인천공항에 발을 디딘 것.

개별 일정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음날인 토요일 점심.

그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 주차장에 차량 한 대가 도착하고.

그곳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자 한 명이 내렸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정장맨을 따라 그가 도착한 곳은 스위트룸.

그 곳에 들어서자 남녀 두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그를 맞이했다.

“에이데이 작가님?”

맨얼굴을 드러낸 남자.

조셉 버튼과 캐더린 해링턴이 그렇게 만나기를 고대했던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작가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이 동경의 대상이지만.

이번만큼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

눈앞에 나타난 미소년 작가를 마주한 두 사람은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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