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작가 우하루-60화 (51/69)

< 60화. 제가 직접 맡겠습니다 >

“여기 그새 꽤 바뀌었네요.”

우하루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정신 나간 소리.

“네? 와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 아뇨. 그게 아니고. 사진을 많이 봤었거든요. 워낙 유명한 곳이잖아요.”

이 놈의 입.

아무래도 조심 좀 해야겠다.

재빨리 수습.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조셉 버튼 스튜디오의 직원이었다.

환한 미소를 장착한,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

백인과 멕시칸계 혼혈로 추정되는 지적인 분위기의 안경남이다.

“먼저 숙소에 짐을 푸시죠.”

그가 우하루를 데려간 곳은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고급 호텔.

뷰가 너무 좋았고 방은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계속 지내는 겁니까?”

“아, 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비용이 꽤 나갈 것 같은데...”

아무리 본인이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호텔에서 한 달 반을 내리 거주한다고?

“하하, 그건 전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작가님 이번 체류 비용은 모두 제작비에 포함되니까요.”

흠.

그렇다면야.

결국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지불되는 거구나.

우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박이나 레지던스에서 머문다 해도 별로 불편하지는 않지만.

이러면 너무 좋지.

매일 미팅이 있을 것도 아니고.

‘집필하는 데 더없이 좋은 환경이군. 다만...’

주위에 한국음식점이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놔야겠다.

지금은 몰라도 몇 끼만 지나면 분명 양식만으로는 견디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먹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니까.

어쨌든 혼자 조용히 지내면서 글을 마구 쓸 수 있는 환경이라니, 기분이 좋아지는 우하루다.

왠지 한 달 반이 금세 갈 것 같다.

여장을 푼 뒤 다시 차로 이동.

얼마 안 걸려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마음만 먹으면 숙소에서 걸어서도 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에이데이 작가님!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조셉 버튼 감독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두 팔을 벌려 우하루를 맞이했다.

약 두 달 좀 안 돼 재회하는 두 사람.

그는 로비를 통하는 정문이 아니라 별도의 통로로 안내됐다.

‘에이데이’ 작가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지라 최대한 비밀 모드를 지켜 주려는 의도.

사실 그로서도 ‘회서군’의 원작자와 회동하는 것에 대해 아직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기에 대놓고 이런 장면을 노출하는 건 원치 않는 상황이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감독님처럼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시는 분 앞에서 비행기 한 번 탄 거를 갖고 티를 낼 수는 없죠.”

“하하, 그런가요.”

“그럼, 일 이야기를 해볼까요?”

“벌써요? 피곤하지도 않으세요?”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서 그런지 특별히 힘들지는...”

아차.

중년도 넘긴 분 앞에서 이게 무슨 망발.

젊다고 잘난 척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재빨리 혀를 집어넣은 우하루.

“그냥 한국 속담에 그런 게 있습니다.”

“하하,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사실 오면서 너무 설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요?”

“세계적 명장이신 감독님께서 이 시대 가장 핫한 투자자 넷플럭스와 손을 잡고 제 작품을 드라마로 제작해 주신다니, 그 누가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마음이 좀 급한가 봐요.”

“역시, 작가님다우시군요. 보면 볼수록 제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 열정에 저도 올라타겠습니다. 하하!”

결국 두 사람은 곧바로 작품 이야기로 돌입했다.

가히 일벌레들다운 장면.

두 명의 콘텐츠 괴물들이 만나니 스튜디오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신인 스타작가가 두 명 있어. 누군지 알지?”

도원일보 문화연예부 이혁진 부장.

그가 휘하 기자들을 붙들어 앉혀 놓고 회의인지 일장연설인지, 하여튼 그런 걸 하고 있는 중이다.

“그야 뭐 당연히 우하루 작가 아닙니까?”

누군가의 대답.

“또 한 명은?”

“또 한 명이요? 아, 강소울 작가요.”

“아이 참. 같은 사람이잖아!”

“아차, 그렇지.”

머리를 긁적이는 후배기자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그.

이내 다른 대답이 나오자.

“그야, 에이데이 작가님이죠!”

아주 흡족한 듯 미소를 되찾는 이 부장이다.

“그래, 그래. 역시 윤 기자가 똑똑해.”

칭찬을 들으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윤예지다.

한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도원일보의 이 부서 막내.

그녀가 남들에 앞서 즉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지, 얘는 원래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 그 소설 광팬이에요. 그러니까 잘 알죠. 솔직히 웹소설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요?”

처음 틀린 대답을 했던 기자가 구시렁거리자 이 부장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낸다.

“그러니까 넌 문제야. 이 철저한 현실주의자 같으니라고.”

“너무하셔.”

“유능한 기자는 말이야, 미래를 살아야 해. 지금 있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빨리 캐치해서 파헤치고 전달하려면 일어날 만한 일을 먼저 냄새 맡아야 한다고.”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는 기자들을 한 번 휘 둘러본 그가 말을 잇는다.

“봐봐, 지금 ‘에이데이’ 작가는 우리나라에서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회서군’의 원저자야. 이번에 ACNN에서도 언급했듯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태세고 현지 인기가 장난 아니라고. 한 마디로 이제 막 그 붐이 시작된 거지.”

“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몇 개월 내에 우하루 작가보다 더 이슈가 될 게 확실해.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우리가 파 들어가야 한다, 이 말이야. 알겠어?”

열변을 토해낸 그가 이내 윤 기자에게로 눈을 돌린다.

“그 소설 팬이라고 하니까 잘 됐네. 네가 ‘에이데이’에 대해서 좀 조사해 봐.”

“네? 제가요?”

“솔직히 너도 관심 있잖아, 그치?”

“그건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 작품과 작가님의 팬인 거지, 이렇게 공적인 취재는 좀...”

“왜? 뭐가 문제인데?”

“우리 말고도 관심 갖는 데 많잖아요. 특히 ‘디비팼지’는 마달봉 그 저격수가 나섰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러니까 우리도 얼른 움직여야지.”

“근데, 제가 알기로는 ‘에이데이’ 작가님이 워낙 외부에 노출되는 걸 원치 않으시고 온전히 작품 활동만 하시길 바란다는데, 굳이 민폐를 끼칠 이유가 있을까요?”

그녀의 말에 담배를 입에 무는 이 부장.

물론, 불을 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파야지!”

“.......”

“그런 신비주의가 아니면 굳이 깊이 팔 필요가 뭐가 있으며, 남들도 아는 거면 우리가 독점을 노릴 이유가 뭐가 있겠어?”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건 애초에 직장인의 자세가 아니다.

까라면 까는 거지.

꼬우면 나가면 되는 거고.

비록 윤기자 스스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런 개인적 감정이나 취향을 끝까지 고집할 수는 없다.

게다가 어쩌면, 그녀는 내심 그 작가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망이 잠재해 있는지 몰랐다.

‘그래, 차라리 내가 맡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이상한 놈들한테 걸리는 것보다야.’

생각을 고쳐먹은 그녀.

“알겠습니다. 해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역시 윤 기자야. 으하하하.”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입맛은 다져진다.

근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니.

“디비팼지 마달봉 기자 그 자식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서요.”

“그 인성 돼먹지 않은 놈에 앞서서 네가 밝혀내. 그게 나을지도 몰라. 저번에 삼성동에서 우하루 작가님 얼굴 마음대로 찍어서 양해도 안 구하고 막 올린 거 봐. 매너도 직업정신도 엿 바꿔 먹은 놈이라고. 너도 조심하고.”

선배 기자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폰을 열어 문스피아에 접속한다.

회의 하느라 새 글 알람이 온 걸 몰랐네.

순간.

“오, 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휘파람이 절로 난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3연참이시군요!”

“너, 누구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네? 아, ‘회서군’ 오늘 세 편 연달아 올려주셨지 뭐예요, 에이데이 작가님이!”

“헐. 그래서 기분이 또 그렇게 좋은 거야?”

“그럼요. 횡재했죠. 어서 차에서 읽어야지.”

살랑살랑 봄바람에 휘날리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에 올라타는 그녀를 보니 선배 기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이 나온다.

“지금 보니 딱 잘 맡았네. 허허.”

*****

우하루가 미국에 도착 이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

언뜻 보면 학교 다닐 때가 더 바빴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일주일에 3일은 거의 하루 종일에 걸쳐 기획 회의.

그리고 나머지 이틀은 브리프 미팅을 갖는다.

나머지 시간은 ‘회서군’ 본편의 집필과 영문판 번역 작업을 해서 일일이 문스피아와 겟픽에 올리고.

방학 시작 전에 구상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신작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더불어 한국에서 시시때때로 오는 이연하 작가와 서인희 대표의 연락.

특히 ‘무죄의 자격’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 작가와의 통화나 문자가 잦아졌다.

그녀는 일일이 우하루에게 자신이 수정하는 내용들에 대해 의견을 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름쯤 지난 어느 아침.

매일 드나드는 약간 비밀스런 통로를 통해 스튜디오로 들어서는데 왠지 그날따라 상큼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님!”

미국에 왔음에도 그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그녀.

캐더린 해링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좋은 건지 어린 아이처럼 통통 튀다가 갑자기 다가와 예고 없이 허그를 하는 그녀.

콩닥콩닥.

갑자기 심장이 나대네.

이거 괜찮은 건가.

그녀의 향기가 몰려와 정신이 몽롱해지는 우하루다.

“그렇지 않아도 캐티가 오고 싶어 했는데 시애틀에 행사가 있어서 이제야 왔지 뭐예요. 이렇게 좋아할 걸, 어떻게 참았을까. 하하.”

조셉 버튼 감독이 두 사람을 뿌듯하고 훈훈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 친구들이 얼마나 귀엽고 예쁠까.

무슨 소꿉장난 하는 듯 보일 수도 있을 터.

“작가님, 한 달 더 있는 거 맞죠?”

“네, 맞아요.”

“그럼 바쁘더라도 주말에 자주 우리 함께 시간 보내요.”

“네?”

“뉴욕 처음이잖아요.”

“그, 그렇죠.”

“좋은 데 많이 구경해야죠. 그리고 우리 집에도 초대할게요. 부모님도 그렇고 내 동생도 엄청 보고 싶어 해요.”

티 없이 맑고 발랄한 그녀의 청을 어찌 거절할 수가 있을까.

우하루는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좋아요.”

“와, 신난다! 호호!”

바라만 보고 있던 버튼 감독이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좋은 소식 한 가지 더! 우리 영화가 미국에 이어서 한국에서도 드디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단 소식 조금 전에 들어왔어요!”

“정말이요?”

“그거 잘 됐네요! 축하드립니다!”

서울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를 개최했던 덕분일까.

한국에서 ‘오르테가의 비밀’이 1위를 했단다.

‘돌아가면 꼭 극장에 가서 봐야겠다.’

이전 삶의 업적이자 자취랄까.

우하루는 지금 자신의 일만큼 기쁘고 뿌듯하다.

이렇게 살아서 이 순간을 느끼고 감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가.

‘이 영광과 성취가 이 삶에서 더욱 꽃필 수 있도록 만들자.’

그의 심장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용솟음친다.

*****

미국 내에서 ‘회귀 서자는 군주를 꿈꾼다’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방송사와 투자사들의 입질이 거칠어지자.

넷플럭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조셉 버튼과의 제작 및 배급 계약을 밀어붙였다.

소극적으로 행동했다가 자칫 이 좋은 콘텐츠를 다른 곳에 빼앗겨버릴 수 있겠다 싶은 조급함이 발휘된 탓이다.

“이 정도면 넷플럭스 역사상 제작자와 작가에 가장 유리한 조건입니다.”

내용을 확인한 우하루.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삶에서 ‘오르테가의 비밀’의 원작자로서 받았던 대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다.

만약 이 드라마가 목표 수준에 지나치게 못 미치지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하루는 그야말로 백만장자가 된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시즌제가 유력해졌다.

아직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진행이 한참 뒤쳐져 있어서 내용상 하나의 시즌이 끝나지 않은 셈이지만 넷플럭스는 한국의 원작을 조사한 후 시즌 제작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이 부분 역시 조셉 버튼 감독과 합의를 마친 사인이다.

하나의 시즌만 성공해도 놀라운 수익을 받는데, 그걸 몇 시즌 동안 지속하게 된다면...

‘어후...’

우하루는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조셉 버튼 감독도 마찬가지.

“이렇게 되면 나는 당분간 이 작품에 몇 년이고 열정을 바쳐야 할 운명이 되었군.”

스튜디오 제작진들에게 그가 내비친 심경이다.

그만큼 그가 ‘회서군’에 빠져 있고, 그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각색’.

이 부분은 한국보다 특히 미국의 영화와 방송 업계에서 엄격하고 중요하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원작이 뛰어나도 영상화에 적합한 동시에 미국 시청자들의 취향에 맞는 대본이 나오지 않으면 말짱 꽝이니까.

그래서 원작 소설을 전문적으로 각색하는 작가들이 많다.

그들은 그야말로 텍스트를 영상화하는 데 프로들인 셈이다.

메이저 영화사나 투자자들은 경험이 풍부하고 레퍼런스가 확실한 전문가를 선호한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하루의 제안을 접한 넷플럭스 측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가 직접 각색을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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