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기이한 두루마리 (3)
“휴우. 성현께서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하셨거늘.”
유운은 탄식하면서도 머뭇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스승의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잘 보이나? 나 잘 보여?”
동그란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가 멀어졌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까지는 좋다.
그런데 수염은 풍성했지만, 머리에는 숱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몸에 딱 달라붙는 얇은 검은 옷까지.
‘이 무슨 해괴한 모습이란 말인가?’
땅딸막한 체구의 사내가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는 하북팽가의 여섯째, 팽육일세.”
‘휴, 이 사람도 제갈세가주와 비슷하구나.’
듣다 보니 도법으로 제법 유명한 가문 같은데.
유운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내가 가르칠 것은 효과적으로 몸을 키우는 법일세.”
‘오늘 수업은 외공이로구나!’
유운은 단박에 주제를 알아챌 수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약골로 태어났네. 강골로 유명한 팽가의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팽육은 서글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들은 지학(15세)이 되기도 전에 40관(150kg)짜리 역기를 한 손으로 드는데, 나는 고작 10관(37.5kg)짜리에 쩔쩔맸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참담했겠나?”
동그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면 유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10관이라. 나는 두 손으로도 못 들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의 나를 보게!”
팽육이 한차례 숨을 멈추더니, 두 팔로 항아리를 안는 자세를 취했다.
“오오오···!”
유운은 자기도 모르게 경탄을 터트렸다.
우스꽝스러운 복장 너머로 보이는 터질듯한 근육!
슬쩍 봐도 꽉꽉 압축된 실전 근육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평생의 깨달음을 가르치려 하니.”
유운은 눈을 빛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바로 근육 파괴술일세.”
‘…파괴술?’
“이전까지 하루에 기본 5시진(10시간)은 역기를 들고는 했다네. 그런데 이곳에 와서야 깨달았다네. 그게 오히려 근육을 해치는 길이라는 사실을.”
“……!”
더 오래 수련할수록 몸이 더 단단해진다는 상식과 반대되는 이야기였다.
“근육이라는 건, 살아있는 생물과 같네. 당연한 말이지, 우리 몸의 일부이니. 혹사하면 망가지고, 그렇다고 아끼면 물러지고. 어떻게 해야 하겠나?”
팽육이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효율적인 훈련, 아니 정밀한 수련 계획만이 목표를 이루게 해줄 걸세.”
무식하게 구르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흥미가 일었다.
거기에 근육 세포의 파괴와 재생성, 이를 통한 근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설명했으니.
‘…파괴와 재생이라! 마치 달이 차고 기우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근육은 쉴 때 오히려 성장한다네. 그러니 무작정 혹사하기보다, 체계적으로 먹고 쉬는 게 더 중요하네.”
“…과연!”
“또한 근육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네. 주로 닭과 쇠고기, 콩에서 얻을 수 있는데….”
사내의 말을 들을수록,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근육 파괴술.
파격적인 이름과 달리, 순수한 육체 단련술이었으니.
그날부터 유운의 일과에 신체 단련이 추가되었다.
“각각의 신체 부위를 따로 단련한다라. 신기한 방법이로구나.”
첫날 가슴을 단련하면, 다음 날은 다리를, 그다음 날은 허리를.
순차적으로 고립시켜 단련하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별다른 도구도 필요 없고.”
팔굽혀펴기, 허공에 앉기, 다리 눌러서 내려앉기 등 맨몸운동이 대부분.
무거운 쇳덩이를 쓰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반면 훈련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짧았으니.
‘정말 이것밖에 안 해도 되나?’
아무리 집중했다고는 하나, 고작 반 시진(1시간).
외공 고수들이 알면 게으르다며 호통을 칠 일이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유운은 작정하고 사내의 수련법을 계속했다.
다만 이 수련법에는 작은 단점이 있었으니.
- 어허!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닐세. 내려갈 때는 천천히, 올라갈 때는 빨리!
쇳덩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들려오는 환청.
팽육의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 어허! 그게 아니래도. 습관 잘못 들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하지 않았나? 팔로 당기지 말고 등으로 당겨야지!
기둥에 맨 쇠줄을 당길 때도.
- 어허! 쉬는 시간 끝났네, 어서 움직이게!
심지어 쉬는 시간조차 훈련이라며 측정하고, 재촉했다.
덕분에 유운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가느다랗던 팔에 보기 좋은 근육이 붙고, 허리에 힘이 붙음에 따라 자세가 안정되니.
“실로 현묘한 수련법이로구나.”
매일 동경 속 자신을 보는 게 즐거울 지경이었다.
“와, 공자님 알통 좀 봐요. 몇 주 만에 어찌 이리 멋지게 변하셨담?”
소화가 연무장에 나타나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녀석. 흰소리를 하는구나.”
“피이. 또 애늙은이처럼 말씀하신다.”
소화는 미소 짓더니, 바구니에서 음식을 한 아름 꺼냈다.
“배고프시죠, 공자님? 드시고 하세요.”
“나는 여기 닭가슴살과 산나물이면 족하니. 나머지는 네가 먹거라.”
유운은 빙긋 웃으며 빙당호로를 내밀었다.
산사나무 열매에 물엿을 묻혀서 만든 달콤한 간식이었다.
“이거, 후르릅, 진짜 귀한 건데. 제가 어찌 감히. 안 돼요.”
입은 거절하는 데 눈은 이미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허. 네가 안 먹으면 이 달달한 빙당은 버려지고 말 텐데?”
“안 되는데. 안 되는데.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데.”
소화의 눈동자는 이미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느냐.”
“그, 그럼. 먹어도 될까요?”
유운이 빙긋 웃자, 소화가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히히.”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빙당호로를 입에 물었다.
행여라도 금방 녹아서 사라질까 살짝 혀만 데면서.
“녀석. 그리 좋을까.”
유운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흐뭇하게 웃었다.
고작 네댓 살 차이.
하지만 까마득히 어린 여동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묵직한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했다.
“호각 무사예요, 공자님.”
소화가 빙당호로를 꿀꺽 삼키며 속삭였다.
“마침 수련 시간인가 보구나.”
유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만서각을 호위하는 경비대이니, 형식상 만서각주의 부하다.
하지만 무인들이 학사 나부랭이를 우두머리로 생각할 리가 없다.
그래서 서로 소 닭 보듯, 참견하지 않는 중이었다.
“소문 들으셨어요?”
“무슨 소문?”
“남방 민족에 대한 소문이요.”
호각 무인 대부분은 남방의 섬 출신.
피부색이 다소 어두워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
“밤이면 묘지를 배회하면서, 시체를 부린다는 소문도 있고요, 요상한 약초로 사람들을 현혹한대요.”
“하하하.”
유운은 듣자마자 작게 웃었다.
소화는 다 좋은데 귀가 조금 얇은 편이었다.
되지도 않는 소문에 홀랑 넘어가고는 했다.
“외모가 다르니 이상하게 보기 쉽다. 하지만 같은 사람 아니더냐? 무엇보다 엄연히 세가의 정식 무인 아니더냐.”
“그, 그렇긴 한데. 본가의 언니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는데요.”
본가에서 윗사람을 패대기치고, 난동을 부리다 이곳으로 쫓겨났다는 소문이었다.
“은퇴할 늙은 장로도 아닌데 왜 여기 박혀 있겠어요? 필시 사고를 친 것이 분명해요.”
“그럼 나는?”
“네?”
“만서각주인 나도 사고뭉치인 게냐?”
유운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소화가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거렸다.
“하하. 안다, 네 마음은 잘 알아.”
유운은 꾸짖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성현께서는 항상 생각이 한쪽에 치우침을 경계하라 하셨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어찌 평가하겠느냐?”
“……!”
소화는 입술을 살짝 삐죽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한 녀석이로구나.’
충고를 들으면 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니.
본성이 선량하고, 맑은 아이였다.
“오늘은요, 주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요…!”
조금 전 일은 금방 잊고, 또 쫑알쫑알 댈 때였다.
스으윽.
유운은 한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등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으으윽!”
소화는 한참 뒤에나 깨닫더니, 기겁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느냐?”
유운은 걱정하며 일으켜주었다.
“괘, 괜찮아요. 소화는 끄떡도 없어요.”
하얗게 질린 얼굴.
‘강단 있는 아이이거늘.’
이상하게 남방인에만은 약했다.
유운은 한숨을 쉬며 소화를 등 뒤로 숨겨주었다.
“저 자예요, 바로 저자.”
소화가 힘이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
거대한 바위, 거암(巨巖).
남방인들을 이끄는 사내였다.
“허어. 저런 몸도 있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유운이 사내의 몸을 보고 감탄했다.
햇빛에 구릿빛 근육이 번들거렸다.
‘근육의 탄력과 밀도 자체가 다르구나. 타고났어!’
거기에 산처럼 거대한 체구라니.
남방 민족 중에서도 특별한 자였다.
‘두 번째 스승님의 형님들이 저러할까?’
태어날 때부터 강자가 되기로 약속된 자 같았다.
스윽.
거암은 조용히 둘을 스쳐 지나쳤다.
무뚝뚝하지만, 결코 거칠지는 않은 태도.
검은 불이라 불리는, 흉포한 짐승!
한번 흥분하면 불길이 되어 날뛴다고 하더라!
유운조차 들어본 이야기들이었는데.
소문과는 다르게 과묵한 사내였다.
쿠르르릉.
쾅!
거암의 수련 장면에 주변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사내가 제 덩치보다 큰 바윗덩어리를 굴리고 있었다.
“우와···!”
“맙소사. 못해도 100관(375kg)은 넘겠는데?”
“저게 고작 기본 수련이라지?”
사내는 커다란 철봉을 휘두르며 몸을 푼 후.
쇳덩이에 몸을 부딪치고, 당기고, 밀면서 수련을 이어갔다.
“오오…, 저 근육 좀 봐.”
“엄청난 수련이군!”
모두가 감탄하면서 바라보던 때였다.
‘아깝다. 조금만 방법을 바꾸면 더 좋았을 텐데.’
겉보기에는 완벽한 근육질.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곳곳에 불균형이 보였다.
‘큰 근육을 먼저 키우고, 작은 근육을 키워야 하거늘. 순서가 거꾸로 되었어.’
팔이 지나치게 발달하여 모든 무게를 감당하고도 남으니.
가슴이나 등 근육이 성장할 길이 막혀있었다.
게다가 저토록 몸을 혹사하는 방식이라니?
쿵쿵쿵.
휴식 따위는 아예 잊은 듯,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부딪쳤다.
유난히 튼튼한 남방 민족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몸이 작살났으리라.
그래서일까. 유운은 무심결에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거늘.”
하필이면 다른 이들이 쉬는 중이라,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으니.
빠직.
동시에 거암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솟아올랐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이까, 공자?”
묵직한 저음에 연무장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