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6화 (6/114)

제6화

기이한 두루마리 (5)

“오셨습니까, 공자님.”

“오늘도 화창한 날씨입니다!”

유운이 수련장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왔다.

“햇볕이 한창인데, 괜찮으십니까?

유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무인들이 쇳덩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더울 때 땀을 빼줘야 근육이 크는 법입니다.”

“암요. 그렇게 열심히 해야 다시 공자님께 도전도 하지요.”

도발적인 말과는 달리 눈가에는 옅은 웃음이 어려있었으니.

그날 이후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졌다.

후흡. 호.

번쩍!

유운이 기다란 철봉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수련을 하자, 멀지 않은 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몸 봐요. 얼굴은 순둥순둥하신데, 몸은 이미 사내구만, 사내야.”

“어머, 어머.”

후덕한 중년 시비와 젊은 시비가 숙덕거렸다.

“공자님 저희도 같이 수련해도 되겠습니까?”

무인들이 유운에게 물었다.

고작 한 달 만에 이리 놀랍도록 변했으니.

제대로 자극받았는지, 은근히 부러운 눈길을 보내고는 했다.

“물론입니다, 수련은 같이하면 더욱 즐겁지요.”

유운은 남방지리지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남방 민족은 하늘이 내린 신체를 타고났음에도, 천성이 온화하고, 곧으니.

그들의 믿음을 얻은 자는 평생 함께할 보물을 얻은 것과 같다.

저자가 극찬한 몇 안 되는 민족 중 하나였다.

그때 소화가 낑낑대면서 무거운 물통을 들고 왔다.

“녀석,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유운이 재빨리 달려가서 빼앗아 들었다.

“당연히 제가 할 일인걸요.”

소화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른 무인들을 위한 물과 수건까지 준비했다.

‘속 깊은 아이로구나.’

단순히 만서각의 귀염둥이로 그치지 않고, 꼭 필요한 지원 역할을 하니.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났다.

또한 그날 이후 가장 크게 변한 사람이 있었으니.

“공자, 부디 가르침을 주시오.”

짜악!

호각대주 거암이 두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고개를 숙였다.

“대주 사문의 수련법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인데. 제가 어찌 감히….”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거암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나에게는 사문이 없소. 제대로 된 외공조차 없다오.”

“어찌 그럴 수가?”

거암은 외공의 고수로 가문 안팎에 이름을 날렸다.

강철 같은 육체로, 어지간한 도검조차 튕겨내니.

마인이나 마물을 처리할 때, 최선두에 섰던 용맹한 전사였다.

“그저 타고난 몸뚱이 덕일 뿐이오.”

오며 가며 들은 잡다한 무공 지식.

거기에 열심히 하면 된다는 근성론.

거암의 외공은 그게 고작이었다.

“…아!”

유운은 그제야 육체가 불균형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하겠습니다.”

팽육은 독문 수련법을 전하는 것은 금지하였지만, 제반 지식은 아니었다.

유운은 거암을 붙잡고 차근차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근손실이라?”

거암은 외모와 다르게 머리가 좋아서, 금방 새로운 용어를 배워갔다.

“허억! 수련을 잘못하면 근육이 줄어든다는 말이오? 이 어여쁜 아기들이?”

유운의 경고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적절한 휴식과 체계적인 훈련이 중요합니다.”

유운은 기초적인 이론부터 구체적인 개선점까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휘이익.

사각사각.

그림과 조각으로 인체를 정밀하게 구현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건… 처음 보오, 공자.”

간혹 뼈나 기맥을 분석하는 의원은 본 적 있지만.

이렇게 근육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학사는 처음이었다.

“넓적다리에 이리 많은 근육이 있었다니. 오늘 처음 알았소!”

봉공근은 종아리를 굽히고 넓적다리를 바깥으로 돌리며, 내측광근은 무릎뼈를 안쪽으로 당긴다니?

팔 운동을 많이 하면 알통이 두꺼워진다.

다리 운동을 많이 하면 버티는 힘이 세진다.

이 정도가 전부였는데, 생전 처음 듣는 지식이 쏟아졌다.

“목적에 맞는 수련법을 짜야 합니다.”

“……!”

“대주의 목적은 무엇인지요?”

“물론 더 큰 근육이오.”

“흐음.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본인이 원하시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더, 더 커질 수 있다는 말씀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먹을 것부터 바꿔야 하는데…닭과 콩을 위주로….”

솜이 물을 먹듯 지식을 빨아들이니.

거암은 외공에 관한 한, 기재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내가 지금껏 해오던 것은 수련도 아니었구려. 그저 혹사였소.”

거암은 깊은 탄식을 토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그동안의 모든 운동법이 우스워 보였다.

“……!”

유운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학문으로 치면 ‘크게 깨닫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

“제 나름의 수련 계획을 짜보았습니다. 한번 보아주시지요, 공자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대주.”

“아닙니다, 어찌 그러겠습니까? 공자님은 제게 스승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처럼 대했지만, 이내 스승을 대하듯 공경했다.

대주의 태도가 바뀌니 대원들 역시 바뀌었다.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기침이라니요. 예가 과하십니다.”

“대주님의 스승이면, 저희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호감 어린 시선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볼 때마다 정중하게 예를 갖추니.

유운은 사양하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었다.

“어떠냐. 다들 보기와 다르지 않느냐?”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소화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맞아요.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들이에요.”

소화 역시 방긋 웃으며 대원들을 위한 간식을 챙겼다.

그때였다.

쿠웅, 쿠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거암이 나타났다.

운동을 마친 직후인지, 구릿빛 피부에 살짝 붉은 기가 돌았다.

“와 진짜 불타는 화산 같네요!”

소화가 감탄했다.

검붉은 거한을, 백리세가에서는 달리 ‘불타는 바위’ 혹은 ‘불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공자님, 이것 좀 보십시오.”

거암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통을 깠다.

“밤사이 제 대흉근이 이만큼이나 자랐습니다. 모두 공자님 덕분입니다!”

가슴 근육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한 마디만큼 폈다.

아무리 훈련법이 좋아도 하루 사이에 눈에 보일 리 있겠는가.

‘그만의 호감 표현 방법이겠지.’

유운이 빙그레 웃었다.

휘이익!

거암이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 올리자, 소화가 화들짝 깜짝 놀랐다.

‘서, 설마 아직도 원한이?’

소화가 순간 그리 생각할 정도로 기세 좋았던 손길이.

스르륵.

유운에게 닿자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졌다.

거암이 유운의 복부를 한차례 쓸더니 말했다.

“허어. 복직근이 이토록 선명하다니. 과연 공자님이십니다, 껄껄껄.”

“이익. 아직 나도 못 만져봤는데. 뭐 하는 거예요!”

소화는 발끈했지만, 유운의 상의가 벌어지자 슬쩍 곁눈질했다.

사내들 역시 옥으로 빛은 듯한 복부 근육을 보고 부러워했다.

분위기가 한창 달아올랐을 때였다.

“공자님을 보면 과거의 제가 떠오릅니다.”

“……!

거암이 흐뭇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 눈치챈 무인들이 조금씩 그에게서 멀어졌다.

“제가 본가에 처음 발을 들일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가 20년 전, 동짓날인데, 얼마나 날이 궂고 추웠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선배들의 텃세도 어찌나 심했는지. 제가 어떻게 이겨냈냐면 말입니다….”

“으으으, 발동 걸렸어!”

대원들은 대놓고 도망갔고.

“사, 사람은 정말 얼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군요.”

소화 역시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했다.

산만한 덩치에 산적 같은 얼굴의 사내가 저리 수다스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호오. 마음이 매우 힘드셨을 텐데. 어찌 이겨내셨습니까?”

오직 유운만이 빙그레 웃으며 들어주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 * *

만서각이 자리한 서촌(書村).

시골 마을답게 주루는 딱 하나였는데, 오늘 그곳이 가득 찼다.

“공자님 한잔 드시지요.”

“제가 아직 술을 하지 못하여….”

“허어. 공자님께서도 못하시는 것이 있었구나. 얘들아, 뭐하냐?”

거암의 외침에 모두가 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와하하하! 공자님, 어서 드시지요!”

“어서요! 쭉쭉!”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의 중심에 유운이 있었다.

‘허어. 고작 한두 달 사이에 저리 변했단 말인가?’

몰래 지켜보는 중년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서 어린 티가 났는데.

지금은 키도 훤칠한 데다 몸까지 탄탄하니, 사내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암이 저리 친근하게 들러붙다니!’

거암이 누구던가?

백리세가의 적들을 막아낸 세가의 방패이자, 남방 야만족의 수장 아니던가?

마수의 피로 목욕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

그런 강자가 이런 시골에 있는 이유는 하나였으니.

‘저 성질머리를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남방인을 모욕하는 상사의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정도의 반골.

장로들이 역시 야만인은 길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정도였는데.

‘남방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저 어린 소년이?’

중년인은 눈을 번뜩였다.

객실에서 급하게 지필묵을 꺼냈다.

인품이 뛰어나 위아래에서 호평이 자자함.

까다로운 남방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그릇도 큼.

관찰 등급의 상향이 바람직함. 인원 및 예산의 추가를 요청함.

소가주 서문요란은 백리의 혈육 중 누구를 지원할까 한창 고민 중이었다.

조금이나마 그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정성껏 보고서를 썼다.

단, 현재 외공 외에 특별히 내공은 익히지 않은 것으로 보임.

마지막 줄을 작성하며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무공만 제대로 익혔더라면, 후계 구도를 뒤흔들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워하며 보고서를 보냈다.

* * *

솨아아…!

촤르륵.

유운은 목욕통에 앉아서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내 몸이 이리 변할 줄이야.’

동경에 자신의 몸을 비춰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근육마다 탄력과 힘이 넘치니.

마치 몸 자체가 살아 숨 쉬듯 생기가 넘쳤다.

아니, 단순한 착각만은 아니었다.

스르륵.

조그마한 단도를 밀어 넣자, 근육이 스스로 밀어낸다.

비록 살짝 피가 나오긴 했지만, 뼈와 근육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으니.

도검불침!

맨몸으로 칼조차 막는다는 전설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말이다.

‘외공은 이만하면 되었어.’

유운은 현재 ‘보기 드문 강골’ 단계.

덕분에 거암만이 가능했던 선천적 능력, ‘철골’을 후천적 수련으로 따라잡았다.

하늘을 넘본다는 ‘신의 몸뚱이’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이제는…!’

유운은 목욕을 마치자마자 두루마리를 펼쳤다.

역시나 그곳에는 새로운 문장이 보였으니.

[세 번째 추천 동영상을 제공합니다.]

문구를 보는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꿀꺽.

숨조차 죽이고 화면만을 주시했다.

이번 동영상의 제목은….

【내공, 어디까지 쌓아봤니?】

“…아아아!”

유운은 참아왔던 숨을 터트렸다.

도저히 눌러보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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