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8화 (8/114)

제8화

기이한 두루마리 (7)

무공의 진정한 위력은 내공에서 나오는 법!

그렇기에 명문세가일수록, 상승 무공일수록 철저하게 구결을 감춘다.

오직 직계 혈족이나 커다란 공을 세운 공신만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어째서 제게 웅풍십이검의 구결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는지요?”

어린 유운이 가문의 무사부에게 물었다.

“막내 공자께서는 자격이 되지 않으십니다.”

“본가의 직계인 제가 말씀이십니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이십니다.”

“커, 커흠. 아직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몸에 해로울 수 있어서….”

“백리팔검을 이렇게 빨리 깨우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칭찬하신 분은 사부님이 아니십니까?”

“그, 그게 아니라. 커흠. 제가 좀 바빠서….”

무사부는 얼굴을 굳히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다른 무사부를 찾아가도 마찬가지.

다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다음 단계의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당숙뻘되는 무인이 지나가며 한마디를 툭 건넸다.

“요즘 무공에 관심을 가진다지?”

겉보기에는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

하지만 유운은 덫에 걸린 새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뱀처럼 차가운 눈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하거라. 사슴이 사자와 놀겠다고 애쓰면 어찌 되겠느냐?”

“……!”

“주제를 모르고 맹수의 뒤를 따른다면…결국 한 끼 식사 거리가 될 뿐이지.”

그것은 노골적인 경고였다.

네가 더 나아간다면, 결과가 뒤따를 것이다.

사촌 형의 치기 어린 괴롭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참혹한 결과가 말이다.

그날 이후 유운은 무공의 무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문득 생각나도 입술을 꽉 깨물고, 어떻게든 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끊어낸 마음이거늘….

‘구결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다? 허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늘….’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뛰는 것일까?

유운은 떨리는 손으로 표식을 눌렀다.

- ‘섬전검법’의 독문 내공심법은 다음과 같다.

- 기해혈에서 사분지 일의 내력을 우측 어깨의 견정혈로 보내고, 사분지 이의 내력은 양 발바닥의 용천혈로 보낸 후, 나머지 내력으로 이를 충돌시켜 검기를 폭발시키니….

자막에는 무공의 핵심 요결이 낱낱이 설명되어 있었다.

털썩.

유운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 맙소사. 설마 다른 영상도?’

유운은 황급히 손가락을 놀렸다.

- 강맹한 내기를 두른 주먹과 다리는 강철 검도 부수니. ‘철각양권’의 요결은 다음과 같다. 단전의 기운을 황문혈로 이끌고…

거의 모든 영상이 구결을 공개하고 있었다.

모두 마음껏 보고 배우라는 듯이.

그런 동영상이 무제한!

말 그대로 끝도 없이 많았다.

‘아아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벅찬 감동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행운? 축복? 혁신?

아니, 고작 그런 말로는 이 기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나의 무공을 낱낱이 분해하고, 수많은 무공을 분석하여 더 나은 무공에 이르는 길.

바로 무학사들이 평생에 걸쳐 꿈꿔오던 일 아니던가?

‘어쩌면…어쩌면!’

멀리서 희미한, 그러나 찬란한 빛이 보였다.

* * *

촤르륵.

촤라라…!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화면이 바뀌며 영상이 쏟아진다.

다양한 무인들이 화려한 초식을 뽐내고, 복잡한 구결을 읊었다.

어지간한 기재라도 뒷걸음질 칠 정도로 양이 많고,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유운은 오히려 기뻐했다.

‘하루가 열두 시진뿐인 것이 아쉽구나!’

분초를 아껴가며 영상에 집중하니.

명안명심법의 성취까지 같이 올라갔다.

이 배속… 삼 배속… 오 배속!

심지어 영상을 빠르게 당겨서 볼 정도였다.

‘무공의 세계가 이리 넓을 줄이야. 아아! 지금껏 나는 어린아이와 같았구나!’

유운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공의 바다를 마음껏 누볐다.

하루하루가 충만하니,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작은 고민은 있었다.

‘사람이 서면 앉고, 앉으면 눕고 싶다더니.’

무공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으니.

결코 초식과 구결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같이 무공을 논하고,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유운은 스승 혹은 사형제를 떠올렸다.

‘복에 겨운 소리를 하는구나.’

유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천하에 다시 없는 행운을 잡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여겼다. 그랬는데….

두루마리가 보인 기적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건 뭐지?’

표식들이 이어진 줄 바로 밑에, ‘황금색 복주머니’가 보였다.

스르륵.

손가락으로 밀자,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 댓글 보기 ]

‘댓글?’

영상 밑으로, 연이어 글들이 이어졌다.

└ 섬전 검법이라. 나쁘지 않아. 입문한 지 20년쯤 된 초보자에게 딱 좋은 무공 같군.

└ 요즘엔 겨우 20년짜리를 초보라고 부르나? 적어도 50년은 수련해야 초보 딱지를 뗐다 할 수 있지.

└ 무슨 소리들 하는 게야. 섬전 검법이면 충분히 상승 무공이야. 저 정도로 속도와 변화를 제대로 살린 검법은 흔치 않아.

마치 무공을 품평하는 모양새였다.

‘설마… 설마?’

이번에는 다른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가로, 세로, 대각선.

세 가지 초식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검법이었는데.

└ 호오. 이건 좋군. 아니 매우 좋아.

└ 그래. 내려치기 하나에 128가지 변화를 품고 있군. 막기 쉽지 않겠는데?

└ 막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당연히 옆으로 피하고 빈틈을 쳐야지.

└ 보이지 않는 검기가 팔방을 꽉 틀어막고 있는데?

└ 칼밥 일이십 년 먹어보나, 당연히 아래로 굴러서 피해야지.

└ 당나귀처럼 흙바닥을 구르란 말인가? 무인으로서 자존심도 없나?

└ 목숨이 걸린 싸움에서 자존심은 무슨.

└ 허허. 굳이 나려타곤이 필요한가? 상대의 검을 오히려 끌어당기면, 퇴로가 나올 것으로 보이네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토론이 이어졌다.

유운은 넋을 잃고 동영상의 바다에 빠졌다.

동영상마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수준 높은 동영상일수록 ‘댓글’이 심상치 않았다.

백의인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검을 내려친다.

콰아아아앙!

무수히 많은 검기가 쏟아지며 땅을 초토화시켰다.

만서각 따위는 십여 개쯤 날아가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이, 이게 사람이 만든 광경이라고?’

유운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경지.

하지만 사람들은 태연했다.

└ 과연 검마로군. 그래봤자 너무 파괴력에만 치우쳐 있지만.

└ 그렇지, 초상비로 피하면 그만 아닌가.

풀잎 위를 달린다는 전설의 신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 등평도수로 옆으로 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물 위를 걷는다는 전설의 신법이 나왔고.

└ 아니지. 그것들은 오래 달리는 데는 좋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은 부족해. 이럴 때는 어기충소가 제격이지.

└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하늘로 튀어 오르겠나?

└ 맞네. 설령 쓴다 해도 검마의 검막을 뚫을 수는 없을걸?

└ 충분히 가능한데?

└ 흥, 말로는 쉽지!

└ 너, 이 자식! 네 스승이 누구야? 몇 년생이야!

말이 아닌 글자인데도, 사람들이 흥분하는 게 느껴졌다.

└ 허허. 이럴 때 인증은 필수가 아니겠나?

└ 좋다, 내 직접 보여주지.

댓글 한가운데, 기이한 문자 덩어리가 있었다.

그걸 누르자 새로운 영상이 떴다.

퍼어어엉!

단 한걸음!

한 노인이 폭발적인 속도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 허어! 제법 빠른데?

└ 솔직히 저 정도면 검막도 뚫을 수 있겠어.

└ 끄응. 탐탁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군. 네 말이 맞다.

그런 동영상이 끝도 없이 많았으니.

유운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아아아…!”

유운은 눈시울을 붉히며 주저앉았다.

수많은 사람이 무공을 토론하며, 끝없이 나아가는 광경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유운은 그때서야 두루마리의 정체를 확신했다.

“사람이, 아니 신선이라도 이리 귀한 보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아니, 만들기는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하리라.

그러니 누구겠는가?

“상제시여!”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수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무공을 토론하고 연구하는 공간.

깨달음의 열매로 가득한 무릉도원.

바로 무학사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니던가?

“시조께서 상제에게 간청하시어, 내게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주셨구나!”

유운은 기쁨에 차서 외쳤다.

* * *

그날 이후, 유운은 두루마리에 빠져서 살았다.

밥을 먹을 때도, 측간에 갈 때도, 잘 때도 두루마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손바닥만 보는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워낙 머리에 든 게 많으시니.”

“성현의 말씀이라도 암송하시나 보지.”

유운의 기쁨은 성현 말씀을 처음 접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었으니.

‘이것이 진짜 무공이구나!’

잔뜩 굶주렸던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의 문을 열어젖힌 꼴이었다.

얼마나 향기로운가?

유운은 새로운 세계에 흠뻑 취했다.

무려 한 달!

유운이 겨우 제정신을 차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밥도 거의 안 드시고. 잠도 안 주무시고.”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구나.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강한 중독에서 약한 중독으로 바뀐 정도였다.

두루마리를 몸에서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으응?”

‘다소 마르고 피곤해 보이는 게 아니고?’

신묘한 외공과 내공이 아니었다면 해골이 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어쩐지 공자님이 배부른 고양이 같아 보여서요.”

꼬마 소녀는 의외로 예리했다.

지금 유운의 마음이 딱 그랬다.

“녀석, 고맙다.”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앗. 머리 헝클어져요.”

소화는 깔끔쟁이라 흐트러지는 것은 질색이었다.

그런데 유운의 손만큼은 치우지 않고 활짝 웃었다.

“하하하!”

“히히히!”

한바탕 웃음 속에 그간의 피로가 싹 다 날아갔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유운의 성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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