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14화 (14/114)

제14화

검을 논하다 (5)

- 커허헙! 이거 아니다! 이거 아니야!

새로 들어온 시청자가 다급하게 글을 올렸다.

- 제자들이 자동으로 입력되도록 만들어 놓았어! 결코 내가 작성한 글이 아니야!

얼마나 급했는지, 굵은 글씨로 다시 강조했다.

- 내가 아니다!

- 내가 아니다!

화면 너머, 시뻘게졌을 얼굴이 상상될 정도였다.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상대를 진정시키고 대화방을 다시 살폈다.

댓글 옆에 조그마한 초상화가 보였다.

‘허어. 참으로 신선 같은 노인이구나.’

‘사진’이라 불리는 초상화는 실로 정교하였으니.

긴 수염을 늘어뜨린 청수한 백의 노인이었다.

- 제자 놈들, 무슨 음식점 홍보하듯이 해놓았어. 고얀 놈들.

노인은 자신이 한 게 아님을 다시 강조했다.

“괜찮습니다, 다 이해했습니다.”

- 오해하지 않아 줘서 고맙네, 젊은이.

유운의 부드러운 말에 노인이 진정했다.

- 커헙. 요즘 애들 신문물은 너무 어려워. 옛날이 참 쉽고 좋았는데.

세가의 원로들이 곧잘 하는 이야기 아닌가?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어르신.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저는 좋습니다.”

- …허. 참으로 침착한 젊은이로구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니?

실로 담대한 성품이 아닌가.

- …그런데 어르신이라니?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외부인은 처음 보았다.

다들 자신의 정식 별호를 부르던가, 아니면 검존이니 검신이니 높이기에 바빴는데.

- 설마 자네.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저의 견문이 짧아서. 송구합니다, 어르신.”

유운의 대답에 노인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 아니야, 모를 수도 있지. 깊은 산속에서 수련하는 수도자라면 나를 모를 수도 있지.

노인은 말하면서 재빨리 자신의 명칭을 바꾸었다.

[ 매화검선 -> 매검노인 ]

- 허허허. 명성이 무에 중요하겠는가?

온종일 달라붙어서 어떻게 한 마디라도 얻어들을 생각만 하는 녀석들만 보다가, 순수한 시골 청년을 보니 매우 신선했다.

‘이분도 당연히 자신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노인의 반응은 익히 보아왔던 것이라, 유운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지요. 헛된 이름보다 사람의 참된 모습이 중요하지요.”

- 허어. 어린 친구가 벌써 그걸 알다니. 그런 뛰어난 안목이 있으니 화산검을 선택했겠지.

“아. 화산의 무인이셨습니까?”

- 그렇지. 틈이 나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우연히 자네의 수련 장면을 보고, 호기심에 한 번 들어와 보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간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서 적적하였습니다.”

- 허허허, 곧 좋은 날이 올걸세. 자네의 육합검법을 슬쩍 보았는데, 꽤 잘하더구만.

“과찬이십니다.”

- 아닐세. 대략 오성 내지는 육성 정도의 성취이니. 무공을 수련한지는 대략 10년 정도 되었겠구만?

확신에 찬 말에 유운은 멈칫했다.

여기서 어떻게 한 달도 안 걸렸다고 말하겠는가?

‘그건 어르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유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빙그레 웃었다.

“네, 어르신. 그렇습니다. 보잘것없는 무공으로 고인의 눈을 어지럽혔습니다.”

- 호오. 겸손하기까지. 갈수록 마음에 드는 젊은이로구나.

화면 너머. 매화검선은 흡족하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 그래, 화산의 검술을 수련한 소감은 어떠한고? 명성대로 대단하지 않은가?

매화검선이 기대에 찬 어조로 물었다.

“하하. 그것은….”

유운은 차마 거기까지 거짓을 말하지는 못했다.

만서각에는 무림의 소식지도 들어온다.

과거의 문파를 포함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문파는 다 알 수 있다.

그러니 유운이 모를 정도면, 군소 문파라는 소리였다.

“훌륭했습니다.”

- …설마 자네 화산도 모르나?

조금 어색한 답변에, 매화검선이 기가 막힌 듯 말했다.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마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 아니지, 아니야. 그건 아니지. 어찌 무인이 화산을 모를 수가 있단 말이냐?

매화검선이 어이없다는 듯 한탄했다.

“정확히 아직 무인은 아닌데….”

유운이 조그맣게 반론했지만, 들리지 않았나 보다.

- 휴우. 그래 세월 앞에 장사 없지. 내 이해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백 년 아니 천 년쯤 지나면 그럴 수도 있지.

유운은 무언가 조금 어긋난 느낌이 들었지만, 따지지 않았다.

말과 다르게 노인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 화산을 알지도 못하면서, 화산의 검은 왜 수련하는 겐가?

살짝 토라진 어투였다.

“제가 존경하는 무인이 그곳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 호오. 존경하는 무인이라?

매화검선의 어투에서 다시 활기가 돌았다.

- 그렇지, 암. 화산은 바다와 같으니, 이무기도 용도 다 품고도 남지.

‘가끔은 개천에서도 용이 나기도 합니다만.’

유운은 화산이라는 문파가 대단한 게 아니라, 화산제일검이라는 개인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산을 좋아하는 노인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 그래, 자네가 존경한다는 무인이 누구인가?

매화검선의 어투에 은근히 기대감이 감돌았다.

“바로 이분이십니다.”

유운은 화산제일검의 동영상을 틀었다.

- 오호라…!

매화검선이 흡족한 듯 웃었다.

‘앙큼한 젊은이로고.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이로구나.’

분명 여기서 진실을 빵 터트리면서, 고개를 조아리며 존경심을 표하겠지.

그렇다면 나름 신선한 시도였다고 칭찬하려고 했는데….

“화산제일검의 검무, 실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진심을 담은 감탄.

- 자네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는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지만 유운은 동영상에 푹 빠져서, 다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인의 풍모 역시 너무나 뛰어나니. 실로 신선과 같습니다.”

- 으하하! 그야 당연….

“세월이 상당히 지났으니. 그분은 더욱 멋있어지셨겠지요? 옥과 같은 얼굴에, 풍류를 아는 멋진 중년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 그, 그렇겠지?

매화검선은 멈칫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럭저럭 청수하긴 한데, 다른 신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였다.

“혹시 어르신께서도 화산제일검, 그분을 아십니까?”

- 아, 그 친구? 내가 좀 잘 알지.

화면 너머. 매화검선은 뿌듯한 표정으로 환히 웃었다.

“분명 지금도 고독을 즐기고 계시겠지요? 돈도, 권력도 마다하고, 뭇 여인들의 구애도 외면하고 말입니다.”

- 그, 그렇지. 그런 편이지.

매화검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야 젊었을 때라, 겉멋이 한참 들어서 그랬던 거라고!’

속으로만 소리쳤다.

여선 하선고에 반해서 쫓아다닌 지 벌써 반백 년이었다.

보패와 같은 보물? 이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나왔다.

“과연 어느 경지에 오르셨을지 너무나 기대됩니다. 화산제일검이라면 지금쯤….”

- 그래, 산봉우리 하나쯤은 일 검에….

“분명 바다를 가르고도 남으실 겁니다.”

- …뭐?

“아니, 하늘의 달이나 태양도 가르실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한 검의 길, 그 끝에 도달하셨을 테니까요.”

유운의 상상 속에서 사내는 끝도 없이 강해졌으니.

실제의 사내를 추월한 지 오래였다.

- 무, 무슨. 자기가 거, 검신도, 아니 오, 옥황상제도 아니고.

어찌나 당황했는지, 매화검선이 말을 더듬었다.

일 검에 달과 해를 베?

어떤 신선도 못 한다. 진짜 옥황상제라면…?

‘되, 될 리가 없지 않느냐!’

옥황상제 할애비도 불가능하다.

그러자 유운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일지라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어르신.”

- ……?

“최근에 그분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동영상 속 자신의 모습은 막 신선이 되기 전, 적어도 천 년 전이었다.

- 한 천 년 전에….

“그러면서 그분의 현재 경지를 어찌 그리 낮게 잡으십니까? 그분께서 들으면 얼마나 섭섭해하시겠습니까?”

유운이 차분하나 단호하게 말했다.

‘아, 아니. 전혀 안 섭섭한데….’

섭섭해하는 건 오히려 유운 같았다.

온화한 청년이 저리 말할 정도이니, 마음이 상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분께서는 한시도 쉬지 않고 정진하고 계실 겁니다. 속세의 모든 즐거움을 끊고, 오로지 천하 만민을 위하여, 검만을 생각하실 겁니다.”

‘그, 그렇게까지 미화할 필요는….’

매화검선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그분을 닮는 것이 저의 평생의 꿈입니다.”

- ……!

“저 고고한 풍모, 현묘한 검술의 백분지 일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제 인생에 큰 홍복이라 할 것입니다.”

매화검선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딱 한 가지.

이글이글.

열정으로 불타는 청년의 눈동자를, 꺼뜨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 그, 그래. 자네는 할 수 있을걸세. 충분히 따라잡을 수….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저따위가 감히. 그분이 들으시면 마음이 상하실 겁니다.”

‘어쩌라고 이놈아….’

매화검선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대체 이놈은 화산제일검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들뜬 얼굴로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유운을 보니.

도저히 환상을 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 아니야, 괜찮네. 재미있었어.

이런 식의 이야기는 매화검선도 처음 들었다.

하도 유운이 우러러보다 보니, 매화검선조차 ‘화산제일검이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었구나!’ 하고 순간 감탄할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었던지라. 처음 뵌 어르신께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 아닐세, 자네같이 순수한 젊은이는 보기 드물지.

이유야 어쨌건, 기분은 좋았다.

아니 좀 과해서 부담스러울 정도긴 했다.

“가끔 틈나실 때 한 번씩 놀러 와 주십시오. 겨우 십 년 수련으로는 부족하니.”

- 그래, 나도 간간이 들려서 검을 봐주겠네. 내가 화산제일검만은 못해도 꽤 하거든.

“감사합니다, 어르신. 말씀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 그래, 자네도 정진하게. 십 년 만에 그 정도면, 충분히 재능이 있는 걸세.

“하하하!”

- 허허허!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마음으로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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