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17화 (17/114)

제17화

검을 논하다 (8)

후르릅.

소화가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을 훔쳤다.

‘녀석, 어지간히 먹고 싶은 게로구나.’

숫제 생선 가게 앞에선 고양이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소화의 눈동자가 뱅글뱅글 도니, 보는 이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소화의 등을 툭 쳤다.

“뭐 하느냐?”

“네?”

“어서 들어가지 않고.”

“어찌 감히. 아니에요, 공자님.”

“종이 사면서 큰 손해를 볼 뻔했는데, 우리 소화 덕분인지 일이 잘 풀렸구나. 그 돈 없는 셈 치면 된다.”

유운의 말에 소화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네, 네. 히히히!”

왼손에는 매콤한 양념을 듬뿍 바른 닭고기꼬치를, 오른손에는 당과가 한가득 쥐어졌다.

파닥파닥!

소화는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 사이 유운은 매화검선과 대화했다.

-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만 생각했느니라.

그러니 화산을 모를 수도 있다,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마수라니?

매화검선의 목소리가 저절로 신중해졌다.

- 당금 천하의 주인이 누구냐? 주 씨가 맞느냐?

“영 씨입니다.”

- 황제의 성씨가 달라지다니! 그 사이 역성혁명이라도 일어났다는 말이더냐?

“황제라니요? 맹주가 아니고요?”

-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두 사람 다 서로를 마주 보며 의문에 빠졌다.

“과거 왕이나 황제가 지배하는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을 봤습니다만. 학사가 아니면 알지도 못할 정도로 오래전 일입니다.”

- 어찌 그런 일이? 그럼 관부는 어떻게 되었느냐? 관부가 가만있을 리가 없을 텐데.

매화검선의 설명을 들은 유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무엇이 말이냐?

“어찌 강자가 약자의 명에 따른단 말입니까?”

- ……!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도 하늘을 날고, 일 검에 수십 명을 쓰러뜨리는 절대 고수가 있었다 하셨는데. 그런 고수가 어찌 관부의 명을 따른단 말입니까?”

매화검선은 유운의 말에 딱히 대답하지 못했다.

관무불가침이라는 둥, 천자의 권위를 존중한다는 둥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 ……!

“힘이 있으면 쓰고 싶고, 권력이 보이면 갖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천하를 오시하는 고수라면 응당 천하를 탐내지 않겠습니까?”

맹에서도 수많은 반란과 진압이 있지 않았는가?

유운은 역사를 알기에 오히려 당당히 물었다.

- 그, 그것이….

쩔쩔매던 매화검선이 말을 돌렸다.

- 그럼 영 씨 황제는, 아니 맹주는 어찌 일어섰느냐?

“천하에 암흑기가 도래하고, 마수가 범람하던 때. 초대 맹주께서 분연히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십병무제(十兵武帝) 영이인!

열 개의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절대 강자가 앞장을 서니.

수많은 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마수를 몰아내고 천하를 안정시키니, 그게 ‘맹’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 뒤로 맹 역시 몇 번이나 뒤집혔습니다만.”

맹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맹주의 성씨만은 똑같았다.

- 어허. 시간이 지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였구나.

매화검선이 깊게 탄식했다.

아쉬움과 두려움, 호기심이 뒤섞인 어조였다.

“설마…그럼 안 되는 겁니까?”

- 뭐가 말이냐?

“스,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유운은 스승의 기대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 땅에 있는 화산파라는 문파를 찾아가 정식 제자가 되길 기다리고 있음을.

그런데 이 땅에 화산이 없다면….

- 네가 어느 곳에 있든지, 네가 누구이든지.

매화검선이 말을 멈추었다.

- 너는 나의 유일한 제자다.

“……!”

망설임 없는 말에, 유운은 울컥했다.

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눈빛으로.

“히히히. 또 손바닥 본다. 손바닥이랑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데.”

- 커험. 허허허!

“…하하하.”

두 사람은 웃고 말았다.

뚜벅뚜벅.

세 사람은 요기를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먹고도 식사를 할 수 있겠느냐?”

“아까 그건 간식이고요, 밥을 위한 배는 따로 있어요.”

유운의 물음에 소화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하하!”

- 그나저나 우리 제자가 보기보다 높은 신분이었군?

매화검선이 뒤늦게 감탄사를 토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 맹이 천하를 지배한다면, 백리세가는 작은 나라를 지배하는 왕가와 같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는 왕자라도 칭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느냐?

매화검선의 놀림에 유운이 머쓱해 하였다.

“놀리지 마십시오, 스승님.”

- 허허허. 좋은 걸 알았어, 좋은걸.

화면 너머. 매화검선은 흡족한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유운 일행은 장터를 구경했다.

“와아아아! 저기 구경 가요, 사람 입으로 칼이 막 들어가요, 입으로!”

본가의 규율이 엄한지라, 소화는 오히려 이런 외출 경험이 적었고.

- 허허허!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몸이 반쯤 투명해진다고? 어찌 세상에 이런 일이! 저기로 가자꾸나!

매화검선은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

“저기로!”

- 여기로!

두 명이 각자 동시에 떠들었다.

“하하하, 차근차근 둘러보시지요. 아니, 보자꾸나.”

그 뒤로도 양쪽에서 계속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로!”

- 여기로!

“하하하, 천천히….”

조그마한 손이 유운을 잡아당기고, 품속의 두루마리는 시도 때도 없이 부르르 떨렸다.

“와, 저기 저기!”

- 오오오. 여기, 여기!

기분 탓일까, 어쩐지 조금 피곤해졌다.

“저기! 저건 뭐예요? 먹는 거?”

- 여기! 이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우리, 이거 사요.”

소화가 잡아끌고.

- 그거 보여주게. 그래, 뒤집고, 펴고. 옳거니!

스승이 들썩이니.

마음은 참 푸근하고 좋은데.

“…하하하.”

어쩐지 피곤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만서각으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으허헉!”

와당탕!

비명과 함께 머리가 허연 노인이 쓰러졌다.

“계약 끝났잖아, 끝! 어디서 추잡하게 들러붙어!”

“이놈들, 처음 살 때와 말이 다르지 않으냐! 장원을 무너뜨린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망발이더냐!”

노인은 피를 토하면서도 따졌다.

“무슨 소리야, 우린 그런 말 한 적 없어.”

얼굴에 칼집이 난 중년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유운은 주변에 물었다.

“왕 영감네 아들이 그만 주사위 도박에 빠졌데요, 글쎄.”

“왕 영감이 아들 구한다고 장원까지 팔아치웠다지.”

중년 여인 둘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풀었다.

“그거 왕 영감네가 대대손손 살아오던 거라, 죽어도 안 팔려고 하던 건데.”

“그래도 아들은 구해야지 어떻게 해요. 무림 쪽이랑 연결된 도박패라, 빚 안 갚으면 손가락 잘린다는데.”

두 여인은 아들을 욕하고, 왕 영감을 안타까워했다.

“그 왕가장 말씀이십니까?”

“이 동네에 장원이 그거 하나밖에 더 있어요?”

유운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구나.’

더군다나 위치도 공교로웠다.

왕가장은 만서각과 서촌의 중간에 있는 장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만서각과 더 가까웠다.

“왕 영감만 불쌍하게 되었지 뭐.”

“그러게. 장원도 헐값에 넘겼는데, 그나마 장원을 헐고 이상한 걸 짓는다니.”

그 말에 유운은 나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거라니요?”

유운의 물음에 두 여인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화 어쩌고였는데.”

“방자가 들어가지 않았어요?

“아, 맞다. 화방!”

“그래. 호호호. 이름 예쁘네. 무슨 그림 가게인가?”

“화방!”

뜻밖의 단어에 유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화방(火房).

화약 및 화기를 생산하는 곳을 말했다.

‘아무나 생산할 수 없을 텐데?’

극히 위험하여 허가받은 소수의 장인 집단이 아니면 손도 델 수 없는 물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행패를 부리는 사내의 우측 가슴에 새겨진 불꽃 문양이 눈에 익었다.

흑산조가.

화약 생산을 허가받은 몇 안 되는 가문.

그리고 백리세가의 종가이자, 백리오혁의 외가였다.

‘화방은 외진 곳에 따로 지어야 하거늘.’

화방은 당연히 화재위험이 크다.

그런 화방을 민가 근처에, 만서각 근처에 세운다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위치가 만서각과 너무 가까웠다.

만에 하나, 천에 하나라도 불씨가 만서각으로 튄다면?

‘……!’

목조 건물과 종이로 가득하니, 그 어느 곳보다 잘 타오르리라.

‘너무 위험해. 자칫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게다가 만서각의 장서는 그 자체로 가문의 역사다.

무공이 아니더라도, 가문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다.

만서각이 불타면, 후계 후보에서 탈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문에서 쫓겨날 것이다.

‘내가 밉기로서니 그렇게까지 한다고?’

하지만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작위적이었다.

유운은 얼굴을 굳히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뭐하냐, 얘들아. 일 안 하냐?”

“네, 형님. 맡겨주십시오.”

덩치 큰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어서 끌어내라!”

“카악, 퉤! 영감,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사내들은 노인을 들어서 거리 바닥에 패대기쳤다.

“어이쿠. 어어억.”

노인은 허리 어딘가가 잘못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다들 사내들의 눈치만 보며 머뭇거릴 때였다.

“뭐 하는 짓들이에요, 나이 드신 어른한테!”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뭐야, 이 꼬맹이는. 겁도 없이 어딜 끼어들어?”

소화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법한 사내였지만.

“아저씨는 꼬맹이보다 못해요.”

“뭐?”

“어릴 때 안 배웠어요? 남에게 소리 지르지 말기. 힘은 함부로 쓰지 않기. 어른에게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

소화의 똑 부러진 말에 주변에서 호응했다.

“그렇지, 그래. 어르신한테 행패 부리면 안 되지.”

“왕 영감이 그래도 가뭄 때 곡식도 풀고. 좋은 양반인데 말이야.”

분위기가 좋은 쪽으로 달아오르려 했지만.

콰아앙!

덩치 큰 사내가 발을 구르자, 땅이 울렸다.

“죽고 싶은 놈은 더 떠들어. 안 말린다.”

“…….”

“…….”

장터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안 죽고 싶지만, 계속 떠들 거예요. 아저씨 나빠요!”

소화만이 굴하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뭐, 뭐! 쥐방울만 한 게. 내가 어리다고 봐줄 줄 아나!”

“꺄아아악!”

부우우웅!

사내가 솥뚜껑 같은 주먹을 휘두를 때였다.

터억!

“그만하시지요.”

자신보다 배는 두꺼운 팔을 잡은 젊은이가 있었으니.

왕 노인을 피신시킨 후 돌아온 유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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