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26화 (26/114)

제26화

인연이 이어지다 (8)

선비는 하루가 지나면 달라진다고 하였다.

유운의 무공이 그러했다.

“차아압!”

유운이 발을 한번 내딛자.

부우웅…!

유운의 몸이 허공으로 일장(一丈)이나 치솟아 올랐다.

그것으로 모자라서 허공을 밟고 옆으로 이동하기까지 하니.

내공이 부족해서 쓰지 못했던 상승의 경공술이었다.

설영과의 수련 방식 또한 달라졌다.

“검에는 눈이 없으니, 감히 주군을 상하게 할까 염려됩니다.”

첫날 설영은 저어하는 표정으로 유운을 말렸다.

날을 세우지 않은 가검(假劍)도 기를 싣는 순간, 신검과 같으니.

어지간히 실력 차이가 난다 해도 뒤집고도 남았다.

“설 사부, 적 대주의 무공 성취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전장에서 쌓은 명성에는 헛됨이 없다 하였으니. 못해도 저보다는 윗줄일 것입니다. 게다가 성품 또한 흉포하다 합니다.”

“그런 적 대주가 저를 봐주면서 상대하겠습니까? 설 사부처럼 힘을 아끼면서요?”

“휴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주군!”

유운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막상 비무의 흐름은 일방적이었다.

지이잉…. 펑!

조심조심하다 마침내 날을 부딪친 순간, 설영의 검이 튕겨 나갔다.

설영은 경악한 눈으로 검을 보더니, 이내 기쁨에 찬 눈으로 소리쳤다.

“이거였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크하하!”

유운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가 내공을 익히지 않았을 리 없다.

“협객전에 이르기를, 강호인은 삼 할의 힘을 숨긴다고 하였는데…. 주군께서는 모진 박해를 받으시면서도 구 할의 힘을 숨기고 계셨군요! 과연 주군이십니다!”

설영의 표정은 그간의 걱정이 씻은 듯 날아간 듯 개운했다.

“하. 하. 그, 그런 셈이지요.”

삼단공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설영에게 어찌 며칠 만에 오른 경지라고 말하겠는가?

유운은 어색한 웃음으로 넘겼다.

지이잉…!

채앵…!

검기를 사용한 비무다. 실력 차이가 있다 해도, 아차 하면 큰 상처를 입는 상황.

덕분에 두 사람의 비무는 전에 비할 바 없이 치열해졌다.

‘결정적일 때, 몸 안에 쌓이는 근기 또한 큰 힘이 되리라!’

유운은 육체 수련 또한 잊지 않았다.

“우와아! 공자님이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들을 위한 맛있는 식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헛둘, 헛둘!”

울퉁불퉁한 몸매의 사내들이 유운을 반갑게 맞았다.

“으하합!”

“버텨!”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양발을 벌리고, 두 팔을 내밀고 있으니.

흡사 불가에서 말하는 금강동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자, 굳혔으니 풀 차례다. 다 같이 산꼭대기까지 뛴다. 실시!”

“실시!”

“실시!”

우르르.

온몸에 땀이 번들번들한 사내들이 개떼처럼 달려갔다.

그 무리 한가운데에는, 하얀 수련복을 입은 유운도 있었다.

“각주님 혹시….”

거암이 유운의 발놀림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대주?”

“무언가 몸이 가벼워 보이시는 것도 같고…. 아닙니다, 제가 잘못 보았나 봅니다.”

거암은 고개를 흔들며 선두로 달려갔다.

‘과연 거암 대주로구나! 그 작은 차이를 알아보다니.’

유운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며칠 전부터 발바닥이 간질간질했다.

정확히는 둘째, 셋째 발가락의 중간에서 아래. 발바닥이 움푹 패인 지점.

바로 용천혈(湧泉穴)이었다.

땅과 직접 맞닿는 곳이다. 이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 혈이 어디 있겠는가?

오죽하면 용의 기운이 샘솟는다는 표현할 정도였으니.

가장 땅의 기운에 가까운 혈이었다.

‘확실히 기의 성질도 다르구나.’

몸의 중심, 기해혈에 자리한 기는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묵직한 선비와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몸의 끝, 용천혈에 자리한 기는 통통 튀는 어린아이처럼 재빠르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유운의 발놀림 역시 훨씬 더 가벼워졌다.

‘두 번째 새싹 역시 멀지 않았구나.’

한 개의 단전만으로 그토록 놀라웠는데.

두 번째 단전이 깨어나면 어떻게 될까?

유운은 기분 좋은 기대감 속에서 매일 수련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걸 보는 매화검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 걱정이로구나, 걱정이야!

아이로 비유하면, 또래와 비교도 할 수 없이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똑똑하기까지 하지만.

딱 한 가지.

- 독하지가 않아….

복부만 베면 끝인데 저기서 끝내다니?

아무리 친선 비무라지만 손속이 너무 물렀다.

- 얘야, 뱃가죽 좀 긁힌다고 죽지 않는다. 조금 더 과감하게 손을 써야지.

“혹여 내공으로 장기라도 상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무엇보다 승부가 이미 났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태연하게 저리 답답한 소리를 하니, 매화검선은 속이 터졌다.

- 방금 너의 다리 사이가 비었다.

“검을 휘두를 수 없는 각도였기에….”

- 다리는?

“……?”

- 상대가 다리로 네 거시기를 차면, 그때도 검 타령을 할 거냐?

“설 사부가 그럴 리가….”

- 적인걸이라면 다르지.

“…아!”

유운은 짧게 탄식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스승님. 앞으로 유의하겠습니다.”

저리 순순히 고집을 꺾으니 뭐라 하기도 힘들었다.

- 휴우. 안 돼, 이걸로는 안 돼.

실전은 결코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독기, 그리고 예측 못 한 비장의 수!

둘 중 하나만 부족해도 죽기 십상이었다.

- 휴우. 더럽고 비열한 무림의 술수를 겪어보지 못했으니.

비열한 행동은커녕, 아직까지 피를 본 적조차 없다.

그런데 낭인들은?

눈에 모래 뿌리기.

귀 물어뜯기.

고간 걷어차기.

패배를 인정하는 척하면서 비수 던지기.

정파의 무인들은 상상도 못 하는 짓을 태연하게 한다.

하물며 닳고 닳은 적인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쓰진 않아도, 당하진 말아야지!’

매화검선은 결심을 굳혔다.

제자를 위해서라면 자존심이 대수일까?

가장 꼴 보기 싫은 인물에게 연락했다.

- 그저 세월이 흐른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라고? 무슨 거짓부렁을 그리 태연하게 하느냐.’

녀석은 믿기기는커녕 화를 냈다.

하지만 매화검선이 꾸준히 설득했다.

- 내 정체는 절대 말하지 말고!

이상한 조건까지 달면서.

- 뭐,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이리 요란을 떠는지. 어디 얼굴이나 보자.

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시청자(1명)가 입장하였습니다!]

[총 시청자 수 : 2명]

경쾌한 알람에 유운이 정중히 인사했다.

“스승님의 친우분을 뵈옵니다.”

새로 들어온 신선은 매화검선과는 매우 달랐다.

키가 매우 작고, 얼굴은 곰보였으며, 몸은 뚱뚱했다.

- 흐음. 곱상하게 생겼구나?

종남일패가 미심쩍은 듯 말했다.

- 이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종남일패가 내심 기대에 찬 눈으로 소개말을 기다렸다.

종남제일인!

주방 숙수에서 외문 제자를 거쳐 내문 제자, 마침내 장문인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웅혼한 검법을 펼쳐 검성으로 불렸던 사내!

무엇보다, 천하에서 두 번째로 강했던 사내!

그런 수많은 소개 방법이 있건만.

- 막 싸움의 달인이다.

- …뭐?

- 흙바닥 뒹굴면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면, 이길 놈이 없지. 심지어 불알까지 물어뜯는 놈이다.

- 야 이 미친놈아! 그건 사파의 맹주, 사황이랑 내공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웠을 때….

- 보시다시피 허언증도 조금 있다.

- 이, 이, 이 이노오오옴!

유운이 말릴 새도 없었다.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면서 싸웠다.

‘허어. 고고하신 신선들께서. 마치 개와 고양이 같구나.’

유운은 그 모습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 끄응. 아무튼 이 녀석아 말조심해.

- 조심하면?

- 특별히 내 제자를 지도할 기회를 주마.

- 미쳐도 곱게 미칠 것이지. 주화입마에라도 들었느냐?

대번에 나오는 거친 언사.

딱 보아도 스승과는 태생부터 다른 사내였다.

그럼에도 그 밑바닥에는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이 보였다.

- 하나 확실한 게 있다.

“무엇입니까, 스승님?”

- 내공도 떨어지고, 무기도 부서지고, 팔다리도 부러지고. 그렇게 쥐뿔도 없는 상황에서 싸우면.

매화검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천하에 이놈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매화검선의 말에 종남일패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 흥,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고? 흐흐.

- 검 없을 때 얘기야, 없을 때. 그런데 내가 검을 놓을 리가 있나. 그러니 언제나 자네는 내 밑이지.

- 이이익! 이노오오옴!

천하제이인은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

- 별 볼 일 없는 늙은이다만, 실전 경험은 누구보다 풍부하니.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 별 볼 일 없다니, 네 사부와 내가 전성기에…!

그때 매화검선이 간절한 눈짓을 보냈다.

‘끄응. 배와 등에 칼을 맞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녀석이.’

종남일패는 마지못해서 말을 삼켰다.

- 저 고고한 놈이 저리 부탁을 하니, 한번 보아주기는 하마.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며 찾아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서는 천하를 놀라게 할 기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휘리리릭!

그리고 한 번의 시연이 끝났다.

“부족한 무공으로 고인의 눈을 어지럽혔습니다.”

점잖은 유운의 말에 종남일패가 꿀꺽 침을 삼켰다.

- 무공이 수련한지…, 고작 십 년째라고?

“…네, 그렇습니다.”

- 흐흐흐.

그리고 마침내, 매화검선이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 매화…아니 매검, 자네. 이런 보석을 혼자 감추고 있었단 말이지?

종남일패가 음흉하게 웃었다.

- 이놈아, 안 된다, 안 돼! 내 제자다!

- 사람인데 네 것 내 것이 어딨어. 침 바르는 놈이 임자지.

- 야 이 양심도 없는 놈아!

- 몰랐어? 나 원래 양심 없어!

- 으으으…! 이 노오옴!

소리 지르거나 말거나, 종남일패는 유운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 본 신선을 믿느냐? 믿지? 믿음직하지?

억지로 답을 강요하는 모습이 썩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네, 어르신.”

- 허허,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오늘부터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거라.

- 안 된다, 이놈아, 안 돼!

매화검선의 고함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 이 말 들어봤을 거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고.

“……!”

- 내가 너를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로 만들어주마.

그것은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강자존’의 무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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